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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공자도 모르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선배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삼겹살집에 앉아서 소주잔 두 개를 채우자마자 선배가 말했다.
"어드바이저를 잘 만나야 해!" 내가 물었다. "어드바이저요? 무슨, 조언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따로 있는 모양이죠, 미국 학교는?" 선배가 한숨을 잠깐 쉬고 말했다. "어드바이저! 지도교수 말야." 선구적 환경윤리학자로 잘 알려진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1887년생이고 그의 제자 랄프 킹(Ralph T. King)은 1900년생이다. 13년 연배 차이가 나는 사제지간이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이 알도 레오폴드, 오른쪽이 랄프 킹이다. ![]() 한두 해 전에, 학교 도서관의 문서 디지털화 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 때 팀이 주력하던 일은 알도 레오폴드의 미발표 육필 원고와 기록을 디지털 문서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레오폴드가 직접 쓴 원고나 편지를 어루만지며 정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스승 레오폴드와 제자 킹이 20년 가까이 주고받은 편지를 디지털화하는 것이었다. 작업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편지지에 타이핑되거나 잉크로 쓰인 편지를 조심스럽게 정리해서 한 장 한 장 대형 스캐너에 올려놓고 스캔을 한다. 스캔된 편지를 이미지 에디팅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밝기, 색감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저장한다. 옛날 편지지는 지나치게 얇거나 지나치게 두껍다. 따라서 이미지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값으로 조정을 해 줘야 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때,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는 축에 속하므로 작업 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게다가 꼼꼼함은 내 미들 네임이 아니던가. 여하튼 신속 정확하게 일을 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작업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편지지를 잘 펼쳐서 스캔을 하기 전에, 하나하나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약간의 문자 중독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몰랐다. 더구나 80년 가까이 된 옛날에, 시대를 앞서 산 사상가가 손수 써서 주고받던 편지가 아닌가. 게다가 치밀한 관찰과 사유로부터 보석 같은 글을 엮어낸 절세 문장가이기도 하고. 레오폴드의 체취가 묻어나올 것 같은 편지를 그저 윙윙 스캔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을 읽는 것은 내가 급료를 받으며 수행해야 할 노동에 포함되지 않은 일이었다. 작업 속도가 느려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수퍼바이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편지를 읽어보는 재미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사제 관계 레오폴드와 킹의 관계는 1929년부터 시작된다. 레오폴드가 한 사설 단체로부터 연구 기금을 받아내고, 킹이 이 기금으로 연봉 3천 달러의 장학금을 받는 4명의 학생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당시 29세였던 킹은 제1차 세계전쟁에서 돌아온 뒤 유타 주의 대학을 들어가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상태였다. 킹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장학금이 미네소타 대학을 경유해 주어졌으므로, 킹은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그 대학과 협조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이 모든 과정은 레오폴드가 직접 관여하고 조정한 듯하다. 그러니까, 킹은 레오폴드의 제자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 관심사가 맞아서 레오폴드의 추천을 받아 연구를 시작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 셈이다. 어드바이저(지도교수)와 어드바이지(지도학생)의 관계가, 수업을 듣고 자주 만나고 밥도 같이 먹고 함께 지지고볶는 것이라면 레오폴드와 킹은 지도교수-학생 관계가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킹은 레오폴드가 있던 위스콘신 대학을 다녔거나 수업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편지에 나타난 둘 간의 관계를 보면, 선학이 후학에게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는 가장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어드바이저-어드바이지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1930년, 둘 사이의 편지는 새로 나온 책이나 연구 논문을 알려주고 (당시는 복사가 귀했을 터이므로) 서로 돌려보고 연구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필드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숫적으로는 스승 레오폴드가 보내는 편지가 많았는데, 레오폴드가 지시나 조언을 담은 짤막한 편지를 서너 차례 보내면 킹이 조금 긴 답장을 한 번 보내는 형식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모두 정갈하게 타이핑되고 끝에 사인이 되어 있었다. 특히 레오폴드의 편지는 구술이나 필사본을 비서가 타이핑한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필사본 참 건전하고 건설적인 사제 관계군... 할 즈음이다. 1931년 2월에 갑자기 레오폴드가 직접 손으로 쓴 짤막한 편지가 나타났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나는 이 편지를 스캐너 위에 올려놓고 한참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Miss King이란 제자 킹의 부인을 말하는 듯 한데, 그가 크게 아프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 부인이 아니라 엄마를 말하는 것인가? 누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일까. 그 다음 편지부터 더욱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킹의 답장은 일주일쯤 지난 3월2일자로 나왔다.
