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집에서 키우던 애벌레. 키웠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애벌레를 입양해온 이래, 한 일이라고는 나뭇잎을 두어 번 넣어 준 것과 물도 딱 한 번, 서너 방울 떨구어 준 것이 전부니까. 어쨌든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므로 펫은 펫이다. 파랗고 예쁜 애벌레는 아니었으므로 나비보다는 나방 애벌레임이 틀림없었다.
입양해온 지 이 주일이 지나자 몸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며 꼼짝도 하지 않아서, 잘 돌봐주지 않아 돌아가신 줄 알았다. 그런데 색깔이며 피부의 질감이며 주름이, 꼭 그 옛날 먹던 번데기를 닮아가는 것이다. 아하, 이 넘이 이제 성충이 되려고 고치를 트는구나.
벌레통 안에 넣어 둔 잎들이 쪼그락쪼그락 말라 비틀어지는 동안, 고치도 바짝 말라 가서, 저 안에 무슨 생물이나 들어 있을까 싶었다. 가만히 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고치가 제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인가 싶었다.
어제 밤, 고치는 그대로인데 머리 쪽 부분이 꽤 움직이는 듯했다. 그래도 예사로 보았다.
오늘 아침에 보니, 잘 보이는 쪽으로 돌려둔 고치가 반대쪽 그림자 진 구석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다. 고치에 발이 달렸나, 희한한 놈! 하며 다시 돌려두려고 통을 드는데, 안에서 뭔가가 푸드덕 날아 올랐다. 말라 비틀어진 고치는 밤을 새워서 튼실한 나방 한 마리를 뽑아내었던 것이다.
가끔 덩치가 큰 아들을 데리고 가는 자그마한 엄마를 볼 때, 어떻게 저런 몸피의 엄마에서 저렇게 큰 아들이 나왔나 싶을 때가 있다. 탈피하여 버려진 고치와 어른이 되었다고 힘차게 푸드덕거리는 신생 성충의 꼴이 딱 그 모양이었다. 작고 초라한 고치에서 어쩌면 저렇게 큰 성충이 나왔을까. 날개를 빼고 몸 크기만 따져봐도 그렇다. 신기하다.

고치 안에서 번데기 기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찾아보니, 야후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유충의 조직은 번데기 기간에 성충의 조직으로 재구성된다. 용화에 수반하여 유충조직의 대부분은 식세포에 의해서 완전히 붕괴되어 지방체와 함께 성충조직의 형성재료가 되며, 신경계도 재배치된다. 꿀벌에서는 이 재구성이 전체 조직의 80%에 이른다.
하, 그러니까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면서 스스로를 거의 완전하게 파괴한 뒤 새로운 개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긴, 기어다니던 존재가 날아다니는 존재로 바뀌고, 나뭇잎이나 갉아 먹던 존재가 우아하게 꿀이나 과즙을 빨아먹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일이란, 개체의 처지에서 볼 때 뽕나무밭이 변하여 온통 푸른 바다가 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자기 안에서 이런 우주적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자기 파괴가 필요하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벌레의 껍데기를 탈피하고 날개를 달려면 스스로를 부정하고 나의 내부부터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마음 공부가 무르익어 어느 순간엔가 새로운 경지로 도약하는 단절적 발전 과정을 나비의 우화(羽化)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무릎을 칠 만큼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내 집에서 새로 태어난 나방은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처럼 아름답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비목에 속하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그냥 숲에서 만났으면 징그러워서 펄쩍 뛰었을 나방이, 내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예쁘고 기특해 보인다. 그 동안 우화를 위해 자기 내부를 철저히 파괴하면서 겪었을 진통과 산고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나도 여태 감히 해보지 못한 내적 파괴를 결연히 단행하여 우화함으로써 돈오(頓悟)로 일가를 완성한 성충을 내가 돌봐준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선은 명산을 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그마한 벌레통이란, 날개를 달고 등선(登仙)한 존재에게 어울리는 처소가 아님은 분명하다.
나방을 들고 나와 뜰에 있는 꽃들 위에 옮겨 주었다. 얼른 사진을 하나 찍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휙 날아 오르더니 잠깐 내 입술에 가벼이 앉았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이윽고, 이것이 나방의 작별 입맞춤이라고 간주한다. 아,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을 남기고 뒷걸음쳐서 사라졌구나. 그 뒤로도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나의 나방은 저 험한 세상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입양해온 지 이 주일이 지나자 몸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며 꼼짝도 하지 않아서, 잘 돌봐주지 않아 돌아가신 줄 알았다. 그런데 색깔이며 피부의 질감이며 주름이, 꼭 그 옛날 먹던 번데기를 닮아가는 것이다. 아하, 이 넘이 이제 성충이 되려고 고치를 트는구나.
벌레통 안에 넣어 둔 잎들이 쪼그락쪼그락 말라 비틀어지는 동안, 고치도 바짝 말라 가서, 저 안에 무슨 생물이나 들어 있을까 싶었다. 가만히 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고치가 제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인가 싶었다.
