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공자도 모르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선배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삼겹살집에 앉아서 소주잔 두 개를 채우자마자 선배가 말했다.
"어드바이저를 잘 만나야 해!"
내가 물었다. "어드바이저요? 무슨, 조언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따로 있는 모양이죠, 미국 학교는?"
선배가 한숨을 잠깐 쉬고 말했다. "어드바이저! 지도교수 말야."
선구적 환경윤리학자로 잘 알려진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1887년생이고 그의 제자 랄프 킹(Ralph T. King)은 1900년생이다. 13년 연배 차이가 나는 사제지간이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이 알도 레오폴드, 오른쪽이 랄프 킹이다.

한두 해 전에, 학교 도서관의 문서 디지털화 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 때 팀이 주력하던 일은 알도 레오폴드의 미발표 육필 원고와 기록을 디지털 문서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레오폴드가 직접 쓴 원고나 편지를 어루만지며 정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스승 레오폴드와 제자 킹이 20년 가까이 주고받은 편지를 디지털화하는 것이었다. 작업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편지지에 타이핑되거나 잉크로 쓰인 편지를 조심스럽게 정리해서 한 장 한 장 대형 스캐너에 올려놓고 스캔을 한다. 스캔된 편지를 이미지 에디팅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밝기, 색감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저장한다. 옛날 편지지는 지나치게 얇거나 지나치게 두껍다. 따라서 이미지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값으로 조정을 해 줘야 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때,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는 축에 속하므로 작업 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게다가 꼼꼼함은 내 미들 네임이 아니던가. 여하튼 신속 정확하게 일을 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작업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편지지를 잘 펼쳐서 스캔을 하기 전에, 하나하나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약간의 문자 중독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몰랐다. 더구나 80년 가까이 된 옛날에, 시대를 앞서 산 사상가가 손수 써서 주고받던 편지가 아닌가. 게다가 치밀한 관찰과 사유로부터 보석 같은 글을 엮어낸 절세 문장가이기도 하고. 레오폴드의 체취가 묻어나올 것 같은 편지를 그저 윙윙 스캔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을 읽는 것은 내가 급료를 받으며 수행해야 할 노동에 포함되지 않은 일이었다. 작업 속도가 느려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수퍼바이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편지를 읽어보는 재미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사제 관계
레오폴드와 킹의 관계는 1929년부터 시작된다. 레오폴드가 한 사설 단체로부터 연구 기금을 받아내고, 킹이 이 기금으로 연봉 3천 달러의 장학금을 받는 4명의 학생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당시 29세였던 킹은 제1차 세계전쟁에서 돌아온 뒤 유타 주의 대학을 들어가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상태였다. 킹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장학금이 미네소타 대학을 경유해 주어졌으므로, 킹은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그 대학과 협조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이 모든 과정은 레오폴드가 직접 관여하고 조정한 듯하다. 그러니까, 킹은 레오폴드의 제자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 관심사가 맞아서 레오폴드의 추천을 받아 연구를 시작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 셈이다.
어드바이저(지도교수)와 어드바이지(지도학생)의 관계가, 수업을 듣고 자주 만나고 밥도 같이 먹고 함께 지지고볶는 것이라면 레오폴드와 킹은 지도교수-학생 관계가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킹은 레오폴드가 있던 위스콘신 대학을 다녔거나 수업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편지에 나타난 둘 간의 관계를 보면, 선학이 후학에게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는 가장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어드바이저-어드바이지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1930년, 둘 사이의 편지는 새로 나온 책이나 연구 논문을 알려주고 (당시는 복사가 귀했을 터이므로) 서로 돌려보고 연구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필드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숫적으로는 스승 레오폴드가 보내는 편지가 많았는데, 레오폴드가 지시나 조언을 담은 짤막한 편지를 서너 차례 보내면 킹이 조금 긴 답장을 한 번 보내는 형식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모두 정갈하게 타이핑되고 끝에 사인이 되어 있었다. 특히 레오폴드의 편지는 구술이나 필사본을 비서가 타이핑한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필사본
참 건전하고 건설적인 사제 관계군... 할 즈음이다. 1931년 2월에 갑자기 레오폴드가 직접 손으로 쓴 짤막한 편지가 나타났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이 편지를 스캐너 위에 올려놓고 한참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Miss King이란 제자 킹의 부인을 말하는 듯 한데, 그가 크게 아프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 부인이 아니라 엄마를 말하는 것인가? 누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일까. 그 다음 편지부터 더욱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킹의 답장은 일주일쯤 지난 3월2일자로 나왔다.

킹은 이렇게 쓰는 듯 마는 듯 짤막하게 한 단락 써 놓고, 한 쪽짜리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야생 동물 관찰 연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꽉 채웠다. 그의 답장만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독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 편지는 다시 일주일이 지난 3월10일 킹이 보낸 것이었다. 킹은 논문 출판과 관련한 내용을 레오폴드에게 보고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공개된 갈등과 제자의 항변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3월11일, 스승 레오폴드가 미국생물연구협회 폴 레딩턴 회장에게 쓴 편지가 나왔다. 레딩턴은 킹이 포함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비롯해 전체 기금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 제자 킹 개인에 관한 것이라서, 몰래 훔쳐 읽는 나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아하... 지난 2월에 제자 킹의 아이가 죽었구나. 그리고 킹의 부인도 무척 아팠구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미네소타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무엇이며, 그린 박사는 대체 누구인가?
