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장
이 블로그의 글들 VI 이 블로그의 글들 V 이 블로그의 글들 IV 이 블로그의 글들 III 이 블로그의 글들 II 이 블로그의 글들 I ※ 예전 글들의 카테고리 분류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테고리
때時 일事 (Issues)
중매媒 몸體 (Media) 미국美 나라國 (USA) 갈硏 궁구할究 (Study) 흩을散 글월文 (Prose) 욀諷 찌를刺 (Satire) 짧을短 생각想 (Piece) 낱個 사람人 (Personal) 연결連 이을續 (Series) 섞일雜 끓일湯 (Others) 두二 바퀴輪(MCycle) 최근 등록된 덧글
섬짓하군요
by dirty at 12/11 영하 30도에 체감온도까지.. by deulpul at 12/11 말씀 듣고 기억도 더듬어.. by deulpul at 12/11 오-. 이런 곳이 있었군요.. by deulpul at 12/11 사물의 밝은 면을 보자면.. by deulpul at 12/11 최근 등록된 트랙백
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by 민노씨.네 일년이 다 된 글인데 새삼.. by 물리학 흠냐, 울 마눌은 백설공.. by 뒤돌아 보지 않는다, 후.. 검찰과 기자, 국민 세금.. by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팅.. 전국국어대회 '4대강' 토.. by Green Monkey Blog** 태그
|
그래, 심판도 사람이다. 그 사람을 보는 우리도 사람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물론 사람답게 살자의 사람이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1) 걸핏하면 외부의 정보를 잘못 인식해 주인에게 전달하는 눈코귀입손의 오감에 의존해야 하는 존재란 뜻이며, 2) 실수를 하게 마련인 존재란 뜻이며, 3) 선입관에 좌우되는 판단을 하는 존재란 뜻이며, 4) 무슨무슨 유혹에 약한 존재란 뜻이며, 5) 성질나면 팩팩거리는 존재란 뜻이다.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 심판, 특히 주심의 지위는 막강하다. 경기중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절대적인 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은 순간적임과 동시에 영구적이다. 그렇지, 항의해봐야 노란 딱지만 더 늘어난다. 역할과 지위가 막강하기 때문에 심판은 더욱 예리하게 경기 상황을 주시하고 가름해야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심판도 사람, 완벽할 수는 없다. 예컨대 악의가 있거나 사심이 있거나 하는 화기애애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쩔 수 없이 오심하는 상황을 보자. 다시 말해, 1)에서 5)까지에서 딴 건 다 제쳐놓고 1)만 생각해보자. 축구 경기에서 흔하게 벌어지면서도 가장 섬뜩한 파울은 오프사이드다. 최종 수비 라인을 기준으로 하여 벌어지는 파울이기 때문에, 오프사이드 판정은 바로 골이냐 아니냐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오프사이드로 인정되면 완벽하게 먹은 골도 토해내야 하고, 아닌 것으로 인정되면 멀쩡하게 앉아서 한 점 줘야 한다. 한국팀을 주저앉힌 결정적 계기가 된 스위스의 두 번째 골도 오프사이드 시비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그럼 이렇게 결정적인 상황을 만드는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리는 심판의 판단 능력은 어떤가. 국제 심판인만큼, 필요한 훈련을 받아 충분한 자질을 쌓은 심판이라고 해보자.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뛰어다니는 주심이 최종 수비 라인에 서 있기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오프사이드 판정은 거의 전적으로 두 선심이 담당한다. 실력 있고 경험 많은 선심이라고 가정하고 오프사이드를 판정해 보자. MSN의 한 기사에 따르면, 스페인의 의사 프란시스코 마루엔다는 심판에게 오프사이드 판정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인간의 눈이 5미터 정도 떨어진 두 물체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초점 조절 시간은 약 600밀리초라고 한다. 그리고, 한참 치달리고 있는 선수라면 이 시간에 약 1.5미터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라운드에서는 공과 공을 차서 넘기는 선수, 공을 받으러 달려가는 선수, 최종 수비수가 함께 움직이므로, 심판의 눈은 이 네 가지 물체를 동시에 파악하고 있어야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네 물체는 매우 큰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게 마련이고, 심판이 한 곳(예컨대 공을 차는 선수)에서 다른 곳(예컨대 공을 받으러 뛰어가는 선수)에게로 눈을 옮기며 초점을 잡는 동안에 선수는 벌써 원래 위치와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게 된다. 게다가 심판(선심)이 최종 수비 라인 위에 있지 않았다면, 선심은 시각의 비틀림에서 나오는 편차까지 머리 속에서 순간적으로 보정해야 한다. 이것은 정상인의 신체 구조로는 거의 불가능한 임무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런 원초적 어려움 때문에 모호하거나 잘못된 판단이 나왔어도, 그냥 우기고 경기를 속행해 버리면 어쩔 수 없었다 (뭐, 지금도 그러지만). 그러나 갈수록 심판 보기가 힘들어졌다. 