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건너 올 때, 짐을 줄이느라고 고르고 골라서 가져온 CD 중에는 두 장짜리 <미스 사이공>이 끼어 있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곡을 그대로 녹음한 판인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짐 속에 넣었다. 한국에서 판이 처음 나온 것은 1994년으로 되어 있는데, 그 때에는 한국 공연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CD만 들으며, 언젠가 무대 공연을 제대로 한번 보리라 다짐다짐했었다. 서너 해 전에, 내가 사는 곳에 괜찮은 팀이 공연을 온 계제에, 눈물콧물 흘려가며 소원을 풀었다.
오리지널 런던 공연 때의 배우들 목소리로 녹음한 두 장 짜리 CD는 서곡으로 시작하는 Disc One에 15곡, 피날레로 마감하는 Disc Two에 14곡이 실려 있다. 그 중 백미는 단연 "I Still Belive"라고 생각한다. 킴 역을 맡은 필리핀 출신 배우 Lea Salonga가 엘렌 역을 하는 Claire Moore와 함께 부르는 이 곡은 여러 면에서 압권이다. 두 여자가 각기 아픈 마음을 노래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듣는 사람 마음까지 저려 온다.
귀와 가슴을 동시에 흔드는 놀라운 정서적 공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두 가수의 애절한 노래 탓도 있지만, 바로 이 노래에서 <미스 사이공>의 갈등이 집약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대 왼쪽 끝의 남루한 베트남 난민촌에서 과거의 여자 킴이 현재를 갈망하고 있고, 오른쪽 끝에서는 현재의 여자 앨렌이 과거를 두려워한다. 왼쪽과 오른쪽, 과거와 현재, 꿈 속과 현실, 지구 한 쪽과 반대쪽의 갈등은 노래로 육화되어, 마치 팽팽한 씨실과 날실이 얽혀 섬유가 직조되듯 무대 위를 덮은 뒤, 결국 듣는 사람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가 깔려 있다거나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현대판 개작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런던에서 10년(1989-1999), 뉴욕에서 10년(1991-2001) 동안 공연됐다.
그런데 이 걸작을 태동시킨 것은 바로 사진 한 장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Alain Boubill과 함께 <미스 사이공>을 만든 Claude-Michel Schonberg는 <미스 사이공>의 모든 것이 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우연히 잡지에서 이 사진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아서 <미스 사이공>을 만들었다는 것.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큰 슬픔에 휩싸여서 오히려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이 여인의 표정에는 이 지구상의 어떤 탄식보다도 더 큰 고통의 울부짖음이 감추어져 있었다. 아이의 볼에 흐르는 눈물은 사랑하는 가족을 뿔뿔이 찢어놓는 전쟁을 향한 가장 애끓는 비난이었다.
이 베트남 소녀가 울고 있는 곳은 호치민시 국제 공항이다. 소녀는 지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군 출신 아빠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길이다. 공항에서 엄마와 이별하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 뒤에는, 베트남에 파병됐던 미군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했던 베트남 여인들의 고통, 지구 반대편에 있을 남자를 찾기 위한 애타는 노력과 이를 가로막는 관료적인 장벽 같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인은 엄마들만이 알 수 있는 직감으로, 이제 소녀가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가면 소녀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고 대신 자신의 삶은 끝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희생으로는 가장 가슴아픈 것이며, 여인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 키운 딸을,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보내는 엄마의 얼굴은 말할 수 없이 슬퍼 보인다.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안타까운 눈 속에는 정말 수많은 한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침묵 속에 감추인 고통과 격정, 그것을 생생히 담아낸 사진, 그 사진이 촉발시킨 <미스 사이공>.
왼쪽 사진은 독일 보도 사진가 Helmuth Pirath가 찍은 것으로, 1956년 세계보도사진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전승국인 러시아에 억류되어 있던 독일군 포로가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의 남루한 옷을 입은 독일군 석방 포로가 반갑게 보듬으려 하는 소녀는 바로 그의 딸이다. 딸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울먹이는데, 왜냐하면 소녀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 살 때였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딸을 독일에 남겨놓고 전쟁터로 나간 아빠는 11년이 지난 뒤 늙수그레해져서 가족에게 돌아왔으나, 딸은 아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반세기 만에 가족을 만난 남북 이산가족이 헤어지는 장면이다. 차가운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둔 저 손맞춤에는 반세기 동안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담겨 있다. 이제 저 차가운 유리창만큼이나 차가운 휴전선 너머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Schonberg의 말대로, 이 사진들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갈갈이 찢어놓는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총 한 자루,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는 사진들이지만,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그 길다란 고통의 그림자를 잘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베트남 모녀 사진: <미스 사이공> CD 팜플렛 (당시 매그넘사 사진이었는데, 어느 잡지에 실렸던 것인지는 찾을 수 없었음)
독일 부녀 사진: WPP
남북 이산가족 사진: 연합뉴스
* 아래 '아름다운 밤이에요'에 덧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잘 간직해 두었습니다.
오리지널 런던 공연 때의 배우들 목소리로 녹음한 두 장 짜리 CD는 서곡으로 시작하는 Disc One에 15곡, 피날레로 마감하는 Disc Two에 14곡이 실려 있다. 그 중 백미는 단연 "I Still Belive"라고 생각한다. 킴 역을 맡은 필리핀 출신 배우 Lea Salonga가 엘렌 역을 하는 Claire Moore와 함께 부르는 이 곡은 여러 면에서 압권이다. 두 여자가 각기 아픈 마음을 노래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듣는 사람 마음까지 저려 온다.
