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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소설가와 시인의 영원한 교통 수단이다. (The bicycle, the bicycle surely, should always be the vehicle of novelists and poets.) - 크리스토퍼 모얼리 (작가, 미국)
자전거 3. 6년 동안 잘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망가졌다. 며칠 전 아침, 집을 나서서 너댓 블럭을 지난 한 교차로에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발이 가벼워지면서 페달이 헛돌았다.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한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어이~ 체인 끊어졌네~~" 하고 소리쳤다. 바닥을 보니 낡고 녹슨 체인이 말라죽은 뱀처럼 아스팔트 위에 툭 떨어져 있었다. 이 자전거는 미국에 오자마자 월마트에 가서 70불 정도를 주고 산 멕시코산이다. 미국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새 자전거로는 거의 최저가에 해당하는 셈인데, 주인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제대로 돌보아 주지 않은 걸 고려하면 그동안 낡고 녹슬어 가면서도 잘 버텨준 셈이다. 자전거와 자동차와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아침이면 대부분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주차하기 쉽다는 점, 버스의 혼잡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 운동이 된다는 점, 차를 탈 때 느낄 수 없는 길가의 디테일을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낄 수 있다는 점 같은 것이 이유지만, 무엇보다 두 바퀴 탈것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원초적 선호가 가장 큰 이유다. 버스는 어차피 돈을 내지 않고 타도 되니 차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동안 이 값싼 자전거로 왔다갔다 하며 줄인 기름값과 체력단련비를 고려하면 이미 자전거 값은 빠져도 옛날에 빠졌을 것이다. 하긴 수명이 다 됐다는, 혹은 상당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신호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감지됐다. 브레이크 케이블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서, 패드를 새로 갈고 줄을 최대한 조였는데도 급정거는커녕 (조금 과장하자면) 글자 글대로 '풋 브레이크' 를 써야 할 정도까지 됐다. 주요한 연결 부위 주변의 페인트는 다 벗겨졌으며, 크랭크 휠 기어도 닳아서 이가 군데군데 빠졌다. 동력 전달 부위는 그동안 수시로 기름칠을 했는데도 녹이 슬어갔다. 변속 기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지금은 제가 알아서 기어를 바꿔버리는, 거의 오토 트랜스미션이 되어 버렸다. 기능과 관련된 부분은 손을 봐야 할 필요가 컸지만, 예전에 브레이크 케이블을 조금 조이는 수리를 맡기고 40불을 낸 적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수리점에 갈 생각이 안났다. 높은 인건비 때문에, 아무런 부품 교체 없이 공구로 줄만 조이는 데에도 자전거 값 절반 이상을 요구하더라 (상대적으로 자전거 값이 워낙 싼 탓도 있다). 체인이 끊어진 자전거를 집에까지 끌고 온 뒤 차를 타고 갔더니 예정보다 40분 가량 늦었다. 사무실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함께 일하는 아줌마가 내 자전거가 70달러짜리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그거 자전거 맞니?" 한다. 하긴, 미국넘들이 흔히 즐겨 타는 자전거는 기본이 4,5백불 정도고, 중고로 나오는 것도 대부분 1백불을 훌쩍 넘는다. 자전거 4. 여러 옵션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새 자전거를 하나 샀다. 창졸간에 돌아가신 옛 애마보다 몇십 불 더 비싼 놈을 골랐다 (4,5백불 짜리는 필요없다). 그 몇십 불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새 자전거를 집에 가져와 중요한 부위에 기름칠을 하고 시승을 해 봤는데, 아- 이런 세계도 있었나 싶었다. 단순히 새 것어서가 아니라 자전거의 차원이 달랐다. 몇백만원짜리 자전거를 타시는 분이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녹슬고 병든 구닥다리 최저가 자전거와 씨름하던 나로서는 그 차이가 정말 놀라웠다. 미국 넘들이 뭐가 힘 안들고 술술 잘 될 때 쓰는 말 'effortless', 딱 그거였다. 자전거 0. 새 자전거는 나의 네 번째 자전거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타시던 '신사용' 자전거, 페달이 아래로 내려갈 때는 발도 제대로 닿지 않는 그넘을 끌고 장마당을 누비다가 길가 고랑창에 처박던 걸 빼면 말이다. 그 때는 내가 직접 자전거를 끌기보다, 쌀가마를 싣고 다닐 수 있는 대형 자전거를 기가 막히게 예술적으로 다루던 1년 선배들 (그래봐야 초등 5, 6년) 의 뒤에 앉기를 좋아했다. 나의 단골 운전사는 이 아무개 형이었다. 이 대형 자전거 서너 대로 이루어진 폭주족들은 고개를 두엇 넘으며 옆마을로 원정을 뛰기도 했고, 풀밭에 주차한 자전거에 기대 앉아 서리해온 복숭아나 자두를 씹기도 했다. 내가 처음 배운 자전거도 이 '짐차' 들 중 하나였다. 어느 여름 초저녁, 시골 중학교 운동장에서 낑낑 페달을 밟다가 뒤를 돌아보니, 뒤에서 따라오며 잡아주고 있는 줄 알았던 선배가 멀찍이서 웃으며 서 있고 그 얼굴이 점점 멀어져가는 그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 1. 나의 소유로 첫 번째 자전거는 투쟁의 결과로 내 손에 들어왔다. 중학교 2학년 땐데, 자전거가 갖고 싶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좋은 자전거를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아무거나 그냥 자전거가 필요했다. 넌지시 말을 꺼내봤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나 놀랍게도 완벽하게 의기투합하시면서, 목소리를 합쳐서 "안돼"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교통이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져 가던 수도권 중소도시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돌아다니는 것은 도저히 허락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단식 투쟁은 이로부터 며칠 뒤부터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매달 아주 조금씩의 용돈을 받았다. 