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성충(應聲蟲)이라는 벌레가 있다. 사람 몸에 기생하여 사는 기생충 중의 하나다. 사람의 뱃속에서 부화하여 자라며 일생을 보낸다.
다 자라 성충이 된 응성충은 사람의 것과 비슷한 발성기관을 갖게 된다. 응성충은 이 발성기관을 활용하여, 숙주인 사람의 말소리를 그대로 흉내낸다. 응성충 감염증의 대표적 증상은 자신이 한 말이 자기 뱃속에서 다시 울리는 것이다. 바로 응성충이 사람의 말을 흉내내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응성충, 즉 말을 반복하는 벌레라는 이름은 이 때문에 붙은 것이다.
응성충의 발성기관은 사람의 그것보다 작으므로 응성충의 소리는 주로 가늘고 높아서 마치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벌레가 자람에 따라 응성충의 소리도 점점 커지는데, 발성하기 시작한 지 두어 해가 되면 그 성량이 숙주인 사람의 소리에 버금가게 된다. 신체와 관련하여 특별한 해를 끼치지는 않으나, 매양 사람의 말을 따라하므로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치료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전염되는 것은 일반 기생충과 똑같다.
응성충은 어떻게 잡을까.
이 벌레에게는 딱히 정해진 처방이 없는데, 벌레 개개의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약이 듣기 때문이다. 유일한 처방은 약 이름이 잔뜩 적힌 의약서를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가나다 순서로 하나씩 읽어내려 가면 응성충도 약 이름을 따라 부르게 된다. 이렇게 죽죽 읽어내려 가노라면, 갑자기 응성충이 소리를 딱 멈추고 따라하지 않는 약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약이 응성충을 잡는 약이다. 이 약을 처방대로 조제해 이틀 복용하면 응성충의 소리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열흘이면 성충과 그 알까지 모두 구제된다.
어이없는 숙주도 한심하지만, 그 품 안에서 똬리를 틀고 기생하면서 숙주의 어이없는 소리를 신나게 재탕 삼탕 확대 재생산하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응성충 만연 시대다. 응성충들은 오로지 숙주의 말만을 거듭해 반복하며 한 뼘 뱃속에서의 안온한 기생을 도모할 뿐, 그 밖의 세상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기생충들의 진면목을 보려면, 이들이 무슨 말을 하지 않는지 잘 살피면 될 듯 하다. 응성충들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희석하거나 회피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바로 응성충들이 두려워하는 약이다.
<돈재한람(遯齋閑覽)>에는, "회서(淮西)의 선비 양면(楊勔)이 중년(中年)에 이상한 병에 걸렸다. 매양 소리를 내어서 말을 주고받으면 배 안에서 문득 소리가 있어 따라 하더니 두어 해 동안에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한 도사(道士)가 이르기를 '이것은 응성충(應聲蟲)이다. 오래도록 치료하지 않으면 처자(妻子)에게 전염(傳染)된다.《본초(本草)》를 읽는 것이 마땅한데, 충이 소리에 응하지 않는 대목을 만나거든 그 방문대로 먹도록 하라.' 하였다.《본초》를 읽어 내려가다가 뇌환(雷丸)에 이르니 충의 소리가 없으므로 그 약을 두어 날 먹었더니 드디어 나았다" 하였다.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52권 이목구심서 5(耳目口心書五) )
다 자라 성충이 된 응성충은 사람의 것과 비슷한 발성기관을 갖게 된다. 응성충은 이 발성기관을 활용하여, 숙주인 사람의 말소리를 그대로 흉내낸다. 응성충 감염증의 대표적 증상은 자신이 한 말이 자기 뱃속에서 다시 울리는 것이다. 바로 응성충이 사람의 말을 흉내내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응성충, 즉 말을 반복하는 벌레라는 이름은 이 때문에 붙은 것이다.
응성충의 발성기관은 사람의 그것보다 작으므로 응성충의 소리는 주로 가늘고 높아서 마치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벌레가 자람에 따라 응성충의 소리도 점점 커지는데, 발성하기 시작한 지 두어 해가 되면 그 성량이 숙주인 사람의 소리에 버금가게 된다. 신체와 관련하여 특별한 해를 끼치지는 않으나, 매양 사람의 말을 따라하므로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치료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전염되는 것은 일반 기생충과 똑같다.
응성충은 어떻게 잡을까.
이 벌레에게는 딱히 정해진 처방이 없는데, 벌레 개개의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약이 듣기 때문이다. 유일한 처방은 약 이름이 잔뜩 적힌 의약서를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가나다 순서로 하나씩 읽어내려 가면 응성충도 약 이름을 따라 부르게 된다. 이렇게 죽죽 읽어내려 가노라면, 갑자기 응성충이 소리를 딱 멈추고 따라하지 않는 약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약이 응성충을 잡는 약이다. 이 약을 처방대로 조제해 이틀 복용하면 응성충의 소리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열흘이면 성충과 그 알까지 모두 구제된다.