레오폴드는 이 편지를 보낸 그 다음날인 3월12일자로 킹에게 편지를 한 장 보내는데, 여기에는 이런 모종의 사태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저 킹이 보낸 저널 제출용 페이퍼를 보고 몇 가지 점을 지적하는 것이 전부다. 이상하다.
다시 다음날인 3월13일, 킹이 레오폴드에게 보내는 편지는 연구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대학원 장학금의 수혜자로 자신의 학생 하나를 추천하는 내용이다. 추천하는 학생의 성격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인데, 이건 그냥 건너뛰고.
놀랍게도 같은 날인 3월13일자로 킹이 편지 한 통을 더 쓴다. 앞의 편지를 쓰고 나서 바로 또 쓴 듯하다. 이 편지는 레오폴드-킹 서한 콜렉션 중에서 킹이 스승에게 보낸 가장 장문의 편지로, 다섯 장이나 된다. 뭔가 할 말이 아주 많은 듯 했다.

이렇게 계속되는 편지는, 그린 박사가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얼마나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갈등의 내용이 좀팽이 같은 학자 때문에 공동 연구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의 전형인 것처럼 보였다. 자기 것 챙기려고 자잘한 데 목숨 걸면서 남 괴롭히는 작자들은 어디나 있는 것이다.
당시 킹은 외부 기금을 받으며 미네소타 대학과 협조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미네소타 대학은 기금을 유치한 대신 킹의 연구를 전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킹은 수업을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했다. 말하자면, 유능한 젊은 학자가 레오폴드의 후광까지 받으며 커나가기 시작하자 견제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당사자는 그린 박사였다.
킹은 편지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글 한 줄 한 줄에서 킹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오죽 답답하고 억울했으면 그간 벌어진 일을 날짜별로 시시콜콜히 하나하나 까밝혀 놓았을까. 말미에 쓴 말은, 공개적으로 그린 박사를 들이받고 일을 확대해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말이다. 젊은 학자다운 의기지만, 만일 그가 옳다고 해도 그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킹이 조금 더 살아보면 잘 알게 되겠지만, 세상은 옳은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대개 힘 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공부하는 작자들이 지지고볶는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긴, 그런 줄 알면서도 부딪치는 것이 젊은 힘의 미덕이라 할 것이다.
제자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 스승
결국 레오폴드가 나섰다. 그는 킹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갈등이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자 몸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5월 초, 기차를 타고 하루 거리를 달려 올라갔다.
레오폴드는 미네소타에서 여덟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난 셈이다. 그는 딱 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바로 킹이었다. 제자 때문에 달려 올라갔으면서도 왜 제자를 만나지 않았는가? 그가 킹을 비호한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킹을 싸고 돌면서 문제에 개입한다면 일은 더욱 꼬일 것이며, 결국 킹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다. 현명한 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폴드는 이 여행에서, 그린 박사의 적대감(antagonism)이 킹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학과에 대한 것임을 발견했다. 레오폴드는 그린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번 방문에서 킹을 만나지도 않았으며 그를 대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시콜콜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킹이 마음이 무척 상한 것 같고, 당신이 킹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린 박사는 그 자신이 외부로부터 연구 일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어서 좀 다그쳤으며, 자신이 불신을 가진 대상은 킹이 아니라 킹에게 연구 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학과라고 대답했다. 레오폴드는 그린의 이 말을 킹에 대한 판단의 철회나 사과로 받아들였다. 레오폴드는 그린에게 물었다. "당신의 말을 킹에게 그대로 전해도 되겠습니까?" 그린은 좋다고 대답했으며, 레오폴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레오폴드는 갈등이 확대되면 킹이 관련된 연구 기금으로 수행되는 프로젝트에서 그린 박사가 배제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경고했다. 어쨌든 이 기금의 코디네이터는 레오폴드다. 그리고 킹에 대해 기분이 나쁘고 불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퍼뜨리지 말고 우선 당사자인 킹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린의 불만이 미네소타에서 워싱턴 DC까지 갔다가 자신의 귀에 들어온 사정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레오폴드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킹에게 보낸 5월7일자 편지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 편지는 그 서두에 "PERSONAL" 이라고 대문자로 쓰여 있고 밑줄까지 그어져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할 아주 개인적인 편지라는 뜻이다.

레오폴드의 편지는 그 다음 부분이 더욱 인상적이다. 그는 계속해서 썼다.
프로젝트 핵심 구성원 간의 갈등이 확대된다면 연구 자체가 영향을 받을 것임이 뻔했다. 레오폴드는 갈등이 공개적으로 확대되면 연구 기금을 대는 외부 단체가 상황을 마뜩지 않게 보게 되며, 결국 누구를 위해서도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음을 환기시켰다.
