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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 빌 게이츠
어떤 사람이나 어떤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트렌드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미움을 받거나 비판을 받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움이 트렌드가 되고 나면,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냥 밉고 싫게 된다. 비판의 근거는 모호해지고 그냥 다들 싫어하니까 나도 싫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이 왜 싫은데?"라는 물음에 대해 1분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면, 혹은 다섯 줄 이상 쓸 수 없다면 우리는 미움의 트렌드에 그저 따라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뭐, "그냥 싫으니까 싫어!" 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른바 공인은 이런 트렌드 미움의 대표적인 대상이다. 원래 남 앞에 나서는 일을 하자면 잘 해도 욕먹고 못 해도 욕먹는 기막힌 운명을 기쁘게 받아들일 자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별로 크게 잘못한 것 없이 때려죽일 넘(뇬)이 되는 경우는 본인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다른 사람(들), 특히 공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그다지 명확한 기초 위에서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 만나 인상이나 느껴보고 미워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제로는 불철저한 정보에 기대어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뭐, 평가하는 사람도 사람이므로 나무랄 일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것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다. 나는 빌 게이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형임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왜 빌 게이츠를 싫어했던가? 나도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컴퓨터 쓰다가 윈도우가 꼬이면 제일 처음 생각나는 게 빌 게이츠였다. 컴퓨터 탓일 수도 있고 웬갓잡 프로그램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공적(共敵) 게이츠를 떠올리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했다. 그의 M$가 분명 독점 형태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가라지 기업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출발해 이노베이션을 통해 성장한 사람에게 남들 눈치 보면서 함께 가라고 하는 것은 좀 무리한 요구가 될 수도 있다. 윈도우 새 판을 내놓을 때마다 끼워서 내놓는 프로그램들 탓에 불공정 거래 소송에도 곧잘 연루되지만, 컴퓨터 전문가도 아닌 나는 그가 낑겨놓은 프로그램을 쓰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마음에 안들면 안쓰면 그만이다. 좀 피곤한 작업을 해야 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나는 빌 게이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 <타임>에 특집 기사로 났던 그의 호화찬란한 시애틀 근교 집을 떠올린다. 집, 좋다. 얼마나 좋았으면 유수한 주간지에 특집 기사로까지 나왔을꼬. 하지만, 게이츠의 부(富)가 웬넘들처럼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도 아닐진대, 부러워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으로 그를 미워할 수는 없다. 돈이 많은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죄도 아니다.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그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빌 게이츠가 공적이 되는 트렌드에 편승해서 그를 판단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얼마 전 무슨 일을 하다, 빌 게이츠를 다른 시각에서 써 놓은 글을 보게 됐다. 이른바 자선사업가로서의 게이츠다. 물론 자유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미국에서 나온 글이므로, 그런 정도의 은밀한 이데올로기는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자선사업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게이츠 이야기이다. 게이츠가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사회 곳곳에 환원하고 있다는 소식은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본 글은 그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훨씬 생생했다. 무엇보다, 자선사업가로서의 게이츠에 대해 쓴 글이 아니라, 다른 이슈에 대해 쓴 글인데 게이츠가 튀어나온 형태다. 다시 말해, 그의 족적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나를 갑작스레 깨닫게 된 것. 우리는 잘 모르지만,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이른바 후진국형 전염병에 신음하고 있는 동포들이 숱하다. 무슨무슨 수치를 대자면 끝도 없으므로, 그냥 숱하다고 하자. 