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오르던 휘발유값이 주춤하고 있다. 갤런당 2.4달러대(레귤러)에 머물던 것이 3달러 가까이 치달아 오르다, 한숨을 돌리는 모양이다. 지난 카트리나 때 못지 않은 단기 급상승이지만, 이미 한번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충격은 당시보다 훨씬 약한 것 같다. 결국 그냥 슬금슬금 눈치보면서 값은 계속 오를 것이고 그 끝은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전세계 에너지의 25%를 독식하는 나라다. 기간 생산 시설에서 쓰이는 것은 빼놓고라도, 차 없이는 나라 전체가 하루도 견딜 수 없음이 뻔하다. 따라서, 자기들도 산유국이지만 외국으로부터 엄청난 석유를 수입한다. 이런 판이라 미국이 세계의 석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석유값도 초미의 관심사고. 세계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로 오르는 상황이라, 예컨대 이란 같은 나라가 핵 개발하겠다고 개기고 있어도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골치아픈 속내가 있다.
석유도 또한 엄연한 상품이라서, 수요와 공급의 철칙에 영향을 받지만, 다른 재화와는 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공급자가 충분히 다양하지 않아서 공급자간 경쟁이 약하다. 이것은 한 나라 내부의 석유 공급자를 봐도 그렇고 국제 시장에서의 공급자(산유국)를 봐도 그렇다. 자연적인 과점 형태인 것이다. 또, 상품이긴 하지만 대체재가 없다. 석유 안쓰고 석탄 쓰면서 차 굴릴 수 없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에탄올을 섞기도 하고 물로 가는 차도 나온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석유가 절대 지존이다. 배 아파도 사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판이니 소비자는 완전 봉이 될 수밖에 없는데, 여하튼 휘발유값이 계속 오르고 있으니 불쌍한 소비자도 살 길을 찾으려 애쓴다. 그 와중에 다양한 아이디어와 캠페인이 등장한다. 그 중 하나.
서너 해 전에 휘발유값이 또 올랐을 때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소비자도 휘발유값을 통제할 수 있다! 적어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어떻게?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기로 하여 생산자(정유회사)와 한 판 휘발유 전쟁(gas war)을 벌이는 것이다. 전쟁의 전략 전술은 다음과 같다.
여러 휘발유 업체 가운데 두어 개를 찍는다. 예컨대 한국으로 치면 SK정유와 LG정유를, 미국에서는 엑손과 모빌(통합으로 한 회사가 됨)을 찍는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죽어도 이 회사들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않는다. 한 6개월 가까이 캠페인을 벌이면, 이 회사의 휘발유는 전혀 팔리지 않으므로 회사는 값을 떨어뜨려야 한다. 엑손과 모빌이 값을 떨어뜨리면 소비자가 몰리게 되고, 다른 회사도 따라서 값을 인하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소비자의 단합된 행동이 휘발유값 인하를 가져온다!
이것은 고유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짜낸 생각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라고 평가되는데, 가만히 보면 엉성하기 짝이없다. 계획대로 되면 좋겠지만 삑사리가 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첫째, 일정기간, 예컨대 6개월 동안 모든 미국 국민이 일치된 단합력을 보여야 한다. 엑손과 모빌에서 휘발유를 넣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더구나, 계획대로 잘 되어서 엑손/모빌의 값이 조금씩 떨어지면, 틀림없이 떡고물을 남보다 먼저 챙기려는 약삭빠른 동요 세력이 발생할 것인데, 이를 완벽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경우, 죽 쒀서 개주거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챙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둘째, (미국) 휘발유 소매 업체 중에는 대기업처럼 자체 정유 시설을 갖지 않은 기업도 많다. 주유소 체인 같이 생산 시설 없이 유통업만 하고 있는 데가 그들이다. 이들의 지하 저장고를 채우는 휘발유는 엑손, 모빌 같은 대기업 정유회사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결국 다른 주유소로 가봐야 역시 엑손, 모빌 휘발유를 사는 꼴이다. 셋째, 정유회사간, 휘발유업체간 거래도 항상 존재한다. 수요와 공급 법칙은 이들 간의 거래에도 작용한다. 엑손 휘발유가 팔리지 않아 남아돌고, 다른 회사, 예컨대 쉘이 불티나게 팔려 재고가 바닥나면 당연히 엑손 휘발유는 쉘에게 팔려간다. 보이콧이 별로 의미가 없다. 넷째, 역시 수요와 공급 법칙 때문에, 소비자들이 이 악물고 고통의 6개월을 보내는 동안 쉘이나 BP 같은 회사의 석유값은 오를 것이고, 석유값은 한 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오히려 석유값만 올리는 꼴이 빚어질 수도 있다.