권력자를 들이받으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레오폴드가 걱정한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킹이 그린 박사와의 갈등을 확 터뜨려 버리면, 그가 미네소타에서 교수 자리를 잡는 데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킹이 이곳에서 쌓아온 실적과 관계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만일 이번 일이 잘 끝난다면 그린 박사를 다루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레오폴드가 보기에, 그린 박사는 천성이 혼자 잘나서 일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와 사는 현명한 방법이란, 최대한 협조해주고 연구 대표자 자리도 그에게 주는 대신 괴롭힘을 당하는 상태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레오폴드의 편지를 보면, 그린 박사는 학과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 연구에 대한 욕심 따위로 주변과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들이받으면 결과에 관계 없이 받는 사람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 레오폴드의 걱정이었다.
어쨌든 어드바이저 레오폴드는 킹에게 이런 어드바이스를 해주면서도, 판단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과연 킹이 이를 받아들였을까. 레오폴드를 신뢰하는 킹은, 선생님이 조언하면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긴 했다.
편지가 좀 뜸하다가, 7월6일자로 킹이 레오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선택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킹은 "그린 박사와 저 사이에 존재했던 모든 오해가 해소되고, 상호 협조를 어렵게 했던 문제들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썼다. 아하... 결국 레오폴드가 조언한 대로 일이 풀어진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은 그가 미네소타로 달려가 그린 박사를 비롯해 관계자 모두를 만나며 상황을 정리해 둔 덕분이다.
이 편지에서 킹은 레오폴드가 다녀간 이후 그린 박사와 만나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썼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편지의 사본을 그린 박사에게도 보냈다는 점이다. 즉 레오폴드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그린을 "CC"한 것이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매듭지으려 한 의지가 읽힌다.
레오폴드는 8월7일자로 킹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질이야 어떻든 그린이 세운 이론은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업적이라고 치하했다. 그리고, 그린과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 점은, 그린의 학문적 업적에 접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로부터 꼬장부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강조한 것으로 읽혔다.
이렇게 사태는 마무리된다. 이 미네소타 갈등은 레오폴드와 킹의 서신 왕래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두 사람이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결국 사태를 큰 물의없이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제자 킹에 대한 레오폴드의 관심과 애정, 스승에 대한 킹의 전폭적인 신뢰, 그리고 대가답게 현명하게 사태를 마무리한 레오폴드의 솜씨다.
편지의 짝이 딱딱 맞는 이유는
그 뒤로 둘 사이의 편지는 뜸해진다. 다음해인 1932년 7월1일, 레오폴드는 킹에게, 그의 연구가 잘 진행되어 가는지, 그 해에 학위(아마 박사 학위)를 마치게 되는지 묻는 편지를 보낸다. 그 뒤로, 학문적 관심사보다는 가족에 대한 안부 편지가 가끔 오간다. 이것은, 킹이 이미 자기 분야를 갖고 독자적인 학자로 생활하기 시작했으므로 '어드바이스' 할 필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리라.
그 뒤에 킹이 어떻게 되는지는 편지로만은 알기 어렵다. 레오폴드가 염려한 대로 미네소타에서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학교나 기관에 근무하게 되었는지 불확실하다. 어쨌든 킹은 미네소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는 1937년에 미네소타를 떠나, 시라큐스에 있는 뉴욕 주립대의 삼림동물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은퇴하여 아리조나로 내려가기 전까지 평생 이 곳에서 가르치고 연구한다.
레오폴드는 1948년에 사망했으며, 킹은 1977년에 사망했다. 인터넷에서 킹을 찾아도 관련 자료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워낙 오래 전의 인물이라 그럴 것이다. 학회지 Wildlife Society Bulletin 1977년 겨울호에 실린 킹의 부고 기사 정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부고 기사 링크의 본문은 저널 구독자에게만 열린다.)
자, 그럼 레오폴드와 킹이 주고 받은 편지는 어떻게 이렇게 짝이 잘 맞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을까. 편지 콜렉션이란 본질적으로 반쪽일 수밖에 없다. 보내는 사람이 사본을 만들어 두지 않는 이상, 한 쪽의 것만 보관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레오폴드와 킹의 서신은 모두 원본이다.
내가 작업한 레오폴드-킹 서신 콜렉션의 맨 마지막 편지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이 마지막 편지는 1979년에 쓰인 것으로, 위스콘신의 한 교수가 랄프 킹의 부인인 킹 여사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다. 1932년 2월에 아이를 잃고 자신도 크게 아팠던 바로 그 Miss King이다. 편지는 킹 여사가 남편의 개인 기록을 대학에 기부한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1977년 남편이 사망한 뒤, 킹 여사는 남편과 레오폴드가 주고 받은 편지(즉 레오폴드에게서 받은 편지)를 비롯한 개인 기록을 대학에 기부했으며, 전문가가 이미 있던 레오폴드의 기록과 짝을 맞추어서 스토리가 통하게끔 구성해 놓은 것이다.
아아, 원본 자료(primary source)의 가치란 이와 같은 것이구나. 제자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이 겪은 황망함, 어이없는 모함을 받고 편지지를 빽빽히 채운 제자의 분노, 그가 다칠까봐 노심초사하는 스승의 근심 등이, 바로 그들의 손을 거쳤을 편지지를 통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80년 전에 한 스승과 한 제자 사이에 오갔던 도타운 정이 마치 현재의 그것처럼 생생하다.