![]() 킹은 이렇게 쓰는 듯 마는 듯 짤막하게 한 단락 써 놓고, 한 쪽짜리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야생 동물 관찰 연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꽉 채웠다. 그의 답장만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독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 편지는 다시 일주일이 지난 3월10일 킹이 보낸 것이었다. 킹은 논문 출판과 관련한 내용을 레오폴드에게 보고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공개된 갈등과 제자의 항변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3월11일, 스승 레오폴드가 미국생물연구협회 폴 레딩턴 회장에게 쓴 편지가 나왔다. 레딩턴은 킹이 포함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비롯해 전체 기금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 제자 킹 개인에 관한 것이라서, 몰래 훔쳐 읽는 나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아하... 지난 2월에 제자 킹의 아이가 죽었구나. 그리고 킹의 부인도 무척 아팠구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미네소타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무엇이며, 그린 박사는 대체 누구인가? 레오폴드는 이 편지를 보낸 그 다음날인 3월12일자로 킹에게 편지를 한 장 보내는데, 여기에는 이런 모종의 사태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저 킹이 보낸 저널 제출용 페이퍼를 보고 몇 가지 점을 지적하는 것이 전부다. 이상하다. 다시 다음날인 3월13일, 킹이 레오폴드에게 보내는 편지는 연구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대학원 장학금의 수혜자로 자신의 학생 하나를 추천하는 내용이다. 추천하는 학생의 성격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인데, 이건 그냥 건너뛰고. 놀랍게도 같은 날인 3월13일자로 킹이 편지 한 통을 더 쓴다. 앞의 편지를 쓰고 나서 바로 또 쓴 듯하다. 이 편지는 레오폴드-킹 서한 콜렉션 중에서 킹이 스승에게 보낸 가장 장문의 편지로, 다섯 장이나 된다. 뭔가 할 말이 아주 많은 듯 했다.
![]() 이렇게 계속되는 편지는, 그린 박사가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얼마나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갈등의 내용이 좀팽이 같은 학자 때문에 공동 연구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의 전형인 것처럼 보였다. 자기 것 챙기려고 자잘한 데 목숨 걸면서 남 괴롭히는 작자들은 어디나 있는 것이다. 당시 킹은 외부 기금을 받으며 미네소타 대학과 협조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미네소타 대학은 기금을 유치한 대신 킹의 연구를 전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킹은 수업을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했다. 말하자면, 유능한 젊은 학자가 레오폴드의 후광까지 받으며 커나가기 시작하자 견제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당사자는 그린 박사였다. 킹은 편지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글 한 줄 한 줄에서 킹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오죽 답답하고 억울했으면 그간 벌어진 일을 날짜별로 시시콜콜히 하나하나 까밝혀 놓았을까. 말미에 쓴 말은, 공개적으로 그린 박사를 들이받고 일을 확대해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말이다. 젊은 학자다운 의기지만, 만일 그가 옳다고 해도 그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킹이 조금 더 살아보면 잘 알게 되겠지만, 세상은 옳은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대개 힘 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공부하는 작자들이 지지고볶는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긴, 그런 줄 알면서도 부딪치는 것이 젊은 힘의 미덕이라 할 것이다. 제자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 스승 결국 레오폴드가 나섰다. 그는 킹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갈등이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자 몸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5월 초, 기차를 타고 하루 거리를 달려 올라갔다. 레오폴드는 미네소타에서 여덟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난 셈이다. 그는 딱 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바로 킹이었다. 제자 때문에 달려 올라갔으면서도 왜 제자를 만나지 않았는가? 