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장
이 블로그의 글들 VI 이 블로그의 글들 V 이 블로그의 글들 IV 이 블로그의 글들 III 이 블로그의 글들 II 이 블로그의 글들 I ※ 예전 글들의 카테고리 분류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테고리
때時 일事 (Issues)
중매媒 몸體 (Media) 미국美 나라國 (USA) 갈硏 궁구할究 (Study) 흩을散 글월文 (Prose) 욀諷 찌를刺 (Satire) 짧을短 생각想 (Piece) 낱個 사람人 (Personal) 연결連 이을續 (Series) 섞일雜 끓일湯 (Others) 두二 바퀴輪(MCycle) 최근 등록된 덧글
섬짓하군요
by dirty at 12/11 영하 30도에 체감온도까지.. by deulpul at 12/11 말씀 듣고 기억도 더듬어.. by deulpul at 12/11 오-. 이런 곳이 있었군요.. by deulpul at 12/11 사물의 밝은 면을 보자면.. by deulpul at 12/11 최근 등록된 트랙백
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by 민노씨.네 일년이 다 된 글인데 새삼.. by 물리학 흠냐, 울 마눌은 백설공.. by 뒤돌아 보지 않는다, 후.. 검찰과 기자, 국민 세금.. by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팅.. 전국국어대회 '4대강' 토.. by Green Monkey Blog** 태그
|
봄병이 은근히 불어오는 남풍에 수줍은 듯 터지는 꽃망울에서 비롯된다면, 가을병은 찬 바람 드나드는 휑한 가슴에 울긋불긋한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시작하는 것 같다.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생명의 힘도 놀라운 것이지만, 땅에서 올린 것을 다시 땅으로 돌리며 삼라만상을 겸허하게 만드는 스러짐의 힘도 만만치 않다. 낙엽(落葉), 쇠락(衰落), 조락(凋落), 영락(零落)... 가을의 대기를 온통 채우는 온갖 떨어짐[落]의 이미지에 요요히 항거하기란 쉽지 않다. 하는 수 없다. 또 잠깐 가을병을 앓아줘야 할 때인 것이다.
갑자기 다가온 서늘한 바람은 온몸 구석구석의 터럭을 일으켜 세우듯 온몸 구석구석에서 센티멘털리즘을 끌어낸다. 계제에 잠깐 염세도 했다가 실존도 했다가 회의도 했다가 하며 오랜만에 자기 안을 몇 바퀴 돌아보게 된다. 봄꽃보다 붉은, 서리 내린 이파리를 들여다보며 열두 달 세월 중에 잠깐 감상에 몰입할 때를 가질 수 있는 것도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픈 선물이 아닐까 싶다. ![]() 열 시간 가까이 북쪽을 흘러 다녔다. 탐하는 눈 때문에 발이 바빴다. 사실은 차가 바빴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그저 길을 밟아다니는 여행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덕분에 엉덩이는 점점 iron butt이 되어 간다. 다른 때는 몰라도, 가을엔 그 수밖에 없는 듯도 하다. 한해살이 녹음(綠陰)의 황혼기에 남에서 북으로 적당한 거리를 올라가자면, 장년의 원숙한 푸르름에서부터 한 해 동안 자신을 키웠던 가지를 떠나 한낱 풍진으로 돌아가는 종멸의 순간까지 모두 목격하게 된다. 개중에는 서둘러 붉어진 놈도 있고, 제대로 색을 피우지 못하고 누렇게 뜬 채 늙어가는 놈도 있으며, 이미 소멸할 때가 지났는데도 기어코 가지를 붙들고 있는 놈도 있다. 삶은 다양했으나, 바람 한 점 소소히 불어오고 그 끝에 찬 비라도 한 줄기 내린 다음이면 모두 같은 곳에서 같은 모양으로 죽음을 살고 있게 될 것이다. 뱀허리 같은 숲길 끝에 갑자기 나타난 조용한 마을은 꼭 속리산 초입의 그 마을을 닮았다. 도시 사람에게는 낯설게만 보이는 턱없이 너른 길도, 한적한 분위기도, 지나치는 사람의 미소도 아주 흡사하다. 대체로 산이나 숲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산이나 숲을 닮아가고, 그로써 서로서로도 닮아가는 모양이다. 아주 먼 곳에서 아주 오래 전을 갑자기 회상시키는 이 닮음은 또 새로운 통증을 잠깐 안겨주고 냉큼 사라진다. 서늘한 달을 등지고 들어와 자리에 누우니, 달 크기만큼으로 동그랗게 휑한 마음 속으로 낮에 보았던 붉고 노란 잎들이 날아든다. 가을을 심하게 앓던 청소년 때에는 낮에만 많이 아프고 잠은 정신없이 잤건만, 이제는 낮이나 밤이나 비슷하게 아주 은근히 아프다. 참 이상하다. 눈은 행복하되 마음은 아픈 계절이다. 저녁빛에 스스로를 한없이 비추어보다, 결국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지고 마는 낙엽 탓인지. 아서라, 이렇게 부끄럽게도 잘 살고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