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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원래부터 내놓고 좋아하던 사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표는 못내고 그저 은근히 마음으로만 좋아해 왔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둘을 붙여놨더니 아주 좋아 죽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소년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소년은 새 학교에서 2학년이 되었다. 전교 다 털어봐야 한 학년에 기껏 네 학급인 학교에서 아이들은 모두 친구처럼 보였다. 1학년 과정이 거의 끝나갈 때에 전학을 온 소년은 친구가 없었다. 소년과 맨 처음 가까운 친구가 된 아이는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상진이었다. 그의 집은 2/7장이 서는 시끌벅적한 장터 귀퉁이의 솜틀집 옆에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난 뒤에도, 소년은 볼거리가 많았던 그의 집 근처에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잘 놀았다. 새로 올라간 2학년 학급에서는 이미 리더십이 형성되어 있었다. 반장은 읍내 중학교 교장 선생님의 손자였던 태웅이였고, 또래 중에 키가 훌쩍 큰 소녀가 부반장을 했다. 반장-부반장으로 이어지는 권력 구조는 물론 담임 선생님의 후견 아래 정착된 뒤 신속하게 공고해졌다. 소년은 이 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라도 상관없었다. 아직 친구도 없는 터라, 소년은 학급 안의 권력 관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부반장 소녀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훤칠하고 서글서글한 부반장 소녀와 오며가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는 일이 빈번해졌다. 반면, 부반장 소녀는 소년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내 마음 속의 그이에게 nobody가 되는 신세란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 I sit out in the crowd And close my eyes Dream you're mine But you don't know You don't even know that I exist - Toni Braxton, 'Spanish Guitar' 소년은 일찌감치 이 쓰디 쓴 맛을 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두어 달. 운동장을 휘휘 도는 바람이 아직 쌀쌀하게 느껴지던 때다. 무슨 일 끝에 담임 선생님은 자리의 전면 개편을 단행했다. 학년 초 잡은 자리와 짝을 모두 바꾸는 대개편이 이루어졌다. 어수선하게 자리를 옮기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태웅이와 부반장 소녀는 저 자리에 둘이 앉아라. 음... 여기까지는 좋다. 가방과 책가지를 들고 새 자리에 앉은 두 아이를 보자. 칠월 칠석날 견우 직녀가 일년 만에 만났대도 저리 반갑고 기꺼울소냐. 둘 다 입이 함박만큼 벌어져서 다물지를 못한다. 어떻게 그 동안 생이별을 시켜 놨을까 싶었다. 소년은 그 날 내내 그들의 자리를 훔쳐보았는데, 두 아이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보였다. 이에 비례해서 소년은 너무나 불행한 것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친 고통이었다. 두 아이가 행복해 할수록 점점 더 불행해져 가던 소년은 모진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다! 저 두 사람이 서로 의심하고 다투고 미워하면 된다. 어떻게? 저 두 사람을 서로 의심하고 다투고 미워하게끔 만들면 된다. 아아,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서 나온 생각치고는 너무나 사악한 것이 아닐 수 없구나. 소년은 어른이 된 지금도 저 부분을 깊이 반성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소년은 철부지였으며, 사랑과 질투의 힘은 나이를 초월하여 그만큼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놀랍고도 사악한 생각을 실제로 수행하기 위해 생각해 낸 방안은 어처구니없게도 너무나 초딩스러운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어린 아이라도 전략적 사고는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전술적 사고 능력은 형편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디테일에 강한 것은 어른스러움의 한 증표인지도 모른다. 자리 대개편이 이루어진 다음 날, 2, 3교시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놀러 나가자, 소년은 친구 상진이를 불렀다. 이제부터 태웅이와 부반장 소녀 자리에 가서 부반장 소녀 필통을 여는 거야. 그 다음에, 제일 예쁜 연필을 하나 꺼내서 태웅이 필통에 넣는 거야. 이 대목에서 상진이가 말했다. 그럼 부반장 소녀의 연필 끝을 칼로 깎은 뒤 이름을 쓰자, 확실하게. 정.진.영.이라고. 이런 바보같은! 어쩌면 그렇게 초딩 2년 수준밖에 생각을 못한단 말이냐! 이 예술적 나쁜 짓의 핵심은, 부반장 소녀가 가장 아끼는 연필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태웅이 필통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란 말이다. 책상 밑 공간에 부반장 소녀의 필통이 들어 있었다. 주범인 소년과 공범인 친구 상진이는 패딩이 된 폭신폭신한 필통에서 오로라 공주가 웃고 있는 만화 연필을 꺼냈다. 연필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상진이는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소년은 두근두근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차마 태웅이의 필통까지 꺼내 열지는 못하고, 오로라 연필을 태웅이의 책상 밑에 넣어 두었다. 곧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부반장 소녀는 3학년이 되면서 반이 갈려, 소년과는 다른 반이 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졌고 아픔도 가셨다. 소녀는 곧 인근 도시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보이지 않으니 아플 이유가 없었다. 태웅이도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 전학도 아예 쌍쌍바로 다니는구나. 어쨌든 '모두가 부유하던 시절이었다.' 전학을 간 부반장 소녀는 희한하게도 5학년쯤 되어서 다시 전학을 왔다. 그러나 이 때에는 소년이 너무 컸다. 소년은 3년 동안 열심히 컸으며, 외지에 나갔다 돌아온 부반장 소녀는 작고 초라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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