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후보로 나온 사람 중 한 명이 내가 다닌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회 홈페이지를 들어갔더니, 온 동문이 일치단결하여 그 후보를 지지해서 대통령을 만들자는 글이 여기저기 넘치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니, 어떤 후보를 한 나라의 대통령감으로 지지하는 것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함량 미달의 후보라도 같은 고교 출신이면 지지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할 때, 같은 고교 출신이라든가가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기준이 널려있지 않은가.
우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상식을 전제로 하자. 같은 동문이 대통령 되면 좋지. 같은 지역 출신이 대통령 되면 좋지. 같은 성씨를 가진 같은 가문의 사람이 대통령 되면 좋지.
뭐가 좋은데? 그냥 상징적으로 좋은 건가? 그렇게 순진한 경우는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저 상징적인 즐거움 때문에, 정책이고 자질이고 뭐고 다 제쳐놓고 자신과 연줄이 닿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기와 같은 집단의 사람을 지지하(자)는 움직임에는 은밀한 짬짜미와 뒷거래의 검은 냄새가 난다. 사과 상자나 1톤 트럭에 현금을 쟁여 넣어 남몰래 주고받고 하는 것만 뒷거래가 아니다.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뒷거래도 있다. 조직에 기반한 지지의 많은 경우가 조직의 이해관계를 챙겨 줄 기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관련 있는 집단 출신이 조직의 책임자가 되고 권력자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내가 속한 집단과,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게 본심 아닌가. (그룹에 기반한 투표 행위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살펴보기로 하고.)
예컨대 ㅅ교회와 관련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고 치자. 교회 전체 차원에서 음으로 양으로 이 사람을 지지하고 지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당선된 사람은 ㅅ교회 출신의 인사를 각종 요직에 배치한다. 어쨌든 챙겨줘야 하는 것이다.
ㅅ교회 처지에서는 관련자가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니 교인 몇 명이 요직에 발탁되는 것은 당근이고, 신도 수도 늘고 비지니스가 훨씬 잘 될 것임은 물론이요, 하다 못해 주차장 한 쪽을 넓히려 해도 구청에서 간섭하는 일이 훨씬 적어질 것이다.
이건 ㅅ사찰과 관련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왔대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기쁨주고 사랑 받거나 아니면 표 주고 혜택 받는 암거래 의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 시야를 넓혀 한국 전체에서 보자면,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대통령이 챙겨야 할 사람은 한 집단 구성원이 아니라 국민 전체, 나라 전체가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전체 차원에서 눈 밝고 일 잘 할 사람을 뽑는 것이 이성적인 지지 행태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공직 선거에서 자기와 같은 소속인 사람을, 주로 그러한 이유로 지지하는 행태를 부정적으로 본다. 대체 왜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으로 그를 지지해야 하는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오리지널 기준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은가.
물론 예외적인 상황이 있다. 집단의 지지가 분명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 경우다. 예컨대 호남 지방에서 특정 후보에 몰표가 나온다든지, 흑인들이 흑인 후보자를 지지한다든지 하는 경우다. 흑인이 흑인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내가 고교 동문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맥락의 유무가 그 차이를 만든다고 할 수 있겠다.
가끔 한국에서 벌어지는 학회 선거 소식을 듣는다. 이건 뭐 완전히 학교 대 학교 자존심 싸움처럼 보인다. 한 학회장 후보자가 나서면 그 학교 선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에 있는 동문들까지 모두 나서거나 동원되어 그를 지지한다. 반대편도 그러므로, 당연히 불필요한 대립 전선이 생기고, 학회 운영에 대한 비전과 정책 대결이 아니라, 세 싸움에 감정 싸움이 되고 만다. 배웠다는 분들조차 그러시니 참 아득하다. 왜 자신을 스스로 탯줄에 동여매고 태반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제길... 사정상 중간 네 단락 삭제합니다.)
이런 꼴로 투표를 하는 이상, 모든 선거는 세 싸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후보의 자질에 상관없이, 큰 조직 출신인 사람, 표 동원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이 승리하는 아사리판이 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지상정을 뛰어넘어야 조직이 잘 된다. 인지상정에 얽매여, 학연 지연 따라 인지상정으로 밀어주고 인지상정으로 챙겨주며 전체 조직을 말아먹는 꼴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우리가 남이가? 남이다. 남 아니더라도 남 좀 하자. 크로스 보팅이 무성한 조직이 잘 되는 조직이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니, 어떤 후보를 한 나라의 대통령감으로 지지하는 것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함량 미달의 후보라도 같은 고교 출신이면 지지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할 때, 같은 고교 출신이라든가가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기준이 널려있지 않은가.