어제 밤, 고치는 그대로인데 머리 쪽 부분이 꽤 움직이는 듯했다. 그래도 예사로 보았다.
오늘 아침에 보니, 잘 보이는 쪽으로 돌려둔 고치가 반대쪽 그림자 진 구석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다. 고치에 발이 달렸나, 희한한 놈! 하며 다시 돌려두려고 통을 드는데, 안에서 뭔가가 푸드덕 날아 올랐다. 말라 비틀어진 고치는 밤을 새워서 튼실한 나방 한 마리를 뽑아내었던 것이다.
가끔 덩치가 큰 아들을 데리고 가는 자그마한 엄마를 볼 때, 어떻게 저런 몸피의 엄마에서 저렇게 큰 아들이 나왔나 싶을 때가 있다. 탈피하여 버려진 고치와 어른이 되었다고 힘차게 푸드덕거리는 신생 성충의 꼴이 딱 그 모양이었다. 작고 초라한 고치에서 어쩌면 저렇게 큰 성충이 나왔을까. 날개를 빼고 몸 크기만 따져봐도 그렇다. 신기하다.

고치 안에서 번데기 기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찾아보니, 야후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유충의 조직은 번데기 기간에 성충의 조직으로 재구성된다. 용화에 수반하여 유충조직의 대부분은 식세포에 의해서 완전히 붕괴되어 지방체와 함께 성충조직의 형성재료가 되며, 신경계도 재배치된다. 꿀벌에서는 이 재구성이 전체 조직의 80%에 이른다.
하, 그러니까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면서 스스로를 거의 완전하게 파괴한 뒤 새로운 개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긴, 기어다니던 존재가 날아다니는 존재로 바뀌고, 나뭇잎이나 갉아 먹던 존재가 우아하게 꿀이나 과즙을 빨아먹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일이란, 개체의 처지에서 볼 때 뽕나무밭이 변하여 온통 푸른 바다가 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자기 안에서 이런 우주적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자기 파괴가 필요하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벌레의 껍데기를 탈피하고 날개를 달려면 스스로를 부정하고 나의 내부부터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마음 공부가 무르익어 어느 순간엔가 새로운 경지로 도약하는 단절적 발전 과정을 나비의 우화(羽化)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무릎을 칠 만큼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내 집에서 새로 태어난 나방은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처럼 아름답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비목에 속하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그냥 숲에서 만났으면 징그러워서 펄쩍 뛰었을 나방이, 내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예쁘고 기특해 보인다. 그 동안 우화를 위해 자기 내부를 철저히 파괴하면서 겪었을 진통과 산고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나도 여태 감히 해보지 못한 내적 파괴를 결연히 단행하여 우화함으로써 돈오(頓悟)로 일가를 완성한 성충을 내가 돌봐준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선은 명산을 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그마한 벌레통이란, 날개를 달고 등선(登仙)한 존재에게 어울리는 처소가 아님은 분명하다.
나방을 들고 나와 뜰에 있는 꽃들 위에 옮겨 주었다. 얼른 사진을 하나 찍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휙 날아 오르더니 잠깐 내 입술에 가벼이 앉았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이윽고, 이것이 나방의 작별 입맞춤이라고 간주한다. 아,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을 남기고 뒷걸음쳐서 사라졌구나. 그 뒤로도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나의 나방은 저 험한 세상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덧글
시노조스 2007/08/10 03:24 # 답글
신기하네요. 완전한 재구성이라. 진화의 어떤 단계에서 그 과정을 선택하게 되었을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나비와 나방의 간단한 구별법은 더듬이 끝에 몽우리가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답니다. 더듬이 끝에 몽우리가 있으면 나비지요. ^^; 그리고 앉아있을 때 날개를 접고 앉으면 나비. 그대로 펴고 앉으면 나방이라고 합니다.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예외가 있겠죠.
Charlie 2007/08/10 03:27 # 답글
deulpu님의 나방에게 행운이 있기를. ;)deulpul 2007/08/10 06:13 # 답글
시노조스: 정말 곤충의 변태 뒤에는 흥미진진하고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수만 년 진화의 결과로 축적한 첨단 장치를 그 작은 몸 곳곳에 숨기고 있다는 것도 생각할 때마다 놀랍습니다. '이 벌레만도 못한...' 도 이제 수정되어야 하겠어요.Charlie: 예전에 저 나방보다 훨씬 예쁜 나비 한 마리 피워내신 적 있으시죠? 걔도 어디 가서 자손 번성시키며, 꽃들에게 희망을 주며, 잘 살고 있을 겁니다...
Lette 2007/08/10 08:52 # 답글
와.. 신기합니다. '벌레만도 못하다' 라는 말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한(?) 말이군요. 적어도 자기자신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재탄생한 존재들에게는 못할 말입니다.ㅎdeulpul 2007/08/12 02:10 # 답글
그렇죠? 비록 징그러운 벌레들이지만 배울 바가 많네요. 혹시 애벌레를 만나시면 한번 키워보세요. 참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