- 이미지: 맨 처음의 레오폴드 사진은 레오폴드 재단, 킹 사진은 위에 링크한 저널의 부고 기사에서. 편지 이미지들은 내가 작업할 때, 내용이 참 인상 깊어서 나중에 찬찬히 볼 요량으로 몰래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해 둔 것이다. 대개 문자 중독자의 하는 짓이란 게 이렇다. 지금은 모든 이미지가 인터넷 알카이브에 공개되어 있으니 상관없지만.
- 제목은 물론 정비석의 명문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한 부분에서 따온 것.
"어드바이저를 잘 만나야 해!"
내가 물었다. "어드바이저요? 무슨, 조언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따로 있는 모양이죠, 미국 학교는?"
선배가 한숨을 잠깐 쉬고 말했다. "어드바이저! 지도교수 말야."
선구적 환경윤리학자로 잘 알려진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1887년생이고 그의 제자 랄프 킹(Ralph T. King)은 1900년생이다. 13년 연배 차이가 나는 사제지간이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이 알도 레오폴드, 오른쪽이 랄프 킹이다.

한두 해 전에, 학교 도서관의 문서 디지털화 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 때 팀이 주력하던 일은 알도 레오폴드의 미발표 육필 원고와 기록을 디지털 문서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레오폴드가 직접 쓴 원고나 편지를 어루만지며 정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스승 레오폴드와 제자 킹이 20년 가까이 주고받은 편지를 디지털화하는 것이었다. 작업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편지지에 타이핑되거나 잉크로 쓰인 편지를 조심스럽게 정리해서 한 장 한 장 대형 스캐너에 올려놓고 스캔을 한다. 스캔된 편지를 이미지 에디팅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밝기, 색감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저장한다. 옛날 편지지는 지나치게 얇거나 지나치게 두껍다. 따라서 이미지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값으로 조정을 해 줘야 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때,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는 축에 속하므로 작업 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게다가 꼼꼼함은 내 미들 네임이 아니던가. 여하튼 신속 정확하게 일을 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작업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편지지를 잘 펼쳐서 스캔을 하기 전에, 하나하나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약간의 문자 중독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몰랐다. 더구나 80년 가까이 된 옛날에, 시대를 앞서 산 사상가가 손수 써서 주고받던 편지가 아닌가. 게다가 치밀한 관찰과 사유로부터 보석 같은 글을 엮어낸 절세 문장가이기도 하고. 레오폴드의 체취가 묻어나올 것 같은 편지를 그저 윙윙 스캔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을 읽는 것은 내가 급료를 받으며 수행해야 할 노동에 포함되지 않은 일이었다. 작업 속도가 느려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수퍼바이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편지를 읽어보는 재미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사제 관계
레오폴드와 킹의 관계는 1929년부터 시작된다. 레오폴드가 한 사설 단체로부터 연구 기금을 받아내고, 킹이 이 기금으로 연봉 3천 달러의 장학금을 받는 4명의 학생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당시 29세였던 킹은 제1차 세계전쟁에서 돌아온 뒤 유타 주의 대학을 들어가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상태였다. 킹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장학금이 미네소타 대학을 경유해 주어졌으므로, 킹은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그 대학과 협조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이 모든 과정은 레오폴드가 직접 관여하고 조정한 듯하다. 그러니까, 킹은 레오폴드의 제자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 관심사가 맞아서 레오폴드의 추천을 받아 연구를 시작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 셈이다.
어드바이저(지도교수)와 어드바이지(지도학생)의 관계가, 수업을 듣고 자주 만나고 밥도 같이 먹고 함께 지지고볶는 것이라면 레오폴드와 킹은 지도교수-학생 관계가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킹은 레오폴드가 있던 위스콘신 대학을 다녔거나 수업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편지에 나타난 둘 간의 관계를 보면, 선학이 후학에게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는 가장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어드바이저-어드바이지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1930년, 둘 사이의 편지는 새로 나온 책이나 연구 논문을 알려주고 (당시는 복사가 귀했을 터이므로) 서로 돌려보고 연구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필드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숫적으로는 스승 레오폴드가 보내는 편지가 많았는데, 레오폴드가 지시나 조언을 담은 짤막한 편지를 서너 차례 보내면 킹이 조금 긴 답장을 한 번 보내는 형식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모두 정갈하게 타이핑되고 끝에 사인이 되어 있었다. 특히 레오폴드의 편지는 구술이나 필사본을 비서가 타이핑한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필사본
참 건전하고 건설적인 사제 관계군... 할 즈음이다. 1931년 2월에 갑자기 레오폴드가 직접 손으로 쓴 짤막한 편지가 나타났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랄프군에게 불행한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네. Miss King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게. 그녀가 곧 회복하기를 바라네. 얼마동안 두 사람에게 시련이 지나가야 할 모양일세. 내가 함께 나누어 질 수 있는 짐이라면 좋으련만 그렇질 못해서 안타깝네. 알도 레오폴드 |

나는 이 편지를 스캐너 위에 올려놓고 한참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Miss King이란 제자 킹의 부인을 말하는 듯 한데, 그가 크게 아프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 부인이 아니라 엄마를 말하는 것인가? 누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일까. 그 다음 편지부터 더욱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킹의 답장은 일주일쯤 지난 3월2일자로 나왔다.
