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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라도의 김병현이 배리 본즈에게 역사적인 홈런을 맞고도 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기사이다. 구글 한국 뉴스 검색창에 뜬 기사 중 하나다. 그런데 제목이 김병현 "본즈 홈런에 대해 개념치 않았다"로 되어 있고, 본문에서도 김병현의 말을 인용한 따옴표 안에 그렇게 썼다. '개념'에는 어떤 일에 대해 신경쓰거나 걱정한다는 뜻이 없다. 더구나, '개념화하다'(conceptualize)라는 말은 있어도 '개념하다'라는 말이나 '개념치 않다'(개념하지 아니하다)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개념 없다'는 말은 있다. 저렇게 쓰면 정말 개념 없는 거다. 저기의 '개념' 자리에 들어가야 할 말은 '괘념'이나 '괘의', '개의'다. 엠파스 사전을 보면,
기자가 인터뷰하는 사람은 다양하다. 시골 촌로일 수도 있고 국가 원수일 수도 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사람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그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하는 것과 다르게 나오거나 잘못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때, 기자는 취재원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바르게 고쳐 적어야 할 것인가? 예컨대, 김병현이 실제로 "나는 홈런 맞은 것에 개념치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치자. 취재 수첩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녹음기에도 그렇게 녹음되었다. 기자는 기사를 쓰면서 이를 그대로 옮겨야 할 것인가? 아니면 '괘념치 않아요'나 '개의치 않아요'로 바르게 고쳐 적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이 명백하고 단순한 실수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가 쉽다. 그러나 언제나 기자가 자기 재량으로 취재원의 발언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취재원이 의도한(의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느라 말을 좀 다듬었는데, 나중에 기사 나가고 나서 항의 전화를 받거나 더 나아가 소송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업과 관련한 목적을 위해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대기업 간부 김이사 건을 취재하기 위해 경영진의 다른 간부인 박이사를 인터뷰했다고 치자. 박이사는 "김이사가 정치인에게 뒷돈을 좀 대긴 댔지"라고 지나가는 말로 흘렸다. 대박을 건진 기자는 기사에다 "같은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김이사는 지금까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해 왔다"라고 썼다. 나중에, 박이사는 "내가 언제 김이사가 뇌물을 줬다고 했냐. 그냥 정치 후원금을 자주 내왔다는 말이지" 하고 항의해올지도 모른다. 취재원의 말을 글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또는 기사에 부적합한 언어를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또는 취재원의 진술 속에 묻힌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기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정치인이나 홍보 전문가일수록, 모호한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여, 나중에 빠져 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게 마련이다. 따라서 기자는 원칙적으로, 개념과 괘념의 차이처럼 명백해 보이는 말 실수만을 고쳐 인용해야 한다. 기사를 쓸 때, 취재 수첩에 적힌 취재원의 말을 조금만 다듬으면 기사의 핵심을 딱 짚는 훌륭한 '쿼터'(인용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은 기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에 등장하는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그 '조금만 바꾸면'의 차이가 생사를 가르는 것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들은 것만으로 승부해야 한다. 해석은 덧붙일 수 있지만, 그조차 조심해야 한다. 가끔씩 취재원과 언론사(언론인) 사이에 어떤 말을 했네, 안했네 하고 다투는 것을 보게 된다. 뻔하다. 취재원이 한 말 안했다고 거짓말하거나, 아니면 언론사가 마음대로 고쳐 기사화한 경우다. 어느 경우든 승부는 취재 수첩이나 녹음 테이프에서 결정된다. 간혹, 취재원은 A라고 말하는데 기자는 B라고 받아적거나, 취재원은 A라고 말했는데 기자나 편집자가 일부러 B라고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이른바 '편집상의 실수'보다 언론인의 자질과 언론사의 악의를 거론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자나 편집자도 사람이므로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이들은 글을 쓰고 다듬는 것이 본업인 사람들이므로 개념과 괘념을 혼동하는 개념 없는 실수를 하면 안된다. 취재원의 진술을 악의로 재조합하는 기사는 사이비 언론의 특징 중 하나일 뿐, 구태여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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