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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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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가, 한 기업이 마련한 토론 자리에 기자들이 참석한 걸 보고 토론을 취소하고 자리를 떠났다는 기사다. 한 신문 인터넷 판에는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는데, 하나는 연합뉴스를 그대로 전재한 것이고 하나는 해당 신문 담당 기자가 쓴 것이다.
황교수, 생명과학 대담 직전 갑자기 발길 돌려 “이러면 곤란하죠” 자리 박찬 黃교수 애써 마련한 일본 학자와의 토론 자리까지 찾아온 황교수가 왜 갑자기 몸을 돌려 되돌아가버렸을까. 앞의 연합뉴스 기사는 황교수가 자리를 뜬 것을, 사기업 행사에 참석한 것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 했다. ("황 교수는 그러나 현장에 모인 기자들을 보자 자신이 기업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외부에 알려질 수 있다는 점에 부담을 느껴 급하게 불참을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뒤의 동아일보 자체 기사는 해당 기업이, 기자들이 참석하는 공개 대담임을 황교수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이유를 달았다. ("이 대담을 주최한 바이오벤처회사 크리스탈지노믹스가 기자들이 배석하는 ‘공개 대담’이라는 사실을 황 교수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아 기사가 제시한 이유는 사실(fact)을 진술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연합 기사의 이유는 기자의 추정을 제시하는 형태다. 같은 사건에 대해 한 기사는 사실을 이유로 들었고 다른 기사는 추정을 동원했다. 기자가 점장이와, 혹은 독심술가와 동의어가 아닌 한, 어떤 것이 올바른 기사인지는 뻔하다. 황교수가 기자들이 토론에 참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연합 기사에서 말한대로 사기업 행사에 참석한다는 게 알려지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을 수도 있고, 토론의 내용이 대중에게 공개될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대로, 황교수가 하고 있는 일은 보안을 필요로 하는 사항이다. 그는 그동안 자기 일과 관련한 보안의 중요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누누히 강조해 왔다.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기자의 추정이 다행히 맞는 것이라 해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밀도 높은 분석 기사를 쓸 경우에는 뉴스의 중심에 선 인물의 의중을 조심스레 추정하여 기사를 쓸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추정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를 자기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결국 기사(기자)의 추정은 사실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심증이 있어도 물증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의중을 기사로 마음대로 '풀이' 해서는 안된다. 한편, 문제의 연합 기사는 기사 말미에서, 해당 토론 자리에 기자를 부른 게 누구냐는 걸 놓고 해당 기업과 과기부의 말이 다르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며 다음과 같이 멋지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간 입장이 엇갈리는 것과 관련, 황교수 대담 거부에 대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나오고 있다." 궁금하시지 않은가? 대체 저게 누구의 여론인지. 이 기사에서 활용되고 있는 정보는 이 기사가 작성되어 보도되기 전까지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정보다. 기업 담당자 말이나 과기부 담당자 말은 모두 해당 기자가 직접 전화를 해서 알아보는 식의 취재 과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다. 다시 말해, 해당 기자나 몇몇 그 주변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여론이 나올 건더기가 없는 것이다. 마감 시간에 쫓겨 급히 기사를 써야 했을 기자가 이 문제를 놓고 주변에 광범위하게 의견을 구해 '여론' 을 타진해보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 결국 저 비판 여론은 해당 기자의 의견이라고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혹은 그의 동료, 같은 출입처 기자 몇몇의 의견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혹은 기업과 정부 관리 양쪽에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는 황교수측의 의견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들의 여론이 그 '비판 여론' 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여론이란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을 말한다. 이런 사전적 정의에서 시사하고 있는 것은, 여론이란 개개인의 의견의 집합일 뿐더러,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의견이 '여론' 이라는 말로 표현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것이든 일부 이해 당사자의 것이든 그 의견을 '여론' 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처럼 보이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힘에 저절로 익숙해진 저널리스트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자신의 의견을 (혹은 자신이 선호하는 의견을) 다수의 것으로 포장하는 서술 방법을 즐겨 쓰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여론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의견이나 정치 지도자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포장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비슷한 사례로, 한국의 많은 기사가 피동형을 사용하여 기자 자신의 의견을 모호하게 포장하는 서술 방식을 쓴다. 예컨대 "- 인 것으로 분석된다" "-할 것으로 보인다" "-을 것으로 전망된다" 등이다. 여기서, 분석하고, 보고, 전망하는 사람은 기자다. 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분석하고 전망한다면 그 소스를 밝혀야 한다. 그 소스를 밝히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기자 자신의 분석이고 전망이다. 그러나 주어를 밝히지 않고 피동형을 써서 기사를 서술하는 순간, 기자 개인의 분석과 전망은 갑자기 객관적인 것으로 승격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물론 해당 기삿감에 대해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는 일반 대중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더라도 기자는 개인이다. 그것도 참여하는 개인이 아니라 관찰하는 개인이다. 자기가 말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취재원을 찾아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하여야 한다. 미국 한 저널리스트는 취재 서술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많은 경우, '관계자에 따르면' 의 관계자는 기자 자신이고, '전문가에 따르면' 의 전문가는 기자가 잘 가는 술집 바텐더이며, '분석에 따르면' 의 분석가는 기자의 마누라일 경우가 많다" 라고 자조적으로 서술한 바 있다. 새겨들어야 할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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