| 레오폴드 선생님, 일주일 전에 보내주신 친절한 편지 감사합니다. Mrs. 킹과 저 모두 당신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빨리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

킹은 이렇게 쓰는 듯 마는 듯 짤막하게 한 단락 써 놓고, 한 쪽짜리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야생 동물 관찰 연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꽉 채웠다. 그의 답장만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독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 편지는 다시 일주일이 지난 3월10일 킹이 보낸 것이었다. 킹은 논문 출판과 관련한 내용을 레오폴드에게 보고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공개된 갈등과 제자의 항변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3월11일, 스승 레오폴드가 미국생물연구협회 폴 레딩턴 회장에게 쓴 편지가 나왔다. 레딩턴은 킹이 포함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비롯해 전체 기금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 제자 킹 개인에 관한 것이라서, 몰래 훔쳐 읽는 나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 레드(레딩턴), 미네소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킹의 말을 직접 듣고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쓸 때까지 킹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최근에 아기를 잃었으며, 그 부인은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린(Green) 박사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런 사정 때문에 일이 좀 지연되었을 겁니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킹의 이야기부터 들어야겠습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 매우 유감입니다. 저는 그린 박사의 업적을 존중하며, 한 달 전쯤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완벽한 조화와 협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만일 킹이 스스로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내가 바로 쫓아 올라가겠습니다만, 나는 킹이 잘 풀어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알도 레오폴드 |
아하... 지난 2월에 제자 킹의 아이가 죽었구나. 그리고 킹의 부인도 무척 아팠구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미네소타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무엇이며, 그린 박사는 대체 누구인가?
레오폴드는 이 편지를 보낸 그 다음날인 3월12일자로 킹에게 편지를 한 장 보내는데, 여기에는 이런 모종의 사태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저 킹이 보낸 저널 제출용 페이퍼를 보고 몇 가지 점을 지적하는 것이 전부다. 이상하다.
다시 다음날인 3월13일, 킹이 레오폴드에게 보내는 편지는 연구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대학원 장학금의 수혜자로 자신의 학생 하나를 추천하는 내용이다. 추천하는 학생의 성격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인데, 이건 그냥 건너뛰고.
놀랍게도 같은 날인 3월13일자로 킹이 편지 한 통을 더 쓴다. 앞의 편지를 쓰고 나서 바로 또 쓴 듯하다. 이 편지는 레오폴드-킹 서한 콜렉션 중에서 킹이 스승에게 보낸 가장 장문의 편지로, 다섯 장이나 된다. 뭔가 할 말이 아주 많은 듯 했다.
| 레오폴드 선생님, 지금 막 선생님께서 11일에 제게 보내주신 편지를 읽었습니다. (기록에는 없지만, 레오폴드는 킹에게, 그린이 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간단히 적은 편지를 보낸 모양이다.) 저와 그린 박사 간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우리 둘 사이에 그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린 박사가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에 관해: 그는 우리가 점심을 먹으며 토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제가 자신을 찾아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점심 토론은 1월26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가까운 미래에 그를 찾아가서 필요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정도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당시 제가 좀 바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린 박사는 자신도 바쁘다며 좀 천천히 보자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천천히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2월11일에 저는 그린 박사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만날 수 없나 물어봤습니다. 이날 만남에서 그린 박사는 난데없이, 제가 그동안 연락을 주지 않아서 자기랑 공동으로 연구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너무 지체했다고 생각하신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며, 지금 당장 공동 연구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잡다한 이야기를 했는데, 유일하게 결론이 난 것은, 우리가 각자 계획서를 써 보고, 다음에 다시 만나서 두 계획서를 비교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일정을 어떻게 짜야 할지, 데이터에서 어떤 부분을 논문으로 쓰고 출판할지 등을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린 박사는 공동 연구에 착수하기 앞서,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출판하는 데 관련한 세세한 부분 모두 합의서를 써 놓아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저는 동의해 주었습니다. 1월26일부터 2월11일까지 2주와 이틀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월11일에 만났을 때도 그린 박사는 이 연구의 주요 관계자인 스튜어트가 자리에 없는 때가 많으므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내가 정말 뭉기적댄다고 생각했다면,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써서 부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저를 내몰자는 뜻으로밖에 이해가 안 됩니다. 2월11일에 만났을 때, 각자 계획서를 써서 13일이나 14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2월13일에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이가 죽었습니다. 장례식은 16일이었습니다. 그 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저는 그린 박사에게 전화를 해서 약속을 다시 잡자고 말했습니다. 19일쯤 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17일에 그린 박사의 비서가 전화를 해서, 그가 2주일 가량 출장을 가니 돌아와서 전화를 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 뒤로 그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

이렇게 계속되는 편지는, 그린 박사가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얼마나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갈등의 내용이 좀팽이 같은 학자 때문에 공동 연구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의 전형인 것처럼 보였다. 자기 것 챙기려고 자잘한 데 목숨 걸면서 남 괴롭히는 작자들은 어디나 있는 것이다.
