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변사 언론 by deulpul


드디어 이런 것까지 나오는구나. 무심코 신문 웹사이트를 열었다가, 두 줄로 대문 톱 기사에 콱 박힌 저 서른 일곱자를 보고 어안이 벙벙. 글자를 읽고 그 단어 뜻을 떠올리는데 약간의 시간 지체를 겪어야 했다. 신문 사이트에서 보기 어려운 단어들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내가 <딴지일보>를 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 타이틀에 부호 몇 개만 찍어 보자.

추석 명절의 화제를 독점할 확실한 흥행 요소! 권세를 사랑한 큐레이터!! 정말 깜이 되는 논픽션!!!

몇 자 더해볼까?

추석 명절의 화제를 독점할 확실한 흥행 요소! 권세를 사랑한 큐레이터! 정말 깜이 되는 논픽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비극! 배꼽을 빼는 희극! 아아, 어찌하여 큐레이터는 권세를 사랑하였던 거디었단 말인가! 장안의 화제! 현재 절찬 상영중!! 자, 자, 얼른 와서 보시라!

아아, 이것은 다름 아닌 신파극 변사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언제부터 신문 기사가 신파극 대본으로 전락했는지 모르겠지만, 신씨 사건은 그 자체도 점입가경이고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도 점입가경이다.

신씨 사건은 분명 중요한 시국 사건이며, 전말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관련자들은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또 저 신문이 외치는 것처럼 '확실한 흥행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흥행하러 나서야 되겠는가. 명색 언론이 "별나라 공주가 임신했다. 오 마이 갓! 범인은 누굴까?" 라는 식의 기사나 제목을 내고 있다면,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흥행 요소가 아무리 많아도, 언론은 신중한 태도로 사실을 밝히거나 밝혀진 사실을 따라 가야 한다. '깜'이 되든 안되든, 감이 있든 없든, 어떤 심증이 있든 없든, 사실과 진실이 언론의 등대가 되어야 함은 금과옥조 아니던가.

호들갑스러운 변사 흉내나 내고 있는 언론, '카더라'로 일관된 기사로 도배질을 하는 언론들을 보면, 이 사건이 자칫 선데이서울식 흥미거리로 전락되어 본질이 흐려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벌써, 이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역풍을 자초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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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신문들 2007/09/15 06:43 #

    언점입가경 변사 언론 개인적으로 신문을 사서보지 않는다. 특히 조중동은 아무리 심심하고 눈이 근질근질해도 쳐다도 안본다. 눈 버린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안티조선이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때부터였다. 지역감정으로 도배질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다시는 조중동에 (최근에는 문화까지) 손도 안대기로 했다. 그래도 가끔 포털을 통해, 혹은 타인의 블로그에 들어오는 그들의 기사들은 한마디로 "노는 꼴이 참 징글맞도다"정도의 반응을...... more

  • 추석 대목 2007/09/18 00:17 #

    추석은 대목이다. 명절의 의미는 조금씩 퇴색되고 있지만,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고 친척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한다. 출처와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교환되고, '추석 민심'이라는 묘한 '여론'이 형성된다. 동아일보는 2000년 9월에 추석 특집으로 역사에 남을 기사를 내보냈었다. 그 기사 제목은 대구, 부산 추석이 없다 였다. 제목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듯이 이 기사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내용이었으며...... more

덧글

  • Charlie 2007/09/15 05:04 # 답글

    그리고 바로 그건 제대로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우리는 피해자다'라는 카드와 본질을 흐리는 물살을 제공하고 있는걸 보면 도데체 무슨 생각들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한통속아냐?'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니까요.
  • 2007/09/15 07:1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BigTrain 2007/09/15 08:02 # 답글

    대체 저런 글투가 신문 제목으로 적절하기나 한가요... -_- 제목을 왜 저렇게 뽑는지 원...
  • 시노조스 2007/09/15 09:29 # 답글

    저 그림파일 보고 .. "어 딴지?" 이랬다니깐요.
    ....본문을 보니 딴지가 아니군요. 이건 뭐 썬데이서울도 아니고 -_-
  • deulpul 2007/09/15 12:50 # 답글

    Charlie: 모로 가도 서울만 가서 초가 삼간 태워서 벼룩 잡으면 만고 땡이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모양입니다.

    비공개: 보셨군요. 저도 떡칠 광고 때문에라도 되도록 피하곤 하는데, 요즘은 '확실한 흥행 요소' 때문인지 자꾸 낚시에 걸리는군요.

    BigTrain: 비록 인터넷이지만 신문 편집사의 새 장을 여는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제목은 한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따온 것인데, 칼럼을 대문 톱에 배치한 것도 특이했고 제목도 아이 고소해라 하는 고소미 냄새가 물씬 나는 장광설이어서 참 신선했습니다.

    시노조스: 지금도 있나 모르겠지만, 예전에 그 '똥꼬 깊수키' 화면에 나왔던, 선데이 서울에 버금가는 삼류 찌라시를 지향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Best viewed with Soju... 이런 것도 있었죠. 딱이군요.
  • A-Typical 2007/09/17 14:08 # 답글

    저런 제목을 뽑다니 신세대 혹은 복고풍 편집을 지향하는 곳인가봅니다. ^^

    어느 TV 토론에서 언론이 카더라기사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신정아 사건은 고발이 된 후로 사십여일간 검찰이 수사를 안하고, 수색도 안하다가, 언론이 쑤셔 놓으니 그만큼만 수사를 하더라. 개연성 있는 의혹을 보도하지 않으면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라고. 한심한 핑계같기도 하고 한심한 현실같기도 합니다.
  • deulpul 2007/09/17 16:24 # 답글

    한화 김회장 사건 때도 그랬죠. 자본 권력이든 정치 권력이든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반가워할 리 없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니, 의혹을 제기하고 상응한 대답이 나오기를 요구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역할이 남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어떨 때 보면 안면에 철판 깔고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이, 참 척이 져도 크게 졌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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