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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대표의 입에서 유죄 평결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차이 뱅(36, 오른쪽 사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어서였을까. 여섯 명이나 죽인 상태에서, 정당방위로 무죄 평결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갖지 않았던 것일까. 진실이야 어찌됐든 말이다.겨울 몇 달 동안 계속되는 사냥철은 미국 중북부인 미네소타나 위스콘신의 사냥꾼들에게는 황금 시즌이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흥이나 오락 거리로 짐승의 정수리를 겨누어 총질을 하는 취미란 대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북부의 촌구석에 사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동절기 사냥은 중요한 취미이자 지역 사회에 전승되는 유구한 전통이기도 하다. 이런 사냥철에, 숲 속에서 만난 동양인 사냥꾼 한 명과 백인 사냥꾼 여덟 명이 충돌했다. 그리고, 동양인 사냥꾼의 총에 맞아 백인 사냥꾼 여섯 명이 사망했다. 동양인 사냥꾼은 손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대체 이 작은 사내는 어떤 이유로 숲에서 만난 '동료' 사냥꾼 여섯 명에게 총탄을 퍼부었던 것일까. 대체 그 겨울 그 숲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유죄 평결이 나온 후, 뱅의 누이가 울부짖으며 던진 말대로, 진실은 신만이 알지 모른다. 현장은 깊은 숲속, 가해자와 피해자 말고는 아무런 목격자가 없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장은 다르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모두 네 명, 모두 사후에 신고를 받고 달려간 경찰관들이다. 이들이 증언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사건 직후 벌어진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첨단 수사 기법이 발달했다고는 해도, 음모나 사전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이런 간명하고 투박한 사건 앞에서는 오히려 무력하다. 낙옆과 초목으로 뒤덮인 숲속에서 무슨 기발한 단서가 나올 것인가. 단서가 나온다고 해도 총질 직전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줄 수 없지 않은가. 여하튼 지금까지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미네소타주의 세인트폴에 사는 트럭 운전사 뱅이 일요일인 2004년 11월21일, 주 경계를 넘어가 위스콘신주 라이스레이크 인근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순전히 사냥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뱅은 오래 전부터 사냥을 즐겨온 애호가. 위스콘신 북부인 라이스레이크 지역은 겨울철에 사슴 사냥터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아침부터 사냥을 시작한 뱅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점심때쯤 개인 소유인 사유지로 흘러 들어갔다. 그곳이 사유지인지를 몰랐던 그는 마침 목이 좋은 자리에 설치되어 있던 나무 위의 위장막으로 올라갔다. 15분쯤 뒤에, 땅 소유주이자 사냥꾼인 한 백인 사내가 친구와 함께 나타나서, 뱅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뱅이 내려와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들은 근처에 있던 친구들에게 무전을 쳐서, 여섯 명이 두 대의 ATV 를 나누어 타고 달려왔다. 1대 8의 상황이 벌어졌다. 살아남은 백인들도 인정하듯이, 이들은 뱅을 둥그렇게 둘러쌌으며, 일부는 뱅에게 격렬한 언사를 쓰며 항의했다. 뱅은 대충 사과를 하고 슬슬 물러났다. 바로 여기서부터 양측의 주장이 달라진다. 뱅측 주장: 백인들은 인종을 깔보는 언어와 f-word로 가득찬 말로 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머릿수와 분위기에 주눅이 든 뱅이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백인 중 일부는 그를 가로막고, "너를 그냥 보낼 수 없다" "맛 좀 보여줘야 한다" "경찰을 부르겠다" 고 하며 위협했다. 그들의 격앙된 위협은 뱅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뱅은 가까스로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숲쪽으로 걸어가며 그들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뱅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뱅은 극도의 불안과 혼란 상태에서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 살아남은 백인측 주장: 뱅을 놓고 몇몇 백인이 '강한 언어' 를 쓰며 화를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죽어도 인종 비하적인 말은 한 적이 없다. 여럿이서 뱅에게 훈계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려고 했다. 뱅은 일행에서부터 멀어지더니 갑자기 움푹 파인 구덩이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러자마자 뱅 쪽에서 총소리가 나면서 친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총을 갖고 있던 한 친구가 대응 사격을 했으나 그도 쓰러졌다. 양측의 주장이 어쨌든간에, 이 충돌로 현장에서 백인 다섯 명이 뱅의 총을 맞고 즉사하고, 한 명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나머지 두 명은 부상을 입었으나 치명적이지 않아 모두 곧 회복되었다. 