관객 수준도 높아져서, 웬만한 심판 못지않은 안목으로 눈에 불을 켜고 경기를 지켜보고, 무엇보다도 공포의 '슬로우 비디오', 이른바 리플레이(replay) 때문이다. 온갖 각도에서 잡은 카메라는 문제의 장면을 자세히 분석하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정지 화면까지 제공한다. 심판의 잘못된 판단을 순식간에 폭로하는 장치다. 심판들은 눈엣가시로 여길만한 장치지만, 각종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아하! 그럼 축구에 리플레이를 도입하면 될 일이 아닌가. 예컨대 스위스의 둘째 골 장면에서, 기름에 튀겨도 시원치 않을 프라이란 넘이 명백한 오프사이드를 무시하고 골을 넣고, 선심은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고, 주심은 무시했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 잠시 경기를 중단하고 다같이 모여 정답게 리플레이 모니터를 보는 것이다. 아니면 축구장 점수판에 있는 대형 모니터에 리플레이를 쏴서 온 관중이 모두 숨을 죽이며 지켜보게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 눈보다 빠른 카메라가 잡은 장면을 근거로 깔끔하게 판정하는 것이다. 노 골!!! 이것은 코믹한 가상 상황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미식축구 NFL에서 이같은 리플레이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미식축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가끔 지브러(얼룩말)로 불리는 심판이 경기 도중 웬 텔레비전 모니터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판정(call)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면,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그 장면을 찍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다. 미식축구에서 판정 논란이 벌어지면 미식축구장 한쪽에 있는 리플레이 부스는 여덟 가지 각도에서 초고속 디지털 카메라로 잡은 화면을 즉시 공급받아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책임진 리플레이 책임자(replay official)는 그 중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잡은 화면을 골라서 초저속으로 재생할 수 있는 모니터로 보낸다. 심판이 경기장 옆줄 밖에서 들여다보는 모니터는 바로 이 것. 이 모든 상황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이 작업을 위해서 세 명의 전문 인력이 한 팀이 되어 항상 대기하고 있다. 여덟 개의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 일체를 담당하는 비디오 기술자, 리플레이 전 과정을 책임지는 책임자, 저속 재생 모니터를 담당하는 비디오 오퍼레이터가 그들이다. 경기를 무한정 지연시킬 수는 없으니, 심판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재검토할 시간은 90초로 제한되어 있다. 90초는 심판이 모니터에 다가가 헤드폰을 쓰는 순간부터 계산된다. 90초가 지나면 심판이 보는 모니터는 자동으로 팍 꺼진다. 심판은 그 90초 동안 리플레이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모니터에 나타난 모습을 분석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었을 때는 바로 이를 번복한다. 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각 팀 감독이 리플레이를 보자고 물고 늘어질 수도 있으니, 리플레이 분석 요청에 적당한 제한을 둔다. 예컨대 경기 각 절반이 종료되기 2분 전에만 리플레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다른 때 요청하면 작전 시간이 하나씩 깎인다. 이 리플레이 시스템은 99년부터 NFL에 도입됐다. 그러니, 사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축구에도 리플레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오판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찬성하고 싶지 않다. 축구는 축구. 미식축구처럼 쉬었다-했다-쉬었다-했다를 반복하는 하품나는 경기가 아니다. 전후반 90분 동안 물 흐르듯 쉼없이 흐르는 게 축구 아니던가. 심판이 어정쩡한 판단을 해놓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삽질을 계속하면 플레이의 맥이 아주 달라질 것 같다. 양팀 다 흐름이 끊기면서 김이 팍팍 샐 것이 틀림없다. 또 어떻게 보면, 축구에서는 심판의 플레이도 선수의 플레이 못지 않게 중요한 구경거리다. 선수도 경기 당일 몸이 잘 풀리는 선수가 있고 아닌 선수가 있는데 심판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몸이 잘 안풀리는 심판의 삽질, 그에 따른 선수들의 환희와 좌절, 관중의 뜨거운 분노와 야유 같은 것들도 축구라는 거대한 신전을 채우는 열정의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를 경기 흐름을 끊어가며 등장하는 차가운 디지털 화면으로 대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어제의 경기처럼, 막상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될 때에는 더없이 억울하고 뼈아프고 통탄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기막혀서 기막힌 생각까지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