역시 경제로 보나 환경으로 보나, 고유가 시대에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해결책은 소비를 줄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참고: Snopes.com
사진: AP




덧글
Charlie 2006/05/22 05:41 # 답글
기름값을 보아하니.. 서부는 아니시군요. :)이동네는 레귤러 $3.29가 바닥 가격인듯합니다. 상반기 1/4분기 각 정유회사의 흑자 규모가 사상 최대란 소리도 들려오니 눈길이 고울리가 없지요..
최대한 이동 동선을 연결해서 적게 움직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덧말제이 2006/05/22 05:45 # 답글
미국 갔을 때 다들 죽는 소리를 하더군요, 휘발유값 올랐다고. (여기도 만만치 않는데 죽는 소리는 거기서 더 많이 들었습니다)부시는 석유 때문에 전쟁까지 하고도 석유 값도 못 잡고 참... 이런 생각과
애먼 사람들의 목숨값을 생각하면, 여전히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싸다는(산유국 빼고겠지요?) 미국 석유값이 얄밉기만 하더군요.
belba 2006/05/22 12:41 # 답글
시골인 이곳도 3불이 이제 넘어가요. 몇년전까지만해도, 기름값이 2불 넘었다고 징징댔던 기억이 나는데.. 이젠 무서워서, 차 몰기도 겁나요.자전거소년 2006/05/22 17:27 # 답글
정말 대책이 안서네요.우리나라는 어떠한 계획도 없고.
학계에서는 2010년경에 오일쇼크가 올거라 그러고
우리나라는 지난 오일쇼크에비해 석유의존도가 몇배나
올라갔을텐데.... 대체에너지의 기대도 어렵고,
정말 대책이 없는거 같습니다.
가즈파쵸 2006/05/22 23:45 # 답글
에.....엑손과 모빌.....웬만하면 피하고 있었는데.......역시 바보짓이었나보군요..=_=;deulpul 2006/05/23 03:21 # 답글
Charlie: 그러게 말입니다. 국제 원유가 올라 소비자값이 오른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틈에 정유회사가 배를 불린다는 건 정책의 문제, 나아가 정권의 속성 문제겠죠. 서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잠시 생각...덧말제이: 정말, 비싸다 비싸다 해도, '한국에선 얼만데...' 하는 것만으로도 어디든 갈 동기 부여가 됩니다. 소득은 최고 수준이고 가장 많이 쓰면서도 가장 싸게 값을 매기는 바람에 소비를 적절히 억제하지 못하는 이 분들은... 골칫덩이에요.
belba: 휴, 정말 아득하나마 그런 시기가 있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바닷물이 석유였다'라는 희소식이 나오지 않는 한, 그런 때는 다시 오지 않겠죠?
자전거소년: 자전거가 대책이 아닐까요... 하하, 그러니까 저희같은 소비자 처지에서는 역시 덜 쓰는 게 최고겠지만, 말씀대로 국가 차원에서는 좀더 심각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석유 자원은 언젠간 바닥날테고, 그런 조짐이 보이기만 해도 값은 천정부지로 뛸테니 말이어요...
가즈파쵸: 주유소도 사람마다 선호가 생기게 마련이죠. 이미지가 안좋은 회사들은 좀 피하게도 되구요. 설마, 저 캠페인 때문에 안 가시는 건 아니시죠?
Kristine 2006/05/23 04:38 # 답글
기름값이 인상되었으면 인상되었지 내려갈 확률은 적다고 하더라고요.4불선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그러나 개인적으로 기름값이 오르고, 석유가 동이 날 가능성에 살고 있기에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뭐랄까 힘들지만.. 이에 대해 우리 인류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참으로 궁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도 찰리님같이 기름값 비싼 동네에 살고 있는데... 제 차는 four cylinder고 기름이 적게들어서 괜찮지만 기름 많이 먹는 미국제차나 독일제 차 가지신 분들은 힘들어하시더라고요...deulpul 2006/05/24 01:49 # 답글
어떻게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석유가 바닥나면 기름값이 오르는 것에 비할 수 없는 훨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텐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네요. 어렸을 때 본 책들에서는 모두 '앞으로 몇십 년 뒤 고갈된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심각하게들 생각하지 않는 걸 보면, 생각보다는 오래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값이 오르고 언젠가 고갈될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은, 수만년 축적의 결과로 나온 에너지 자원을 서너 세대에 탕진해 버리는 인간의 탐욕을 돌아보고 좀더 겸허하게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