하루에 천원도 안되는 돈, 한 달 삼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삶을 부지하는 이들은 죽을 병에 걸려도 약을 사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약만 먹으면 손쉽게 나을 병도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죽을 병이 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런 후진국형 병, 이른바 소외 질병(neglected disease)을 치료하는 약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은 이런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는 노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약회사도 수익을 내고 주주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업 조직이므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 약은 만들지 않는다. 후진국형 병을 치료하는 약은 개발해봐야 개발비도 못건진다. 따라서 이런 약은 애초부터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서 배제된다. 생산하던 약도 대충대충 눈치보며 생산 중단한다. 제3 세계의 가난한 환자들은 약을 구할 수 없어 그냥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병이 드니 생활은 더욱 가난해지고 가난하니 병은 더 잘 든다. 병과 가난의 악순환이다. 뜻있는 의사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생애를 걸고 이런 부조리를 타개하기 위해 나선다. 평생 가봐야 돈벌이도 되지 않는 후진국형 질병을 연구하고 그 환자들을 병마에서 구해내기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한 인의(仁醫)들이다. 이들은 의사이므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연구를 수행하고 약품 완제품까지 생산해 제3 세계로 실어 보내려면 돈이 든다. 뜻은 높아도 현실적으로 돈 없으면 꽝이다. 그 돈을 누가 대나? 바로 빌 게이츠다. 돈벌이를 마다하고 이런 뜻있는 일에 헌신하는 의사나 연구자들 아무나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다. 제3 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지 시시콜콜히 수치를 들어 말할 필요는 없겠다. 분명한 것은, 그 개인이 이 사업에 들이는 돈은 선진국, 후진국을 따지지 않고 전세계 정부가 들이는 돈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그 효과는? 예컨대 게이츠가 설립한 한 국제 봉사 단체는 가난한 나라 어린이에게, 예방주사만 맞으면 쉽게 막을 수 있는 질병의 접종을 실시한다. 이 단체가 활동한 6년 동안, 이런 질병으로 가까운 미래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어린이 170만 명이 생명을 건진 것으로 평가된다. 놀라운 결과다. 자선사업가를 philanthropist 라고 하는데, phil의 어원 philein은 to love의 뜻이고 anthrop의 어원 anthropos는 물론 mankind, human being의 뜻이다. 사람을 사랑한 결과가 이처럼 숭고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전세계에서 상업적 제약회사들이 기피하는 소외 질병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존경스러운 그룹은 92개 정도라고 한다. 국적도 구성도 분야도 다양한 이들 그룹이 공유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후원자 빌 게이츠다. 미국에서 IT 산업으로 떼돈을 번 부자들은 많다. 다행히도, 이들 중 많은 CEO들이 제3 세계를 비롯한 소외 지역에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돌아본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빌 게이츠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예컨대, 미국의 많은 IT CEO들이 주력한 사업은 아프리카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것이었다. 게이츠는 진작부터 이런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 왔다. 먹고 살면서 생명을 부지하기에도 힘든 곳에 인터넷이 웬말이냐, 이런 뜻이다. 그는 100달러짜리 컴퓨터를 개발해 제3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MIT의 프로젝트를 비난해 왔다. 지금 이 CEO들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중요한 것은 아플 때 먹을 약과 깨끗한 물, 전기 같은 기초 사회 시설이지 컴퓨터와 인터넷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한다. 게이츠가 돈이 많으니 그렇게 퍼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변을 조금만 돌아 보면 그런 추측은 그저 추측일 뿐임이 명백해진다. IMF 때, 어려운 나라 살림을 돕는다고 금모으기 운동이라는 어이없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나중에 집계를 내어보니, 금송아지 금두꺼비 수만 마리가 우글거릴 것 같은 강남쪽 동네보다 못 살기로 유명한 강북의 무슨무슨 구에서 나온 금붙이가 훨씬 많았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지만, 인심 각박한 물신주의 사회에서는 곳간이 찰수록 인심은 사라진다. 트랙백한 난아님 글을 보니 이제 게이츠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자선사업에 몰두할 모양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라고 했지만, 현실은 개 같이 벌어서 개 같이 쓰는 사람이 가장 많고, 정승 같이 벌어서 개 같이 쓰는 사람도 꽤 있다. 정승처럼 쓰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별로 없다. 이런 점만으로도 게이츠는 존경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무엇보다, 게이츠의 자선사업으로 목숨을 건졌을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과 그들의 아비와 어미의 심정에 연대감을 보내면서, 그 연대감 속에서 게이츠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게이츠가, 노동자를 쥐어짜 재산을 형성한 어떤 나라의 재벌이나 그들의 2, 3세들처럼, 자신과 식솔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그의 재산을 쓰지 않아서 너무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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