부모님이 먹여주고 입혀주니 그 작은 액수도 별달리 쓸 데가 없었다. 나는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그 용돈을 몇 달씩 모아서 샀다. 그렇게 해서 산 것들 중에는 세운상가를 누비며 산 라디오 몇 개, 납땜 인두나 '테스터기' 같은 전자 조립 기구, 연합고사를 보고 나서 당시 신설동 미도파에서 산 싸구려 클래식 기타, 그리고 좀 황당하지만 동대문 운동장 인근의 운동구점에서 산 권투 글러브도 있다. 그러나 자전거는 용돈을 모아 사기에는 액수도 좀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소유 자체가 허용이 되지 않았다. 일기장을 넣고 잠가두던 책상 서랍에 삼립빵을 몇 봉지 몰래 사놓고 시작한 단식 투쟁과 침묵 시위 사흘 만에 어머니는 손을 드셨다. 내가 구체적으로 요구 조건을 제시하며 시작한 투쟁이 아니어서,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에야 내가 뭘 요구하는지를 아실 수 있었다. "대체 왜 그러니? 응? 밥 안 먹을래? 왜 그래??" 이제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극적으로 타협을 볼 상황임을 짐작한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자전거..." 그날 저녁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청소년용 자전거를 가질 수 있었다. 주말에만 조심해서 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같은 투쟁 방법은 별로 권장되지 않음. 철이 들고 생각해보니 잠깐이나마 부모님이 참 괴로우셨을 것 같고, 아무리 빵을 몰래몰래 먹어가며 한 짓이라도, 한참 먹어댈 나이에 나도 참 괴로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에서 인근 중소도시로 이사한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이 자전거를 타고 옛 친구들을 만나러 4, 50분 거리 국도를 달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 더없이 친했던 남모군, 손모군과 전학온 뒤로도 상당 기간 우애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자전거 덕분이었다. 이상하게 뭐가 없어지고 나서 한참 뒤 생각하면 그것이 어떻게 없어졌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이 자전거도 새벽별 보기 운동을 주로 하던 고등학교 때 녹과 먼지가 함께 쌓여 가다가, 어느 날 그냥 없어졌다. 필요하지 않아서였는지, 어떻게 없어졌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옳다구나 하고 어느 날 남에게 줘 버리신 것 같다. 자전거 2. 두 번째 자전거는 서울 사당동에 살 때 샀다. 다 큰 어른이 서울에서 자전거를 필요로 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지금같은 웰빙 바람이 불기 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로 출근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당시 '피씨 통신' 사구팔구 란을 뒤진 끝에, 무지막지하게 튼튼하고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자전거 하나를 10만원 정도에 샀다.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했던 터라, 주로 교통이 뜸한 일요일에 사당역 사거리에서 광화문까지 자전거를 탔다. 말이 자전거를 탄 거지, 사실 그 구간의 상당 부분은 거의 걷거나 들다시피 해야 했다. 특히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자전거로 연결할 만한 도로가 없어서,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 이수역인가 전철역 구내까지 들고 들어가야 했다. 자전거가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차량이 붐비지 않을 때인데도, 도로를 타려면 정류장에 쇄도하는 버스들 때문에 용산이며 서울역 앞의 인도와 차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지체와 정체를 반복' 해야 했다. 그렇게 고생고생해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뿐더러, 시간으로 봐도 차를 타고 온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당시 회사에서는 수백만원대 고급 자전거 바람이 잠깐 불었고, 그 바람에 편승해 몇몇 사람이 그런 자전거를 샀지만, 자전거가 해야 할 본연의 일을 가장 제대로 잘 한 것은 아마 나의 10만원짜리 자전거였을 것이다. (김아무개씨의 자전거를 빼놓고 말이다). 이 자전거도 미국으로 오면서 살림살이를 부치고 나누고 처분하고 하는 과정에서 어딘가로 없어졌다. 당시는 한두 달 전까지 잘 쓰던 온갖 세간살이가 모두 애물단지나 골칫덩이가 되던 때였으므로, 어디로 없어지면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핏줄이 끊어진 멕시코산 월마트 자전거가 그 세 번째요, 그넘을 대치할 새 자전거가 네 번째가 되는 셈이다. 자전거에 대한 애착이라고 해봐야 랜스 암스트롱 같은 자전거 영웅의 그것과는 비교할 것이 못되고 그저 값 싼 자전거를 날 좋을 때 타고 나서는 정도지만, 그래도 그 만족감은 영웅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거기에 공자님이 선호하시는 레저 활동과 비슷한 것을 하나 덧붙이자면, 날 좋은 봄(여름, 가을)날에 마음에 드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들로 산으로 나가 바람쐬고 목욕하고 돌아오는 것이 또 크나큰 즐거움이 아니리요.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논어> 先進편) * 참고: 빌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에 따르면, 자전거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효율적인 기계라고 한다. 연료 효율이 좋은 소형 자동차도 기껏해야 1갤런당 30마일 정도고, 모터사이클이나 스쿠터도 가장 효율이 좋은 게 1백마일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칼로리를 연료양으로 환산하면, 자전거로는 1갤런당 3천마일을 갈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동부 끝인 뉴욕에서 서부 끝인 로스앤젤레스까지가 2,840마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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