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일찌감치 이민 온 사람이 아닌 한, 영어 때문에 한숨 쉬며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영어가 공용어인 홍콩에서 태어나 자란 재키 챈(그냥 성룡이라고 하자)도 중국 문화에서만 성장했기 때문에 영미권 사람 같은 영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그가, 영어 대사를 줄줄 해야 하는 영미권 영화를 찍으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동병상련으로서.
성룡은 지금 로스앤젤레스에서 <러시 아워 3>을 찍고 있다. 파트너인 크리스 터커와 다시 호흡을 맞추는데, 두 사람이 영어로 떠드는 장면이 나오면 성룡은 크게 긴장한다. 감독 브랫 라트너가 지독할 정도로 완벽한 영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터커나 다른 배우들은 오히려 대충 그냥 넘어가면서도, 성룡 형님에 대해서는 복수형에 붙는 s 하나, 과거형에 붙는 d 하나까지 깡그리 챙긴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성룡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가 직접 기록하고 있는 일기에서 나왔다. 인간적 면모가 물씬물씬 풍기는 그의 일기 중 10월26일치에 그는 영어 때문에 겪는 고통을 잠깐 언급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I’m starting to get worried because tomorrow’s scene has so much dialogue. I guess I’d better go and practice now.
Here is one last thought before I go to study my lines. To me, action scenes are so easy, but dialogue scenes drive me crazy. The directors and producers want me to speak everything perfectly. Every single word must be spoken perfectly. Sometimes, I wonder why is it that Chris Tucker and the other actors don’t have to speak perfect English yet I have to. The directors always want to make sure I add that “s” at the end of a word or add the “d” at the end of another. The directors tell me, “you missed this or you missed that”. I have to say my lines over and over again until I get it right. I want to ask them, “Can I speak Jackie Chan English?”
그는 긴 대사를 외우며 동시에 발음까지 정확히 하기가 참 곤란하다고 털어놓는다. 과거형이나 복수형을 말할 때 헷갈린다는 고백도 하는데, 그 심정 정말 이해가 간다. 교과서 영어가 아니라 실전 영어를 처음 할 때, 스스로 가장 기막힌 게 자신이 "a lot of womans" "many peoples" "yesterday I go to the party" 하고 말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다. 머리로는 '미쳤어? 제정신이야?' 하면서도 입은 그렇게 나가고,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바보로 볼까 하는 생각까지 겹치게 마련이다. 이 단계를 빨리 넘어야 하는데, 오래 영미인들과 작업을 해온 성룡 형님도 여전히 골치아픈 대목인 모양이다. 다른 일기에서 그는 자신의 발음을 크리스 터커에게 많이 교정받는다고 말하며 감사를 표시한다. 벽을 손도 안 짚고 휘떡휘떡 넘는 형님도 영어 벽 넘기는 그리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일기 마지막에 그는 공부하러 가시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신다:
I know all my fans know how I feel when it comes to working on English dialogue.
Yep, certainly.
자, 성룡 형님도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데 우리가 게으름 피울 수 없다. 촬영 현장에서 분치기, 초치기까지 하시며 영어 대사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계신 모습(위 사진)은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제길, 성룡은 중국어로 일할 수 있고 우리는 한국어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모두모두 힘내서, 아자! 아자!
참고로, 저 일기는 성룡이 직접 쓰기까지 하는 건 아니고, 그가 구술하면 받아적어서 올리거나, 아니면 그가 중국말로 mp3 따위로 녹음하면 이것을 녹취해 영어로 옮긴 뒤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이 얼굴만큼이나 참 정겹고 소박하다.
사진은 물론 그의 홈페이지에서.




덧글
까날 2006/11/10 12:18 # 답글
아이구 형님, 한국어도 곧잘 하시는 분이...-_-우유차 2006/11/10 12:33 # 답글
재키 아저씨, 문맹이라고 고백하셨던 게 3년 전이던가요. 대본 외우는 게 장난 아니겠다- 싶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Rob-B-Hood(BB프로젝트) 보고 너무 안쓰러운 액션이라(고생하는 게 눈에 다 보이는) 보면서도 안타까웠는데. T_Twenzday 2006/11/10 12:35 # 답글
우웃 성룡!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언제 뵈어도. 외국어는 참 힘든 부분이에요. 완벽히 정복할 수 없는 까닭에 더 매달리게 되지만.deulpul 2006/11/10 12:53 # 답글
까날: 한국 영화에도 정식으로 한번 초빙을 해야 할까봐요. 대사를 촬영날 아침에 준다는 홍상수 감독 작품으로...우유차: 영어만큼은 많은 노력을 쏟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액션이든 대사든,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죠?
wenzday: 네, 여전히 미중년(인가...). 왜 바벨탑을 쌓고 난리쳐서 이 고생이야!
마른미역 2006/11/10 13:00 # 답글
으하하하핫; 까날님에 대한 답글에서 뒤집어졌습니다;;;덧말제이 2006/11/10 13:19 # 답글
머리로는 '미쳤어? 제정신이야?' 하면서도 입은 그렇게 나가고,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바보로 볼까 하는 생각까지 겹치게 마련이다.<- deulpul님도 훨씬 영어가 딸릴 저는 이럴 때 아주 미치겠습니다. 영어 스트레스... 그나마 말은 뭐, 우리도 엉터리로 우리말 할 때 있잖아 하면서 스스로 위로라도 하는데, 글은 정말... -.-
Hikaru 2006/11/10 16:35 # 답글
너무 까탈스럽게 그러네요. 정말 힘들 것 같아요.성룡오빠, 화이팅>_<!! (성룡이 울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데.ㅎㅎ)
시노조스 2006/11/10 20:28 # 답글
성룡 아저씨 영어 잘하는 것도 부럽고, 노력하는 모습도 부럽고. 부럽습니다.열심히 사는 모습이 멋있지요. 어서 저도 영어를 배워야할텐데 말이죠.
