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장
이 블로그의 글들 VI 이 블로그의 글들 V 이 블로그의 글들 IV 이 블로그의 글들 III 이 블로그의 글들 II 이 블로그의 글들 I ※ 예전 글들의 카테고리 분류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테고리
때時 일事 (Issues)
중매媒 몸體 (Media) 미국美 나라國 (USA) 갈硏 궁구할究 (Study) 흩을散 글월文 (Prose) 욀諷 찌를刺 (Satire) 짧을短 생각想 (Piece) 낱個 사람人 (Personal) 연결連 이을續 (Series) 섞일雜 끓일湯 (Others) 두二 바퀴輪(MCycle) 최근 등록된 덧글
네, 그런 점에서 '아무나'..
by deulpul at 12/27 아, 정말 그런 기능이 .. by deulpul at 12/27 예술이죠! 예술도 그냥 .. by deulpul at 12/27 블로그 인터뷰 문의한 사.. by 서혜영 at 12/27 "그림의 떡 이미지"가 마.. by 꿀꺽~ at 12/27 최근 등록된 트랙백
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by 민노씨.네 일년이 다 된 글인데 새삼.. by 물리학 흠냐, 울 마눌은 백설공.. by 뒤돌아 보지 않는다, 후.. 검찰과 기자, 국민 세금.. by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팅.. 전국국어대회 '4대강' 토.. by Green Monkey Blog** 태그
|
저널리스트를 하다 은퇴한 옆집 아주머니가 이사가면서 책상을 하나 주고 갔다. 혼자 들긴 좀 무거웠는데 억지로 용을 쓰다보니 한 쪽이 조금 어그러졌다. 나사못 몇 개로 튼튼히 고정시켰다. 스크루드라이버가 또 한번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튼튼한 공구와 연장은 남자의 로망이라고. 로망인지 노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손에 잘 맞는 공구가 있으면 일이 훨씬 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갑남을남이 반짝반짝 빛나는 크롬도금 툴 세트를 보고 침을 흘리는 것은 뭐, 분명히 노망만은 아닌 것이다. 책상에 나사못을 돌려박는 데 쓴 이 드라이버는 우리 집 연장통에서 굴러다니는 드라이버류 십여 개 중에 내가 가장 신뢰하는 놈이다. 일자와 십자 날을 바꿔 끼울 수 있고 각각 크고 작은 두 사이즈로 되어 있어서, 1인5역(날을 다 뺀 뒤에 소형 렌치로 쓸 수도 있다)을 한다. 단단하고 묵직해서, 뭐든 좀 큼직하고 묵직해야 마음에 드는 내 취향에 딱 맞는다. 보기만큼 재질도 강해서, 목질이 촘촘한 나무합판에 큰 나사못을 박아넣을 때에도 날이 깎이지 않는다. 이 드라이버에는 사연이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나는 외국 학생과 지역 주민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언어와 문화 교류 같은 취지로 일대일 만남을 주선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며칠 뒤, 도리스 할머니가 전화를 해 왔다. 이렇게 드 머스 부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도리스는 은퇴한 교육자로, 남편 레이먼드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 모두 70을 막 넘긴 나이였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들의 집을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공식적으로는 도리스가 나의 파트너였지만, 항상 집에 머물러 있는 레이먼드도 종종 대화에 끼고 싶어했다. 그럴 때마다 도리스가 핀잔을 줬지만. 레이먼드 할아버지는 키와 몸집이 모두 컸다.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언제나 씩씩하고 쾌활한 느낌을 주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대로 걸어다니지 못했다. 한국전쟁에서 중국군에게 포로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석방되는 과정에서 입은 무릎 부상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집안을 돌아다닐 때에도 보조기구에 의존해야 일어서서 걸을 수 있었다. 언젠가 그는 이런 농담을 했다: "참 이상하지. 옆 방 가는 것은 힘들어 죽겠는데, 옆 주(州) 가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 말야." 마음대로 걷거나 달릴 수 없는 그도 자동차로는 날아다녔다. 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레이먼드는 암 진단을 받았다.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다. 나에게 처음 그 소식을 알려주던 날, 이야기를 하던 도리스나 자기 서재에서 미식축구를 보면서 뭐라고 큰 소리로 중얼거리는 레이먼드나 별로 크게 상심하지 않는 눈치여서 신기하게 생각했다. 너무 놀라운 소식이라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당황하는 내가 오히려 어색했다. 레이먼드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약물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경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보기에도 안색이 점점 나빠져 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쾌활했다. 항상 곱게 빗어넘긴 은발은 병 때문에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성품을 잘 말해주었다. 