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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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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스테이트(interstate)를 열 댓 시간 달린다. 길을, 특히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언제나 한 편의 드라마를 보거나 쓰는 것 같다. 내 눈 앞에서 시시각각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나 역시 길 위에 이야기를 쓰며 달린다. 고속도로 위의 차들은 모두 각기 개성이 있다. 생긴 것보다는 하는 짓에서 나오는 개성이다. 성급한 놈도 있고 느긋한 놈도 있으며, 고분고분한 놈도 있고 위압적인 놈도 있다. 이기적인 놈도 있고 이타적인 놈도 있으며, 범생이도 있고 날나리도 있다. 혈기방자한 질풍노도의 청년도 있고 비실비실하는 여든 노인네도 있으며, 근육 울근불근한 마초맨도 있고 날렵하고 얄미운 여피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가 모여 온갖 가지 스토리를 생산해 낸다.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고, 스릴도 있고 서스펜스도 있고, 순간순간마다 발단-전개-절정-결말이 다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이렇게 다양한 성격을 가진 차들이 유형무형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만들어 내는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시간 운전이 영 체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길에서 이런 드라마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앞만 보고 달리는 건조한 인생을 연상시킨다. 중단도 없고 후진도 없다. 길 위에 열거된 모든 것들은 오로지 전진하는 기능만에 봉사하도록 충직하게 배치되어 있다. 하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삶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데로만 수렴된다면 건조하든 어떻든 순탄한 인생이라 할 만하다. 추월하고 추월 당하면서 달리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나랑 함께 달리는 차가 생긴다. 속도며 주행 방법이 나랑 비슷한 경우다. 마치, 인생 길에서 나와 삶의 뜻과 속도가 비슷하여 함께 달리기 시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처럼. 한참을 가만히 따라가거나 뒤로 차를 달고 가다보면, 말 한 마디, 경적 한 번 나누지 않고도 우정 비슷한 것이 생긴다. 같은 길을 비슷한 보폭으로 가는 도반이란 항상 반가운 법인가. 위에 보이는 하얀 밴과 두어 시간 함께 달렸다. 힘이 좋은데도 미친듯이 내쏘지 않고, 내가 따라갈 만한 보폭으로 사근사근하게 달린다. 그 진중함이 마음에 들었다. 누가 운전하는지 얼굴 한 번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그 두어 시간 동안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회자정리. 어느 갈림길에선가 갑자기 휙 빠져나간다. 예고하지 않은 이별이라 더 쓰다. 이렇게 보내고 나면, 그 뒤 한동안은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 아쉽고 헛헛하다. 차는 그냥 차고 도로를 바삐 질주하는 차도 널렸는데, 눈길 한 번 나누지 않고 길에서 든 정이 만만치않다. 길 위에서 만나는 찰나의 동반자에게도 이런 인연을 부여하면서, 언제 다 여의고 살 것인지 스스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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