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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넘어간다는 소식이 나온 뒤 쏟아져 나오는 이글루스 식구들의 의견은 정말 눈물겹다. 사용자로부터 이렇게 뜨거운 애정을 받고 있는 이글루스는 행복한 업체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고객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내가 2003년 11월에 이글루스에 자리를 낸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라 할 수 있다. 블로그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글루스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 볼 수밖에 없다. 당시 나는 홈페이지 관리를 꽤 귀찮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HTML을 주물럭거려야 하고, 작은 수정을 위해서도 프론트페이지나 드림위버를 열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게 재미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것이 영원히 재미있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사람도 많이 찾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 그냥 잡글이나 올리는 홈페이지 관리 치고는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갔던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아는 분 홈페이지에 갔다가, 거기에 링크가 되어 있던 이글루스 블로그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가만히 페이지를 살펴보다가, 나는 내가 가진 고달픔의 많은 부분이 이 새로운 웹 퍼블리싱 장치로 손쉽게 해소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보는 순간 홀딱 빠진 나는 바로 이글루스 계정을 열었다. 이 때만 해도 내가 홀랑 빠진 것은 이글루스가 아니라 블로그라는 형식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계정을 열고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었거나 그 후 막 생기기 시작한 포털형 블로그 서비스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첫 블로그로 이글루스를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됐다. 왜? 내 취향과 딱 맞았으니까. 우선 blog.xxx.com/deulpul 의 형식이 아니라 한 슬래쉬 안에서 세 단어로 사이트 주소를 완결시켜 준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개인 도메인을 사지 않고 홈페이지 공간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아보신 분들은 이게 얼마나 신경쓰이는 사항인지 잘 아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매력은 그 내용에 있었다. 깔끔하고 통제하기 쉬운 구성은 다른 포털 블로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매력이었다. 꼭 필요한 기능만을 배치하고, 게다가 사용자에게 큰 통제권을 준 것은 온갖 지지고볶는 잡메뉴로 가득찬 포털 사이트나 그 블로그들로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었다. 마치, 폐차시킬 때까지 거의 한 번도 쓰지 않을 온갖 기능을 집어넣은 자동차와, 오로지 날씬하게 달리는 기능만 충실히 구현해 놓은 레이싱 자동차 같은 정도의 차이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글루스가 '블로그 전문 이글루스'라는 슬로건을 쓰는 데 한치의 반대도 없다. 깨끗한 페이지 구성을 바라고 광고 배너조차 달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사용자의 욕심이고, 운영 업체 처지에서는 눈물나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러나 어쨌든 이글루스는 그런 서비스를 몇 년 동안 제공해 왔으며 그로써 사용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유지해 왔다. 또 이런 건 어떤가. 이글루스는 적당한 때에 딱 적당한 만큼씩만 업그레이드를 해 왔다. 사용자의 요구가 있으면 검토를 하고 적당한 시기에 요구를 반영해 왔다. 기능 개선 뒤에도 사용자의 의견을 폭넓게 들으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가입자가 많아서 그런지 의견 수렴은 개뿔, 해 주는 대로 받아나 먹으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다른 블로그 서비스에서는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글루스에는 초딩이 없다. 있다면 건전초딩13세님 정도다 (물론 초딩이 아니시다). 물리적 초딩이 없는 이 전대미문의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상황은 정신적 초딩마저 스스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믿는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 법. 초딩(으로 대표되는 그분들)이 난리를 피우기 시작하면, 이들과 맞서 싸우거나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전체 사용자의 평균 정신 연령이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꽤 오래 전에 이글루스를 사용하지 않는 어떤 분이, 설치형을 비롯해 여러 블로그 업체의 글이 함께 뒤섞여 올라오는 블로그코리아의 새 글 목록을 보노라면, 하얀색 아이콘이 붙는 이글루스 블로그 글들에서는 왠지 다른 냄새가 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왜 이런 남다른 냄새가 나는 것일까. 