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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 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 간 날 첫날 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 간 날 첫날 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됐단 말이야? 그 다음에 뭐가 있어야잖나? 어젯밤 무슨 이야기 끝에, 어릴 때 들었던 이 노래 생각이 났다. 노래를 흥얼거려 보노라니 코끝이 약간 찡해지는데, 그게 노래 때문인지 어릴 때 기억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3절에서 딱 멈췄다. 아무리 해도 4절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1절은 갑돌이-갑순이, 2절은 갑순이, 3절은 갑돌이... 다시 4절에서 갑돌이-갑순이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4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노래를 찾아보니, 세상에, 놀랍게도 4절은 원래부터 없었다. 노래는 그냥 저렇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을 했지만 마음 뿐이다가, 어찌어찌 해서 갑순이가 먼저 시집을 가서 갑돌이 생각에 한없이 울고, 홧김에 갑돌이도 장가를 가서 달보고 운다. 그리고 끝? 아니, 뭔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래 참 잔인하다. 중동무이해버린 것 같은 가사에 따르면, 갑순이 갑돌이는 각기 저렇게 달을 보고 한없이 울며 평생을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인생이란, 당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할 갑순이의 남편이나 갑돌이의 아내에게도 참 잔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세월이 약이고 정이란 살면서 드는 것이라고 하니, 갑순이도 갑돌이도 각기 애 두서넛씩 낳고 살 붙이고 살다 보면 그 옛날 첫사랑이란 꿈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따로따로 결혼을 했더래요 밤마다 둘이는 달보고 울었더래요 살다보니 음-음-음- 새까맣게 잊었더래요 혹은 그러다가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났더래요 시청 앞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쳤대요 달라진 모습에 너무나 실망했대요 겉으로는 음-음-음- 반가운 척 했더래요 이렇게 되면 나름 무난한 해피엔딩이지만, 인생이 참 속절없다. 한때 뜨거운 불길처럼 타올랐던 정념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그라진단 말인가. 사랑도 현실 앞에서 타협되고 마는 것인가. 영원한 사랑이란 대문호의 장편소설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우리는, 첫사랑의 그 아련하고도 청순한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사는 우리로서는 이런 결말을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또다른 결말.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따로따로 결혼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남몰래 만났더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이건 뭔가 아침드라마틱한 결말이 되는데, 사회 통념상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인가. 아아, 둘이는 만나도 불행하고 헤어져도 불행하구나. 헤어지면 못 봐서 불행하고, 만나면 곧 헤어질 것이기 때문에 불행하다. 비극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건 결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더욱 불행한 결말로 가는 과정일 뿐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그러다가 갑순이는 아이를 낳았더래요 아이 낳아 얼굴 보고 까무러쳤더래요 그 아이 얼굴은 갑돌일 닮았대요 겉으로는 음-음-음- 돌연변이인척 했더래요 앞으로 갑순이의 인생은 매우 험난할 것이 예상된다. 새로 태어난 아이도 아버지(갑순이 남편)의 박해를 받으며 반항아가 되어 사회 부적응자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 이건, 어떻게 봐도 바람직한 결말이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 가지 말고, 날도 더운데 납량특집 범죄 스릴러 스타일로 가기로 해 보자. 갑돌이는 마누라를 목 졸라 죽였더래요 갑순이도 남편 몰래 약 먹여 죽였더래요 그리고 둘이는 도망쳐 버렸대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물론 이것은 위의 결말보다 더욱 더 끔찍한 것이지만, 나름대로 사랑, 암투, 범죄, 도피행이 어울려서 그럴 듯한 서사 구조를 만들어 낸다. 아아, 딸의 결혼을 강요한 갑순이 부모의 결정이 이렇게 끔찍한 비극을 낳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자식의 뜻을 무시하고 딸을 시집보낸 덕분에, 두 사람이 비명횡사하고 딸의 인생도 아주 위태해졌다. 마치 <지붕 위의 바이얼린> 에서 묘사되듯, 부모란 자식의 배우자에 대해 한껏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식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것이 제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비극을 낳지 않으려면 말이다. 노래 원곡의 뜬금 없는 마무리로 보아서는 4절이 필요하긴 한데, 둘이 일단 각기 결혼을 해 버린 이상 건전하고도 마뜩한 결말 스토리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역시 인생은 야속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판타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평생토록 그리워 했더래요 두 사람 마음은 변함이 없었대요 결국에는 음-음-음- 하늘의 별이 되었더래요 글쎄, 하늘이 별이 된 것도 판타지이지만, 평생토록 마음이 변하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도 판타지라 하겠다. 사랑도 팔고 사고 시대에, 우리에게 이런 순정이 남아 있으려나. 그래도 이런 결말이 그냥 무난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갑돌이와 갑순이가 결혼을 했더라도 둘의 인생이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갑순이는 '그 때 부모 말 들을 걸...'하고 후회하며 살지도 모른다. 설령 두 사람의 인생이 평생 재미지고 안락한 것으로 전개된다 하더라도, 조신의 꿈처럼, 지나고 보면 모두 덧없는 일장춘몽일 수도 있다. 그냥 서로서로 그리워하다 하늘의 별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 여하튼 모든 일은 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서로 사랑을 했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데서 시작됐다. 갑순이 부모가 딸을 딴 데로 시집보내려고 할 때, 갑순이가 마음에 있는 사람이 있다고 우기고 저항했으면 결국 둘이 혼인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안 그런 척 해서는 안 되는 성격의 일인지도 모른다. 하긴 그러나, 사랑처럼 겉으로 불쑥 내어놓기가 힘든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참, 마무리가 덜 된 노래 때문에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모르네. 찾아보니 이 노래의 작사자는 분명하지 않고 그냥 '민요' '전래가요' '미상'으로 되어 있다. 많은 사람에 의해 구전되어 왔다는 말인데,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 이렇게 어영부영 끝나게 놔뒀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4절이 있을 듯 한데, 망실된 것일까. 둘이 따로 결혼한 이상 건전한 4절이 나오기가 쉽지 않으니, 있더라도 짤린 것일까. 아니면 따로 결혼하는 것으로 볼장 다 보고 종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인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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