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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행동을 연구하는 주디 그레이엄(Judy Graham)이 제시하는 간단한 실험을 보자.
[실험 1] 1. 두 사람이 짝을 짓는다. 2. 한 사람(갑)은 다른 사람(을)이 보지 않도록 하면서 일곱 자리 숫자를 적는다. 3. 숫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아야 하며, 최대한 무작위로 정한다. 4. 숫자를 정한 뒤, 갑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 준다: "지금부터 일곱 자리 숫자를 불러 주겠습니다. 당신은 이 숫자를 듣고 그대로 따라해야 합니다. 숫자와 순서가 모두 맞아야 합니다." 5. 숫자를 불러주고 을이 이를 반복하도록 한다. [실험 2] 1. 이번에는 갑은 11자리 숫자를 똑같이 무작위로 적는다. 2. 위와 같은 방법으로 갑은 11자리 숫자를 불러주고, 을은 이를 듣고 그대로 따라한다. (한국어 숫자가 영어보다 발음이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어로 할 때는 두 숫자가 각기 아홉 자리와 13자리 정도가 되어야 실험 취지에 맞을 듯하다.) 일곱 자리 숫자를 듣고 반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1개의 무작위 숫자를 불러주면 많은 사람이 이를 그대로 따라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실험 1에서 일곱 개의 숫자를 잘 되풀이했던 사람도, 실험 2에서는 제대로 반복하는 숫자가 일곱 개가 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보가 지나치게 많이 입력될 때 사람들은 입력된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처리 능력 자체가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른바 정보 과잉, 혹은 정보 과부하(information overload) 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인간이 순간적으로 동시 처리할 수 있는 정보 아이템은 일곱 가지 정도라고 한다. 위 실험에서처럼, 이를 초과하는 정보가 입력되어 정보 과잉 상태가 되면 처리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위 실험은 숫자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강제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정보 과부하를 피하기 위해 정보들은 자연스럽게 선별 입력된다. 이른바 이른바 선택적 노출, 혹은 선택적 주목 상황이다. 문제는 정보 과부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되는 정보의 질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선택적 노출이라는 개념이 나온 원래의 상황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결정을 지지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습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질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예컨대, 블로그 포털 사이트 대문에 디빠글 5개와 디까글 5개가 올라와 있다면 사람들은 양쪽 글을 대충이라도 훑어볼 수 있다. 디빠글 50개와 디까글 50개가 떠 있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상대방의 주장을 읽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보가 지나치게 많은 상황은 오히려 다양한 정보와 견해를 습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둘째는 정보 과잉에서 비롯되는 선택적 노출이 눈에 끌리는 정보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주제와 표현 양식이 모두 포함된다. 주제란 가볍고 즉흥적이고 선정적이고 돌출되는 소재와 관련한 정보들을 의미하고, 표현 양식이란 간명하고 압축적이고 시각적이며 해독 과정이 되도록 적은 정보를 의미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노출되면 그 중에서 진지하고 골치 아픈 이야기보다는 구미가 당기는 가십을 먼저 찾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왜 포털 사이트나 뉴스 사이트에서 연예인 이야기가 항상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또 같은 이슈라도 되도록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된 정보를 찾게 된다. 진지한 접근보다 자극적인 접근이 더 각광 받고, 논리적 텍스트보다 정서적 이미지에 더 환호하는 시대다. 재미있는 소재에 이끌리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서술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해도, 정보 홍수 사태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 속에서 사고와 성찰은 생략되거나 배제된다. "청승맞고 눈물나게 쓸쓸하고 진지한" 것들이 설 자리는 점점 협소해진다. 당장 입에 달라붙는 달착지근한 즉석 식품이 널린 세상에서 누가 일주일 끓여 우려내는 음식을 만들겠는가. 오늘의 세상은 항상적인 정보 과부하 상태인 듯하다. 싫어도 보이고 싫어도 들린다. 눈을 꼭꼭 닫고 귀를 단단히 막고 세상과 절연하며 살지 않는 한, 사람과 일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환경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과잉 정보 환경 속에서 사람은 점점 가볍고 얕고, 파르르 끓고 이내 식는 존재가 되어 간다. 정보 과부하 상황이 다이제스트의 시대, 아포리즘의 시대, 비주얼의 시대, 네이버형 지식인의 시대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더이상 대사상가나 대철학자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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