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실 흐르는 물과 같은 불교도 어머니 by deulpul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날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갈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평소 다니시는 절인데, 절에 계시는 분이라면 스님이든 보살이든 처사든 신도든 모두 친구처럼 지내는 작은 절이다.

불교를 신앙으로 하시는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종교가 없다. 따라서 예불에 참석하고 설법을 들을 일이 없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을 참 구성지게도 읽던 훤칠한 젊은 스님이 설법을 하는데, 때가 때인지라 선거에 대해 몇 말씀을 하셨다. 무슨 말이었는가. 그는 바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요즘 선거라 참 말도 많고 시끄럽습니다. 세상이 어수선하지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마음을 곧고 바르게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는 우리 할 바를 잘 생각하고 우리 마음을 닦고 부처님 말씀을 지키며 살면 됩니다.

더도덜도 아니고 딱 이렇게만 말했다. 나로서는 참으로 맹맹하기 짝이 없는 말씀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열심히 마음이나 닦자니. 아무리 산문 밖의 일이라지만 너무 안으로만 파시는 것이 아닌가. 너무 오불관언이 아니신가.

이런 생각은 당시 개신교 일부의 어이없는 행태와 비견되면서 더욱 커졌다. 그 즈음에 일부 개신교가 대선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있다. 이명박 찍지 않은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던 사이비 목사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저린 발을 붙잡고 차가운 마루바닥에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게 불교와 개신교의 차이인 모양이구나. 불처럼 활활 타오르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개신교와, 물처럼 실실 흘러가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불교의 차이구나.

옆에서 보니 어머니는 발도 하나도 저리신 것 같지를 않고, 어머니 연배에는 틀림없이 쉽지 않은 그 절도 연신 반복하셨다. 평생 여당을 지지하신, 그래서 김영삼이 여당이 되고 더구나 김대중이 여당이 되었을 때 상당히 당황해 하신 불교도 어머니는, 나에게는 이명박을 찍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물처럼 실실 흘러서 이명박을 찍으신 게 틀림없었다.

불교계 안의 급진 좌파가 투쟁을 주도?

이명박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래, 불교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러 일이 벌어졌다. 반복되다 보니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판이다. 이명박 개인의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장로가 대통령이 된 참에 대한민국을 들어서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해 안달난 천박한 것들이 정부 주변에서 날뛰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전두환이 정권의 개들을 절에 몰아넣은 것이 물리적 법난이라면, 작금의 사태는 정신적 법난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장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장로가 대통령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이승만도 장로였고 김영삼도 장로였다. 이승만 귀신은 반세기도 더 된 이야기니 빼고, 김영삼 장로 때만 보더라도 (점잖게 이야기해서) 정권의 종교 편향성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장관이 스스로 종교 차별하는 공직자는 징계하겠다는 입발린 소리까지 내놓았을까.

자신이 잘못해 벌어진 일을 모두 386과 좌경세력의 선동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이명박 정권이다. 그들은 불교계의 반발에 대해서도 '불교계 안의 급진 좌파 386 세력이 강경투쟁을 주도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기들이 저지른 행위는 돌아볼 줄을 모른다. 386과 좌경세력만 집어넣으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니 참 편리하기도 하다. 의견 수렴하고 고민하고 할 필요가 없다. 어청수 시켜서 밟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이념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고 역사도 종언하고 이데올로기도 종언했다는데, 이치들은 죽은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무덤에서 끌어내서 정권의 밥줄을 늘리는 데 써먹으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정권 유지를 위해 무덤에서 파내 끌어대는 이데올로기 피떡칠은 고무줄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애써 조장한 긴장의 탄성이 탁 끊어지고 피떡칠이 허황한 것임이 드러나는 순간, 이데올로기는 정권을 끌고 함께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머니는 오늘 불교도 대회 안 가시오? 하고, 아까 전화를 하면서 여쭤봤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가긴 어딜 가리요만은, 그냥 그렇게 농담처럼 여쭤봤다. 어머니께서는, 오늘은 일단 큰 스님들만 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물처럼 실실 흘러 이명박을 찍으신 게 틀림없는 어머니는, 며칠 전 동네에 찾아온 막무가내형 선교 아줌마들과 입씨름까지 하신 모양이다. 우리 동네에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선교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두세 차례는 찾아오는데, 이제는 이런 강요가 일상처럼 되어버려서, 어머니께서 안좋은 말씀을 하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전화를 끊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 처음 본다야." 이런 사람들이 선교 아줌마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은 뻔했다. 그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니까. 물은 실실 흐르지만 물이 거꾸로 돌면 세상의 질서가 뒤집힌다. 어머니 마음 속의 물은 실실 흐르다, 빙글빙글 돌다, 이제 거꾸로 잡히기 시작하는 듯하다. 그래도 저이들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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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자그니 2008/08/27 15:07 # 답글

    요즘 무협 이명박 정권사...를 써볼까 생각중입니다...(응?)
  • deulpul 2008/08/27 15:45 #

    정권사뿐 아니라 태릉에서 했던 개발차기사도...(음?) 소재가 무궁무진하니 대하 무협 서너 편은 나올 만한데, 워낙 저질 소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시는 일이 쉽지 않을 겁니다. 모쪼록 낙양의 지가(혹은 인터넷가)를 올리시는 작품이 나오기를...
  • 2008/08/27 23:1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白作 2008/08/28 00:48 # 답글

    물길을 바꾸지 못해도 물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양수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겠죠? 인위적인, 인위적인 너무나 인위적인... 그나저나 이러다가 언젠가 또 물길 바꾸겠다고 설칠 지 그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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