병원을 다녀온 날이면 큰 목소리로 병원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불평하며, 나보고 아프지 말라고 했다. 서비스가 엉망이라서. 어느 토요일 봄날에 집을 찾아갔더니 레이먼드가 나를 불렀다. 자기가 홈페이지를 만드는 걸 도와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그 시절에, 70 넘은 노인네가 자기 홈페이지를 갖기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한편 놀랍고, 한편 외람되지만 기특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계정을 하나 열고, FTP며 뭐며를 활용해 파일을 올리고 페이지를 짜는 법을 알려드렸다. 그 뒤, 그는 스스로 공부해가며 내용을 채워 넣었다. 곧 익숙하게 다루게 되어서, 나의 도움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레이먼드는 국적을 불문하고 지금까지 내가 아는 가장 나이 많은 웹마스터였다. 방문자가 없는 홈페이지는 의미가 없다. 그의 홈페이지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가 염두에 둔 방문자들은 미국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그의 자식과 친척, 친구들이었다. 그는 매일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했다. 홈페이지 첫 줄은 항상 날짜로 시작했고, 그 다음 줄은 40pt 쯤 되는 큰 글씨로 언제나 같은 메세지를 띄웠다: "I AM STILL ALIVE" (나는 아직 살아 있소). 자신이 여전히 살아서 암과 싸우고 있음을 친지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가 홈페이지를 만들고자 했던 동기였던 것이다. 그는 100달러짜리 디지털 카메라와 스캐너까지 사서 열심히 자기 모습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가 홈페이지에 올려둔 젊을 때의 흑백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 늙고 병든 이 노인의 속에 그렇게 젊고 건강하고 멋진 청년이 들어있을 줄은 몰랐다. 흑백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그의 멋진 모습과 그 옆에 나란히 붙은, 늙고 병든 현재의 사진, 그 사이의 시간적 공백은 삭제된 그 홈페이지의 레이아웃을 보면서, 인생이란 얼마나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아득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남녀 차별이 없는 미국이라도 집안일 중 남자에게 주로 맡겨진 것들이 있다. 부서진 집안 가재도구를 수리하는 일 따위가 그렇다. 레이먼드의 병세가 심해지자 도리스의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는 내 눈에도 드러나게 표가 났다. 한 사람은 아프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돌보느라 딴 데 신경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그의 집 현관에 달려 있는 도어 벨 스위치는 낡고 깨져서, 나는 그 스위치를 누르는 대신 언제나 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불러야 했다. 어느 날, 가게에 갔다 오는 길에 새 스위치를 하나 사 두었다가 도리스의 집에 가서 달아 주었다. 낡은 것을 떼어내고 새 것에 전선을 연결해 나사못으로 박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나는, 이 스위치는 내가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달았다고 말해 주었다. 다음 주에 그들을 찾아갔을 때, 레이먼드는 바로 저 드라이버를 준비해 두었다가 내게 주었다. 좋은 일꾼은 좋은 공구를 가져야 한다는 말, 또 그걸 쓸 때마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말과 함께. 내가 그들 부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까마득히 떨어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먼드는 돌아가셨다. 그의 홈페이지가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을 보고 안좋은 일이 있는 것이나 아닐까 짐작만 하다가, 그 지역 신문의 부고란을 찾아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어 해 뒤, 무슨 일로 근처를 지나다가 일부러 옛날 살던 곳을 찾아갔다. 혼자 살고 계실 도리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 응답도 없었다. 창을 통해 들여다본 안에는 가구랑 집기가 달라져 있었다. 건너편 집을 찾아가 물어보니, 레이먼드가 돌아가신 뒤 도리스는 1년을 혼자 살다가, 두 딸이 있는 다른 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그렇게 이들과 소식이 끊어졌다. 레이먼드가 준 이 드라이버는 그래서, 나에게 단순한 공구 이상이다. 드라이버를 들면 그가 말한 대로, 언제나 그가 생각난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 털털한 웃음 뿐만 아니라, 따뜻한 남쪽 날씨, 날씨만큼 따뜻하던 도리스 할머니, 두 사람이 주고받던 정겨운 잔소리, 집안을 밝히던 은은한 전등들, 브릿지 하던 사각 테이블, 쿠키 굽던 냄새, 정원에서 자라던 탐스런 토마토 같은 것들이 함께 떠오른다. 이런 표정들과 광경과 냄새와 사연들이 드라이버가 되어 내 손에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