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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이렇게 바꿔볼까요. 당신은 한국어를 잘 하세요?
미국에서 석사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제가 소속한 학과에는 좀 특이한 시험이 있었습니다. 대학 학부 4년이나 석사 과정을 끝마치려면 과에서 마련한 국어(그러니까 영어) 시험을 치러서 80점 이상을 얻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매우 중요한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대학본부에서 규정한 것도 아니고, 교칙이나 학칙에 나와 있는 정규 시험도 아닙니다. 단지 단과대학에서, 학생이 사회로 나가려면 이 정도 언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실시하는 시험입니다. 시험의 내용은 단어와 문법, 구두점이나 수식어의 위치와 같은 영어의 활용 등입니다.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토플 시험의 문법 부분에 헷갈리는 단어와 표기법 등을 추가한 정도랄까요. 단어와 문법 위주라서, written English에 강한 우리가 봐서는 오히려 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졸업 요건이니만치 시험 기회가 많습니다. 기회를 많이 주지 않으면 졸업에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시험을 치릅니다. 시험은 대형 강의실에서 미리 신청한 사람을 모두 모아 놓고 치릅니다. 좀 성급한 학부 2, 3학년생에서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뒤섞여 시험을 치릅니다. 주류는 물론 졸업을 앞둔 4학년생들이죠. 시험이란 점수와 석차를 내기 위한 게 아니라 공부를 시키자는 제 원래 목적이죠. 학과에서는 이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학생들을 공부시킵니다. 따로 이 시험을 준비하는 워크샵도 종종 엽니다. 학과에는 이 시험을 전담하는 베테랑 직원이 하나 있어, 모든 과정을 직접 담당합니다. 말하자면 국어 공부를 따로 시키는 과외 훈련 과정이 존재하는 것이죠. 저도 졸업을 앞두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입은 벙어리라도 토플은 만점 가까이 받는 한민족답게, 한 번에 가볍게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희한한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시험 성적이 나오면 성적표를 학과 복도에 붙여둡니다. 물론 이름은 없고, 세로로 두 줄에 학번과 성적만 공개합니다. 학생들은 이 성적표를 보고 시험 통과를 알고 안도하거나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공개 성적표가 가관입니다. 시험 치르는 때에 따라 오르내림이 있지만(예컨대 졸업이 가까워오면 통과율이 높아진다거나), 일단 합격하고 통과하는 사람이 예상 외로 무척 적습니다. 제가 보기엔 미국넘들이라면 무척 쉽게 치를 수 있는 기초 국어 시험인데도, 합격률이 낮습니다. 보통 5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가 80점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머지 5분의 4는 뭐냐. 79점, 78점, 75점 등으로 아깝게 탈락한 넘들이면 말을 안합니다. 50점대가 수두룩하고 40점대, 심지어 30점대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더란 말입니다. 사지선다면 눈 감고 찍어도 25점 아닙니까? 그래프로 그려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정규분포에 수렴하는 양상이었습니다. 참고로 저 학교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매기는 미국 주립대 학부 랭킹에서 5위권을 놓치지 않는 명문 대학입니다. 랭킹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부 좀 한다고 하는 미국 학부생들이 이 모양이라는 말입니다. 그것도 말로 먹고 살겠다는 넘들이 이렇습니다. 제가 겪은 게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 더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언어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 입말을 잘 한다는 것이 그 언어를 바르게 쓸 수 있음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저 시험에서 30점을 받은 미국 학부생도 영어는 혓바닥에 빠다 바른 듯 기가 막히게 잘 할 것이며, 예컨대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영어 강사로 얼마든지 어서옵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 성적이 입증하듯이, 이들은 아직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어를 바르게 쓰는 것은 많은 독서나 글짓기와 같은 훈련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체계적인 교육의 산물이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말을 더듬지 않고 잘 한다고 해서, 저절로 한국말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지는 않습니다. 저 영어 시험을 치르는 미국 대학생들은 어쨌든 결국은 다 통과합니다. 성적이 낮게 나오면, 특히 졸업이 다가오면 화들짝 놀라서 이 시험에 집중해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서 내 국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도 깨닫게 되고, 일시적이나마 국어 공부에 전력해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의무적으로 국어(한국어) 시험을 치르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척 궁금합니다. 외국어에 목 매달 필요 없는 미국 대학생도 저럴진대, 제 나라 말은 개 밥에 토토리마냥 찬밥 대접 받고 특정 외국어가 더 애지중지되는 불행한 나라의 대학생 경우는 어떨까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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