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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아파트 중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집마다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고, 공동 세탁장이 있어 몇 집이 공동으로 쓰도록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지역이나 아파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동 세탁기나 건조기는 흔히 동전으로 작동된다. 예컨대 25센트짜리 쿼터를 대여섯 개 정도 넣으면 작동된다.
한 아파트가 있다. 이 아파트도 공동 세탁장 형태로 운영되는데, 열두 집 정도마다 세탁기 세 개와 건조기 두 개가 배당되어 공유된다. 소유한 것은 아니니까, 공유(共有)라기보다, 이 집들만이 이 기계 다섯 대를 독점적으로 쓸 수 있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이 세탁기들 역시 동전을 넣어서 돌리는 형태였는데, 두어 해 전에 아파트 방침이 바뀌었다. 매번 동전을 준비해야 하느라 불편하고 동전 수거 및 관리 인력을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들어간다는 명분으로, 동전 투입 제도를 폐지하고 매달 세탁비를 책정해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기계는 동전을 넣지 않아도 작동되게 되었다. 그 대신 매월 내는 아파트 월세에 세탁기 사용료가 추가되었다. 사용료는 세탁기를 많이 쓰는 집과 적게 쓰는 집을 조사하여 중간 정도로 잡았다. 따라서 정액제로 바뀌면서 이익을 보는 집과 손해를 보는 집이 나왔다. 여하튼 이렇게 정액제로 제도가 바뀌고 그것이 월세에 합산되어 징수된 뒤,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에 이 아파트는 세탁기 사용이 '무료'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여전히 세탁기 사용료가 포함된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달라진 것은 자기 손으로 동전을 넣는 것에서 월세에 합산하여 내는 것으로 바뀐 징수 방식 뿐이다. 그런데도, 제도가 바뀐 뒤 새로 입주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 전부터 살던 사람도 이제는 이 아파트의 세탁기 사용이 무료라고 인식한다. 무료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재화를 얻거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자기가 서비스 사용료를 열심히 내면서도 무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리측의 승리다. 2. 내가 있는 곳의 대학생들은 시내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다. 자동차 운전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활 수 있다든가,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든가 하는 명분이 붙는 건 당연하다. 의의도 거룩할 뿐 아니라, 수만 명이나 되는 학생에게 모두 공짜 버스 패스를 나눠주다니, 참 놀랍지 않은가. '무료' 패스를 받아 정기적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도 많지만, 그냥 뚝 잘라 전교생의 10%만이 한 달에 일주일만 버스를 탄다고 가정해 보자. 40,000 (명) X 10% X 7 (일) X 12 (개월) X 1.5 (달러, 버스비) X 2 (왕복) = 1,008,000 달러로, 10억원이 넘는 돈이다. 이런 거액을 희생하면서 그냥 학생들을 공짜로 태워준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사실 학생들은 버스를 타든 안타든 버스비를 고스란히 정기적으로 가져다 바치고 있다. 학교 당국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 중에서 일부를 강제로 떼어내 버스 회사에게 일괄 납부하는 계약을 맺고 있으며, 버스 회사는 아무리 시 직영이라고 해도 자선 단체는 아니므로, 막대한 돈을 받고 학생들에게 '무료' 패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등록금을 책정할 때 이같은 비용도 고려하여 금액이 매겨진다. 버스를 타든 안타든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버스 회사에 지불하는 돈은 한 해 2백만 달러나 된다. 이 금액은 이 도시 버스 회사 수익의 25%를 차지한다. 결국 학생들은 자기 돈을 내고 버스를 타고 있지만, 직접 자신이 돈을 들고 가서 납부하는 게 아니므로 공짜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학생들이 만드는 각종 공식 홍보물에까지 '무료 버스 패스'라는 식으로 나와 있다. 3. 어떤 사람이 보험을 새로 들고나서 싱글벙글 좋아한다. 