어이없는 숙주도 한심하지만, 그 품 안에서 똬리를 틀고 기생하면서 숙주의 어이없는 소리를 신나게 재탕 삼탕 확대 재생산하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응성충 만연 시대다. 응성충들은 오로지 숙주의 말만을 거듭해 반복하며 한 뼘 뱃속에서의 안온한 기생을 도모할 뿐, 그 밖의 세상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기생충들의 진면목을 보려면, 이들이 무슨 말을 하지 않는지 잘 살피면 될 듯 하다. 응성충들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희석하거나 회피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바로 응성충들이 두려워하는 약이다.
<돈재한람(遯齋閑覽)>에는, "회서(淮西)의 선비 양면(楊勔)이 중년(中年)에 이상한 병에 걸렸다. 매양 소리를 내어서 말을 주고받으면 배 안에서 문득 소리가 있어 따라 하더니 두어 해 동안에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한 도사(道士)가 이르기를 '이것은 응성충(應聲蟲)이다. 오래도록 치료하지 않으면 처자(妻子)에게 전염(傳染)된다.《본초(本草)》를 읽는 것이 마땅한데, 충이 소리에 응하지 않는 대목을 만나거든 그 방문대로 먹도록 하라.' 하였다.《본초》를 읽어 내려가다가 뇌환(雷丸)에 이르니 충의 소리가 없으므로 그 약을 두어 날 먹었더니 드디어 나았다" 하였다.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52권 이목구심서 5(耳目口心書五) )




덧글
크리스 2008/01/31 13:28 # 답글
아, 이거 만화 충사蟲師 같네요. 재밌는 이야기 감사합니다.hyangii 2008/01/31 14:14 # 삭제 답글
오... 빨간부분이 책이고, 파란부분은 이어서 직접 쓰신건가요?재밌습니다 +o+
hotcha 2008/01/31 15:24 # 답글
공자는 '교묘한 말을 잘하거나 낯빛을 잘 꾸미는 인간치고 어진 인간 못봤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하면서 입만 살아있는 달변가들을 미워했지요. '말하는 입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惡利口之覆邦家者)이라고 하면서요.요즘은 너도 나도 자신의 주장이 최고라고 믿는 달변가들이 너무 흔한 것 같아요. 이러다간 배가 히말라야로 올라가겠어요.
euirae 2008/01/31 16:47 # 답글
덕분에 좋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응성충이라...
히치하이커 2008/01/31 22:37 # 답글
말 같지 않은 말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니 요 놈 때문이군요!저도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어라 이미 감염됐을지도...).
우유차 2008/01/31 23:52 # 답글
말이 말 같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도, 말이 차고 넘치는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게로군요.(납득)에바 2008/02/01 01:40 # 답글
인상 깊은 글이네요.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들은 역시 말이 되는 소리로 잡아야 하는군요.Hikaru 2008/02/01 14:19 # 답글
재미있네요^^ 정말 그런 벌레가 있는건가 가만히 읽고 있었습니다. 히히엉승이 2008/02/03 08:51 # 삭제 답글
미국에서 이 병에 걸리면, 혹시 제가 하는 말을 미국 응성충이 영어로 번역해서 말해주지 않을까요? 사실이면, 대박인데... 미국에서 직수입한 응성충 감염제가 영어몰입교육 논란 잠재우다!!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싶은 분은 좀 기다려야함...deulpul 2008/02/04 19:50 # 답글
크리스: 말씀 듣고 찾아보니 퍽 흥미로운 이야기인 듯 합니다. 이 사람들의 상상력이나, 상상력을 자유로이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찾는 능력은 언제나 놀랍네요.hyangii: 함축과 비유를 통해 독자가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 고전의 미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hotcha: 말씀 들으니 세치 혀에 인생을 걸었던 인물들이 횡행했다던 춘추전국 시대가 생각납니다. 다만, 그 때는 왕에게 자기 주장을 설득하려는 사람이 많았으나 지금은 왕의 뜻을 누가누가 더 잘 받들어 전파할까 하는 나팔수들만이 시끄러운 시대인 것이 큰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euirae: 저도 그랬습니다.
히치하이커: 응성충 감염 가능성은 가진 권력의 양에 비례한다고 하니, 지금부터 조심해 놓으시길 바랍니다. 일 년에 두 번 구충제도 드시구요...
우유차: 네... 신종... 이라기보다 옛 바이러스의 재등장 때문인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에바: 네, 역시, 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말 중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Hikaru: 하하-. 오랜만이시네요. (음력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엉승이: 하하-. 음... 미국 응성충들은 한국말을 모를테니 동시통역해 따라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벌레들에게 한국어몰입교육을 시키면 혹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