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꽃과 남경 대학살 by deulpul

가든, 이름은 멋있지만 그냥 밭인데, 그 한 구석에 포기가 한 아름쯤 되는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이 주말 농장 스타일의 밭 한 조각을 처음 배당 받았을 때부터 이 화초는 그 자리에 있었다. 첫 해 봄에 밭을 갈고 한 해 경작을 준비할 때, 이 넘을 갈아 엎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폭설한풍 한겨울을 꿋꿋하게 넘기고 버티고 선 기풍이 심상치 않아, 삽이나 괭이를 대기가 망설여졌다. 에라, 크게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닌데 걍 놔둔들 엇더하리. 이 식물은 그냥 살아 남았다.

봄이 무르익어 볕이 따뜻해지자, 기름진 땅에서 온갖 잡초가 앞다투어 쑥쑥 솟아 올랐다. 그런데도 이 화초는 키나 부피를 조금도 더하지 않았다. 겨울 끝이나 봄 끝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저런 힘으로 무슨 꽃이나 한 송이 피어 올리랴 싶었다.

화초가 아니라 앞 사람이 키우던 식용 채소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커져 가던 어느 날, 이 식물에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5월 중순께였다. 하늘하늘하던 꽃봉오리가 터지면서 위엄 있는 보라색으로 치장한 꽃이 우아하게 피어난 것이다.

그 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이 화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언제나 비슷한 시기에 보라색 꽃을 피웠다. 따로 돌보아주지도 않았다. 이름도 몰랐다. 이름을 불러 주어야 꽃이 되지만, 이미 꽃인데 굳이 이름을 찾아 부를 필요는 없었다.

올 유월에, 도서관의 행정 부서에서 일하는 한 아줌마의 방에 들렀을 때다. 사무실 벽이 온통 꽃 사진으로 꽉 차 있었다. 나의 밭에서 자생하다시피 하는 바로 그 보라색 꽃이었다.

저게 무슨 꽃입니까, 대체?
오, 꽃 이쁘죠? 아이리스(Iris, 붓꽃)이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랍니다.
아, 그렇군요. 꽃은 우연히 가까이서 자주 보는데, 이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남경 대학살과 일본의 은폐

몇 해 전부터, 해마다 아이리스 꽃이 필 즈음에 내 메일 박스를 찾아오는 또 하나의 아이리스가 있다. 아이리스 장(Iris Chang, 張純如). 그녀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20세기 초 일본은 아시아 일대에서 연속적인 침략 전쟁을 일으켜 이 지역을 피빛으로 물들였다. 전쟁이 거듭될수록 일본의 잔인함은 도를 더했으며, 인간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온갖 만행이 일본 정부와 군 당국에 의해 저질러졌다. 전대미문의 수많은 잔악한 만행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건이 남경 대학살이다.

1937년, 중국 내륙으로 밀고 올라온 일본은 12월13일 마침내 당시 중국의 수도 남경(Nanjing, 당시는 Nanking)을 점령했다. 남경에 이르기 전부터 일본군이 지나는 자리는 핏빛으로 얼룩졌다. 전쟁에서 죽고 죽이는 것은 불행하지만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군이 남경으로 향하며 보인 모습은 전쟁에 흔히 따르게 마련인 폭력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잔인함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잔인함의 광기가 일본군은 물론 일본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일왕은 전쟁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도록 규정한 국제 조약을 걷어내 버렸으며, 일선에서는 포로는 무조건 사살하도록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군은 포로 뿐 아니라 진군 중에 잡힌 시민과 부녀자, 아이들까지 도륙했다.

일본군 소위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츠요시는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베는가 경쟁을 벌였다. 이들의 '점수'는 마치 운동 경기의 그것과 꼭같은 형태로 본국의 신문에 보도되었다. 특파원이 쓴 신문 기사의 제목은 "백 사람 목베기 경쟁, 신기록 수립" "106 대 105, 연장전 돌입"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전쟁을 빙자한 학살이었으며, 나라 전체가 피 냄새에 미쳐 있는 형국이었다.