많은 분이 이글루스 블로거들의 진지함이나 전문성을 그 이유로 지적하고 있으며, 나 역시 그렇다. 이것은 이글루스 블로거들의 자랑이며 자부심이다. 이글루스 블로그에서는 코믹이나 엽기, 심지어 일기 콘텐츠마저도 진지하고 전문적인 코믹이고 엽기였으며 일기였던 것이다. 이런 점은 블로그 내용뿐만 아니라 블로거간의 소통, 블로거와 업체인 이글루스간의 상호 작용 같은 교류의 영역에서도 그랬다. 다른 블로그 사이트들에도 진지하고 전문적인 블로그가 많이 있지만, 옥석이 뒤섞여 뒤죽박죽되는 시장통 마당에서 순수한 진정성만 골라 찾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점 때문에, 나는 다른 포털에서 블로그를 하시는 분을 보면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는 말을 서슴없이 해 왔다. 이렇게 쓰다보니, 마치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 대해 좋은 말만 늘어놓는 추도사처럼 되어가는 느낌이 있지만, 여하튼 이글루스 블로거들은 이렇게 살아왔다. 그간 이글루스가 사용자로부터 비판이나 지탄을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뜨거운 애정을 바탕으로 한 비판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글루스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고, 그것도 하필 그동안 뜻있는 네티즌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던 운영 철학(이란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을 갖고 있는 업체에 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글루스 사용자들은, 바로 이런 이글루스만의 장점이 소멸되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싸이월드 스타일의 서비스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러나 싸이를 하든 이글루스를 하든 네이버 블로그를 하든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본인 취향에 맞는 형태의 웹을 하면 그뿐이다. 꼭같은 이유로, 이글루스 취향인 수만명의 삶터를 빼앗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글루스 취향은 이대로 놔두고, 싸이 취향은 또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 싸이월드가 모조리 이글루스 스타일로 바뀌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글루스가 모조리 싸이월드화 하는 것도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이글루스 블로거들 앞에 놓인 현실은 후자의 가능성이다. 이글루스의 매각 소식이나 그것이 나온 뒤 사용자들의 반응은 마치 80년 방송통폐합 때를 연상케 한다. 방송 주체만 바뀌고 주파수나 채널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했(던 것 같)다. 아니지. 실은 주파수나 채널만 바뀌지 않고 모조리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것을 슬퍼하고 분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독재정권의 외압에 의한 것이든, 혹은 수익성을 이유로 한 금압(金壓)에 의한 것이든간에, 정든 고향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 변질될 지경에 처한 것을 보는 사용자의 마음은 착찹하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지만, 왜 이글루스가 다른 대안을 만들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크다. 많은 검토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가장 손쉬운 결정인 것 같기도 하다. 사용자들과 함께 다른 방법을 좀 찾아보기로 작정했다면 길은 여럿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글루스는 지금에야 실체로 확인할 수 있는 사용자들의 충성도에 뒤늦게 놀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거품이라고 한다. 물론 일시적인 거품도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윗쪽 한 켜 거품을 걷어내면 그 밑에는 든든한 신뢰와 애정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사용자 시각에서, 이런 신뢰와 애정을 저버린 것은 경솔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글루스든 온네트든 땅파먹고 살순 없다. 자선단체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 신명만 나면 놀라운 일을 해치운다. 전국민이 푼돈을 모아 세계 최초의 국민 신문을 만들기도 했고, 오로지 축구 하나 때문에 서울 한복판을 새빨갛게 덮기도 했다. 계약까지 다 해둔 상태에서, 계약을 파기하랄 수도 없으니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지만 말이다. 이글루스 운영팀은 매각과 함께 같이 넘어간다고 했으니 그렇다치고, 앞으로 이글루스를 소유하게 될 새 주인은 부디 싸이월드와는 그야말로 대척에 서 있다고 해야 할 이글루스의 독특한 문화를 잘 살펴, 그 장점을 보존하는 운영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집단 이주는 그 때 해도 늦지 않으리. 판이 아니다 싶으면 나부터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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