우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상식을 전제로 하자. 같은 동문이 대통령 되면 좋지. 같은 지역 출신이 대통령 되면 좋지. 같은 성씨를 가진 같은 가문의 사람이 대통령 되면 좋지.
뭐가 좋은데? 그냥 상징적으로 좋은 건가? 그렇게 순진한 경우는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저 상징적인 즐거움 때문에, 정책이고 자질이고 뭐고 다 제쳐놓고 자신과 연줄이 닿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기와 같은 집단의 사람을 지지하(자)는 움직임에는 은밀한 짬짜미와 뒷거래의 검은 냄새가 난다. 사과 상자나 1톤 트럭에 현금을 쟁여 넣어 남몰래 주고받고 하는 것만 뒷거래가 아니다.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뒷거래도 있다. 조직에 기반한 지지의 많은 경우가 조직의 이해관계를 챙겨 줄 기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관련 있는 집단 출신이 조직의 책임자가 되고 권력자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내가 속한 집단과,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게 본심 아닌가. (그룹에 기반한 투표 행위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살펴보기로 하고.)
예컨대 ㅅ교회와 관련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고 치자. 교회 전체 차원에서 음으로 양으로 이 사람을 지지하고 지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당선된 사람은 ㅅ교회 출신의 인사를 각종 요직에 배치한다. 어쨌든 챙겨줘야 하는 것이다.
ㅅ교회 처지에서는 관련자가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니 교인 몇 명이 요직에 발탁되는 것은 당근이고, 신도 수도 늘고 비지니스가 훨씬 잘 될 것임은 물론이요, 하다 못해 주차장 한 쪽을 넓히려 해도 구청에서 간섭하는 일이 훨씬 적어질 것이다.
이건 ㅅ사찰과 관련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왔대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기쁨주고 사랑 받거나 아니면 표 주고 혜택 받는 암거래 의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 시야를 넓혀 한국 전체에서 보자면,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대통령이 챙겨야 할 사람은 한 집단 구성원이 아니라 국민 전체, 나라 전체가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전체 차원에서 눈 밝고 일 잘 할 사람을 뽑는 것이 이성적인 지지 행태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공직 선거에서 자기와 같은 소속인 사람을, 주로 그러한 이유로 지지하는 행태를 부정적으로 본다. 대체 왜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으로 그를 지지해야 하는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오리지널 기준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은가.
물론 예외적인 상황이 있다. 집단의 지지가 분명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 경우다. 예컨대 호남 지방에서 특정 후보에 몰표가 나온다든지, 흑인들이 흑인 후보자를 지지한다든지 하는 경우다. 흑인이 흑인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내가 고교 동문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맥락의 유무가 그 차이를 만든다고 할 수 있겠다.
가끔 한국에서 벌어지는 학회 선거 소식을 듣는다. 이건 뭐 완전히 학교 대 학교 자존심 싸움처럼 보인다. 한 학회장 후보자가 나서면 그 학교 선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에 있는 동문들까지 모두 나서거나 동원되어 그를 지지한다. 반대편도 그러므로, 당연히 불필요한 대립 전선이 생기고, 학회 운영에 대한 비전과 정책 대결이 아니라, 세 싸움에 감정 싸움이 되고 만다. 배웠다는 분들조차 그러시니 참 아득하다. 왜 자신을 스스로 탯줄에 동여매고 태반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제길... 사정상 중간 네 단락 삭제합니다.)
이런 꼴로 투표를 하는 이상, 모든 선거는 세 싸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후보의 자질에 상관없이, 큰 조직 출신인 사람, 표 동원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이 승리하는 아사리판이 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지상정을 뛰어넘어야 조직이 잘 된다. 인지상정에 얽매여, 학연 지연 따라 인지상정으로 밀어주고 인지상정으로 챙겨주며 전체 조직을 말아먹는 꼴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우리가 남이가? 남이다. 남 아니더라도 남 좀 하자. 크로스 보팅이 무성한 조직이 잘 되는 조직이다.




덧글
2008/10/02 17:4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8/10/03 02:02 #
딱 그 말씀입니다. 그 일 하실 분들은 따로 있죠. '우리 동네 김의원' 하다 보니, 김의원이 나라를 말아먹어도 지역구에서는 언제나 3선 4선 하는 일이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일인지, 참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