일본군의 만행은 남경을 점령하면서 그 잔인함이 극에 달했다.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잡힌 중국군 포로는 물론, 무고한 시민까지 칼로 목이 베이고 검도 연습 제물이 되었다. 산 채로 매장되거나, 구덩이에 던져진 뒤 디젤유를 뒤집어쓰고 집단으로 불타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일본군은 탄환을 아끼기 위해 서너 명을 겹쳐 놓고 총을 쏘아 사살했으며, 그보다는 칼을 썼다. 수많은 시신이 양자강에 던져졌다.

열 살도 안된 소녀에서부터 할머니까지 백주 대낮에 집단 강간을 당했으며, 이윽고 목이 잘리거나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린 채 길가에 내팽개쳐졌다. 일본군에 의해 강간 당한 중국 여성은 8만 명에 이르렀다. 총으로 아비를 위협해 딸을 범하게 하고 그 옆에 둘러서서 팔짱 끼고 이를 구경했다. 일본군은 재물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약탈하였고, 나머지는 불에 태웠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사진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 속에서 일본군은 중국인을 칼로 베고 찌르고 쑤시고 파묻고 불태우며 즐거워한다.

학살은 이듬해 2월 초까지 6주 동안 계속되었다. 이 기간에 일본군이 도륙한 남경 사람은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1947년,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 사건에 대해 벌어진 전범 재판에서는 19만 명이 집단 학살되었고 개별적으로 살해된 사람도 15만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731부대, 종군위안부, 관동대지진 사건과 더불어 20세기 초 일본이 주변국에 대해 벌인 만행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일본의 생각은 다르다. 희생자 수 집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어떤 범죄자든 죄를 숨기고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어하게 마련이므로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이 조작된 것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자도 있고, 한 국가 사회가 주체가 되어 학살을 저지르고도 시간이 가면서 은밀히 묻혀 가는 일도 벌어지는 마당이다. 그래도 수십 만을 처참하게 죽여놓고 나서 희생자가 수백 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위키에 따르면 일본 학자조차 대체로 10만에서 20만 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수백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호도하는 세력도 여전히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자기가 저지른 다른 만행과 마찬가지로, 남경 대학살을 후세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일본의 교과서는 이 학살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기껏해야 "이 사건의 실태에 대해서는 자료상의 의문점이 있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써서, 사실이 아닌 양 물타기를 한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남경 대학살이 엄청나게 과장되었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일본인의 억지를 반영하고 있다. 일본 지도층 일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경 대학살을 공공연히 부정한다. 일본 역사를 검토한다는 명목으로 결성된 한 우익 단체는 남경 대학살과 종군위안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같은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민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기도 한다. 교과서에 입김을 끼치는 것은 이들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다.

나치의 만행을 부정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처벌하는 독일과는 달리, 일본 정부는 이러한 강변과 억지를 용인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실로 반성하기보다는 이같은 억지를 뒷심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불행했던 시기에 벌어졌던 있어서는 안될 유감스러운 일. 만행의 주체는 쏙 빠지고, 자신이 저지른 참상의 실태도 게눈 감추듯 싹 감춘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주변 나라로 하여금 과거의 잘못을 정말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몇 해 전 중국땅을 뒤흔든 반일 시위에는 남경 대학살에 대한 조직적 부정과 이러한 주장을 용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하나의 아이리스 꽃

