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ard Zinn이 강연을 했다. 극장은 대형 상영관을 하룻저녁 강연 자리로 '값싸게' 내주고, 강연장 문이 무료로 열리자 사람들은 만석으로 화답했다. 진선생은 비판적 역사학자답게,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강연 내내 강조했다.

컴컴한 객석에서, 유달리 우렁차게 손뼉을 쳐대는 어느 미국 진보주의자 옆에 낑겨 앉아, 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을 누구나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 불행한 과거는 서둘러 잊혀지고, 사람들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앞으로만 나아간다고 생각하며 사실은 과거로 되돌아온다. 불과 1백년 전, 50년 전, 30년 전, 10년 전의 전철이 '지금, 이곳'에서 재현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생각컨대, 역사란 얼마나 큰 무기인가. 과거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은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사람에 버금가는 지혜와 통찰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 번 흐른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지만, 물은 여전히 물이고 물은 여전히 흐른다. 제3의 물결, 제4의 물결, 제5의 물결이 밀려와도 물결을 타고 넘으며 버티는 방식은 언제나 비슷하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는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옆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진실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는 그 눈이 뒤에 달려 있어야 할진저.
진의 말을 듣자니,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저절로 생각이 미쳤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하나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반성이다. 진보주의자가 돌아보아야 할 역사는 추상적인 통사가 아니라 숫자 하나하나, 그 숫자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핏방울과 고통의 냄새가 어우러진 역사다. 역사는 가장 구체적인 사실의 집합이며, 이 피냄새 나는 구체성으로서의 역사만이 우리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추상적인 이해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동의어이며, 역사의 힘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징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또 역사는 반성된 역사일 때만 현실적 의미가 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 자체로 규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역사란 다른 말로 하면 과거의 집단적 경험이며, 그 경험의 값은 전적으로 그 집단의 반성적 성찰력에 비례한다. 매국과 친일이 시대 의식이 되었던 시기를 지날 때, 독재와 억압이 국민의 피를 말리던 시기를 지날 때, 위정자의 부패와 이기가 국가를 결딴내던 시기를 지날 때, 모두 적절한 집단적 반성으로 그 시대가 매듭지어져야 하며, 그러지 못할 때 역사는 두고두고 올가미가 되어 반복의 형태를 취하며 개인과 집단의 숨통을 조이게 되는 것이다.
혹은 미국 버전으로, 진선생 말대로 미국민은 나치 독일에서, 히로시마에서, 필리핀에서, 통킹만에서, 니카라과에서 배웠어야 했을 것이다. 이 과거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반성적으로 되씹고 있다면, 현재와 같이 '그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평범한 미국민이 피를 흘려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에 따르면, 정부는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단다. 미국 정부만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정부의 본성 중 하나란다. 아닌게 아니라,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책략과 술수가 정치의 본령이 된 지 이미 오래지만, 그의 경고가 이즈음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는 9/11 이후 미국 언론이 사실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정부의 거짓말과 선동에 좌지우지된 사실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저널리즘이 죽어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두 단어, Government lies.
그의 생애 중에, 아마 베트남전 때 이래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랄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을 놓고도 그가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낙관은 참으로 부럽다. 그의 흰 머리와 주름진 손에서 풍겨나오는 차갑고도 따뜻한 기운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며 사는 삶만이 뿜어내는 킬리안 기(氣)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그는 지치지 않는 끈기와 저력이 세상을 뒤바꾼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곧 사람에 대한 믿음일 것이며, 다른 말로 하면 열 사람의 한 발 전진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개혁과 진보에 대한 믿음은 결국 사람에 대한 그것으로 귀착하는 모양이다.