당시 킹은 외부 기금을 받으며 미네소타 대학과 협조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미네소타 대학은 기금을 유치한 대신 킹의 연구를 전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킹은 수업을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했다. 말하자면, 유능한 젊은 학자가 레오폴드의 후광까지 받으며 커나가기 시작하자 견제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당사자는 그린 박사였다.
킹은 편지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 이 편지의 사본을 당사자인 그린 박사를 비롯해 이 공동 연구의 관련자인 누구, 누구, 누구, 누구에게 모두 보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먼저 여쭤보고 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저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이 편지에 쓰인 모든 것은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작성된 것이며, 한치의 거짓도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
글 한 줄 한 줄에서 킹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오죽 답답하고 억울했으면 그간 벌어진 일을 날짜별로 시시콜콜히 하나하나 까밝혀 놓았을까. 말미에 쓴 말은, 공개적으로 그린 박사를 들이받고 일을 확대해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말이다. 젊은 학자다운 의기지만, 만일 그가 옳다고 해도 그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킹이 조금 더 살아보면 잘 알게 되겠지만, 세상은 옳은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대개 힘 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공부하는 작자들이 지지고볶는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긴, 그런 줄 알면서도 부딪치는 것이 젊은 힘의 미덕이라 할 것이다.
제자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 스승
결국 레오폴드가 나섰다. 그는 킹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갈등이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자 몸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5월 초, 기차를 타고 하루 거리를 달려 올라갔다.
레오폴드는 미네소타에서 여덟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난 셈이다. 그는 딱 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바로 킹이었다. 제자 때문에 달려 올라갔으면서도 왜 제자를 만나지 않았는가? 그가 킹을 비호한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킹을 싸고 돌면서 문제에 개입한다면 일은 더욱 꼬일 것이며, 결국 킹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다. 현명한 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폴드는 이 여행에서, 그린 박사의 적대감(antagonism)이 킹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학과에 대한 것임을 발견했다. 레오폴드는 그린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번 방문에서 킹을 만나지도 않았으며 그를 대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시콜콜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킹이 마음이 무척 상한 것 같고, 당신이 킹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린 박사는 그 자신이 외부로부터 연구 일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어서 좀 다그쳤으며, 자신이 불신을 가진 대상은 킹이 아니라 킹에게 연구 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학과라고 대답했다. 레오폴드는 그린의 이 말을 킹에 대한 판단의 철회나 사과로 받아들였다. 레오폴드는 그린에게 물었다. "당신의 말을 킹에게 그대로 전해도 되겠습니까?" 그린은 좋다고 대답했으며, 레오폴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레오폴드는 갈등이 확대되면 킹이 관련된 연구 기금으로 수행되는 프로젝트에서 그린 박사가 배제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경고했다. 어쨌든 이 기금의 코디네이터는 레오폴드다. 그리고 킹에 대해 기분이 나쁘고 불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퍼뜨리지 말고 우선 당사자인 킹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린의 불만이 미네소타에서 워싱턴 DC까지 갔다가 자신의 귀에 들어온 사정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레오폴드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킹에게 보낸 5월7일자 편지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 편지는 그 서두에 "PERSONAL" 이라고 대문자로 쓰여 있고 밑줄까지 그어져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할 아주 개인적인 편지라는 뜻이다.

레오폴드의 편지는 그 다음 부분이 더욱 인상적이다. 그는 계속해서 썼다.
| "랄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훌륭한 modus vivendi(타협)는 아니겠지만, 그게 최선의 수라고 생각하네. 나는 자네에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코 아닐세. (이 문장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지는 전적으로 자네가 결정해야 할 일이네. 만일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OO에게 바로 달려가서 모든 일을 말해서, 그가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게. 만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나에게 먼저 알려주게. 내가 자네에게 강요하고 싶은 것은 구체적인 방안이 아니라, 어떤 결정을 내리든 먼저 마음을 좀 가라앉히라는 점일세." |
프로젝트 핵심 구성원 간의 갈등이 확대된다면 연구 자체가 영향을 받을 것임이 뻔했다. 레오폴드는 갈등이 공개적으로 확대되면 연구 기금을 대는 외부 단체가 상황을 마뜩지 않게 보게 되며, 결국 누구를 위해서도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음을 환기시켰다.
권력자를 들이받으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레오폴드가 걱정한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킹이 그린 박사와의 갈등을 확 터뜨려 버리면, 그가 미네소타에서 교수 자리를 잡는 데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킹이 이곳에서 쌓아온 실적과 관계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만일 이번 일이 잘 끝난다면 그린 박사를 다루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레오폴드가 보기에, 그린 박사는 천성이 혼자 잘나서 일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와 사는 현명한 방법이란, 최대한 협조해주고 연구 대표자 자리도 그에게 주는 대신 괴롭힘을 당하는 상태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레오폴드의 편지를 보면, 그린 박사는 학과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 연구에 대한 욕심 따위로 주변과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들이받으면 결과에 관계 없이 받는 사람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 레오폴드의 걱정이었다.