일본의 은폐 덕분인지, 남경 대학살은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만 기억하고 분노하는 문제로 머물러 있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관련한 수많은 조직, 단체, 기록, 자료, 기금, 기념관, 증언자, 후원자들을 갖고 있는 서구 사회에서도, 비극적 양상이 비슷한 남경 대학살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남경 대학살을 들어본 사람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적어도 아이리스 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리스 장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장은 명민하고 촉망 받는 젊은 저널리스트였다. 그의 부모는 중국 본토에서 태어난 대만 사람들로, 미국으로 유학 왔다가 학자가 된 뒤 미국에 눌러 살게 된 이민자들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인의 피를 그대로 받은 이민 2세인 아이리스 장이 중국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의 조부모 자신이 남경 대학살의 지옥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피의 조국이 한때 외세에 의해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참상에 빠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그를 분노에 떨게 만든 것은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아이리스 장은 1968년 3월, 프린스턴 대학이 있는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일리노이 대학이 있는 어바나 샴페인으로 이사 온 그는 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대학 때 대학 신문을 비롯한 대학 저널리즘에 참여하면서 그는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신문의 동료이자 편집자였던 한 친구는 장의 기사가 언제나 완벽해서 손을 댈 일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 정도로 그쳤다면 동료로부터 시기를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언제나 남보다 한 발 앞서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 남들이 원하는 자리를 바로 그 앞에서 따내고 남을 물먹이는 사람.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이 받는 상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 아이리스 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은 장의 노력과 재능 때문이었지만,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동료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될 수 없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장이 차지했다. 동료들은 그를 부러워하고 심지어 미워했다.

장은 <뉴욕 타임즈>에 기사를 기고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AP와 <시카고 트리뷴>에서 일했다. 저널리스트로서 화려한 출발이었지만, 장은 곧 지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를 만난 한 대학 동료는, 장에게서 대학 때의 기관차 같은 열정 대신 피폐하고 지친 모습을 발견했다고 회고한다. 장은 전도 유망한 길을 접고 좀더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삶을 모색했다. 그는 스스로 기획한 주제에 대해 취재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 내면서 자유 기고를 하는 작가로 변신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은 미국에서 활동하다 중국으로 넘어간 중국 미사일의 아버지 첸수에쉔(錢學森)을 다룬 <누에의 비단실> (Thread of the Silkworm)로, 1995년에 출간됐다. 그러나 장이 작가로서, 그리고 역사가로서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7년에 두 번째 책 <남경의 강간: 2차 대전의 잊혀진 대학살> (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을 펴내면서부터였다. 중국을 몇 차례 방문하며 관련자들의 증언을 철저히 취재하고 방대한 자료를 모아 집필한 이 책은 남경 대학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미국 사회를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남경 대학살 60주년을 맞는 해에 출간된 이 책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10주 동안이나 머물렀다.

남경 대학살의 마지막 희생자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아이리스 장은 일약 유명 작가로 등극했다. 당시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를 기쁘게 한 것은 사람들이 비로소 이 감추어진 비극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남경의 강간>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장의 책은 음지에 묻혀 있던 이 사건을 전면으로 끌어 냈으며, 미국인은 장의 책을 통해,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더불어 근세사에서 인간이 벌인 가장 잔혹한 학살이면서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던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남경 대학살 사건은 흔히 영어로 'the Rape of Nanking'으로 표현되는데, 이 말이 널리 퍼진 것은 아이리스 장의 책 덕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1

장은 다만 조용히 책을 쓰고 뒤로 물러나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남경 대학살에 대해 일본이 사과하고 제대로 보상할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조직했으며, 기회가 있는 대로 대중 매체에 나가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책과 강연, 대중 활동을 통해 남경 대학살의 진실을 미국 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하는 장이 일본의 눈엣가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은 밖으로는 장의 주장이 불명확한 자료에 근거한 과장이라고 주장하고 안으로는 장을 마녀 같은 존재로 취급했다. 일부 세력은 장을 해꼬지하겠다는 협박을 거리낌없이 내놓았다. 일본의 한 만화는 아이리스 장이 조작된 사진과 자료를 활용해 미국인을 선동하고 있다고 묘사했다(아래 그림). 불행하게도 일본의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아이리스 장의 책에 실린 남경 참상의 사진 대부분은 언론 매체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일본 병사들 자신이 찍은 것도 있었다.

