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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씨 힛겔을 보다가 윗 작품을 대하고 펄쩍 뛸 뻔했다. 합성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이 작품의 제작자 '나는나뻐'씨가 나의 초등학교 동창인 것 같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니, 반창이겠지. 저건 바로 내가 졸업한 반의 졸업사진이 아니냔 말이다. 뒤로 보이는 교사 건물도 내가 다닌 학교가 틀림없었고, 아이들 차림새도 꼭 같았다. 필수요소로 얼굴이 대치되었는데도 반 친구들을 하나하나 잡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저기 나까지 있잖아. 정말 나는나뻐씨는 나의 반창이었을까. 나는 황급히 앨범에서 내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오른쪽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졸업 사진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숫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처음 보자마자 틀림없이 내 졸업 사진이라고 생각한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우선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옷차림도 대충 비슷하다. 그러니까, 이런 졸업 사진은 당시에 학교를 졸업한 사람 수십만, 혹은 수백만 명이 모두 비슷하게 연출되고 비슷하게 찍히고 비슷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런 사진인 것이다. 누가 봐도 내 사진 같은 분위기. 천편일률적이고 상투적이지만, 그래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분위기. 오랜만에 그런 분위기를 상기해 보는 것도 괜찮았다. 물론 나는나뻐씨는 합성의 베이스로 삼은 저 졸업 사진을 인터넷 어딘가로부터 가져왔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재앙운하 관련 이준구사마 일로 디씨가 다시 잠깐 화제가 됐다. 이교수가 직접 쓴 후기를 옮겨온 글에 달린 댓글에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 아, 카리스마까지 풍기는 명쾌한 단정이다. 그 진술이 자못 엄숙해서, 이 명제를 놓고 참인지 거짓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본 명제는 물론, 역, 이, 대우까지 생각해 봤다. 그런데 알쏭달쏭하다. 성공한 사람이 디씨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디씨를 한 사람이 성공한 경우는 없다? 이것은 부분집합 관계를 지적하는 서술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지만, 이 진술에는 시간적 순서의 의미가 조금 들어 있다. 그래서 좀 복잡해 진다. 일단 벤다이어 그램으로 표시하면 그림 1과 같다. ![]() 이것이 성공 집단과 디씨 집단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초적 그림이 되겠다. 여기서 '성공한 사람이 디씨를 하는 경우'는 교집합 부분인 A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교집합이므로 '디씨를 한 사람이 성공한 경우'도 된다. 따라서 원 명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명제를 조건문으로 해석하면 그림 2와 같은 모양도 가능하다. 여기서는 디씨를 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지지만, 성공한 모든 사람이 디씨를 하고 있어야 하므로 원 명제의 제한적 서술, 즉 '경우는 있어도'에 맞지 않으며, 실제 사실과도 맞지 않다. 그래서 시간적 순서나 인과 관계를 진술하는 가설로 놓고 살펴보았다. 위 명제를 가설로 보면 H1: 성공한 사람이 디씨를 하는 경우는 있다. H2: 디씨를 한 사람이 성공한 경우는 없다. 가 된다. 우선 가설 H1은 1) 개인적 성공 --> 디씨에 노출 --> 참여 (ex. 이사마) 2) 개인적 성공 --> 디씨에 노출 --> 불참 (ex. 반총장) 에서 1)의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해당 사례가 하나만 있어도 참이 되는 가정이다. 게다가 진술이 2)의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으므로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 H2는 3) 디씨에 노출 --> 참여 --> 개인적 성공 4) 디씨에 노출 --> 참여 --> 개인적 불성공 5) 디씨에 노출 --> 불참 --> 개인적 성공 6) 디씨에 노출 --> 불참 --> 개인적 불성공 의 상황 중에서 3)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4)의 가능성만 인정하는 진술이다. 5)와 6)은 이 가설에서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가설 H2를 입증하려면 '디씨를 한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이 있는지 전체 디씨 사용자를 전수조사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같은 조사를 거치지 않은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러한 명제 혹은 가설은 참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가설은 반례를 딱 하나만 찾을 수 있어도 거짓으로 증명된다. 게다가, 시간적으로나 인과 관계로나 '디씨를 한 사람이 성공한', 아니 디씨를 했기 때문에 성공한 김유식이 있지 않은가. 어쨌든 여기서 '참여'의 정의가 좀 모호함을 알 수 있다. a) 매일 들어오며 게시물을 올리거나 댓글을 남기는 정도(적극적 참여)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b) 가끔씩 접속해 눈팅을 하는 정도(소극적 참여)인지 불분명하다. 조작적 정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예컨대 '하루에 30분 이상 디씨에 접속해 게시물을 보거나 덧글을 다는 것'을 '참여'로 규정한다든가 해야 하는 것이다. 정의가 모호하므로 이 용어는 해당 명제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즉, H2 부분에서 성공하지 못할 정도로 디씨를 한다는 것은 a) 적극적 참여를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H1 부분에서, 이사마의 경우에서처럼, 성공한 사람이 디씨를 한다는 것은 디씨 참여를 b) 소극적 참여까지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해당 명제는 앞뒤 진술에서 '참여'를 각기 다른 정의에 따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 이것도 '성공'을 어떻게 정의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긴 하지만. 결국 참이나 거짓을 증명하기 위한 모든 토론의 출발이자 핵심은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규정이 될 듯. 첫째 그림: 디씨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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