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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밭을 갈았다. 널찍한 양지녘 언덕배기를 조각으로 쪼개어, 원하는 사람이 돌볼 수 있게 한, 말하자면 주말농장 같은 밭이다. 손바닥만한 터지만, 겨우내 팍팍해진 땅을 뒤집는 일은 농기구가 손에 익지 않고 땅에 겸손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만만치 않다. 이럴 때의 삽질이란 언제나, 하는 사람도 힘들고 보는 사람도 비슷하게 힘들다. 올해는 다행히 기계가 밭을 갈아주었다. 한나절 끙끙대고 또 그 뒤 며칠을 부록으로 끙끙대야 할 일이 10분만에 끝났다. 기름진 검은 흙은 적당한 깊이로 곱게 부서졌다. 밭갈이로 무너진 고랑과 이랑을 다시 정리하는데, 같은 삽질이라도 얼마나 일손이 덜어졌는지 모른다. 이렇게 터를 잘 닦아 놓으면 잡초가 제일 큰 걱정이다. 식물이 제각기 파종에 적당한 때가 있어서, 아직 눈 내릴 가능성조차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 곳에서는 밭 갈자마자 바로 씨뿌릴 것들이 몇 안되기 때문이다. 터는 잘 다듬어져 있고 정성을 받으며 자라는 식물은 없으니, 겨우내 씨앗 속에서 움츠려 있었던 생명력 강한 잡초들이 앞다투어 싹을 틔운다. 이 즈음에 제일 골칫덩이는 민들레다. 어찌나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지,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밭이 온통 민들레밭이 되어 버린다. 초봄에 싹터 자라다 노란 꽃을 피우고 하얀 씨까지 맺으면 그게 또 싹을 틔워서, 아들손자 몇 대가 키재기를 하며 이웃해서 사이좋게 자란다. 뿌리도 깊고 어릴 때부터 흙을 단단히 끌어안고 있어서, 일단 들어서면 영 애물단지다. 자주 내다보고 자주 손을 봐주는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한 번씩 내다보다가는, 밭 둔덕 위에서 민들레와 작물 사이에 우점종을 가릴 수가 없어진다. (저 위 사진에서 노랗게 보이는 것은 모조리 민들레.) 온라인 글밭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오래 내버려 두어도 잡초가 무성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잠시 버려두다싶이 했는데도, 계면쩍은 생각들이 어디로 사라져 주지도 않고 여전히 어수선하게 차 있다는 걸 빼고는 그대로 안녕하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씩 들러본 밸리나 메타블로그도 여전히 풍성하고 활기로왔는데, 세상이 나 없이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 기쁘고 한편 슬펐다. 다 아는데 꼭 그렇게 다시 콕 찍어서 말해줘야 하겠냐구. 힘들고 슬픈 일을 겪을 때, 착한 우리네는 과거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뭘 잘못하지 않았나.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내가 못할 일을 하지 않았나. 과거를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도통 기억도 나지 않는 전생까지 간다.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런 거 아니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기쁘고 좋은 일과 슬프고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은 50 대 50이다. 기쁨의 뒷면은 슬픔이고 슬픔의 앞면은 기쁨이다. 삶이란 기쁨을 씨줄로, 슬픔을 날줄로 직조하는 베틀질 같은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중 일부) 정호승의 결기는 여기에 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삶이란 슬픔이 기쁨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길이며, 힘은 슬픔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아, 그리고 봄에서도 나오지.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도 멈추어야 하는, 아, 글쎄, 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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