일본의 태도야 이미 충분히 예견했던 일이었다. 장은 당차게 싸워 나갔다. 장에 대한 지지는 곳곳에서 나왔다. 책을 통해 남경 대학살의 진실을 알게 된 미국인들은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슷한 학살의 비극을 겪은 나이 많은 유태인들은 장을 자신들의 딸처럼 대접했다.

역사가가 역사를 오로지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면 바람직하겠지만, E. H. 카가 말하듯 완벽히 객관적인 역사가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젊고 열정에 찬 아이리스 장은 더욱 그러했을지 모른다. 더구나 그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진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를 추동한 주요한 동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리스 장의 의지는 굳었으나, 열정으로 타오르던 그의 감수성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남경 대학살의 희생자 자신들보다 더 분노하고 더 고통 받았다. 참상의 도가니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이 과거를 증언하며 울 때 장도 함께 울었으며, 그들이 울음을 그쳤을 때도 장은 여전히 울었다. 7년 동안 거의 매일, 목이 잘리고 배가 갈려 창자가 튀어나오고 불타고 강간당한 뒤 도륙된 시체 사진과 씨름하며 수십만 원혼과 대화해야 했던 장은 극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스스로 선택한 소명은 그를 더욱 몰아붙였다. 장은 일본의 만행을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사는 희생자들을 찾아갔으며, 그들로부터 포로에 대한 생체 실험, 종군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집단 강간 같은 끔찍한 사건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증언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수십 년 동안 뼈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해 주었으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숙소로 돌아온 장은 그 뒤 몇 시간을 혼자 울었다. 희생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몇 배로 확장해 공명하던 그는 정신적으로 급격히 약해졌다. 잠을 자지 못했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필리핀 전선에서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뒤, 동료를 생매장하지 않으면 스스로 생매장 당하는 상황에 처했던 미군 포로들을 인터뷰하러 켄터키에 간 장은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의 정신 건강 상황은 이미 매우 나빠져 있었다. 그의 남편은 그를 걱정하면서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장이 다루어 온 개개인의 비극은 너무나 참혹하고 기막힌 것이라서, 그것을 끊임없이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쳐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연들이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집으로 돌아온 장은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전화를 했다. 듣는 사람은 몰랐지만, 이것은 그의 작별 인사였다. 2004년 11월9일, 그는 캘리포니아의 한 국도변 차 안에서 자기 머리에 총을 쏜 상태로 발견되었다.

짧은 생애, 긴 그림자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만의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과거를 기억하고 이로부터 배우는 사람에게만 가치 있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남경 대학살은 일본과 중국 모두에 의해 적당히 은폐되어 왔다. 가해자인 일본이야 당연히 숨기고 싶어했겠지만, 중국 역시 외침(外侵)에 수도가 유린된 이 전례 없이 수치스러운 사건을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장의 책 한 권으로 달라졌다. 장의 책이 나온 뒤, 중국 곳곳에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는 기념관과 박물관이 설립되었으며, 중국의 반일 감정은 크게 높아졌다. 장의 책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세상을 뒤흔든 거대한 에너지는 오로지 장의 내부에서 나왔으며, 그는 스스로를 불태워 이 에너지를 만들었다. 장은 남경 대학살의 마지막 희생자나 다름없었다.

