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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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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도 없는 탈춤을 추고 왔다.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International Night' 라는 행사를 했다. 글자 그대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소개하고 각국 음식도 해 와서 함께 나눠먹는 행사다. 작년 여름, 볼런티어 축구 코치를 하면서 알게 된 볼리비아 출신 아줌마가 한국 문화에 대해 간단한 발표를 해 달라고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내가 미국 애들 앞에서 한국 문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쌩 썰을 풀 수는 없고, 그래도 뭔가 시청각 자료가 있어야 할텐데, 어디 인사동 같은 데 가서 뚝딱 몇 가지 사거나 빌려와 보여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아니 그것보다, 내가 한국 문화 중 무엇을 남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잘 안단 말인가. 이 경우의 한국 문화란 미국 문화, 세계 문화와 큰 차이가 없어진 컨템포러리 쪽보다는 전통적인 것이어야 합당할 텐데, 한국 전통 문화로 내가 알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것이 나를 좀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한국말을 쓰고 한국에서 태어나 오래 살았지만, 한국에 낯선 사람들에게 한국을 맛깔스럽게 보여줄 만한 것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우르르 끌고 수상쩍은 술집에 데려가 별별 희한한 폭탄주를 돌리면 한국 문화의 일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초등학생들 데리고 그럴 수도 없다. 한다고는 해 놓고,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어서 고민하는 중에 시간은 자꾸 가고, 볼리비아산 아줌마는 행사 프로그램에 내용을 넣어야 하니 주제를 빨리 알려달라고 자꾸 독촉 전화를 했다. 세 번째 전화를 받던 날, 나는 얼떨결에 코리언 매스크 댄싱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하겠다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허이구, 전화를 끊고 나니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탈춤이라니. 언제 한 판 제대로 보기나 했던가. 한번 쏟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행사 당일날, 인터넷에서 한국 탈춤 자료를 급히 찾아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주의력이 떨어지는 연령대니 그림 위주로 준비했다. 다행히 youtube.com에서 쓸만한 동영상도 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준비해 놓고 보니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이건 그냥 자료를 찾아 보여주는 거다. 내가 하지 않더라도, 미국 초등학생이라도 인터넷 검색만 하면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굳이 한국넘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다. 뭔가 한국넘만이 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 한다. 말하자면, 직접 탈춤을 보여준다거나. 하지만 어떻게? 이래서, 인터넷을 교재로 한 2시간짜리 초단기 탈춤 독학이 시작되었다. 뭐,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었다. 어쨌거나 일단 흉내만 좀 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잘 모르시는 분들일테니까. 게다가, 해당 세션에 프레젠테이션이 여러 개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내 급조 날림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적을 것이라는 점도 힘이 되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의 일이다. 학과 여자 동료가 겨울 방학이 끝나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서 나타났다. 모두 놀라워하며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방학 두 달 동안 탈춤을 배웠다는 것이다. 하회쪽인지 봉산쪽인지 알 수 없지만, 춤 추는 내내 발뒤꿈치를 땅에 붙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대충대충 날림 독학을 하는데도 하늘이 노래지며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얼굴에 쓸 탈은 가까이 계신 한국분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든 전통 탈이라기보다 우리가 학교 때 미술시간에 신문지와 풀로 만들었던 종류의 것이었지만, 나름대로 뒤에 검은 천까지 둘러 있었다. 여성 한복도 대충 구하고 팔에 끼는 흰색 긴 소맷자락(이게 틀림없이 고유한 이름이 있을텐데...)도 대충 만들었다. 시간이 되어 컴퓨터와 무대 의상(?)을 이고지고 학교에 가 보니, 내가 해야 할 교실에 어른, 아이 섞여서 열 댓 분이 와 계신다. 아니, 그런데 대체 한국분들은 왜 오신 거야! 저~기 인도의 전통 가요라든가 칠레의 의상 같은 데 가서 보시지들 않고. 사기 치기도 어렵게 생겼다. 어영부영 20분 동안 쇼쇼쇼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실제는 연습할 때보다 훨씬 안 됐다. 물론 이것은 연습이 부족했음을 증명하는 한 표시다. 어쨌든 쇼를 하고 끝냈다. 애처러운 표정으로 봐주신 분들이 수고했다고 인사를 해오셨다. 실은 무척 재미있어 하셔서 다행이었다. 사실 한국 탈춤에 대한 인식(일부 한국분에게는 재인식)의 계기라기보다, 한 인간이 얼마나 재미있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즐기신 것 같다는 강력한 의심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두고두고 후회해온 것이 하나 있다.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것을 일찌감치 배워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은 그 옛날 창도 배우고 탈춤도 배우고 민요도 배우고 사물놀이며 풍물도 배우고 다들 많이 했는데, 왜 나는 왜 안 했을까. 예전에 미국넘들과 술을 마시다, 잠깐 배웠던 수벽치기 동작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애들이 무척 좋아했다. 술 취해서 그랬던가? 어쨌든 한국 남성이라면 대충 흉내는 다 낼 줄 아는 태권도 같은 것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술 마시다 갑자기 벽돌을 이마로 뽀갠다거나 하면 이미지 관리에도 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좀 음악예술적인 게 딱 좋은데, 이런 걸 배워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권해드린다. 혹시 지금 학생이신 분들, 한국 것을 배우시기 바란다. 한국만의 것을 배우시라. 탈춤이든 민요든 사물놀이든 서예든 대금이든 택견이든 판소리든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이든 아무 것이나 괜찮다. 어디 가서, 나는 메이드인 한국이므로 이런 한국 것을 할 수 있다고 보여줄 만한 것 한 가지는 꼭 몸에 붙여두시기 바란다. 세상은 좋든싫든 세계화로 갈 것 같고, 우리가 세계와 어울려야 할 수록 우리 고유의 것이 중요해진다. 생각해 보라. 같은 소리 예술이라도, 양넘들에게 F 단어 줄줄 들어간 랩을 들려주는 것과 한국인의 정과 한이 구구절절 넘쳐 흐르는 남도 민요 한 가락 보여주는 것의 차이를. 서양인은 아류 서양인을 보고 놀라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없는 것, 그들이 모르는 것을 가졌을 때 놀라워 하고 반가워 한다. 언젠가 할로윈 거리 축제 때, 수만 명이 분장을 하고 나온 그 밤거리에서 한 중국인이 큰 관심을 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입고 온 의상은 중국 인민해방군 정복이었다. 어떤 연유로 그가 그 옷을 입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그날 밤 그 거리에서 스타였다. 많은 미국인이 그를 둘러싸고 질문하고 살펴보고 즐거워하였다. 그는 행진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향해 행진해 왔기 때문이었다. 뿐만이랴. 단언컨대, 요가보다 탈춤이 훨씬 살 잘 빠진다. 밥맛이 나서 살이 더 찌는 것은 나는 책임 못진다. 게다가, 문화 속에 정신이 깃든다는 것을 굳게 믿는 나로서는, 자본의 힘 때문에 세상이 곤죽이 되어가는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켜 나갈 좋은 수단이라고도 생각한다. 한국 것을 배우십시오. 나중에 제게 감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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