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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신념을 지키는 일은 대개 매우 고통스럽다. 스스로 믿는 바가 다행히 사회 통념이나 시대의 주류와 어긋나지 않을 때, 신념을 지키는 노력이나 그것을 지키느라 겪는 고통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불필요하다. 신념을 지킨다는 말은 흔히, 믿는 바의 포기나 훼절을 요구하는 강압과 유혹을 전제로 하며, 이 경우 내가 믿는 바를 믿고 실현하며 사는 삶은 수많은 신산스러움을 동반한다. ![]() 이 사내는 로버트 드니로다. 그가 연기하고 있는 1950년대 초 미국 영화감독 데이빗 메릴은 지금 막 뉴욕에서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뉴욕에서 누구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으나, 아무도 그와 일하려 하지 않았으며, 옛 친구들도 그에게 자기 집 지붕 한 모서리 내어주지 않았다. FBI 끄나풀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이 사실을 안 친구들은 모두 그를 멀리했다.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이유는 단 하나, 매카시즘이라는 시대의 광풍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았다. 미친 시대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단지 몇 사람의 이름 뿐이었다. 그렇게 이름이 불린 자들 역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면 큰 고통없이 지나갈 것이었다. 친구 몇 명의 이름, 이것은 메릴이 그동안 누리고 오던 모든 부와 명예를 계속하기 위한 간단한 보증수표였다. 시키는 대로 반미활동위원회에 나가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주고 몇 명의 이름만 대면, 그는 안전할 것이었다. 간단하고 안전하지만 메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상과 표현이라는 원초적 자유에 대한 믿음, 친구와 동료를 팔아넘길 수 없다는 그의 신념으로 인해 그가 받은 대가는 참혹했다. 옛 친구와 동료는 자기네 안전을 위해 그를 외면했다. 일은 주어지지 않았고 생활은 궁핍해졌다. 영화감독으로서, 또 한 사회인으로서 메릴의 수족을 잘라버린 매카시즘은 그를 철저히 파괴했다. 그는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으로 건너갔으나, 한없이 망가지고 꺾인 채, 달랑 가방 두 개를 들고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그레이하운드 터미널 한 구석에서 좌절하고 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리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과 변함없는 압력. 결국 그는 위원회에 나가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메릴은 신념을 포기하고 즐거운 인생을 택할 것인가. 그는 위원회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대는 대신 다음과 같이 포효했다: Don't you have any shame!!?? ![]() 영화감독 메릴은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메릴의 길을 선택한 할리우드 사람들은 아무런 실체적 범죄 사실이 없는데도 투옥되어 실형을 받았다. 그 뒤로도 이들의 삶은 철저히 망가졌다. 어두워지는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고개를 깊히 파묻고 있는 메릴은 미쳐 돌아가는 시대의 비상식이 개인에게 얼마나 아픈 상처를 주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찢기면서도 광풍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의 고통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진정으로 파괴하는 일 중 하나는 밥과 신념을 켤레짝으로 던져놓고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만 비굴하면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조금만 비굴하면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고 태양은 다시 환하고 따뜻하게 떠오를텐데, 조금 비굴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을 걸 만큼 의미있는 일일까. 질문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정답은 없다. 많은 경우, 신념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은 따뜻한 밥이다. 따뜻한 밥의 중요성을 아는 우리는 남에 대하여 신념을 지키고 밥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 없다. 따뜻한 밥, 이것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동물이기도 한 우리에게는 숙명적인 유혹이다. 그러나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따뜻한 밥만을 삶의 지표로 삼아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돌아보는 것은, 그것이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공개> (Guilty by Suspicion), 1991년,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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