귀와 가슴을 동시에 흔드는 놀라운 정서적 공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두 가수의 애절한 노래 탓도 있지만, 바로 이 노래에서 <미스 사이공>의 갈등이 집약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대 왼쪽 끝의 남루한 베트남 난민촌에서 과거의 여자 킴이 현재를 갈망하고 있고, 오른쪽 끝에서는 현재의 여자 앨렌이 과거를 두려워한다. 왼쪽과 오른쪽, 과거와 현재, 꿈 속과 현실, 지구 한 쪽과 반대쪽의 갈등은 노래로 육화되어, 마치 팽팽한 씨실과 날실이 얽혀 섬유가 직조되듯 무대 위를 덮은 뒤, 결국 듣는 사람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가 깔려 있다거나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현대판 개작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런던에서 10년(1989-1999), 뉴욕에서 10년(1991-2001) 동안 공연됐다.
그런데 이 걸작을 태동시킨 것은 바로 사진 한 장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Alain Boubill과 함께 <미스 사이공>을 만든 Claude-Michel Schonberg는 <미스 사이공>의 모든 것이 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우연히 잡지에서 이 사진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아서 <미스 사이공>을 만들었다는 것.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큰 슬픔에 휩싸여서 오히려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이 여인의 표정에는 이 지구상의 어떤 탄식보다도 더 큰 고통의 울부짖음이 감추어져 있었다. 아이의 볼에 흐르는 눈물은 사랑하는 가족을 뿔뿔이 찢어놓는 전쟁을 향한 가장 애끓는 비난이었다. 이 베트남 소녀가 울고 있는 곳은 호치민시 국제 공항이다. 소녀는 지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군 출신 아빠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길이다. 공항에서 엄마와 이별하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 뒤에는, 베트남에 파병됐던 미군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했던 베트남 여인들의 고통, 지구 반대편에 있을 남자를 찾기 위한 애타는 노력과 이를 가로막는 관료적인 장벽 같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인은 엄마들만이 알 수 있는 직감으로, 이제 소녀가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가면 소녀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고 대신 자신의 삶은 끝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희생으로는 가장 가슴아픈 것이며, 여인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 키운 딸을,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보내는 엄마의 얼굴은 말할 수 없이 슬퍼 보인다.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안타까운 눈 속에는 정말 수많은 한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침묵 속에 감추인 고통과 격정, 그것을 생생히 담아낸 사진, 그 사진이 촉발시킨 <미스 사이공>.
왼쪽 사진은 독일 보도 사진가 Helmuth Pirath가 찍은 것으로, 1956년 세계보도사진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전승국인 러시아에 억류되어 있던 독일군 포로가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의 남루한 옷을 입은 독일군 석방 포로가 반갑게 보듬으려 하는 소녀는 바로 그의 딸이다. 딸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울먹이는데, 왜냐하면 소녀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 살 때였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딸을 독일에 남겨놓고 전쟁터로 나간 아빠는 11년이 지난 뒤 늙수그레해져서 가족에게 돌아왔으나, 딸은 아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반세기 만에 가족을 만난 남북 이산가족이 헤어지는 장면이다. 차가운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둔 저 손맞춤에는 반세기 동안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담겨 있다. 이제 저 차가운 유리창만큼이나 차가운 휴전선 너머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Schonberg의 말대로, 이 사진들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갈갈이 찢어놓는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총 한 자루,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는 사진들이지만,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그 길다란 고통의 그림자를 잘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 아래 '아름다운 밤이에요'에 덧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잘 간직해 두었습니다.




덧글
2006/11/22 15:1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푸코 2006/11/24 00:37 # 삭제 답글
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유리가 뚫어져라 창 안의 가족 그림자를 어루만지는 할아버지 표정이 가슴 아픕니다. 그 망할 체제라는 게 뭔지, 이데올로기란 게 저 노인의 안타까움을 상쇄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갑자기 분노가 치미는군요. 인류는 추상화 능력으로 인해 동물로부터 분리되었는지 모르지만, 정치 이데올로기는 도리어 인류를 가장 저급한 동물 단계로 회귀시킨다는 생각입니다.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인권학대'로 규정하며 열을 올리는 작자들이 식량을 보내는 것을 막고 나서는 것을 보면 제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이 싫어집니다. 인권타령이나 하지 말던지요.deulpul 2006/11/25 07:34 # 답글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사회와 정치 제도를 미세하게 쪼개어 보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 주목하다 보면, 누구나 무정부주의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제도든 이데올로기든 모두 사람이 잘 살자고 하는 것일텐데, 그게 막상 현실에 덧씌워지면 온갖 이해관계에 휘둘려, 개개인은 곧잘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게 되는 모양입니다. 순수하고 인간적인 정서와 분노는 제도와 이데올로기 앞에서 곧잘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게 모든 것의 출발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푸코님 말씀에 동의합니다.백범 2009/05/23 17:49 # 삭제 답글
잔인한 생각이었나. 이런생각도 해보게 되는군요.이여자가 진심으로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를 시험해볼 목적으로 한번 자녀를 떼어놓고 여자를 시험해보는 생각. 이여자가 어떻게행동하나... 순간 이런생각도 해보긴 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