일본의 만행을 기록하고 오늘에 되새기는 장의 작업은 죽음으로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앞에서, 보라색 아이리스 꽃 말고 또 하나의 아이리스가 해마다 내 이메일 박스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 이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올해 '아이리스 장 기념 에세이 콘테스트'의 마감이 6월30일로 다가왔습니다. 이 소식을 당신의 학생에게 널리 알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의 에세이 주제는 '과거에 대한 부정과 그 영향 - 70년 전의 남경 대학살과 그 영향'입니다. 이 주제는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2차 대전 때 종군위안부를 강제로 데려가 일본군의 성적 노예로 삼은 일을 아베 총리가 공개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아시아와 미국의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에세이 콘테스트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과거를 돌아보고 역사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부여하는 매우 교육적인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아이리스 장 기념재단은 작가이자 역사가였으며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던 아이리스 장을 추도하는 뜻에서 결성되었습니다. 재단은 아이리스 장이 추구했던 미완의 꿈을 추진하고 그가 남긴 유산을 보존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장은 과거 역사로부터 진실을 밝혀야만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찾아줄 수 있고 인류가 비슷한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으며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아이리스 장 기념재단의 목적은 역사가 주는 교훈의 중요성에 대해 대중을 교육하고, 2차 대전 동안 아시아에서 벌어진 고통스러운 비극에 대해 좀더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리스 장의 유지를 기리고 남경 대학살을 비롯한 아시아의 비극을 미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재단이 결성되었으며, 이 이메일은 재단이 같은 취지로 주최하는 연례 에세이 대회를 알리는 이메일인 것이다. 이렇게 장은 죽고 나서도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며 역사가 남긴 교훈을 가르친다. 이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재단의 공동 대표로 있는 일리노이 대학 미생물학과 교수 잉-잉 장(Ying-Ying Chang)으로, 바로 아이리스 장의 엄마다.

얼마 전 아이리스 장의 책 <남경의 강간>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장이 뿌린 씨앗이 싹터 오른 또 하나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장의 불꽃 같은 생애 자체를 다룬 영화가 준비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내 밭에 피는 아이리스는 만개했을 때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늘하늘 여린 꽃잎에서 어찌 저리 강한 위엄이 뿜어 나올까 싶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꽃이 금방 진다는 것이다. 한 포기에서 나온 꽃 여러 송이를 모두 쳐도 한두 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아이리스 장, 그도 아이리스 꽃처럼 금방 졌다. 그러나 그가 짧게 사는 동안 남긴 족적은 매우 넓고 깊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잊고 싶어하는 과거를 오늘에 되살린 그가 세상에 던지는 화두는,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위중한 것인가이다. 역사란 결코 부정한다고 부정되는 것도 아니며 잊는다고 잊혀지는 것도 아님을 아이리스는 무지개빛처럼 영롱하고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아이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 이름이기도 하다.



1. the Rape of Nanking은 영어권에서 남경 학살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말이다. 장은 자기 책에서 the Rape of Nanking을 Nanking massacre, the Great Nanking Massacre, Nanjing Datusha 같은 말과 함께 쓰고 있다. 한편, 일본군이 남경 일대에서 광범위한 강간을 일삼은 것이 사실이지만, rape은 종종 강간보다 폭이 넓은 뜻, 즉 침략, 침탈, 파괴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참고 사이트:

아이리스 장 공식 홈페이지: http://www.irischang.net/
아이리스 장 기념재단: www.irischangmemorialfund.org
아이리스 장 위키: http://en.wikipedia.org/wiki/Iris_Chang
부고 기사 1: http://www.sfgate.com/cgi-bin/article.cgi?file=/c/a/2004/11/11/MNGB59PKL01.DTL
부고 기사 2: http://www.sfgate.com/cgi-bin/article.cgi?f=/c/a/2004/11/20/DDGN29TV0G1.DTL
대학 친구의 증언: http://www.salon.com/mwt/feature/2004/11/30/iris_chang/index.html
남경 대학살에 대한 한글 자료: http://dokdo.naezip.net/Nanking.htm
아이리스 장 육성 인터뷰 중 일부: http://blog.paran.com/deulpul/20500546, 8Mb
다큐멘터리 <남경> 공식 사이트: http://www.nankingthefilm.com/home.htm
영화 관련 <타임> 기사: 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1595004,00.html

붓꽃 사진: http://aggie-horticulture.tamu.edu/county/smith/media/Iris%202.jpg
다른 사진들: 윗 사이트들에서.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deulpul.egloos.com/tb/1604178 [도움말]
  • ... 2007/07/18 13:30 #

