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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희망이 나비처럼 날아 왔다. 미래를 향한 현재의 희망이 아니라, 현재를 향했던 과거의 희망.
![]() 10대 후반부를 팍팍하게 넘어가던 나를 매료시켰던 책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과 <환상>,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그리고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이었다. 이 책들은 당시 청소년에게 보편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책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성서나 다름없었다. 국사를 가르치는 임선생님이 어느 날 숙제를 내주셨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읽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공책 한 쪽에 써 내라. 종로서적인지 교보문고인지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이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도 아니고 한국 이야기도 아니며 역사책도 아니다. 국사 과목의 숙제로는 어떻게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쨌든 그림이 많고 글자가 적은 그림책 형태라, 얼른 읽고 숙제를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권 사들고 왔다. 이 노란 책과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집에 와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나는 이 책이 단순한 그림책이 아니라 무겁디무거운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힘겨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몇 줄 독후감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맨 뒷 페이지를 덮자마자 이 책은 나의 성서가 되었다. 책꽂이에서 손이 잘 닿으면서도 가장 아늑한 부분에 꽂아두었으며, 좋은 친구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다. 두 마리 애벌레의 이야기는, 지금 읽어보면 조금 작위적인 부분도 있고 지나치게 교훈에 충실하려는 의도도 느껴지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에는 충격과 같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그 책은 지금도 나의 집 지하실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버리시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내 어릴 적 생각을 좀 하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책을 떠올리게 됐다. 아마존을 들어가 찾아보니, 1973년판 하드커버 중고가 3달러쯤 하는 우편요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지금 막 도착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서 살면 다행일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작아져 버렸지만, 그 때 나는 삶이 지향해야 할 더 큰 어떤 가치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좋은 선생님 덕분이기도 했다. 그런 고민에 대해 애벌레들은 풍부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더 이상 말을 더하면 애벌레에 대한 모욕이 된다. ![]()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어디 가지 않는 듯 싶기도 하다. 어릴 때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읽은 책들은 정서적 혈전(血栓)이 되어, 뇌나 심장 어느 한 구석에 단단히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박혀 있다가, 이따금씩 피돌기가 한창일 때 더운 피를 걸러 보내기도 하고, 생각돌기가 한창일 때 차가운 생각을 가닥 잡아 보내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금의 나는 10대의 나와 많이 달라졌지만, 나는 아직도 내 속에서 알을 깨려고 기를 쓰는 새끼 새, 비행에만 골몰하는 갈매기, 왜 탑을 오르는지 회의하는 애벌레 들을 종종 발견한다. 글쎄, 아직 철이 충분히 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현재를 향하던 과거의 희망은 여전히 미래를 향한 현재의 희망이기도 하다. 꽃이야 언제나 새로 피어날 테지. 그림: 트리나 포올러스가 쓰고 그린 <Hope for the Flowers>에서. [update] 조르바 아저씨가 섭섭해하실 뻔했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도 저 앞의 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를 관통하는 어떤 공통점이나 일관성 같은 게 있는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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