그가 킹을 비호한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킹을 싸고 돌면서 문제에 개입한다면 일은 더욱 꼬일 것이며, 결국 킹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다. 현명한 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폴드는 이 여행에서, 그린 박사의 적대감(antagonism)이 킹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학과에 대한 것임을 발견했다. 레오폴드는 그린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번 방문에서 킹을 만나지도 않았으며 그를 대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시콜콜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킹이 마음이 무척 상한 것 같고, 당신이 킹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린 박사는 그 자신이 외부로부터 연구 일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어서 좀 다그쳤으며, 자신이 불신을 가진 대상은 킹이 아니라 킹에게 연구 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학과라고 대답했다. 레오폴드는 그린의 이 말을 킹에 대한 판단의 철회나 사과로 받아들였다. 레오폴드는 그린에게 물었다. "당신의 말을 킹에게 그대로 전해도 되겠습니까?" 그린은 좋다고 대답했으며, 레오폴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레오폴드는 갈등이 확대되면 킹이 관련된 연구 기금으로 수행되는 프로젝트에서 그린 박사가 배제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경고했다. 어쨌든 이 기금의 코디네이터는 레오폴드다. 그리고 킹에 대해 기분이 나쁘고 불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퍼뜨리지 말고 우선 당사자인 킹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린의 불만이 미네소타에서 워싱턴 DC까지 갔다가 자신의 귀에 들어온 사정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레오폴드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킹에게 보낸 5월7일자 편지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 편지는 그 서두에 "PERSONAL" 이라고 대문자로 쓰여 있고 밑줄까지 그어져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할 아주 개인적인 편지라는 뜻이다. ![]() 레오폴드의 편지는 그 다음 부분이 더욱 인상적이다. 그는 계속해서 썼다.
프로젝트 핵심 구성원 간의 갈등이 확대된다면 연구 자체가 영향을 받을 것임이 뻔했다. 레오폴드는 갈등이 공개적으로 확대되면 연구 기금을 대는 외부 단체가 상황을 마뜩지 않게 보게 되며, 결국 누구를 위해서도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음을 환기시켰다. 권력자를 들이받으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레오폴드가 걱정한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킹이 그린 박사와의 갈등을 확 터뜨려 버리면, 그가 미네소타에서 교수 자리를 잡는 데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킹이 이곳에서 쌓아온 실적과 관계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만일 이번 일이 잘 끝난다면 그린 박사를 다루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레오폴드가 보기에, 그린 박사는 천성이 혼자 잘나서 일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와 사는 현명한 방법이란, 최대한 협조해주고 연구 대표자 자리도 그에게 주는 대신 괴롭힘을 당하는 상태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레오폴드의 편지를 보면, 그린 박사는 학과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 연구에 대한 욕심 따위로 주변과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들이받으면 결과에 관계 없이 받는 사람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 레오폴드의 걱정이었다. 어쨌든 어드바이저 레오폴드는 킹에게 이런 어드바이스를 해주면서도, 판단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과연 킹이 이를 받아들였을까. 레오폴드를 신뢰하는 킹은, 선생님이 조언하면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긴 했다. 편지가 좀 뜸하다가, 7월6일자로 킹이 레오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선택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킹은 "그린 박사와 저 사이에 존재했던 모든 오해가 해소되고, 상호 협조를 어렵게 했던 문제들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썼다. 아하... 결국 레오폴드가 조언한 대로 일이 풀어진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은 그가 미네소타로 달려가 그린 박사를 비롯해 관계자 모두를 만나며 상황을 정리해 둔 덕분이다. 