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은 9월 초보다 따뜻하다 by deulpul

1. 아이, 무슨 애냐구. 자꾸 아프고 누웠게.

2.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나? 없었지? 순수하게 고통의 정도에서 말이지. 참 심하더군그래. 한 이틀은 너무너무 아픈 나머지, 몸에게 막 화가 나데. 이 멍청한 것, 하고 막 해꼬지를 하고 싶더라니까.

3. 이게 고문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봤지. 평생 첨 겪는 듯한 고통으로 빌빌 기다시피 하면서도, 고문이라면 견딜만하다는 결론이 나데. 왜 안 그렇겠어. 고문하는 작자 얼굴도 노려보고 그의 삼족을 모두 저주하노라면, 이 정도 아픔은 그냥 견딜 만하지 않을까 싶지. 게다가 그건 승부고 도박이기도 하잖은가 말여. 허공에 하는 주먹질이 어려운 거지, 상대가 있으면 싸우기가 좀 쉽지. 분노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잖겠어? 뭐, 고문하는 새끼들도 그 정도는 알테니, 고문으로 가하는 고통은 내가 빌빌대는 이 따위 고통보다는 훨씬 고단위의 것이겠지. 김근태 같은 이, 참 징한 사람들이여.

4. 타이레놀도 안 듣고 애드빌 모트린 아무 것도 듣질 않아서, 하이드로코돈 제제 약을 콱 먹었더니 좀 덜하데. 기분 탓인가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약발이 좀 듣더라니까. 근데 이게, 머리가 막 팽팽 도는겨. 아프니까 가만히 널부러져 있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풍차돌리기 당하는 형국으로 밤새 동서남북을 뱅뱅도는데, 머리에서 뭔가 생각이 자꾸 일어나쌓고 난리여. 가닥도 안 잡히는 온갖 잡생각이 화톳불에서 탁탁거리며 튀어오르는 불티처럼 초단위로 일었다 지고 일었다 지고 해서 무섭기까지 하더라니까, 무서워. 진짜로 걍 놔두면 머리가 좀 이상해지겠다 싶어서, 암것도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만 죽어라 하려고 노력해야 할 정도였댔지. 이건 약기운이라기보다 고열 탓이었을 게야, 아마도.

5. 허, 제길, 그렇게 섣달 바람에 굴뚝에서 연기 풀어 흩어지듯 생각이 저 혼자 미쳐 나대는 와중에, 쓸데없이 웬 카툰 하나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듣도보도 못한 네 컷짜리 카툰. 그림은 일정하고 대사가 바뀌는 카툰인데, 그 바뀌는 대사가 쉬지도 않고 줄줄이 머리에 떠오른다지. 일간신문으로 치면 아마 한 달포치 아이디어는 해결했을 거야. 허, 제길, 무슨 페이퍼 아이디어나 그렇게 흥부 박에서 황금 콸콸 쏟아지듯 쏟아졌다면 좀 좋아.

6. 그래도 좋기도 하데. 보면 참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거지. 큰 그림 볼 생각 안 하고 코 앞에 색점들만 죽어라 들여다보고 사는 꼴이구나 하는 맘이 들더라니까. 누워서 자다깨다 하다가 정신이 맑아지면 생각밖에 할 일이 없으니 그런 맘이 든 건데, 이렇게 잔뿌리, 곁가지 없는 생각을 해 보는 게 얼마만인가 싶데. 원래 윗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가만히 의자에 기대어 코딱지 파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긴 맞나벼. 그게 아마 정책 결정자들의 자세인가벼. 중요한 정책은 그렇게 결정되는가벼. 그려, 사소한 데 끙끙대느라 큰 그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던 게 틀림없어.

7. 농사나 지었으면 좋겠수 하면 농민한테 혼나지. 절이나 들어갔음 좋겠수 하면 중한테 혼나지. 선생이나 하면 좋겠수 하면 선생님한테 혼나지. 글이나 써서 먹고 살았으면 좋겠수 하면 작가들한테 혼나지. 노래나 부르며 살았으면 좋겠수 하면 수만형한테 혼나지. 암것도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수 하면 목구멍과 밥통한테 혼나지. 가족한테 혼나고 이웃한테 혼나고 체면한테 혼나고 위신한테 혼나지. 작것, 자유롭게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구.

8. 자, 그래도 어쨌든 힘을 내서.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더라도.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되더라도. 얼어죽고 산이 되는 것이 모조리 등 떠밀려서라고 하더라도. 어쩌것어, 벼랑 끝에서야 밀것어?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deulpul.egloos.com/tb/1815474 [도움말]

덧글

  • 2008/09/27 11:1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8/09/28 04:15 #

    힘내세요!
  • 2008/09/27 17:5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8/09/28 04:16 #

    그 말이 정답이어요, 정말. 아무 일 없을 때가 행복한 것이죠. 고맙습니다.
  • mooyoung 2008/09/28 01:59 # 답글

    자주 글을 읽지만 어쨌든 모르는 분인데 제가 실한 농담을 해서(자주 글을 읽어서 마치 아는 분인듯) 그 글 지우고...... 빨리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 deulpul 2008/09/28 04:17 #

    지우긴 왜 지우세요! 농담 환영합니다. 세상 뭐 심각하게만 살 수 없잖습니까... 토해 내세요.
  • 자그니 2008/09/28 03:25 # 답글

    감기..셨나요? ... 요즘 몸 안좋은 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보디, 건강하시기를..
  • deulpul 2008/09/28 04:17 #

    고맙습니다. 자그니님도 건강하십시오. 워낙 잔병치레 따위는 안 하실 것도 같지만... 하하-.
  • 진저맨 2008/09/28 19:17 # 삭제 답글

    지금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 deulpul 2008/09/30 13:23 #

    고맙습니다. 많이 나아졌어요.
  • 달속토끼 2008/09/28 19:40 # 답글

    그 동안 많이 편찮으셨나 봅니다.
    지금쯤은 완쾌하셨겠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힘내시라는 말씀을 보탭니다.

    댓글 달다가 문득 생각났는데요...
    어려서 많이 아플 땐 어머니께서 파뿌리도 달여주시고
    콩나물국도 끓여주시고 생강차도 우려주셨는데...
    그리고 잣죽이랑 녹두죽도 쒀주셨는데...
    요샌 아프면 그냥 쥬스 마시고 나서 전화로 짜장면 시킵니다.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을...
    어째서인지 모르겠는데, 몸이 아프면 그걸 먹고 싶습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특별식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들풀님께서 사시는 곳에선 짜장면 주문은 아마도 좀 어려울 테니까....
    물론, 불가능을 모르는 배달민족이므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만...
    혹시 어려우시다면 피자라도 한 판 드셔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 deulpul 2008/09/30 13:32 #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잖아도 오늘 밤에 집에 오면서 동료와 짜장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난 말야,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먹는 점심의 절반이 짜장면이야..." 젓가락을 쪼개어 짜장을 비비기 시작하면 작은 행복이 싸아 하고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건 제게는 음식 이상의 존재인 듯 합니다. 게다가 귀하니 더욱 그렇군요. 배달... 안 되고, 가서 먹을 데도 없습니다... 한 시간 반 차 타고 가면 그럭저럭 짜장 맛이 나는 데가 있습니다. 불행이죠. 말씀대로, 몸 아프니 어머니가 어떻게 챙겨 주셨나가 참 생각 많이 납니다. 참 많이.
덧글 입력 영역


Ad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