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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라면 여자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하던, 아무 생각없는 미국에서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클린턴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던 '사커 맘'(soccer mom)이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 이상 됐으며, 그 엄마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축구를 하는 미국 청소년 축구 인구는 현재 3백만(5~19세)을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축구 정규 리그(US Major Leauge Soccer, MLS)도 점점 성장하는 추세다. 케이블 채널 중에서는 폭스가 하는 '사커 채널'(Soccer Channel)까지 있다. Fox News의 우경화 성향 때문에 친정은 별로 이뻐보이지 않지만, 이 사커 채널은 폭스가 잘 하는 몇 안되는 짓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급증하는 히스패닉 인구를 타겟으로 하여, 단일 아이템으로 채널을 만들어도 장사가 된다고 생각했으니 투자했겠지만 말이다.
세계 축구팬이 손꼽아 기다리는 월드컵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니, 사커 채널에서도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들이 수시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얼마 전 우연히 본 프로그램은 본선 진출국의 간판 선수들을 내세워 인터뷰하면서 그 팀의 전력을 간단히 분석하는 것이었다. 면도기 같은 개인용품 회사인 질레트(Gillette)가 스폰서를 댄 프로그램이다. 몇몇 팀이 나오다, 한국이 등장했다. 최진철이 간판으로 나와 "감독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선전하겠다"는 취지의 출사표를 밝혔다. 선수들이 연습하는 장면이 깔리고, 아드보카트도 등장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팀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하, 그런데 갑자기 방송은 한국의 축구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광화문의 진홍색 물결과 관중석 위로 올라가는 대형 태극기가 스쳐 지나갔다. 다른 팀에 대해서는 선수나 감독의 전력과 가능성을 분석하는 데 바빴던 프로그램이, 한국팀에 대해서는 축구팬을 선수나 감독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이제 한국 축구팬은 진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12번째 선수인 것 같다. 나는 학교 12년을 축구하는 재미로 다녔다. 다른 재미도 두어 개쯤 있었지만, 그건 비밀이다. 축구하는 재미라봐야 무슨 선수 생활 같은 걸 한 건 아니다. 그냥 첫 수업 전, 점심 시간, 방과후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하는 공차기가 아침에 벌떡 일어나 학교를 가게 만든 중요한 동기 중 하나가 됐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두근거리며 한 달 뒤를 기다리는 게 스스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 12번째 선수 중 하나로 말이다. 오랜만에 공차기를 하다 피멍이 든 엄지 발톱을 부여잡고 쓴다. 아아, 정말 아프다. 누가 돈 주고 하라면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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