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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선거 이야기 한 토막.
공화당 매케인 진영이 도박하다시피 고른 부통령 후보는 워싱턴 중앙 정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변방 알래스카의 여성 주지사 사라 페일린이다.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능력은 전혀 알려진 바 없지만, 일단 화제를 만드는 데는 성공한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공화당이 오바마를 흠집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비판이 그대로 페일린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오바마에게 등을 돌리게 하기 위해 공화당이 쓰는 몇 가지 틀짓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오바마는 경험이 부족한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는 것이다. 오바마에 대한 비판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resume'와 'experience'일 것이다. 이렇다할 이력, 특히 행정 경력이 없고 경혐이 짧다는 말이다. 다른 여러 가지 틀도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은근히 작용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일단 공개적으로는 오바마의 경력 씹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1961년생인 오바마는 1936년생인 매케인보다 25년이나 젊다. 아버지에 아들 뻘이니 애송이라고 물고 늘어질 만하다. 1997년 주 의회 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으니, 10년 정도의 정계 이력도 사반세기를 정치를 하며 살아온 매케인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다. 매케인보다 훨씬 보수적인 페일린 그럼 이렇게 오바마를 비판하는 공화당이 선택한 부통령 후보 페일린은 어떨까. 그는 1964년생으로 오바마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 정-부통령 차이는 있지만, 오바마가 나이 어리다고 뭐랄 상황은 아닌 듯하다. 페일린의 정치 경력도 무척 흥미롭다. 그는 1992년, 그가 살던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와실라 시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와실라는 인구 7천 명 남짓한 도시로, 인구로 따지면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하나 정도의 규모다. 시의원이었으니 이 7천명짜리 미니 도시를 또 잘게 쪼개어 선거를 치르고 당선됐을 것이다. 말하자면 아파트 동 대표쯤 된다. 이 정도 규모라면 미스 알래스카 선(2위)을 한 얼굴만 가지고도 쉽게 당선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것은 그의 다음 경력인 와실라 시장이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1999년 시장 선거에서 재선될 때를 보면, 그가 얻은 표는 909표였다. 1천1백40명 정도가 참가한 투표였다.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도 이보다 큰 규모다. 임기를 2번으로 제한한 와실라 시장 재임이 끝나자, 페일린의 시어머니가 다시 시장으로 출마한 점은 이 작은 도시의 정치 규모를 잘 말해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시장을 마친 페일린은 알래스카 부지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인구 7천 명의 도시 시장에서 주 부지사로 훌쩍 뛰는 도전이 매우 큰 업그레이드처럼 느껴지지만, 이는 알래스카의 주 특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알래스카의 인구는 68만 명으로, 땅덩어리는 넓지만 곰들에게 투표권을 줄 수는 없으니, 유권자 수로는 기껏해야 안양이나 안산 같은 중소도시 정도다. 아이다호 주에서 태어난 페일린은 아주 어릴 때 알래스카로 이사 온 이래, 대학 공부를 위해 잠깐 아이다호에 머문 것을 빼면 알래스카를 떠난 적이 없다. 아주 최근까지 외국 한번 나가본 적이 없다. 그가 처음으로 미국 밖을 나가본 것은 작년, 알래스카 주지사가 된 뒤 쿠웨이트와 독일을 방문한 때였다. 우물 안 개구리인지는 몰라도 미국 국내용 정치인임은 분명하다. 자, 이런 경력을 놓고 레주메가 화려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잡다한 이력이 줄줄 나열된 장문의 이력서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 내용이 중요하니까. 페일린은 행정 경험은 있지만, 인구 7천 도시나 인구 20만 주다. 없는 것 보다 낫다고 할 수는 있겠다. 정치 하던 놈만 하란 법 없고 촌구석에서 신데렐라가 나오지 말란 법 없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시카고라는 거대 도시를 기반으로 하여 워싱턴에까지 오른 오바마의 레주메를 놓고 비난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페일린의 정치적 스탠스를 보면 딱 공화당 얼굴마담감이다. 꼴보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보수 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대여섯 살 때부터 아빠 따라다니며 사슴에게 총질하던 아이답게, 악명 높은 미국총기협회(NRA) 정회원으로, 총기 소지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또 강간이나 근친 같은 상황에서도 낙태를 반대하는 극단적 낙태반대론자다. 이것은 매케인보다 훨씬 보수적인 태도다. 동성간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교육에 창조론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딸 키우는 것을 보면, 창조론보다는 피임 교육을 더 먼저 시켜야 할 듯한데 말이다. 힐러리 지지자도 주요 목표물 매케인 진영이 페일린을 선택한 것은 이런 꽉 막힌 보수성이 나름 장사가 된다고 생각해서다. 원단 보수 색깔을 다시 강조해 입힘으로써 종교적 보수주의를 결집하고, 오바마가 가지는 개방성을 은근히 두려워하는 보수층을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젊은 여성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데에는 또 한 이유가 있다. 민주당의 오랜 후보 경선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실패한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 중 일부를 넘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 성향이면서도 오바마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백인 여성이 주요 타겟이다. 힐러리는 흔쾌히 오바마 지지를 공언했지만, 지지자들까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틈새 시장을 노리자는 것이다. 페일린 카드를 꺼낸 공화당으로서는, 내용물에 상관 없이 치마만 두르면 표를 주는 얼치기 페미니스트 그룹도 공략 대상이고, 힐러리가 아니면 차라리 매케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동요 그룹도 작업 대상이다. 보수층,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의 결집과 여성표 공략. 결국 페일린을 선택한 도박이 성공하려면 이 부분이 관건이다. 뭐, 페일린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일부 남성표가 좀 갈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애초 매케인 진영에서 논의한 것처럼 조 리버만으로 갔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매케인은 말이 통할 듯한 정치인이다. 그 자신이 리버만을 데리고 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는 점은 이런 사실을 더욱 확인시켜 준다. 지금 민주당은 매케인의 정책이 부시-체니의 그것과 90% 똑같다고 강조하며 부시와 매케인의 고리를 만드는 데 주력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매케인이 부시와는 상당히 다른 인간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점이 리버만과 함께였다면 더욱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꼴보수들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을테고, 그래서 원단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듣보잡 페일린이 낙점을 받았을 것이다. 페일린 도박이 성공할지는 금방 판가름날 것이다. 페일린이 듣보잡이든 보수주의자든 낙태를 죽어라 반대하든 뭐든, 오바마가 이력서가 형편없는 애송이이든 뭐든, 이 분들의 대선은 일정한 룰이 둘러쳐진 링 안에서 벌어진다. 다양한 범죄 혐의를 받았고 대선 당시도 검찰 조사까지 받는 비정상적인 후보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 같은 것은 벌어질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는 비정상적인 정당도 없다. 페일린이나 바이든이, 혹은 매케인이나 오바마가 동아시아의 모 대선 후보와 같은 부정과 부조리의 스펙을 갖고 있었다고 해 보라. 인구 7천인 알래스카의 작은 도시 와실라의 시장도 해먹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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