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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5월 07일
CBS의 방송인이며 책임과 사명감 있는 방송 저널리즘의 사표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R. 머로(Edward R. Murrow, 1908~1965, 사진). 그가 매카시즘을 맞아 벌인 대결을 소재로 한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그의 연설로 시작하고 연설로 끝맺는다. 이 연설은 머로가 1958년 10월15일 시카고에서 열린 라디오텔레비전뉴스제작자협회(RTNDA) 회의에서 한 실제 연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머로는 연설에서, 방송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상업적 도구로 전락하는 데 대해 차갑게 비판하고 있다. 반세기 전 이야기인데, 50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그는 시청자를 눈멀게 하는 흥미 위주의 편성을 경계하는데, 텔레비전이 갖는 오락의 기능 자체를 비판했다기보다는, 그 쪽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고 그것이 상업 이익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읽힌다. 아래는 그 연설문 중 주요한 대목. 여담이지만, 그러고 보니 약간 갸름하고 날렵한 것이 손국장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전략) 역사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이나 1백년 뒤의 역사가가 있어, 지금 방송 3사의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일주일치 정도 들여다본다고 칩시다. 이들이 발견할 것은 타락,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격리의 증거 뿐일 것입니다. 방송사의 밤 8시~11시 편성표를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가 망조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텔레비전 방송에서 유익한 교양 프로그램이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은 아무도 TV를 보지 않는 일요일 오후 시간대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시청율이 높은 황금시간대에 나가는 방송은 대부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들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광고에서 쓰이는 구호인 '지금 사고 돈은 나중에!' 를 '지금 보고 돈은 나중에!'로 바꿔도 할 말 없을 겁니다. (중략) 지금 우리는 풍족하고 편안하며 배 부르고 등 따스운 생활을 합니다. 지금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입맛에 거슬리는 정보에 대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습니다. 대중매체는 이러한 점을 반영합니다. 텔레비전이 우리를 소외시키고 미혹하여 우리 관심을 딴 데로 돌리게 하는 오락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텔레비전이나 텔레비전에 돈을 대는 사람들, 텔레비전을 보거나 방송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뒤늦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27인치짜리 통곡의 벽으로 만들어서, 지식인들이 우리 문화의 한심한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울부짖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텔레비전이 때때로 우리가 살고 있는 팍팍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지금의 구조 속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이런 프로그램으로 인해 광고주나 제작자 모두 대중의 신뢰를 받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청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시도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입바른 소리가 넘쳐나는 상황이긴 하지만, 방송의 책임을 달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책임은 큰 기업과 거대 방송사의 몫입니다. 그것은 남에게 떠넘길 수 있거나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책임을 다하면 기업의 성공과 좋은 방송이라는 보상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좀 지나칠 정도로 비판적인 견해에 기대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막스 이스트만으로 기억되는데, 여하튼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독자에게 가장 잘 봉사하는 편집자가 광고주에게도 가장 잘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라디오, 텔레비전과 거기에 돈을 대는 광고주들은 시청자에게 제대로 봉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연설을, 우리의 역사는 바로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일을 계속하면, 역사는 언젠가 우리에게 가차없는 복수의 칼날을 들이댈 것입니다. 우리는 모방이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만일 두서너 기업이 교양 시사 프로그램에 자기네 광고 예산의 작은 일부만이라도 투자하기로 결정하면, 비슷한 일이 감염처럼 번져나갈 것입니다. 프로그램 제작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은 가벼워지고, 그 결과로 매우 놀라운 모험이 현실화될 것입니다. 바로 시청자에게 다양한 사상을 제시하고, 공허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살아 있는 현실을 시청자의 안방에 펼쳐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청자가 이런 프로그램을 보지 않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지나치게 연성화되어 있어서 이런 주제에 무관심하다는 등의 주장을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입니다. 기자 단 한 명의 경험 속에도 이런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설령 이런 주장이 옳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런 말이 옳고 텔레비전이 그저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며 현실로부터 도피시키는 위안부일 뿐이라고 한다면, 텔레비전은 절름발이 노릇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가 기울여 온 모든 험난한 노력도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텔레비전은 시청자를 가르치고 계몽하며 심지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매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텔레비전 혼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인간이 텔레비전을 그렇게 쓰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텔레비전이란 전선과 전구으로 차 있는 상자쪼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지, 불관용, 무관심과 맞서 단호하게 싸워야 할 위대한 전투의 사명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병장기 사용에 대해 조예가 있었던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칼을 뽑고 칼집은 내던져 버려야 한다." 현재 텔레비전의 문제는 생존을 위한 싸움에 임해서도 칼집 속에서 녹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 어이없게도 클래식 마이크로폰을 소개하는 사이트에서 가져왔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