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총 by deulpul

소형 총기류와 관련한 연구 기관인 '소형 무기 서베이(Small Arms Survey)'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이 기관이 만들어진 것은 민간 사회에 확산되는 총기류가 인류의 안전을 저해하고 각종 분쟁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인권을 위협하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악의 씨앗이라는 문제 의식 때문이다.

이 기관에서는 해마다 세계의 소형 무기 실태에 대해 조사 보고서를 낸다. 지난 8월 말에 발표된 올해 보고서 'Small Arms Survey 2007: Guns and the City'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소형 무기가 2억7천만 정에 이른다는 점이다. 군인이나 경찰처럼 법을 집행하는 업무를 위해 총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빼고 일반 시민들이 갖고 있는 것만 따져 그렇다.

2억7천만 정. 현재 미국 인구는 약 3억. 미국인 10명이 모여 있으면, 그들이 가진 총기류는 9정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세계의 시민들이 가진 소형 무기는 모두 6억5천만 정으로 추산되었는데, 그 중 42%가 미국인의 소유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총 안 맞고 사는 게 신기하다.

하긴 안 맞고 사는 것은 아니다. FBI에 따르면, 미국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 중 3분의 2는 총에 맞아 죽는다. 하루에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람은 30명이나 되며, 죽지는 않더라도 총을 들고 벌어지는 범죄를 당하는 사람은 하루에 1,300명이나 된다. 세 시간마다 어린이 한 명이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런 상황인데도 총기 소유는 얼마든지 허용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규제가 갈수록 풀어진다. 마이클 무어도 진단한 바 있지만, 이런 실정은 미국 사회와 문화에 깔려 있는 폭력성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아메리칸 건>에서, 한 고등학생은 권총을 지닌 채 등교하다 적발되어 총을 빼앗긴다. 이 학생에게 권총은 주유소에서 밤새 알바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위 수단이다. 장난감 권총을 사서 페인트칠을 해서라도 지니고 있어야 하는 사회. 잘못된 신념과 정책이 보통 사람의 삶을 얼마나 피곤하고 위험하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을 지상 천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 따라하자고 할까봐 겁나 죽겠다.

이미지: 영화 <아메리칸 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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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인에게 총이 필요한 이유 2007/09/20 15:28 #

    얼마전 The Economist에 총기 허용/규제에 관힌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17통의 독자 편지가 왔는데 12통이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내용이었고, 단 한통만이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럼 4통의 편지는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일반인도 총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 이유로, 자유를 수호하고 폭정에 반대하는 수단으로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꼽은 편지도 있네요. 히틀러, 스탈린, 마...... more

덧글

  • blus 2007/09/19 16:57 # 답글

    몇개월간 길 노숙을 한 적이 있는데 한번 취객과 시비가 붙은 이후, 매일 밤마다 홀로 경계하고 품속에 칼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짐을 털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일상적으로 해야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살고 싶지가 않군요.
  • NINA 2007/09/19 18:19 # 답글

    전 미국에선 대낮에 길을 걸을때도 늘 총의 두려움에 시달렸죠. 저녁에 해만 져도 나가기 두려운 나라, 총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는 나라.. 싫어요.
  • 메르키제데크 2007/09/19 18:28 # 답글

    미국총기협회가 있는 이상 총기 규제는 요원하겠군요.
  • 라피나 2007/09/20 01:28 # 답글

    지금와서 규제한다고 몇억정이나 되는 총을 다 수거할수도 없지않습니까.. 내놓은 사람만 자기 방어 수단이 사라지는거죠.. 없애는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멀기만하네요..
  • A-Typical 2007/09/20 15:28 # 답글

    개인 총기 소유의 아이러니에 대해 썼던 글을 트랙백하겠습니다.
  • 히치하이커 2007/09/20 19:50 # 답글

    결국 문제는 돈이군요.
    무기를 만들어 파는 치들이 그 황금알을 포기할 날이 오긴 할까요. 자본의 천국인 미국에서. 하아.
  • deulpul 2007/09/21 04:36 # 답글

    blus: 정말 그렇습니다. 사실 미국 일부는 이런 문제를 일상에서 거의 겪지 않고 살지만, 또다른 일부는 일상에서 피부로 겪고 삽니다. 전자에게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지만, 후자에게는 글자 그대로 목숨이 달린 문제인 게죠. 세 시간 마다 한 명씩 숨지는 아이의 부모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NINA: 말씀 듣고 보니, 전에 살던 곳에서 밤에 이따금씩 들리던 총성이 생각납니다. 꼭 총 한 방에 사람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참 섬찟했습니다.

    메르키제데크: 바로 정답입니다...

    라피나: 말씀대로, 이미 엄청나게 깔려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인 듯 싶습니다. 당장 이 총기를 수거하여 없앨 가능성은 코딱지만큼도 없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적어도 적절한 수준에서 규제하고 있어야 할 듯한데요, 실제로는 거꾸로 가니 문제입니다. 총기를 마음대로 소유하고 갖고 다니고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점점 풀어지고 있거든요.

    A-Typical: 잘 읽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네요. 제가 보기에 찬성론자의 주장에는 일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이 궤변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히치하이커: 스스로도 절대 포기할 리 없고, 남이 알 깨버리기도 어려운 상태인 듯 하네요. 핵심은 돈벌이이지만, 이게 권리(헌법 수정조항 2조)와 레토릭으로 버무려져서, 사회적 마초성을 가진 미국인들이 받아 먹기 딱 좋게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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