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왜 좋아하세요? by deulpul

언젠가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만난 적이 있다. 남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스라엘 대사관을 찾아갈 때, 인근의 다른 나라 대사관과는 달리 주변에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대사는 이스라엘이 전자, 컴퓨터 같은 첨단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와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세계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는 그 중에서도 한국은 이스라엘과 친한 형제국과 같다고 강조했다. 나는 터키나 몽골 같은 나라의 사람이나 풍습이 우리와 참 닮아서 놀란 적은 있어도, 이스라엘을 형제라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스라엘과 한국이 친하다는 이스라엘 대사의 발언은, 그냥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면, 한국 사람이 흔히 갖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감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왜 한국 사람이 이스라엘에 대해 막연한 애정과 호감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내 이야기 먼저 하자면, 나는 현대 국가 이스라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현대 국가 시리아나 현대 국가 터키나 현대 국가 토고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교육 과정에서 얻어들은 이스라엘은 아스라히 기억이 날 것도 같다. 초등학교 국어책인가에, 농촌 공동체 키부츠가 어떻다거나 사막에 물을 대 관개 농업에 성공 운운하는 내용이 내용만큼이나 따분한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중동 전쟁이 났을 때 전세계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이 텔아비브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고, 모사드의 활약상 같은 것도 남들처럼 얻어 들었다.

다른 한국인의 경험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한 나라에 대한 인상이 이런 점들로 결정된다면, 대체 왜 이스라엘에 모호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한때 이스라엘 키부츠에 들어가 합숙 생활하는 프로그램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프로그램이라도 다녀온 사람이 그렇다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지 않다면, 유독 한국인만이 이스라엘 농촌 성공 사례에 감읍하거나, 전쟁이 난 나라에 달려들어간 유태인들의 애국심을 존경하거나, 불가능하다는 작전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정보 기관에 감동하거나 한다는 말인가.

과거를 다룬 책에서 어떻게 묘사가 되었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스라엘은 서남아시아 맨 서쪽의 땅 2만2천1백45제곱킬로미터를 통치권으로 하고 있는 현대 국가다. 종교가 다른 나라들에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당차게 버티고 큰소리치는 기특한 나라일망정, 그냥 제 생존을 위해 애쓰는 1백몇십 개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이 나라를 물적심적군사적으로 강력하게 지원하는 미국이 그 오야붕이 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나라와는 좀 다르다. 어쨌든 현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신경쓰는 것은 자기네 안녕과 보존이지 무슨 위대한 명분이 아니다.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불행하면서도 영원한 룰인 약육강식을 가장 철저히 체득하여 왔고 가장 철저히 집행하는 나라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다. 이를 위해서 어떨 때는 천사같은 일도 하고 어떨 때는 깡패같은 짓도 한다. 혹은 나라의 어떤 부분은 천사같은 일을 하지만 어떤 부분은 날강도 깡패 같은 일을 수행한다. 외부와 무력 갈등을 벌이고 있는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어떤 가족과 저녁밥을 먹으면서 틀어둔 텔레비전에서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팔-이 충돌 뉴스가 나왔을 때다. 충돌의 양상은 우리가 모두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 돌팔매질을 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이들을 향해 장갑차에 올라타서 고무탄환을 쏘는 이스라엘 병사들이다. 뉴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 가족 구성원 전원이 이구동성으로 앞다투어 쏟아내는 친이스라엘/반팔레스타인 코멘트들에 아연 질색하고 말았다.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토론과 성토가 끝난 뒤 가만히 물어보았는데, 이들은 지금(당시) 벌어지던 이슈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제3자로서는 그 흔해빠진 양비론만 해도 중간은 가는 일 아닌가. 이들은 다만 수천년 전 이야기를 한다. 수천년 전 이야기.

수천년 전 이야기가 지금 벌이고 있는 얼토당토않은 짓을 승인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나. 마니산 참성대에서 단군신을 모시는 박수가 저자거리에 내려와 깡패짓을 할 때, 내 국조(國祖)를 모시는 자여 당신은 언제나 옳다 하며 희희낙락 그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일인가. 왜 이스라엘에 모호한 호감을 갖는 것인가. 정말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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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구분 2006/07/22 14:34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여타 인근 국가들에 대해 벌이는 공격성을 볼 때마다 이 나라 참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한 비판을 유대인 전체 내지 유대인 개인에 대한 그것으로 연결지어서는 안된다는 자기 통제를 가하곤 한다. 이스라엘은 비판받을 부분이 많지만, 유대인 일반에 대한 비평은 매우 위험하다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은 것이, 시오니즘을 바탕으로 건설된 이스라엘...... more