어쨌든 어드바이저 레오폴드는 킹에게 이런 어드바이스를 해주면서도, 판단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과연 킹이 이를 받아들였을까. 레오폴드를 신뢰하는 킹은, 선생님이 조언하면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긴 했다.
편지가 좀 뜸하다가, 7월6일자로 킹이 레오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선택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킹은 "그린 박사와 저 사이에 존재했던 모든 오해가 해소되고, 상호 협조를 어렵게 했던 문제들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썼다. 아하... 결국 레오폴드가 조언한 대로 일이 풀어진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은 그가 미네소타로 달려가 그린 박사를 비롯해 관계자 모두를 만나며 상황을 정리해 둔 덕분이다.
이 편지에서 킹은 레오폴드가 다녀간 이후 그린 박사와 만나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썼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편지의 사본을 그린 박사에게도 보냈다는 점이다. 즉 레오폴드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그린을 "CC"한 것이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매듭지으려 한 의지가 읽힌다.
레오폴드는 8월7일자로 킹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질이야 어떻든 그린이 세운 이론은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업적이라고 치하했다. 그리고, 그린과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 점은, 그린의 학문적 업적에 접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로부터 꼬장부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강조한 것으로 읽혔다.
이렇게 사태는 마무리된다. 이 미네소타 갈등은 레오폴드와 킹의 서신 왕래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두 사람이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결국 사태를 큰 물의없이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제자 킹에 대한 레오폴드의 관심과 애정, 스승에 대한 킹의 전폭적인 신뢰, 그리고 대가답게 현명하게 사태를 마무리한 레오폴드의 솜씨다.
편지의 짝이 딱딱 맞는 이유는
그 뒤로 둘 사이의 편지는 뜸해진다. 다음해인 1932년 7월1일, 레오폴드는 킹에게, 그의 연구가 잘 진행되어 가는지, 그 해에 학위(아마 박사 학위)를 마치게 되는지 묻는 편지를 보낸다. 그 뒤로, 학문적 관심사보다는 가족에 대한 안부 편지가 가끔 오간다. 이것은, 킹이 이미 자기 분야를 갖고 독자적인 학자로 생활하기 시작했으므로 '어드바이스' 할 필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리라.
그 뒤에 킹이 어떻게 되는지는 편지로만은 알기 어렵다. 레오폴드가 염려한 대로 미네소타에서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학교나 기관에 근무하게 되었는지 불확실하다. 어쨌든 킹은 미네소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는 1937년에 미네소타를 떠나, 시라큐스에 있는 뉴욕 주립대의 삼림동물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은퇴하여 아리조나로 내려가기 전까지 평생 이 곳에서 가르치고 연구한다.
레오폴드는 1948년에 사망했으며, 킹은 1977년에 사망했다. 인터넷에서 킹을 찾아도 관련 자료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워낙 오래 전의 인물이라 그럴 것이다. 학회지 Wildlife Society Bulletin 1977년 겨울호에 실린 킹의 부고 기사 정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부고 기사 링크의 본문은 저널 구독자에게만 열린다.)
자, 그럼 레오폴드와 킹이 주고 받은 편지는 어떻게 이렇게 짝이 잘 맞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을까. 편지 콜렉션이란 본질적으로 반쪽일 수밖에 없다. 보내는 사람이 사본을 만들어 두지 않는 이상, 한 쪽의 것만 보관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레오폴드와 킹의 서신은 모두 원본이다.
내가 작업한 레오폴드-킹 서신 콜렉션의 맨 마지막 편지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이 마지막 편지는 1979년에 쓰인 것으로, 위스콘신의 한 교수가 랄프 킹의 부인인 킹 여사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다. 1932년 2월에 아이를 잃고 자신도 크게 아팠던 바로 그 Miss King이다. 편지는 킹 여사가 남편의 개인 기록을 대학에 기부한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1977년 남편이 사망한 뒤, 킹 여사는 남편과 레오폴드가 주고 받은 편지(즉 레오폴드에게서 받은 편지)를 비롯한 개인 기록을 대학에 기부했으며, 전문가가 이미 있던 레오폴드의 기록과 짝을 맞추어서 스토리가 통하게끔 구성해 놓은 것이다.
아아, 원본 자료(primary source)의 가치란 이와 같은 것이구나. 제자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이 겪은 황망함, 어이없는 모함을 받고 편지지를 빽빽히 채운 제자의 분노, 그가 다칠까봐 노심초사하는 스승의 근심 등이, 바로 그들의 손을 거쳤을 편지지를 통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80년 전에 한 스승과 한 제자 사이에 오갔던 도타운 정이 마치 현재의 그것처럼 생생하다.
- 이미지: 맨 처음의 레오폴드 사진은 레오폴드 재단, 킹 사진은 위에 링크한 저널의 부고 기사에서. 편지 이미지들은 내가 작업할 때, 내용이 참 인상 깊어서 나중에 찬찬히 볼 요량으로 몰래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해 둔 것이다. 대개 문자 중독자의 하는 짓이란 게 이렇다. 지금은 모든 이미지가 인터넷 알카이브에 공개되어 있으니 상관없지만.
- 제목은 물론 정비석의 명문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한 부분에서 따온 것.