    아이리스 꽃과 남경 대학살... more

  •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2007/07/18 14:56 #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The Rape of Nanking: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 2004년 1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17번 고속도로변에서 30대의 중국계 여자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장(본명은 Iris Shun-Ru Chang 중국 이름은 장순여張純如). 1996년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논픽션 [The ...... more

핑백

덧글

  • 사은 2007/07/18 06:48 # 답글

    알면 알수록 끔찍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덮어버리지 않고 직시하고, 더 알려고 하고, 그러다가 가신 분이시군요. 'The Rape of Nanking'의 제목은 익숙합니다만, 이런 뒷이야기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 무지가 아주 오랜만에 부끄러워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price 2007/07/18 06:55 # 답글

    오랫만에 들려서 좋은글 읽고 가네요..:)
  • deulpul 2007/07/18 08:15 # 답글

    사은: 저도 정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였나 하는 반성도 조금 들었습니다...

    eprice: 고맙습니다.
  • 이녁 2007/07/18 09:40 # 답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과거를 되풀이한다' 한국어판 제일 앞에 씌여진 말이 아직도 마음에남습니다.
  • Charlie 2007/07/18 10:40 # 답글

    아이리스꽃을 좋아했지만, 한번도 아이리스 장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만의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과거를 기억하고 이로부터 배우는 사람에게만 가치 있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 Andrea 2007/07/18 11:12 # 답글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런 일들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면 없어진다고..그렇게 믿고 있는걸까요..

  • 푸른별빛 2007/07/18 11:54 # 답글

    남경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곳에 난징대학살추모관이 있는데 난징을 방문하는 외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게 필수코스이지만 전 별로 가고싶지 않더군요. 처음 갔을 때가 겨울이었는데 들어서는 순간 싸한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뭐랄까...찬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

    deulpul님 글 읽고 나니 미칠듯이 덥긴 하지만 다시 한 번 가봐야겠네요. 트랙백 예약하겠습니다.
  • Clio 2007/07/18 12:56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드시 한 번 소개되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리스 장의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 이야기가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발표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단지 그 책이 영어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독자들의 의식 구조와 사고 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에 가장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이 씌여졌던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리스 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그 책을 읽으며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입장에서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알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제게는 큰 자극이 되었던 책이었습니다.
  • days 2007/07/18 14:57 # 삭제 답글

    우연히 이글루스 들렀다가 남경 관련한 이야기를 보고 가네요. 남경에 머물렀을 때, 남경대학살 기념관에 갔었습니다.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보관되어 있는 물품들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몸서리쳐지도록 공포스러웠습니다. 위에 댓글 다신 푸른 별빛 님 말씀처럼 싸한 기운- 이 느껴질 정도. 기념관 내에도 아이리스 장의 동상이 있습니다. 책을 읽어봐야지, 했던게 벌써 1년이 지났네요. 금방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황씨아저씨 2007/07/18 15:02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일본 문화에 경도된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요. 일본 영화, 일본 TV 드라마, 일본 음악,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옥석을 가릴 여유도 없이 스폰지처럼 일본문화를 흡수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될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달콤한 문화에 도취되기 전에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준님 2007/07/18 15:29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1. 남경학살 자체가 일본내에서 문제가 된게 "그래서 우리도 책임졌다"라는 논리입니다. -_-;;; 즉 남경 학살의 책임을 지고 전범재판에서 처형된 사람은 있지요.문제는 그 사람 자신은 "남경 입성을 늦추더라도 최소한의 민간인 피해를 줄여라"라고 했고 학살이 진행될때 가급적 군인들을 민간인 지역에서 떨어뜨리려고 한거지요. (그나마 이런 것이 없었으면 아마 외국인 지역내까지 들어갔을겁니다,)

    2. 문제는 이런 명령체계를 무시하면서도 조직내부에서 학살을 방조내지는 장려-_-;;한거지요. 일본 우익들의 말씀처럼 "군인들이 일시적인 감정으로 일으킨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심지어 사령관의 명령을 무시하면서 이런 학살극을 장려한 사람중에 하나가 황실 친왕이라는 말이 있지요. 왜 남경사건에 대해서 침묵하는지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 이준님 2007/07/18 15:36 # 답글