단, 완전 영어는 저에게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노스텔지어 비스무리 한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 (중학교 때 단어시험 0점 맞았다고 선생에게 의도적인 망신을 당한 이후로 영어를 못 해요. 트라우마 인가요?)
ThePaper 2006/11/11 14:38 # 답글
아아, 여전히 노력하는 그분의 모습. 진짜 존경스럽습니다.numa 2006/11/11 14:39 # 답글
러시아워 1편의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NG장면에도 나와요.1편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 터커가 중국 스튜어디스에게 중국말 몇 마디 하는 장면인데,
그게 NG가 여러 번 났나봐요. 그래서 그 NG장면이 크레딧에 나오는데,
크리스 터커가 자꾸 틀리니까 성룡이 웃으면서 "나는 도대체 얼마나 힘들겠어?"고 하더군요 ㅋㅋ
deulpul 2006/11/11 15:05 # 답글
마른미역: 헤헷-.덧말제이: 그, 그건 '우리 글도 엉터리로 쓸 때 있잖아...' 하면서 위로하세요... 저처럼.
Hikaru: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 한번 아빠도 영원한 아빠. 오빠가 아빠 되는 경우만 예외로 인정.
시노조스: 네... 참전 용사들이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불치병은 아니니까 열심히 노력하시면 분명히 극복하고 영어를 정복하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영어 천국, 불신 지옥.
ThePaper: 이렇게 응원하는 팬들이 있으니 형님은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경극 할걸 잘못했어...
numa: 재미있던 장면이 있었네요. 저는 기억이 가물가물... 그런데 정말 말이죠, 왜 영어 하는 넘들이 다른 언어 하면서 실수하고 틀리면 귀엽고 애교스럽다고 봐주면서, 영어 안쓰는 넘들이 영어 하다 틀리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냐고요! 영어 하는 넘이나 안하는 넘이나 마찬가지로 말여요. 웃기죠?
워니홍 2006/11/11 16:08 # 답글
이오공감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음 감독님으로써는 또 미래에 성룡씨를 위해서 일부러 더욱 그렇게 지적하는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너무 좋게 보는걸까요. 사실 말 잘못했다고 지적해주고 일일히 ng내는것도 고역이텐데 말이죠. 성룡씨가 또 그런 지적을 소화해낼수 있으니까 그런거겠죠. 어쨌든 외국어란 힘들어요ㅠㅜ
deulpul 2006/11/11 16:17 # 답글
물론이죠-. 감독 쪽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죠? 프로 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말이죠. 말씀대로, 이게 성룡에게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결과가 될 것도 틀림없겠습니다. 아, 바로 위 덧글에서 '눈에 쌍심지'는 감독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이야기였습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marlowe 2006/11/11 21:29 # 답글
추석에 중국 TV의 대담프로그램에 초대손님으로 나온 성룡을 봤는 데,그의 경우는 언어능력 자체가 딸리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표현을 못 찾는 듯 거의 매 문장마다 막히더군요.
愚公 2006/11/11 22:48 # 답글
이오공감 보고 왔습니다. 멋진 분입니다.marlowe / ...용형님은 그래도 됩니다...
호넷 2006/11/11 23:20 # 답글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남자4 2006/11/12 00:10 # 답글
에...재미있네요. 이오공감에서 넘어왔어요.작은날개 2006/11/12 01:30 # 답글
에구...."머리로는 '미쳤어? 제정신이야?' 하면서도 입은 그렇게 나가고,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바보로 볼까 하는 생각까지 겹치게 마련이다."
전 항상 말하고 나서 머릿속에 실수가 떠오릅니다..-_-;;;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한번도 영어가 좋아진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네요....-_-;;
언제쯤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ㅠ_ㅠ
oxygen 2006/11/12 09:55 # 답글
리펄스베이를 지날 때 봤던 성룡의 별장이 갑자기 생각나는 군요 ㅋㅋ 이분이 나오는 영화는 항상 재미있어요. 거장인데..끊임없이 노력하는 군요...역시 성룡입니다._Sue 2006/11/12 10:42 # 답글
멋있으십니다. 이젠 나이가 지긋하신데도(?) 대단하세요Rubyrain 2006/11/12 21:08 # 답글
아..요즘 유학준비 중인데..ㅠ_ㅠ 진짜..너무너무 공감되면서 또 너무너무 걱정마저 된다는..;성룡 아저씨 힘내시길!!!!
계란소년 2006/11/12 22:39 # 답글
그러고보면 상하이 눈/나이츠의 감독은 꽤 관대했던 듯도 싶습니다. 발음이 막나갔던 걸 생각하면...2006/11/13 01:2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greenmovie 2006/11/18 23:54 # 답글
밸리 타고 왔습니다. 영어라면 나름 살떨리게 했다 싶다가도 이렇게 계속 열심히 하시는 분들 보면 또 다시 주먹을 불끈 쥐게 되고 그런 것 같네요. 기사 잘 보고 갑니다.. 성룡 화이팅!!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deulpul 2006/11/25 07:19 # 답글
주먹을 불끈 쥐면 혀도 같이 경직되므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