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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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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려고 동료들과 극장에서 만나기로 한 저녁. 영화관 로비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동료들이 말하길, 저기 주지사가 와 있단다. 주지사 부부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영화를 보러 온 것이다. 주지사는 상영관 안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는데, 멀찍이서 보기에도 그의 주변이 유달리 북적대거나 하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 하나 터지지 않았다.
이 복합 상영관에서 주지사는 내가 본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보았는데, 시작 시간이 비슷했던 것처럼 끝나는 시간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영화관을 나서서 뒷쪽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였다. 허허... 주지사가 부인과 함께 단 둘이서 구부정하게 걸어오는 것이다. 주차장에는 나와 동료 한 사람과 그들 부부밖에 아무도 없었다. 이 곳에서 그들을 만난 것은 오로지 우연이었다. 내가 사는 주의 상징색이라고 할 빨간색 티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주지사 옆에는, 수수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세로줄무늬 남방을 입은 부인뿐이었다. 그 흔한 수행원, 경호원 하나 없었다. 치안 걱정 안하고 사는 동네이고, 어디처럼 격렬한 정치 갈등을 겪는 곳도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후미진 주차장 같은 곳을 홀로 다녀도 될까 내가 지레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는 무슨 영화를 보았을까. 이 영화관에서 비슷한 시간에 걸린 영화는 Becoming Jane, Goya's Ghosts, Sicko, Talk to Me 정도다.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이자 사회활동가였던 그린의 삶(Talk to Me)을 보았을까, 여류 소설가의 정제된 삶과 러브 스토리(Becoming Jane)를 보았을까. 아니면 화가의 눈에 비친 격렬한 역사의 흐름(Goya's Ghosts)에 함께 했을까. 금요일 저녁, 편한 차림을 하고 부인과 함께 극장을 찾은 주지사는 Sicko를 보았을 것 같지는 않다. 유명 정치인이 영화나 연극을 보러 나설 때 그려지는 흔한 그림이 생각난다. 이들이 혼자 극장을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선 졸개 정치인들이 주변에 우르르 포진한다. 왜 바쁘기 짝이 없는 이들은 각기 편한 시간 골라서 편하게 보지 않고 집단으로 모여 영화를 봐야 하는 것일까. 여기다가 무슨무슨 비서며 수행원이 또 한 부대다. 이 정도만으로도, 만화 영화를 단체 관람하러 나선 초등학생 떼와 그림이 비슷해진다. 뿐이랴. 온갖 기자들이 다 모여 사진 찍고 질문하고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이런 식으로 영화나 연극을 보는 작자들에 대해서는 영화를 사랑한다든가 문화적 소양이 갖추어졌다든가 하는 호감보다는 "또 쇼하고 자빠졌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좀 점잖은 말로 하자면 전시성, 과시성 행사에 대한 염증이라고 할까. 주지사면 대통령은 아니지만, 관장하는 땅과 인구 수로나 하는 일로나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 버금가는 신분이다. 그런 사람이 수행원 아무도 없이 부부끼리 은밀히 영화를 보러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정말 영화를 보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는 마침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없겠다, 반가운 김에 다가가 악수라도 할까, 사진이라도 찍을까 생각했지만, 쇼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쇼를 보러 온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런 생각은 우리만 한 게 아닌지, 오늘 아침에 인터넷으로 지역 신문을 체크해보니 주지사가 어젯밤 영화를 보러 갔다는 기사는 아무 데도 없다. 바지 호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며, 크고 작은 다른 차들이 뒤섞인 일반 주차장 한가운데에 세워 둔 자기 승용차를 향해 다가가는 이 대머리의 민주당 주지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둑한 주차장을 걸어가던 그 부부의 구부정한 걸음걸이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날 내가 본 영화 Goya's Ghosts는 별 다섯 중 셋 반이나 넷 정도 줄 수 있다. 이 날 우연히 만난 주지사에게는 별 다섯개를 다 털어 주어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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