뱅은 한 발도 맞지 않았다. (뱅은 미국 육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이 사건의 쟁점은 1) 백인들이 뱅을 놓고 인종비하적인 발언을 퍼부었는가 2) 누가 먼저 총을 쏘았나 의 두 가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에서 양측의 주장은 정반대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일수록 선입관이나 편견이 사실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명백히 보이는 것 말고의 모든 '정황 증거' 는 도움이 되기보다 진실을 혼동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양측의 서로 다른 주장 말고는 진실을 알려줄 아무런 건더기가 없다. 이런 경우 오히려 정황을 잘 유추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소설적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지금 판결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라오스 출신으로, 어렸을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뱅은 흐멍이다. 멍족, 묘족으로도 불리는 흐멍은 라오스를 중심으로 한 인도차이나 지역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이다. 세계 각처에서 갖가지 인종과 민족이 밀려드는 미국에서도 흐멍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흐멍족 대부분의 미국 이민이 미국 정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정책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미국 이민은 미국 근대사와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초기에는 정치적으로, 나중에는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동안 미국은 이 지역에서 수많은 현지 정보원, 공작원들을 고용해 운용했다. 예컨대 와드 처칠은, 1968년에 미국 CIA가 베트남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으로만 25만명에 달하는 정보망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 모두가 흐멍은 아니지만, 많은 흐멍족 사람들이 미국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CIA는 라오스 흐멍족을 무장시켜, 베트남에서 빌려드는 공산군과 대항하게 했다. 당시 라오스에서 벌어진 전투는 대부분 라오스 정부군과 공산군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받는 흐멍군과 공산군과 벌어진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공산화된 인도차이나에서 살 수 없게 된 흐멍들은 태국과 같은 주변 국가로 탈출했다. 대략 30만명에 이르는 흐멍족이 태국의 난민촌으로 탈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삶에 일정한 책임이 있던 미국 정부는 이들을 미국으로 후송하는 프로그램을 입안해, 몇 년에 걸쳐 본토로 데려왔다. 이렇게 미국으로 건너온 흐멍족 사람들은 서부 캘리포니아주와 중부 미네소타주, 위스콘신주에 집중적으로 모여, 나름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2000년 센서스에서 집계된 흐멍족 숫자는 17만명. 그러나 흐멍 관계자들은 실제로는 이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에는 동남아에서 직접 건너온 1세대뿐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 3세대도 포함되어 있다. 나중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미네소타-위스콘신 지역에서 활동하는 흐멍 사냥꾼들도 그 수가 상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곧잘 백인 사냥꾼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냥꾼은, 두 측이 맞붙어서 사고가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고까지 말한다. 갈등의 얼개는 대충 비슷했는데, 백인 사냥꾼들은 흐멍측 사냥꾼들이 자기들과는 달리 사유지나 사유 영역 개념이 별로 없어서 남의 땅에 무작정 들어가 사냥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하며, 흐멍 사냥꾼들은 백인 사냥꾼들이 사냥이라는 스포츠와 문화를 독점적으로 누리기 위해 언제나 흐멍 사냥꾼들을 적대시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배경을 참고로 하여, 2004년 11월21일 바로 그 날 벌어진 일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동안의 사건 보도와 재판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 비극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내가 짐작할 수 있던 가능성은 딱 한가지뿐이다:자기 사유지에 들어와서, 그것도 자신들이 아끼는 사냥막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뱅을 본 백인은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무전을 쳐서 동료들을 부르면서, 그는 저 조그만 황인종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 황인종을 몰아치면서 f-word 는 물론 온갖 다양한 인종모멸 언어가 등장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뱅에게 던져진 가장 첫번째 말이 인종적인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건이 벌어진 북위스콘신은 흐멍족을 빼면 소수인종이 극히 적은 백인들만의 사회다. 소속 집단이 단일화되면 될수록 외부인에 대해 경계와 적대를 보이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같은 일차적인 단순한 정향을 이성적으로 극복할 만큼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한 코딱지만한 황인종 하나를 놓고 떡대 좋은 백인들 여덟 명이 둘러서서 어떤 언어들을 던졌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뱅은 매우 위축되었을 것이다. 