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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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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두고 망설이다, 한 노인보다 두 노인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아침 기분에 따른 즉흥적인 선택이었는지도 몰랐고, 감독보다 배우를 선택한 것인지도 몰랐으며, 피 튀기는 살인극보다 잔잔한 드라마가 더 고팠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들어간 <버킷 리스트> 첫 회 상영관은 텅 비어서, 이 괜찮은 극장이 제대로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옛날 이런 농담이 있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길을 지나다 보니 한 사람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수십 가지였다는 것이다. "죽었네!" "뻗었군." "밥숟갈 놨구나." "갔어!" ... 영화에서도 나오듯, 카터(모건 프리먼)가 작성하는 버킷 리스트는 죽는다는 속어 kick the bucket 에서 왔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뚜렷하지 않은데, 목 매어 자살하는 사람이 양동이 위에 올라가서 오라를 맨 뒤 양동이를 찬 데서 비롯됐다거나, 혹은 동물을 잡을 때 발을 묶어 매다는 기구가 버킷이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영화에서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적은 리스트다. 현명하지만 가난한 자동차 수리공 카터가 적은 리스트에는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기' '낯선 사람을 돕기' '눈물이 나도록 웃기'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병실 룸메이트이자 괴팍한 억만장자인 에드워드(잭 니콜슨)는 이 글귀를 보자마자 "이게 뭐야? 형편없이 약해 빠졌군!" 하고 일축해 버린다. 대신 그가 써 넣은 항목은, 말하자면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세계 일주 같은 것이다. 죽기 전에 온갖 신나는 일을 최대한 해 보고 멋진 곳을 최대한 많이 찾아 구경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억만장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 바로 직전까지 인간은 평등하지 못하다. 저도 모르게 세상에 나온 뒤, 태어나면서 정해진 굴레에 갇혀 일생을 살다 불평등하게 죽는다. 죽는다는 사실만 빼 놓으면, 만인이 평등하다고 낙관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 죽고 나서 평등하면 무슨 소용이랴. 집행력을 전제하지 않는 소원은 추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소원을 구체화하려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경제력에 따라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의 내용이 달라지는 양상을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하다. 영화 속 두 사람은 카터의 소박한 소원과 에드워드의 화려한 소원을 어찌어찌 함께 하나씩 이루어가지만, 이것은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재산 2천만원의 죽음과 2억의 죽음과 20억의 죽음이 판이하게 다르다. 말기 환자 두 명이 병원을 탈출하는 비슷한 스토리의 독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마틴의 소원은 어머니에게 캐딜락을 사 주는 것이고 루디의 소원은 두 여자와 자는 것이었다. 뜻밖에 손에 들어온 검은 돈으로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룬다. 이것도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행운이 없었다면 그들은 파도 몰려오는 해안에서, 마지막 한 가지 소원조차 이룰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쓸쓸히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그 편이 훨씬 현실에 가깝다. 죽기 전에 낯선 사람을 돕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인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죽음을 앞두고, 전세계를 전용 제트기로 여행할 경제력을 이룩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인가, 가족과 따뜻하게 살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삶이 1년 남았다고 누군가 선언한다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볼지도. 영화 자체는 좀 실망. 예고편에 나왔던 만큼의 로드 무비도 아니었고, 잠깐 뭉클하는 부분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그랬을 뿐. 내게 있어 잭 니콜슨은 <어 퓨 굿맨>의 이미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포스터 이미지: <버킷 리스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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