    3, 백번 봐주더라도. 병사들의 그러한 악감정을 상위부대에서 충분히 컨트롤할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일본군대의 특유성을 드는 경우도 있는데, 1942년의 마닐라 입성시에는 남경의 비극이 없었지요. 당시 사령관이 "입성을 늦추더라도 병사들의 장비를 점검하고 목욕및 세면을 시킨후 진입하라"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령관은 적에게 너무 나약하다는 이유로 예편됩니다. -(물론 1945년의 마닐라 철수 당시에는 남경에 비할만큼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집니다.) 남경의 경우는 다시 말해서 조직적으로 상부의 승인이 있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지요

    PS: 미스테리 관련 서적을 보면 남경 사건에 대해서 나오기도 하지요. 일명 사라진 "중국군" 스토리인데. 대부분 적전 도주로 보면됩니다. (국민당군의 도주와 무능성은 아이리스 창의 저서에도 잠시 언급됩니다.) 그리고 상당수는 학살되었다는게 정설이지요
  • aster 2007/07/18 17:04 # 답글

    눈물이 날정도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저 책또한 읽어보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군요.
  • 환상그후 2007/07/18 21:35 # 답글

    정말로 일본이 일으킨 참사는 크기만 합니다. 아시아에서 그 피혜를 받지 않은 국가가 있기나 할까요... 그것을 감추려고만 하는 일본의 행위는 반인륜의 행위라고 할수도 있겠지요. 그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간만에 이오공감에서 좋은 글을 보네요... 저희 카페로 퍼가겠습니다.
  • 행인1 2007/07/18 23:41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아이리스장의 뜻을 잇기 위해 재단이 설립되었군요.
  • 2007/07/19 00:0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7/19 00:4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kyung 2007/07/19 22:52 # 답글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저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대학교 다닐때였는데..그때 충격이 또 생각나네요..잘 읽고 갑니다.^-^
  • deulpul 2007/07/20 07:44 # 답글

    이녁: 일부러 지우려 애쓰는 것은 되풀이하자는 뜻일까요. 저도 마음에 잘 새겨 놓겠습니다.

    Charlie: 붓꽃도 좋아하시는군요. 제일 먼저 찾아오시고 제일 먼저 소개해 주셔서 깊이 감사합니다.

    Andrea: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 가면 거대한 비극조차 연기처럼 사라지게 되는 것이겠죠. 시간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 크나큰 병이 되기도 하는 셈이랄까요.

    푸른별빛: 바로 그 곳에 계시는군요, 더욱 반갑습니다. 수십만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일테니, 그렇게 느끼셨더라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희생자들, 어디 죽어서도 눈이나 제대로 감았을까요... 그 쪽도 퍽 더운 모양이네요.

    Clio: 정확한 지적이고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리스는 참 좋은 접점에 위치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임을 잊지 않는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미국인으로 컸으니 말입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그의 부모는 남경 대학살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곤 했다고 하죠? 뜻은 있지만 소통이 막힌 앞세대와 소통은 잘 되지만 뜻이 없는 뒷세대를 목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타산지석 같은 일이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days: days님도 직접 보고 느끼셨군요. 저도 언젠가 꼭 들러서 생생한 비극의 현장을 둘러보고, 인간이 얼마나 잔악해질 수 있는가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황씨아저씨: 많은 분이 일본 문화가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범람하는 현상을 걱정하신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 대중 문화는 우리 정서와 비슷한 점이 있어 공감하기도 쉽고, 매력적인 요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분명 배울 부분도 있겠습니다. 다만, 말씀대로, 당의정처럼 달콤한 껍데기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본식 독액을 잘 가려내는 밝은 눈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대중 문화가 흘러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동시에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제대로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일도 함께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준님: 말씀 잘 보았습니다. 전쟁은 폭력과 살상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이 전쟁을 비롯해 20세기 초, 중반에 일본이 보인 모습은 그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일부 장병의 문제라기보다 일본군 전체, 더 나아가 전쟁을 치르는 일본 전체가 광기에 휩싸여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그들 중 일부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aster: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울하고 끔찍한 역사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임은 틀림없으니까요.