백인들의 격앙된 '강한 언어' 를 들으며 그는 모멸감과 분노와 불안을 동시에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계속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므로 자리를 빨리 떠야 한다, 혹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났을 것이다. 그는 몇몇 백인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이를 피하거나 밀치며 일행을 떠나려고 했을 것이다. 격앙된 언어로 뱅을 다그치던 백인들은 그를 그냥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 되니까. 그런데도 뱅은 그냥 멀어져 가려고 한다. 한 놈이 뱅을 위협하거나 놀래주기 위해 공포를 한 발쯤 쐈을 것이다. 백인의 숫자는 여덟 명. 숫자가 많아지면, 즉 군중에 묻히게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심지어는 저 스스로도 예상할 수 없었던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바짝 쫄아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던 뱅은 이 총소리가 백인들이 자신을 향해 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패닉 상태가 된 그는 몸을 낮추고 돌아서서 무작정 '대응 사격' 을 시작했을 것이다. 갑자기 뱅으로부터 날아오는 총알에 백인들은 무방비상태에서 거꾸러졌을 것이다. 뭐, 대충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뱅은 자신이 먼저 총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살아남은 백인들은 뱅이 갑자기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9월에 벌어진 재판에서,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백인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뱅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진실이 무엇이든, 영화 같은 이 비극적 드라마가 시사하는 점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 문제란 노예해방으로 끝나는 것도, 몇 가지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보완되는 것도 아닌 깊고깊은 숙명적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의 인종 문제는 단순히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종 간에 차별(혹은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비롯된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일부 인종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우등한 족속으로 생각하며 다른 인종을 멸시하고 하대한다. 이들이 주도하는 사회경제 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예컨대 동네 음식점에서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박대에서부터 카트리나를 맞은 뉴올리언즈에서 벌어지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차별을 현실화시킨다. 그 결과, 사실이든 아니든 소수 인종들은 항상 차별받고 산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며, 이러한 인종간 갈등은 절대로 치유되지 않고 안으로만 곪는 상처로 존재하다 이따금씩 이렇게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있고 나서도, 죽은 백인들의 가족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이 사건이 인종 문제로 비쳐질까봐 매우 걱정했다. 뱅의 총에 맞고 죽은 자들의 가족이나 죽다 살아난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자신들은 인종주의자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인종 문제로 비치지 않도록 모두모두 입조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 문제 전문가인 신시아 그레이 교수에 따르면, 자신을 인종주의자라고 인정하는 인종주의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백인들이 인정하든 아니든, 이 사건은 인종간 갈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9.11이 있고 나서 덜떨어진 미국인들이 중동 출신 이민자 가족들을 테러하거나 미국 내 이슬람 사원을 공격했던 것과 꼭같이,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도 현지의 일부 백인은 차에 "사냥꾼을 보호하라, 이민자를 쏴죽여라" "흐멍에게 총부리를 돌려라" 같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아시아계 사람들이 사는 집 앞에 새벽에 협박성 전단지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뱅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진 재판정에는 백인 피해자 가족들과 동네 사람을 중심으로 한 50여 명의 방청객이 앉아 있었다. 참고인으로 나온 경찰이 현장 상황을 설명하거나 사진을 제시할 때마다 재판정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 뱅의 엄마와 누이를 제외하고 재판정에 나온 흐멍족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는 재판이 끝나고 나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자신은 뱅과 아는 사이이며 그를 존경하며, 그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재판을 참관하기로 했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에 나오는 것 자체가 위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다른 흐멍 사람들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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