태그 : 알도레오폴드




덧글
아크 2008/10/06 14:34 # 답글
아... 정말 멋드러진 사제관계입니다.잘 읽었습니다. 편집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deulpul 2008/10/06 14:56 #
스크롤의 압박을 버텨내셨군요!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에바 2008/10/06 15:30 # 답글
글 편집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덕분에 무척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사이좋은 스승을 갖지 못한 입장에선 두 사제가 굉장히 부럽네요.
deulpul 2008/10/07 07:53 #
저도 하면서 재미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작업한 포스팅이라서 고생은 희석됐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참 복이죠. 학교에서든, 인생에서든...Gilipolla 2008/10/06 15:46 # 답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문화가 다르니 이런것도 생소하지만 참 한편으론 부럽습니다.deulpul 2008/10/07 07:57 #
네, 문화도 다르지만, 시대가 다르다는 측면도 있는 듯 합니다. 뭐랄까, 도제식으로 키우는 방식에 좀 가깝다고 할까요. 제자를 대량으로 생산하지는 못해도 하나하나 공들여 키우는 모양이, 전근대적이면서도 참 인간적이라고 생각됩니다.달속토끼 2008/10/06 15:55 # 답글
정말 재미나게 읽었습니다.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eulpul 2008/10/07 07:57 #
끔찍히 긴 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2008/10/06 17:1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8/10/07 07:58 #
넵, 고맙습니다.긁적 2008/10/06 20:06 # 답글
아. 정말. 작업하면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편지군요. 가슴이 찌릿해오는 느낌입니다.정말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deulpul 2008/10/07 08:02 #
이게 아카데미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더욱 관심이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일이 지겨워서였을 수도... 하하-.Jayhawk 2008/10/06 21:11 # 삭제 답글
아아~. 제가 채링가의 비밀문서(채링크로스 84번지)를 만났던 기분과 비슷한 기분이군요. 즐겁게 읽었습니다.deulpul 2008/10/07 08:15 #
그런 작품도 있었군요. 편지만으로 책을 한 권 이끌고 나온 힘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휴... 오래 편지를 주고 받다가, 갑자기 편지가 끊기고, 이윽고 다른 사람이 보내온 편지를 받게 되는 상황... 을 견디는 일도 쉽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달속토끼 2008/10/07 22:20 #
아, 이런 책이 있었군요.말씀만 들어도 흥미롭습니다.
검색해봤더니, 책이 나오게 된 과정도 재미있군요.
책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리디 2008/10/07 08:56 # 삭제 답글
이 글이 참으로 사랑스럽게 읽혔습니다. ㅎdeulpul 2008/10/08 14:48 #
원본 편지들이 담고 있는 진솔함 때문이겠죠. 원판이 좋으면 대충 꾸며놓아도 그림이 되잖습니까.sandmeer 2008/10/07 10:38 # 답글
아 정말로 멋진 사제 관계로군요. "도제식"이라고는 해도 연구실에 우르르 처박혀 교수의 따까리(...)로 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좋은 어드바이저란 인생을 밝혀주는 등불인 것 같아요.deulpul 2008/10/08 14:57 #
정말, 등불이자 등대고 듬직한 산이죠. 잘못하면 철천지 웬수가 되기도 하지만... '따까리'로 사셨을망정 그 기간이 보람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저 지도교수 정할 때 생각이 납니다. 이건 언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자그니 2008/10/07 22:52 # 답글
...와, 정말 들풀님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사랑스러운(?) 글 읽고가네요..(응?) :)deulpul 2008/10/08 14:59 #
아니, 그럼 지금까지는 모두 밉살스러운 글이었단 말씀입니까!! 하하-.2008/10/07 23:1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8/10/08 15:00 #
오자 난 거 보니 정말 만땅이시구려-. 알찬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업무 문의할 사항이 있으니 곧 연락드리겠음.2008/10/08 09:2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8/10/08 15:01 #
바쁘다니 반갑습니다. 바빠야죠. 안 바쁘면 저처럼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바빠도 건강 조심하시고요-.2008/10/08 19:3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8/10/09 14:36 #
바쁘신 데 딴짓 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하-.유 리 2008/10/09 15:35 # 답글
아아... ..., 가슴이 뭉클해져서 읽었습니다. 수고스럽게 이렇게 정리해서 올려주셔서, 이런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른 분 말씀대로 참 사랑스럽네요.deulpul 2008/10/11 08:29 #
이제야 봤네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이뉴 2008/11/04 11:28 # 삭제 답글
예전에는 들풀님 글은 업데이트 되자마자 읽었는데 바빠서 RSS를 한번에 읽다보니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글을 참 맛깔나게 쓰신 탓에 꼭 추리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이 재능을 살려서 신춘문예 같은 곳에 응모라도 해보시는게? ㅎㅎdeulpul 2008/11/04 13:19 #
싫어욧! 괜히 낙방하고 심사위원에게 아이디어만 제공해주는 꼴이 되면 어떡합니까... 라기보다, 그런 재주는 없고 그냥 신춘만담 같은 곳이라면 혹시나... 그나저나 항상 글이 길어져서, 보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