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 갑니다. 5월의 거리는 걷기에 좋습니다. 몇 가지 예외만 빼면 말입니다. 앞서 가던 청년이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그의 폐를 거쳤다 나온 담배 연기는 고스란히 내 폐로 들어 옵니다. 나뿐 아니라 그의 뒤에서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그의 담배 연기를 들이마십니다. 그런데도 그는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자기 뒤의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군요.
지하철을 타려고 표를 삽니다. 매표구에는 어린이 너댓 명이 서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뒤에 섰습니다. 갑자기 한 중늙은이가 오더니 어린이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바닥을 내밉니다. 직원은 그의 손에 공짜표를 하나 얹어 줍니다. 표를 받은 중늙은이는 차를 타러 떠나려 합니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내가 불러 세웠습니다. 그는 뒤로 흘낏 한 번 돌아보고, 못 들은 양, 귀머거리인 양 자기 길을 갑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표 파는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순서대로 표 주셔야죠. 줄 안서면 표 주지 마세요. 자꾸 주시니까 새치기 하는 거 아닙니까." 직원이 말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무대뽀 노인네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니까요. 당최 말이 안 통해요, 말이."
지하철을 탔습니다. 옆의 아저씨는 대체 왜 그렇게 가랑이를 쫙 벌리고 있는 것일까요. 지하철 타면서 무슨 숫사자 같은 위세를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요. 좀 있다가 거두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참다참다 다리를 옆으로 확 밀어버렸더니, 짐짓 자는 척 하다가 깬 척 합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내 바로 앞자리에 시원하게 생긴 아가씨 둘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며 갑니다. 버스 내릴 때가 되었는지, 한 아가씨가 먼저 일어나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다른 아가씨는 버스가 거의 정차할 때까지 앉아 있다가, 버스가 서자 후닥닥 일어나서 내립니다. 그런데 그는 일어서기 직전에 갑자기 고개를 숙여 버스 바닥에 침을 뱉습니다.
촛불 문화제입니다. 청계천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데, 앞쪽의 한 여자분이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흥겨워 합니다. 가수들 나와서 노래 부르고 하니 아예 일어나서 춤추다시피 하며 문화제를 즐깁니다. 자기 뒤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여자분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문화제 내내 그 여성분 엉덩이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다른 공연장입니다. 무료긴 하지만 대규모 야외 공연이었는데, 조금 늦게 입장하는 바람에 뒷쪽에 앉게 됐습니다. 옆에 한 가족이 앉았습니다. 갑자기 음식을 꺼냅니다. 간단한 간식이 아니라, 아예 한정식 수준입니다. 이들이 먹는 음식 냄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눈을 찌푸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애들과 함께 열심히 먹습니다. 밥을 다 먹자마자 이들은 공연장을 떠났습니다.
좁은 골목길입니다. 한쪽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차 한 대가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걸어가는데, 저 쪽에서 차가 한 대 옵니다. 계속 가면 차와 사람이 엇갈려 가기가 불편할 것 같아서, 주차한 차가 없는 비교적 넓은 곳에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차는 비실비실 오더니, 기다리는 내 옆에 와서 섰습니다.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나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정차한 차에서는 한 사람이 내리는 중인데, 운전하던 사람과 내리던 사람이 할 이야기 다 합니다. 나는 그동안 계속 기다리고 서 있습니다. 예전같으면 짜증나더라도 그냥 갔을 겁니다. 한 마디 합니다. "여보세요. 사람 기다리고 서 있는 거 뻔히 보면서 거기다 차 세우고 길을 막습니까? 좀 앞으로 가서 세워도 되잖아요?"
주민센터에 갔더니 남자 직원이 응대를 하는데, 말이 짧습니다. 존대인지 반말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존댓말 반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면에 그러면 안 되죠. 아마 이 분은 나를 정다운 친구쯤으로 생각하나보다 하고, 나도 정겹게 반말을 해 주었습니다. 고개를 힐끗 들고 나를 쳐다봅니다.
이런 걸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참 피곤해 집니다.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야 하다니, 하는 생각을 하면 두 배로 더 피곤해 집니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둔감하게 되거나 익숙하게 되는 게 제일 마음 편한 방법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둔감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지하철을 타려고 표를 삽니다. 매표구에는 어린이 너댓 명이 서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뒤에 섰습니다. 갑자기 한 중늙은이가 오더니 어린이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바닥을 내밉니다. 직원은 그의 손에 공짜표를 하나 얹어 줍니다. 표를 받은 중늙은이는 차를 타러 떠나려 합니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내가 불러 세웠습니다. 그는 뒤로 흘낏 한 번 돌아보고, 못 들은 양, 귀머거리인 양 자기 길을 갑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표 파는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순서대로 표 주셔야죠. 줄 안서면 표 주지 마세요. 자꾸 주시니까 새치기 하는 거 아닙니까." 직원이 말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무대뽀 노인네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니까요. 당최 말이 안 통해요, 말이."
지하철을 탔습니다. 옆의 아저씨는 대체 왜 그렇게 가랑이를 쫙 벌리고 있는 것일까요. 지하철 타면서 무슨 숫사자 같은 위세를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요. 좀 있다가 거두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참다참다 다리를 옆으로 확 밀어버렸더니, 짐짓 자는 척 하다가 깬 척 합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내 바로 앞자리에 시원하게 생긴 아가씨 둘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며 갑니다. 버스 내릴 때가 되었는지, 한 아가씨가 먼저 일어나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다른 아가씨는 버스가 거의 정차할 때까지 앉아 있다가, 버스가 서자 후닥닥 일어나서 내립니다. 그런데 그는 일어서기 직전에 갑자기 고개를 숙여 버스 바닥에 침을 뱉습니다.