이 편지에서 킹은 레오폴드가 다녀간 이후 그린 박사와 만나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썼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편지의 사본을 그린 박사에게도 보냈다는 점이다. 즉 레오폴드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그린을 "CC"한 것이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매듭지으려 한 의지가 읽힌다. 레오폴드는 8월7일자로 킹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질이야 어떻든 그린이 세운 이론은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업적이라고 치하했다. 그리고, 그린과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 점은, 그린의 학문적 업적에 접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로부터 꼬장부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강조한 것으로 읽혔다. 이렇게 사태는 마무리된다. 이 미네소타 갈등은 레오폴드와 킹의 서신 왕래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두 사람이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결국 사태를 큰 물의없이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제자 킹에 대한 레오폴드의 관심과 애정, 스승에 대한 킹의 전폭적인 신뢰, 그리고 대가답게 현명하게 사태를 마무리한 레오폴드의 솜씨다. 편지의 짝이 딱딱 맞는 이유는 그 뒤로 둘 사이의 편지는 뜸해진다. 다음해인 1932년 7월1일, 레오폴드는 킹에게, 그의 연구가 잘 진행되어 가는지, 그 해에 학위(아마 박사 학위)를 마치게 되는지 묻는 편지를 보낸다. 그 뒤로, 학문적 관심사보다는 가족에 대한 안부 편지가 가끔 오간다. 이것은, 킹이 이미 자기 분야를 갖고 독자적인 학자로 생활하기 시작했으므로 '어드바이스' 할 필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리라. 그 뒤에 킹이 어떻게 되는지는 편지로만은 알기 어렵다. 레오폴드가 염려한 대로 미네소타에서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학교나 기관에 근무하게 되었는지 불확실하다. 어쨌든 킹은 미네소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는 1937년에 미네소타를 떠나, 시라큐스에 있는 뉴욕 주립대의 삼림동물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은퇴하여 아리조나로 내려가기 전까지 평생 이 곳에서 가르치고 연구한다. 레오폴드는 1948년에 사망했으며, 킹은 1977년에 사망했다. 인터넷에서 킹을 찾아도 관련 자료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워낙 오래 전의 인물이라 그럴 것이다. 학회지 Wildlife Society Bulletin 1977년 겨울호에 실린 킹의 부고 기사 정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부고 기사 링크의 본문은 저널 구독자에게만 열린다.) 자, 그럼 레오폴드와 킹이 주고 받은 편지는 어떻게 이렇게 짝이 잘 맞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을까. 편지 콜렉션이란 본질적으로 반쪽일 수밖에 없다. 보내는 사람이 사본을 만들어 두지 않는 이상, 한 쪽의 것만 보관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레오폴드와 킹의 서신은 모두 원본이다. 내가 작업한 레오폴드-킹 서신 콜렉션의 맨 마지막 편지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이 마지막 편지는 1979년에 쓰인 것으로, 위스콘신의 한 교수가 랄프 킹의 부인인 킹 여사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다. 1932년 2월에 아이를 잃고 자신도 크게 아팠던 바로 그 Miss King이다. 편지는 킹 여사가 남편의 개인 기록을 대학에 기부한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1977년 남편이 사망한 뒤, 킹 여사는 남편과 레오폴드가 주고 받은 편지(즉 레오폴드에게서 받은 편지)를 비롯한 개인 기록을 대학에 기부했으며, 전문가가 이미 있던 레오폴드의 기록과 짝을 맞추어서 스토리가 통하게끔 구성해 놓은 것이다. 아아, 원본 자료(primary source)의 가치란 이와 같은 것이구나. 제자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이 겪은 황망함, 어이없는 모함을 받고 편지지를 빽빽히 채운 제자의 분노, 그가 다칠까봐 노심초사하는 스승의 근심 등이, 바로 그들의 손을 거쳤을 편지지를 통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80년 전에 한 스승과 한 제자 사이에 오갔던 도타운 정이 마치 현재의 그것처럼 생생하다. - 이미지: 맨 처음의 레오폴드 사진은 레오폴드 재단, 킹 사진은 위에 링크한 저널의 부고 기사에서. 편지 이미지들은 내가 작업할 때, 내용이 참 인상 깊어서 나중에 찬찬히 볼 요량으로 몰래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해 둔 것이다. 대개 문자 중독자의 하는 짓이란 게 이렇다. 지금은 모든 이미지가 인터넷 알카이브에 공개되어 있으니 상관없지만. - 제목은 물론 정비석의 명문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한 부분에서 따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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