자동차 보험을 들고 있었는데, 자기가 사는 집의 화재 보험을 새로 들었더니 합산한 전체 보험료가 오히려 내려갔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내 왔던 자동차 보험료 = 1,000달러 새로 들기로 한 주택 화재 보험료 = 300달러 화재 보험을 들면서 수정된 자동차 보험료 = 600달러 1,000 > 900 (= 300 + 600) 이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보험을 하나 들 때보다 둘 들 때 보험료가 더 내려간다니! 셋을 들면 보험료 총합이 700 정도, 넷을 들면 500불 정도... 한 열 개쯤 들면 거의 공짜가 되지 않을까. 보험이란 위험 가능성을 담보로 하여, 그에 대한 대비를 상품화한 것이다. 위험에 대비하는 목적물이 많아지면 당연히 보험 회사의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따라서 보험료는 올라간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too good to be true 한 일이 생겼을까. 여기서의 조삼모사는 애초 자동차 보험료 1천 달러가 완전 바가지였다는 데 있다. 무슨무슨 이유를 붙여서, 예컨대 외국인이라서 미국 운전 기록이 없다든지 하는 이유를 달아 일반적인 보험료보다 훨씬 높은 보험료를 물려 놓고, 나중에 이를 정상 수준으로 깎아 주면서 다른 보험까지 하나 팔았다. 누가 더 입이 벌어질 상황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보험을 든 사람은 희한하게 보험료가 줄었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그동안 터무니없이 비싼 자동차 보험료를 물어 온 데 대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할 상황이다. 4. 하나 사면 하나 더 얹어주는 상술이 있다. 이른바 Buy one, get one free다. 하나 값으로 두 개 살 수 있으니 하나는 그냥 공짜로 얻는 셈이다. 앗싸!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예컨대, 오렌지 주스 한 통에 보통 2천원이라고 하자. 마트에 갔더니 이 주스를 BOGOF로 팔고 있다. 얼른 두 통을 사들고 집에 와서 영수증을 보니 주스 한 통에 3천원이라고 되어 있다. 3천원에 두 통, 한 통당 1천5백원에 들고 온 셈이다. 그러니까, 이 주스는 할인을 하긴 했으나 하나를 쌩 공짜로 준 건 아니고, 그냥 보통 가격에서 5백원 정도 깎아 판 셈이며, 그 덕에 두 통이나 팔았다. 2천원짜리를 1천5백원에 팔 것인가, 3천원 가격을 매기고 하나를 공짜로 끼워주는 판매 방식을 택할 것인가는 마트 주인 맘이다. 아침에 세 개 줄지, 저녁에 세 개 줄지는 원숭이 주인 맘인 것과 똑같다. 그러나 BOGOF 세일이 무시로 비일비재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 방식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잘 먹히나를 말해준다. 상품 회전이 빨라 재고를 쉽게 털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럼 BOGOF 세일을 하는 마트에서 주스를 한 통만 1천5백원에 살 수 있을까? 가게 방침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불가능하다. BOGOF 세일에서는 하나를 사도 그 값은 여전히 3천원이다. 계산대 점원이 "한 통 '공짜'니까 얼른 가져오세요" 하고 말해주면 고맙고, 아니면 1천원 바가지 쓰는 거다. 세일이 끝난 뒤 주스의 가격표가 다시 2천원으로 내려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5. 무료나 공짜라는 말 뒤에는 대부분 뭔가가 있다. 정말로 사심 없는 무료도 있고 정말로 순수한 공짜도 있지만, 낼 돈 다 내면서 공짜라고 믿고 좋아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막상 공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면 꼼꼼히 따지지 못하게 된다. 사람 심리를 이용한 조삼모사 마케팅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러한 심리는 똑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제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크게 달라짐을 입증한 Kahneman과 Tversky의 고전적인 연구로 증명된 바 있다. Too good to be true 는 말 그대로, 사실이 아닐 정도로 너무 좋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너무 좋은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너무 좋으면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이다. 공짜, 무료라는 말 속에는 항상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When something is too good to be true,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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