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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지도자로 뽑기에는 너무나 불우한 능력과 자질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페일린.
어제 <워싱턴 포스트>가 ABC와 함께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도 이러한 페일린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는 듯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페일린이 공화당 매케인의 대선 가도에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방해물(drag)이 되고 있다고 한다. 유권자 10명 중 6명이 페일린이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유권자의 3분의 1은 페일린 때문에 매케인에게 표를 줄 마음이 더 없어졌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밀어주고 당겨줘도 모자랄 판에, 참 답답하게 생겼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페일린은 이제 탁월한 국가 지도자로 어필하는 것은 포기하고, 아예 낮게 기는 쪽으로 전략으로 정한 듯하다. 그는 어제,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휴 휴이트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조 식스팩(Joe Six-pack)을 끄집어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처럼 흔히 널린 보통 미국 사람이 부통령에 도전한다는 것은, 이제 드디어 이들도 제대로 대표될 때가 왔다는 것이죠(It's time that normal Joe Six-pack American is finally represented in the position of vice presidency)." 라고 쓰고 "저처럼 멍청한 사람이 부통령에 도전한다는 것은 이제 멍청한 미국인들도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가져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죠"라고 읽는다. 아, 정말 사랑스럽다. 멍청함을 오히려 공격의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처절한 깡다구가 놀랍지 않은가. 식스팩은 여기서 빨래판처럼 생긴 복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 식스팩과 그 남성형인 존 식스팩(John Six-pack)은 미국의 평범한 보통 사람을 일컫는 통칭이다. 갑남을녀, 장삼이사 정도의 뜻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존 큐 퍼블릭(John Q. Public), 존 큐 시티즌(John Q. Citizen) 등이 있다. 여성형은 John 대신 Jane이 된다. 이 대목에서 <존 큐>라는 영화 생각이 나실 것이다. 던젤 워싱턴이 권총 한 자루 들고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과 맞싸우는 그 영화다. 워싱턴이 연기한 이 절망적인 아빠의 원래 이름은 존 퀸시 아치발드(John Quincy Archibald)다. 아치발드가 인질극을 시작한 후 경찰과 통화하는 상황에서, 로버트 듀발이 워싱턴의 이름을 묻자 주저하면서 대충 꾸며 댄 이름이 바로 존 큐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홍길동이요!" 한 셈인데, 원래 이름과도 관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 아치발드의 여리고 착한 심성이 살짝 드러난 장면이기도 하다. 존 큐가 평범한 미국인의 통칭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을 이해하면, 왜 주인공 이름을 그렇게 설정하고 영화 제목까지 그렇게 갔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면 분신술의 대가 홍길동이 여기저기 출몰하는 광경을 무척 많이 볼 수 있다. 각종 서식의 작성 예에 단골로 등장하시는 분이 바로 홍길동인데, 이렇게 이름을 써야 할 자리에 가짜로 적어넣는 이름을 placeholder name이라고 한다. 사실 존 식스팩이나 존 큐는 홍길동 같은 placeholder라기보다는 장삼이사쪽에 가깝다. 영어에서 홍길동 역할을 하시는 분은 존 도(John Doe), 여성이라면 제인 도(Jane Doe)이시다. 존 도와 제인 도 커플은 장삼이사와는 달리, 우아하게도 주로 사건이나 법률 관련 서류에 단골로 등장한다. 해당인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이름을 의도적으로 숨겨야 할 때 사용되는 가짜 이름이다. 자, 홍길동이 어쨌든 장삼이사가 어쨌든, 국가 지도자는 좀 난 놈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내가 믿고 따르려면 나보다는 좀 똑똑하고 현명하고 비전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설령 국민이 개쉐라도 지도자는 개쉐가 아닌 사람이 나와야지, 개쉐 중 하나가 지도자 하겠다고 나와서 "이제 드디어 개쉐 국민도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을 갖게 됐습니다"라는 말이나 뇌까려서야 되겠는가. 다시 페일린으로 돌아가 보자. 이날 라디오 대담에서 페일린이 스스로 식스팩이라고 주장한 것은 물론 자기가 일반 국민과 다름없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그는 최근의 금융 위기 여파로 자신의 가족도 지난 1주일 동안 2만 달러 손해를 봤다고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즉 "이번 사태로 우리도 큰 손해를 봤다구요,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서민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어한 것이다. 주지사인 자신과 남편의 수입을 합해 연수입이 20만 달러가 넘는 페일린은 36만 달러 정도의 각종 투자 계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연수입 2억5천만원에 4억원 이상의 금융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 일반 식스팩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 압권이 있다. 지금의 금융 사태가 페일린 자신의 재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2만 달러 손해라는 금액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미국이 엄청난 금융 위기에 빠져 있잖아요." 그 위기가 대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겠지. 오늘밤 바이든과의 90분 쌩쇼에서는 또 Geez, Heck 해가며 어떤 활극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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