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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근년의 많은 종류의 글이 다른 글을 해설하고, 끝에 가서 "모모의 글은 이러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식으로 끝납니다. 아주 공식이 되어 있지요. 이런 글에서 필자는 한계를 꿰뚫어 보았으니, 비판을 받는 필자보다 더 명석하고 투철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게 되지요. 그러나 이러한 글들은 대체로 편가르기의 글입니다. 자기편의 우위를 보여주려는 것, '보아라' 하는 동기가 강한 것이지요. 그래서, 앞에 글들과는 달리, 이런 글쓰기의 상투적 형식 자체가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외면적인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김우창, <세 개의 동그라미> 중에서) 내가 들은 수업들은 대부분 수업에서 읽는 글에 대한 비판적 평가글을 과제로 요구했다. 다음 주의 주제에 해당하는 책이나 논문들을 미리 읽고, 각각에 대해서든 총괄해서든 학생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교수에게 제출하거나 수업 메일링 리스트에 올리는 식이다. 흔히 response paper, reaction paper 따위로 불리는 이 과제는, 교수 쪽에서 보면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데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미리 과제물을 다 읽어야 하며, 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두어야 한다. 물론 학생 자신에게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훈련이 된다. 써야 할 분량으로만 본다면 이 과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대개 두어 장 작성해서 제출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짤막한 페이퍼는 언제나 힘들었다. 이것은 response paper가 해당 책이나 논문을 그저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요약, 정리, 이해는 제대로 된 '반응'을 내기 위한 전제에 지나지 않았다. response paper의 요체는 '자신'의 response며 reaction이다. 해당 글을 우물로 삼아 내 생각을 길어올리려면 먼저 그 우물에 튼튼한 두레박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의 논지를 파악하고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주장의 강약을 잘 짚지 않으면 의미 있는 반응을 꺼낼 수가 없다. 제대로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이해부터 해야 함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니 기껏 두어 장이라도 절대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읽어야 하는 책이며 논문이란 어떤 글인가. 이미 고전이 된 책에서부터 이른바 peer review라 불리는 평가를 거쳐 전문지에 수록된 논문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글들이 아닌가. 이런 글과 상대하여 독자적인 내 생각을 형성하고 펼쳐 내기란 쉽지 않았다. 칼을 들고 글을 읽는다 자, 그래서 나나 동료들이나 할 것 없이, 이 과제 페이퍼를 쓰는 패턴이 하나 생겼다. 김우창의 표현대로 하자면 '상투적 형식'이다. 먼저 앞 부분에서 글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고, 뒤이어 이 글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그 다음, 뭔가를 비판한다. 이게 중요하다. 뭔가를 비판한다. 비판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비판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을 공격하는 자세로 뭔가를 비판한다. 이러다 보니, 칼을 들고 글을 읽게 되었다. 마음을 열고 필자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뭐든 하나 걸려봐라 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단단히 여미고, 글 구석구석을 헤집게 된다. 어디 중요한 데나 보게 되나? 각주를 뒤지고 표나 그래프를 이잡듯 뒤진다. 이렇게 어떻게든 비판을 해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읽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고, 그래야 독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읽는 내내 무릎을 치며 읽은 논문도 과제 페이퍼에서는 비판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러한 양상은 이런 형식을 지닌 과제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른지, 나뿐 아니라 동료들도 대개 비슷했다. 대가든 신진 학자든 누구든 response paper에 걸리기만 하면 여지없이 비판 받았다. 학계의 권위자가 대학원 수업 페이퍼에서는 자기가 하는 학문의 ABC도 모르는 쑥맥으로 난도질 당했다. 이 적어도 이 response paper 메일링 리스트에서 보면, 학계란 오합지졸들이 내로라 하며 뻐기는 춘추전국의 중원이나 다름 없었다. 정작 고수들은 대학원생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초야에 묻혀 있는 형국이었다. 몰이해와 성급한 비판 물론 이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사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며, 독자가 필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해하기보다 비판을 전제로 하고 글을 읽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만일 해당 필자가 직접 등장해 있는 자리라고 해 보자. 이런 비판이 어디 씨알이나 먹히랴. 아니, 그 전에 이런 비판을 입에서 꺼내 놓을 수나 있으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게 해당 텍스트를 읽었나를 증명하는 꼴이니 말이다. 다시 김우창의 말을 빌리면,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하여 ""모모의 글은 이러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식으로 끝"내기는 쉽다. 이런 형식을 취하면, 자신은 원 글의 필자보다 "더 명석하고 투철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글은 "자기편의 우위를 보여주려는 것, '보아라' 하는 동기"로 가득 찬 글이다. 형식으로는 글로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지만, 결국 죽어라 자기를 보여주려는 것, 자기를 세일즈하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DDR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비판과 토론은 지적 풍토를 만들기 위한 초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은 그 초석이 놓이기 위한 터와 같은 것이다. 제대로 이해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토론이 있고 무슨 비판이 존재할 것인가. 자기를 보여주기 바쁜 사람, 자기 입에 할 말이 들끓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호승심으로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뒤바꾸어 해석한 뒤 칼질에 나선다. 어쨌든 칼질을 하고 어쨌든 이겨야 하는 것이다. 비판이란 참 어렵고도 무서운 일이다. 죽을 힘을 다해 해당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흡족할지언정 웃음거리나 될 뿐이다. 아니면 공허하고 소모적인 동어 반복만 끊임없이 유발하든가. 비판할 힘을 좀 아껴서 이해하는 데 쓰면 어떨까. (귀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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