  • 이스라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2006/07/24 22:46 #

    이스라엘을 왜 좋아하세요? - deulpul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참 복잡하고 애매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성서의 마태오복음 1장에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는 예수의 족보가 나오는데 이것은 그가 다윗, 즉 왕의 ...... more

덧글

  • durumee 2006/07/19 14:35 # 삭제 답글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
    이번 이스라엘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도 저는 모르고 그냥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걸 굳이 알아서 무얼하느냐 하면 그냥 개인 취미라고 웃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
  • 상먀애인 2006/07/19 15:01 # 삭제 답글

    호감이랄까? 전 세계에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우리의 관점이 아닌 그들의 관점으로 보고자 노력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테러도 윤봉길의사와 같은 입장이고 이스라엘의 행동도 그들의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즉,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당사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참 이해가 되더군요. 이스라엘에 호감, 비호감은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합니다. 한번 밀리면 먹혀버리는 상태로 인해 그러려니합니다.

    그래도 무분별하게 테러는 안하지 않습니까? 지키는 쪽과 뺏으려는 쪽의 싸움이니 누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죠.
    글쓰고 보고 참 정리가 안 되는군요. ^^;;
  • 까날 2006/07/19 16:39 # 답글

    가끔은 종교적 이유도 아닌데 대한민국 남성의 90퍼센트가 할례(....)를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가루 2006/07/19 17:25 # 삭제 답글

    종교적인 이유는 없을까요? 실제의 이스라엘말고 축복받은 나라 이스라엘을 배웠다면요. 그리고 축복받은 나라 미국도 있으니까요.
  • 붕어가시 2006/07/19 18:08 # 답글

    저도 주변의 반응을 가만히 듣고 나서 백인/비 백인의 호감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결론내린 적이 있지요. 그러고 보면 아랍사람들에 대한 편견도 대단하더군요. 서양사관아래 길들여진 그 맹목적인 믿음이란..
  • 메르키제데크 2006/07/19 19:15 # 답글

    구약으로 과거의 난리를 읽으면서 느낀 동질감은 이해합니다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저 국가일 뿐일텐데 말이지요.
  • 2006/07/19 21:5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6/07/19 22:0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덧말제이 2006/07/19 22:43 # 답글

    이스라엘에 대한 기존 지식은 저와 같은 경로로 가지고 있으시군요.
    교과서, 중동 전쟁에 대한 대처 등등.
    이스라엘에 대한 호감... 탈무드의 인기도 하나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자그니 2006/07/20 14:40 # 답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신생국가였다는 사실도 잘 모르더군요...
  • Jayhawk 2006/07/20 22:38 # 삭제 답글

    조용히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에 모호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특히, 특유의 선민의식 이란...
  • 도야지 2006/07/24 01:27 # 삭제 답글

    제 경우라면
    1. 어릴때 받은 기독교 계통의 기억 - 구약성경 이야기들
    2. 독재정권때 받은 친 이스라엘 교육 - 주위의 열강과 맞서 싸우는 나라,
    애국주의로 똘똘 뭉친 국민들
    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은 현대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국가라고 생각하죠
  • deulpul 2006/07/24 05:52 # 답글

    durumee: 무척 중요한 취미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모든 출발은 상황을 제대로 잘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저 스스로에게도 다짐하는 말.

    상먀애인: 네, 당사자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각인 것 같아요. 역시 출발부터 꼬였으니 당사자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건 괴롭기만 하군요. 테러는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다른 기회에 함께 보기로 하죠~.

    까날: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가루: 충분히 가능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렇다치고, 미국을 땅에 구현된 천국으로 믿는 미친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붕어가시: 그런 쪽으로도 볼 수 있겠네요, 정말. 똑같은 원어민 영어 선생도 백인종이 유색인종보다 더 우대받는 사회니까요.

    메르키제데크: 그러게 말입니다...
  • deulpul 2006/07/24 05:52 # 답글

    비공개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비공개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만 자꾸 생겨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려요.

    덧말제이: 글 생각할 때 떠올렸던 것 중에 막상 쓰면서 뭘 하나 잊어버린 것 같아 계속 괴로웠는데, 바로 탈무드가 빠졌네요. 중요한 소스인 것 같습니다.

    자그니: 종교며 민족이며 국경이며 정통성이 온통 복잡한 지역이라, 따로 떼어 생각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Jayhawk: 저도 동의하며, 실제로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한민족을 포함해, 종교와 신화를 통해 스스로를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족속은 많이 있지만, 이스라엘처럼 국교의 강력한 힘을 빌어 배타적인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는 경우는 위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도야지: 많은 사람이 도야지님과 같은 배경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대국의 줄긋기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비극을 불러온 것은 중동과 한반도가 매한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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