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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하면서도 평범한 만화가 하비 피카를 소재로 한 전기 영화 <아메리칸 스플렌더> 에서 주인공 피카는 말한다. 전화번호부에서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그 특이한 이름 Harvey Pekar 를 가진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호기심.
얼마 뒤, 한 하비 피카가 죽었다는 부음 기사가 신문에 났음을 함께 일하던 동료가 알려주었다고 한다. 또다른 한 하비 피카는 그의 아들이었음이 밝혀졌다 (주니어). 만화가 하비 피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채 같은 도시 클리블랜드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도 6개월 뒤에 죽었다고 한다. 피카는 그들 누구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이들의 소식을 듣고 슬펐다고 한다. 그리고,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피카는 자신과 그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 인터넷을 쓰고 검색이 생활화된 이래, 나는 가끔 내 이름을 인터넷 검색에 집어넣어 보는 헛헛한 짓을 한다. 나와 같은 이름을 쓰며 사는 사람들은 누군지,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이다. 호기심 때문에 이런 비밀스런 일을 하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닌가보다. 종종 나오는 기사들은 이런 '자기 찾기' 가 웹 서퍼들이 즐겨 하는 오락거리 중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사람 마음이란 다 비슷하겠지. 내 이름은 아주 특이하지는 않지만 그리 흔하지도 않다. 덕분에, 인터넷 검색으로 만날 수 있는 또다른 나들은 대충 검색 결과 페이지 10쪽 안에서 다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이런 검색을 통해, 어떤 나는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서울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의 장인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도 알게 된다. 또다른 나는 2002년부터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하여 오다, 지금은 홍대 근처에서 중개업소를 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물론 시험 보는 나와 중개업소를 열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나 중에서 가장 어린 나는 두세살 안팎의 아기인데, 그를 이뻐하는 부모가 그를 사진관에 데려가 사진을 찍었다. 대구의 한 중학교에 있는 나는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하는지, 학급 홈페이지에 '숨은 일꾼' 으로 소개되어 있다. 녀석... 숨은 머머 이딴 거 다 소용없어. 표나게 해야지... 강원도 홍천에서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인 나도 있고, 같은 학년에 같은 이름이지만 전남 광양에 있는 나도 있다. 어떤 나는 무지무지한 마라톤광인데, 인터넷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기도 하고 하프마라톤 완주자 기록 명단에도 여러 차례 올라 있다. 마라톤 완주자 명단이라는 무지막지한 제목을 가진 사이트에 들어가 있는 내 이름은 매우 낯설고 놀랍다. 또다른 나는 증권에 관심이 있는지, 증권 사이트에 올라온 글에 가끔씩 댓글을 달고 있다. 경북의 한 통닭 체인 회사에서 대리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도 있고, 인천에서 생과일 카페 전문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나도 있다. 인터넷에서 걸린다는 건 이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다. 속으로 막 파이팅! 이 외쳐진다. 인터넷은 심지어,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북한 기술자가 있어 공학 관련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도 알려준다. 우울한 소식도 있다. 고등학교 때 사고로 다친 다리가 군에 가 있을 때 덧나서 지금껏 고생을 하고 있는 20대 중반도 있다. 90년대 후반 천안에서 택시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사람도 있다. 이 교통사고는 한 법률 상담 사이트에 판례가 되어 들어가 있다. 인터넷으로 잡히는 '나' 의 이야기 중에는 기쁜 것도 있고 가슴 아픈 것도 있다. 검색으로 뜨는 창만으로도 그 사람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인지 이런저런 일에 낙망하여 의기소침한 채 힘겹게 살고 있는지 느낌이 온다. 하비 피카가 그랬듯, 나 역시 우연히 나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 만으로, 이들과 무형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슬픈 소식보다 기쁜 소식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은 같은 상징물을 갖고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인지상정인 것 같다. 그림: <아메리칸 스플렌더>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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