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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거나 왜곡한 내용을 적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슬금슬금 채택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열 포졸이 한 도둑 막기 어렵다고 했으니, 이웃 나라는 물론 일본의 양심 세력까지 나서서 극구 반대를 하더라도 나쁜 마음을 가지고 일을 도모하는 넘들은 어찌됐든 당장은 자기 뜻을 야금야금 실현하게 될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상징적인 이슈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추억하는 일본의 수구적 경향과, 과거를 정당하게 반성적으로 정리하고 국내외적으로 건강한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이웃 국가들의 희망이 부딪히는 상징적 이슈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이런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일본의 과거사 은폐나 왜곡은 실질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일본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과거의 끔찍했던 집단적 광기를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지워버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몇 년을 산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비슷한 또래의 일본 젊은 사람들 중에서 2차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을 알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거의 모두 남경 학살, 관동대지진 학살, 종군위안부, 강제 징용, 마루타 실험 따위를 전혀 듣도보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웃 나라가 과거사 문제로 자기 나라와 부딪힐 때,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이웃 나라들의 '꼬장'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대체 과거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일까요. 아무리 감추고 왜곡한다고 해도 불과 수십년 전에 벌어졌던 엄청난 사건들이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지구 다른 쪽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00년대 말에 중동과 유럽이 만나는 지역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현재의 아르메니아 공화국 땅을 중심으로 하여 터키, 이란, 이라크 일부까지 포함하는 지역에 퍼져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터키를 지배하던 오토만 제국과 그 뒤를 이은 터키 정부는 수십년 동안 정부가 지원하는 인종 청소 캠페인을 벌여, 1백만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점 말고는 아무런 죄 없는 아르메니아의 남녀노소가 총살되거나 목이 잘리거나 산 채로 불에 태워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리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곳 저곳으로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자세히 볼까요. 터키(오토만 제국)은 인종과 종교가 다른 아르메니아인들을 오랫동안 차별하고 학대해 왔습니다. 급기야 1894년부터 3년 동안 오토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대규모 인종 청소를 본격적으로 단행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만 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이 숨졌습니다. 그 중 절반은 오토만 제국의 공권력에 의해 직접 학살된 희생자들이며, 나머지 절반은 이 학살로 빚어진 혼란의 와중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였습니다. 영어의 관용구처럼 되어버린 '굶주리는 아르메니아인' (the starving Armenians) 이라는 말도 이 때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은 오토만 왕국의 이러한 학살을 모두 외면했습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두려워하던 그들은 이를 저지할 세력으로 떠오르던 오토만 왕국의 성질을 건드리기보다는 국제 관계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아르메니아를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던 거지요. 1908년 터키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으로 오토만 제국의 권력자 술탄이 권력을 상실하고 입헌 정부가 들어서자,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제 숙명적인 비극이 끝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권력을 잡은 민족주의 정권은 옛 정권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909년에만 1만5천~2만 명이 새 공화 정부의 학살에 의해 또다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1차 대전이 벌어지자 터키 정부는, 초기에 러시아에 패배한 것을 정부에 충성하지 않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집단 탓으로 돌려, 본격적인 인종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1915년에 시작된 이 인종 청소로 터키 전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되거나 집단 수용소로 추방되었습니다. 추방 과정과 집단 수용소에서 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은 물론입니다. 1920년대 초에 두어 차례의 학살이 또 벌어졌으며, 1915년부터 1922년 사이의 기간에 죽은 아르메니아인의 수는 모두 1백만에서 1백50만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만행이 터키 정부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역사가들은 히틀러가 유태인을 강제 수용소에 몰아넣고 학살한 것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역사가 R. J. Rummel 은 1900~1987년 사이에 지구상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중 이 아르메니아 학살을 여덟번째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0세기 초에 벌어진 아르메니아 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터키 정부는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세계인들의 머리 속에서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리는 데 기막히게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터키의 과거사 은폐가 성공한 데에는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1차대전 이후 승전국들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독립 국가를 만들어줄 수도 있었으나, 패전국인 터키와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이들은 모두 아르메니아를 외면했습니다. 러시아 지역에 있던 아르메니아인들만이 소련 연방 중 하나인 아르메니아 공화국을 설립할 수 있었으며, 지금 아르메니아 공화국도 이 나라가 주축이 되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1923년 로잔 조약을 체결하면서, 아르메니아를 버리고 터키를 지원함으로써 이 나라로부터 상업적 이윤을 챙기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 대가로 이들은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공화주의자들의 집권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터키는 화약고와도 같은 중근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요한 우방국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터키는 그동안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 학살을 부정해 왔습니다. 그들은 아르메니아 학살이 과장된 것이라거나 아르메니아인들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이라거나 심지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은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은 이같은 억지를 용인하고 침묵했습니다. 그 결과, 1백만에 이르는 죽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9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득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가해자의 은폐, 왜곡과 이웃 나라들의 의도적 묵인, 피해자의 무력함이 복합되어, 아르메니아 학살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알쏭달쏭한 잊혀진 비극이 된 셈입니다. 이에 힘입은 신나치주의자들 역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조작된 것이며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강변을 꾸준히 내어놓고 있습니다. 일본이 벌이는 짓을 보면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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