컴컴한 객석에서, 유달리 우렁차게 손뼉을 쳐대는 어느 미국 진보주의자 옆에 낑겨 앉아, 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을 누구나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 불행한 과거는 서둘러 잊혀지고, 사람들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앞으로만 나아간다고 생각하며 사실은 과거로 되돌아온다. 불과 1백년 전, 50년 전, 30년 전, 10년 전의 전철이 '지금, 이곳'에서 재현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생각컨대, 역사란 얼마나 큰 무기인가. 과거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은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사람에 버금가는 지혜와 통찰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 번 흐른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지만, 물은 여전히 물이고 물은 여전히 흐른다. 제3의 물결, 제4의 물결, 제5의 물결이 밀려와도 물결을 타고 넘으며 버티는 방식은 언제나 비슷하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는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옆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진실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는 그 눈이 뒤에 달려 있어야 할진저.
진의 말을 듣자니,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저절로 생각이 미쳤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하나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반성이다. 진보주의자가 돌아보아야 할 역사는 추상적인 통사가 아니라 숫자 하나하나, 그 숫자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핏방울과 고통의 냄새가 어우러진 역사다. 역사는 가장 구체적인 사실의 집합이며, 이 피냄새 나는 구체성으로서의 역사만이 우리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추상적인 이해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동의어이며, 역사의 힘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징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또 역사는 반성된 역사일 때만 현실적 의미가 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 자체로 규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역사란 다른 말로 하면 과거의 집단적 경험이며, 그 경험의 값은 전적으로 그 집단의 반성적 성찰력에 비례한다. 매국과 친일이 시대 의식이 되었던 시기를 지날 때, 독재와 억압이 국민의 피를 말리던 시기를 지날 때, 위정자의 부패와 이기가 국가를 결딴내던 시기를 지날 때, 모두 적절한 집단적 반성으로 그 시대가 매듭지어져야 하며, 그러지 못할 때 역사는 두고두고 올가미가 되어 반복의 형태를 취하며 개인과 집단의 숨통을 조이게 되는 것이다.
혹은 미국 버전으로, 진선생 말대로 미국민은 나치 독일에서, 히로시마에서, 필리핀에서, 통킹만에서, 니카라과에서 배웠어야 했을 것이다. 이 과거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반성적으로 되씹고 있다면, 현재와 같이 '그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평범한 미국민이 피를 흘려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에 따르면, 정부는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단다. 미국 정부만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정부의 본성 중 하나란다. 아닌게 아니라,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책략과 술수가 정치의 본령이 된 지 이미 오래지만, 그의 경고가 이즈음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는 9/11 이후 미국 언론이 사실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정부의 거짓말과 선동에 좌지우지된 사실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저널리즘이 죽어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두 단어, Government lies.
그의 생애 중에, 아마 베트남전 때 이래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랄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을 놓고도 그가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낙관은 참으로 부럽다. 그의 흰 머리와 주름진 손에서 풍겨나오는 차갑고도 따뜻한 기운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며 사는 삶만이 뿜어내는 킬리안 기(氣)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그는 지치지 않는 끈기와 저력이 세상을 뒤바꾼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곧 사람에 대한 믿음일 것이며, 다른 말로 하면 열 사람의 한 발 전진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개혁과 진보에 대한 믿음은 결국 사람에 대한 그것으로 귀착하는 모양이다.




덧글
sivvy 2006/10/06 15:54 # 답글
비슷한 맥락을 이야기한 해나 아렌트 글이 생각나네요. 과거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가 되기위해선, 지나갔으니 끝이라는 인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원인-결과. 땡."식으로 역사를 분석해서 비극조차 카테고리화/통계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인과론적 역사학법은 아니올시다라고 했지요..mooni 2006/10/06 20:01 # 삭제 답글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으나 거기에는 압운이 있다. - 마크 트웨인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역사가 잘못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 클래런스 대로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p.13- 리처드 도킨스]
요즘 이 말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자그니 2006/10/06 23:00 # 답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진아저씨 보고 싶어요..ㅜㅜ)2006/10/07 15:5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6/10/07 17:24 # 답글
sivvy: 좋은 말씀이네요. 과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은 누구나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이 논리적으로나 실제로나 공허한 모순이라는 점을 일러주는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mooni: 반복되는 잘못을 안타까워하는 성찰가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게... 글쎄, 자꾸 반복되면서도 잊어버리면 그저 집단적 데자뷰 정도나 된다고 할까요...
자그니: 홍시로 사주십시오. (썰렁...) 좋은 글에 저도 감사드립니다.
비공개님: 그렇죠? 살짝 덮어주시는 배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