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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를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에게 그 영화를 권해 주었는데, 그는 좋다니까 지루함을 참고 보다보다 견디지 못하고 3분의 2쯤에서 꺼버렸다고 한다. 영화의 핵심은 맨 마지막 몇 분에서야 비로소 나온다. 이 영화는 평범한 미국의 학생들이 얼마나 쉽게 '이웃에 사는 악마'(콜럼바인 사건을 표지 이야기로 다룬 <타임> 제목)로 돌변할 수 있는지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미국에서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최근 미국 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연발하자,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끔찍한 현상을 놓고 미국은 다시 고민하는 척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미국 학교들이 갑자기 총기 난사의 십자 포화 가운데 들어선 것처럼 화들짝 놀란 척하며, 한껏 걱정하는 목소리를 쏟아낸다. 중구난방 떠들면 그 중에는 헛소리가 끼이는 것도 당연하고, 그 많은 상식이나 이성은 대체 어디다 팔아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헛소리를 일삼는 것이 주로 정치인들이라는 것은 구태여 동아시아의 한 선진국 정치판을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최근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 건의 총기 사건 중 하나가 벌어졌던 한 주의 주 의원이 며칠 전, 다음과 같은 기발한 안을 내놓았다. 학생이 학교에 총 갖고 와? 선생과 친구들한테 총 쏴? 그럼 할 수 없군. 선생도 총 차자구. 선생이 허리춤에 총 차고 출근하고 수업하는 거야. 총 들고 설치는 놈 있으면 교실에서든 복도에서든 그냥 갈겨버리는 거야. 농담이 아니다. 이 의원은 내년 초에 이러한 내용을 규정한 법안을 주 의회에 상정하려고 하고 있다. 말을 내놓자마자 각계에서, 특히 일선 학교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덜떨어진 생각을 하고 이를 입법으로 현실화하겠다는 화상도 다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한다면,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적 대응은 총을 들고 맞서는 것이다." 하! 누가 공화당 소속 아니랄까봐, 하는 짓이 이렇게 똑같다. 저 주장의 인터내셔널 버전은 어떤가. "누군가가 미국을 해칠 가능성이 0.00001%라도 있다면 이에 대한 유일한 이성적 대응은 폭탄과 미사일을 쏟아부어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교사를 총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화두가 되고 있는 학교 총기 폭력 사태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안 중 가장 유치하고 가장 표피적이며 가장 농담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이 의원은 자신의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다면)이 뇌까리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든지, 아니면 지역구의 선술집에서 친구들이 농담하는 말을 듣고 머리에 전구가 반짝했든지 한 것 같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이런 망상을 머리에 떠올릴 수는 없다. 어쩌라구. 그래서 각급 학교를 오케이 목장으로 만들자구? 명색 배움의 전당에서 사제가 총질하고 피 철철 흘리며 사우스파크틱한 장면을 실사판으로 연출하면 그 참 볼만하겠다. 일시적인 억지 효과라도 있을까? NRA를 비롯한 총기론자들의 구두선은 시민이 총으로 무장하면 총기 사건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총이 흘러 넘치면, 어딘가에서는 터지고 발사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통계로 이런 주장이 쌩헛소리임이 명백해지자 이제는 그저 자위권 운운하며, 무장할 권리를 규정한 헌법 수정 조항 같은 데 기대는 형편이다. 학교에서 사제가 총질하는 끔찍한 상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발상이 결국 미국 사회의 총기 범람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며, 학교든 사회 전체든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팽배해 있는 총기 사건을 한층 부채질할 뿐이라는 점이다. 최근의 사태에 대해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적절한 대응과 방책은 함께 일하는 미국 아줌마가 내던진 다음과 같은 말이다: "미국이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머리가 이런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국은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 것인가. 마이클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지적했듯이, 지금 터져 나오는 고름은 미국 사회의 어떤 부분이 심하게 곪아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심하게 곪으면 터지게 되어 있다는 것은 의대를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이자 영원한 진리다. 대일밴드를 아무리 덕지덕지 붙여봐도 소용없다. 1999년 4월, 콜럼바인 대학살이 벌어지자 미국 사회는 대오각성한 듯 보였다. <타임>은 표지에 학살의 주인공 에릭 해리스와 딜란 클레볼드 사진, 그들의 총질에 비명횡사한 13명의 사진을 싣고,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 일을 저지르게 했는가" 하고 물었다. 수많은 반성과 처방이 나왔다. 그러나 그 뒤에도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 끊임없이 총성이 울려 나왔으며, 아침에 멀쩡히 등교한 학생들이 검은 비닐백에 실려 돌아왔다. 이 끔찍한 리스트는 이 곳(pdf)에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학교에서 총기 사건을 일으킨 학생 중에는 여섯 살짜리도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총에 맞아 숨진 어린이는 한 해 3천12명이나 된다. 밤낮 없이 세 시간에 한 명씩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것이다. 부상하는 어린이는 그 4~5배나 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한 어린이가 숨지고 다섯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렇게 총에 맞아 숨지는 학생 수는 선진국 중에서 미국이 압도적이다. 다른 해의 통계에 따르면, 총격으로 숨진 어린이 수는 일본=0, 영국=19, 독일=57, 프랑스=109, 캐나다=153인데 비해, 미국=5,285다. 인구 차이를 고려해도 기막힌 결과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답은 너무나 뻔하다. 총이 너무 많고, 총을 너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마이클 무어가 실험했듯, 은행에 계좌를 새로 열면 샷건을 경품으로 주는 마당이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이 한국 모모은행에 가서 새로 계좌를 열었다. 은행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시퍼렇게 날 선 사시미칼을 선물로 준다. 정치와 사회를 압도하는 기업 이익, 이들의 선전에 쉽게 지배당하는 각성되지 않은 국민, 마초 의식, 폭력으로 성립한 국가의 기원, 기원뿐 아니라 폭력이 국가 운영의 주요한 한 수단이 되고 있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빚어내고 있는 것이 총기와 관련한 미국의 비극이며, 미국 학교의 비극이다. 이러한 사회 기풍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총기 규제, 이것 말고는 수가 없는 것 같다.1 불행히도, 이같은 희망사항이 현실화될 가능성보다는 교사들을 총기로 무장시키는 한심한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총기 범죄가 무서우므로 더욱 많은 사람이 총기를 숨겨 지니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는. 1. 현실적 대안도 많이 논의되는데, 예컨대 학교에 금속 탐지기를 더욱 많이 설치하고 등하교 지도를 강화하는 것 같은 방안들이다. 이런 방안은 모두 콜럼바인 이후 등장한 대책의 재탕이다. 당시에도 도시 우범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되지 않았으며, 시행한 곳들도 곧 흐지부지해졌다. 그런 점에서, 교사 무장 방안은 신선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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