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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13일
구직자 "이력서에 보유 재산 쓰기 싫어"
일터를 구하는 사람은 사람을 뽑아 쓰려는 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지원자는 그 자리에 뽑히기를 바라며 지원을 하고, 기업 처지에서 보면 지원자 여럿 중에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므로 당연한 구조인지 모른다. 그래서, 지원자는 까라면 까야 한다. 그런데 안 까도 될 것까지 까라면 좀 문제다. 구직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봤더니, 이력서에 쓰는 항목 중에서 가장 밝히기 싫은 것으로 보유 재산, 외국어 성적, 부모님 학력이나 직업, 신체 사이즈, 학점, 주민번호 등을 꼽았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밝히지 않으면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하기에 앞서, 취업 서류에 이런 사항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가장 저열한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나 노력으로 결과되어지지 않은 사항에 대한 평가다. 예컨대 성별이나 인종은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출신지도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어떤 부모를 만나 태어날 것인가도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이 어떤 일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차별이다. 기준으로 쓰지 않고 이른바 '참고 사항'으로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취업 서류에 본적지 같은 것은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보유 재산, 신체 사이즈 같은 건 대체 뭔가. 사람을 직원으로 뽑아 쓰는 데, 그 사람이나 집안이 가진 재산 정보가 왜 필요한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신체 사이즈는 대체 왜 필요한지. 부모님 학력?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 업무의 성격에 따라 특정한 기준이 필요한 때가 있다. 경찰관을 뽑는데 지나치게 마르거나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을 뽑기는 좀 어렵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닌데도 키, 몸무게, 시력 따위 신체 정보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일반적인 영문 이력서에서 이런 사항은 꿈도 못 꾼다. 영문 이력서의 주요 사항은 개인 정보(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 교육(출신학교, 전공) / 직업 경력 / 보유 기술 / 기타 봉사활동 등 / 수상 경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사진이 붙는 경우도 드물다. 이력서 쓰기를 지도하는 취업 안내서는 '당신이 브로드웨이 배우를 지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은 첨부하지 말 것'이라고 조언한다. 주민번호라 할 수 있는 사회보장번호(SSN)를 지원서에 요구하는 정신 나간 경우도 드물고, 부모의 학력을 요구하는 더 정신 나간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나라의 고용 문화는 응시자가 약자라는 점을 빌미로 지나치게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한다. 신체 사이즈, 부모의 직업, 보유 재산 따위를 신입 직원 선발에 활용한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이런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불필요하다는 말이다. 대체 이런 정보를 요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윗 기사에서 보면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신체 사이즈나 보유 재산을 사원을 뽑는 주요 평가 항목으로 삼는다는 대답은 각각 4%, 2%에 불과했다. 중복 답변을 했는데도 그렇다. 말하자면 평가 기준으로 거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타성화된 관음증의 발현이라는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겠다. 이 조사를 수행한 기관의 관계자는 "인사담당자가 부모님 직업, 보유 재산 등 개인정보를 알고자 하는 것은 지원자의 인성을 파악하는데 참고하기 위함이지 실제 평가점수에는 대부분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니, 나의 부모님이 대기업 부장인지 시장에서 생선을 파시는 분인지가 내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 내 통장에 1억이 들었는지 10만원이 들었는지가 내 인성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어이없다. 사진도, 나이도, 주민번호도, 재산도, 키나 몸무게도 요구하지 않는 정상적인 입사 지원 양식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차별 없는 사회란 바로 이런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