촛불 문화제입니다. 청계천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데, 앞쪽의 한 여자분이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흥겨워 합니다. 가수들 나와서 노래 부르고 하니 아예 일어나서 춤추다시피 하며 문화제를 즐깁니다. 자기 뒤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여자분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문화제 내내 그 여성분 엉덩이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다른 공연장입니다. 무료긴 하지만 대규모 야외 공연이었는데, 조금 늦게 입장하는 바람에 뒷쪽에 앉게 됐습니다. 옆에 한 가족이 앉았습니다. 갑자기 음식을 꺼냅니다. 간단한 간식이 아니라, 아예 한정식 수준입니다. 이들이 먹는 음식 냄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눈을 찌푸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애들과 함께 열심히 먹습니다. 밥을 다 먹자마자 이들은 공연장을 떠났습니다.
좁은 골목길입니다. 한쪽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차 한 대가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걸어가는데, 저 쪽에서 차가 한 대 옵니다. 계속 가면 차와 사람이 엇갈려 가기가 불편할 것 같아서, 주차한 차가 없는 비교적 넓은 곳에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차는 비실비실 오더니, 기다리는 내 옆에 와서 섰습니다.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나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정차한 차에서는 한 사람이 내리는 중인데, 운전하던 사람과 내리던 사람이 할 이야기 다 합니다. 나는 그동안 계속 기다리고 서 있습니다. 예전같으면 짜증나더라도 그냥 갔을 겁니다. 한 마디 합니다. "여보세요. 사람 기다리고 서 있는 거 뻔히 보면서 거기다 차 세우고 길을 막습니까? 좀 앞으로 가서 세워도 되잖아요?"
주민센터에 갔더니 남자 직원이 응대를 하는데, 말이 짧습니다. 존대인지 반말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존댓말 반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면에 그러면 안 되죠. 아마 이 분은 나를 정다운 친구쯤으로 생각하나보다 하고, 나도 정겹게 반말을 해 주었습니다. 고개를 힐끗 들고 나를 쳐다봅니다.
이런 걸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참 피곤해 집니다.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야 하다니, 하는 생각을 하면 두 배로 더 피곤해 집니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둔감하게 되거나 익숙하게 되는 게 제일 마음 편한 방법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둔감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덧글
Jayhawk 2008/05/27 20:05 # 삭제 답글
제 경우, 오랫동안 잠깐씩 잠깐씩 거리에서 숨을 참아 왔습니다. 담배를 피우며 걷고 있는 사람 곁을, 잠시 숨을 멈추고 빨리 지나쳐 갑니다. 피곤하죠.좀 나아진 점은, 의외로 조금씩 숨을 참는 회수가 줄어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죠.
오래전에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어릴때 거리에 어른들이 담배를 피워도 특별히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서로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친구녀석이 그때는 공기 자체가 깨끗했다고 하더라구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고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긴 시간으로 따지면, 동방예의지국은 매우 빨리 사라진 개념이고, 짧은 시간으로 따지면, 그래도 시민의식은 지켜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피곤한 하루 후, 편안한 휴식을 누리시길...
deulpul 2008/05/27 22:03 #
마지막에 쓸까 하다 말았는데, 사실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건 체험적으로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체험이죠. 그래서, 이런 모습을 더 참기 어렵게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2008/05/27 21:0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8/05/27 22:04 #
사실 예의 있음이나 없음, 무례나 배려의 문제라기보다, 그보다 훨씬 기초적인 상식의 문제인 듯도 합니다.camino 2008/05/27 22:35 # 삭제 답글
오래 전에 댓글로 인사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아직 서울에 계신가 봅니다. 저도 오랜만에 서울에서 지내면서 비슷한 기분을 자주 느낍니다. 그냥, 제 마음대로 비슷한 생각 하셨나 싶어 반가워서 인사 남깁니다.
날씨가 갑자기 많이 더워졌습니다. 그래서 더 피곤하고 짜증스러운가 싶기도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deulpul 2008/05/29 11:28 #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사이 한국에 오셨군요. 재한국화(?) 초기라 저처럼 고생하시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좀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서, 큰 일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조금 둔감해지면 편할텐데, 천성인 모양입니다. 한편, 위에 쓴 것처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그래야길 바라야죠.흠 2008/05/28 15:07 # 삭제 답글
남을 나무라실때 좀 더 좋은 인상으로 나무라신다면, 더 웃고 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deulpul 2008/05/29 11:39 #
나무라긴요. 주제넘게 나무란다기보다, 피해자의 처절한 항의라고나 할까요-. 맞습니다. 좋은 인상으로 웃으며 항의해야 하는데, 수양이 덜 되어서 그냥 툴툴거리게 되네요. 그래도 나름 참는 데까지 참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바뀔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 이미 꼭지가 돈 상태에서 이야기하게 되니까 그런 모양이 되는 듯합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기분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데 왜 피해자들만 가해자들의 기분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들죠. 어쨌든 좀더 좋은 인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그림이 좋으리라는 말씀은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