    환상그후: 네, 이왕 잘못은 저질렀으니 다시 그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주변 나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할텐데, 저 작자들을 보면 도무지 그렇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행인1: 그렇다고 합니다. 아이리스가 생전에 참여하던 조직 '세계항일전쟁사실수호연합회'와도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비공개1: 그렇죠?

    비공개2: 비슷한 느낌을 가지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정 떨어지고 실망스러운 일 많이 겪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알던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잘 버텨주는 것도 또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만... 어쨌든 힘 내세요!

    kyung: '일제의 만행'에 대해 비교적 익숙한 우리도 그랬으니 서양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을지 짐작이 됩니다.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stonevirus 2007/07/22 16:45 # 답글

    안녕하세요 이오공감에서 제목보고 찾아 들어왔습니다.
    혹시 2005년 12월에 3부작으로 방송한 MBC 창사 특집 세계를 뒤흔든 순간 '난징대학살' 을 보셨나 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난징대학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당시 상황 그리고 현재의 시각에서 보는 난징대학살과 아이리스 장의 활동에 관해 정리가 잘 된 작품이었지요.
    이 글에 참고가 될까 싶어서 해당 방송 다시보기 링크 주소를 남겨 놓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world/nanjing/index.html
  • deulpul 2007/07/23 10:21 # 답글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MBC 프로그램에서 남경 학살이 다루어졌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습니다만, 방송 다시 보기가 유료로 되어 있어서 따로 링크를 달지 않고, 저도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 FrontierJ 2007/07/23 17:51 # 답글

    개인적으로는 역사학에 관심이 많고 전공이 중국관련이라. 많은 관심이 갔던 책입니다.
    MBC 다큐멘터리로도 봤구요. 아이리스 장의 죽음 이면은 참 많은 의문이 남긴 하더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가장 화가 났던건. 가해자들의 태도였지요.
    무조건 "전쟁"이기때문에 일어날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혹은 우리 일본은 그런일을 한적이 없다
    는 그런 문구로만 자신들이 하는일을 부정하는 태도가 참 기가 막혔습니다.

    학살도 하나의 효율적인 통치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일본군 강경분자들이
    만약 전쟁에서 이겼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 deulpul 2007/07/24 13:37 # 답글

    아이리스 장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고, 그의 죽음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 듯합니다. 공식으로는 일본의 과거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정신 건강이 피폐해져 이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아이리스 역시 남경 비극의 또 한 희생양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60, 70년 전에 벌인 일이 오늘까지 희생자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역사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일본에 대해 해주신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 푸른별빛 2007/11/04 12:30 # 답글

    좀 늦었지만 댓글확인 하시리라 믿고 댓글 달겠습니다. 일전에 트랙백 예약했었는데, 현재 난징의 난징대학살추모관은 공사중입니다. 내년 1월까지로 예정되어있구요, 외국인임을 내세워서 들어가보려고했는데 살짝 보니까 건물 골조를 아얘 바꿀 모양입니다. 내년 겨울에 가면 볼 수 있을 듯...

    이번에 오늘의 중국이라는 수업을 듣는데 발표를 맡게되었답니다.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책과 더불어 난징 대학살 이후의 중국과 일본의 입씨름을 주제로 해볼까해서 이 포스트 내용 일부를 인용하려고 합니다. 허락해주실꺼죠?? ^^;;
  • kelvin 2008/07/15 14:46 # 삭제 답글

    네 저도 예전에 남경학살의 사진들을 수집해 본적이 있는데 너무끔찍해서 가슴이 너무 아팠었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 ethnos44 2008/08/28 01:48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덧글 입력 영역


Ad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