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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의 이야기 하나.
11월4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자, 한국 정부는 급히 축하 편지를 보냈다. 나중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이 보낸 축하 편지가 5등 안에 들어갔으며 그 덕택에 오바마 당선자가 답례 전화를 걸 때 이명박이 앞순위에 끼일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관련 기사: 국민일보, 서울신문) 게시판의 '순위꿘' 등수 놀이를 연상케 하는 이런 발언을 보도하는 기사들은 모두 이동관이 읖조리는 이야기만을 인용했을 뿐이다. 실제로 이명박의 편지가 몇 번째로 들어갔는지, 또 오바마가 이명박에게 한 전화는 몇 번째인지 챙겨보는 데는 관심도 없었으며 능력도 없는 듯했다. 물론 이런 것을 취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오바마 진영에게 이명박 편지가 몇 번째로 들어갔나를 물어본다면,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국정 당국자가 이렇게 '등수'를 자랑하고 있다면, 남들보다 빨리 축하 편지를 보내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정황을 보면, 미국 대통령 당선자 측이 등수를 챙기는 것은 오로지 의전상의 목적 때문인 듯하다. 답례 전화를 하는 순서로 삼는다든가 말이다. 세계에서 답지한 축하 편지들을 앞에 놓고, 그 도착 순서대로 '충성도'를 측정한다거나 혹은 앞으로 당선자가 맺어야 할 국제 관계의 중요도 순서로 삼는다거나 하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오바마가 당선된 뒤 외국 원수들이 보낸 축하 메세지나 축하 발언에 대한 기사들이 이 같은 점을 잘 뒷받침해 준다. 예컨대 AFP 기사는 외국 원수의 축하 편지나 축전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데, 여기에 인용되는 원수들은 누군지 보자.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교황 베네딕트 16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 중국 후진타오 주석, 일본의 아소 다로 총리,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호세 마누엘 바로소,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국가 원수들,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이스라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하여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이라크의 호시야르 제바리 외무장관, 이란의 마누체르 모타키 외무장관 등. 기사에 축전 순위 따위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황급히 편지를 받들어 올려 5위권 진입에 성공한 이명박은 이름 한 자 나오지 않는다. 당선 축하 편지를 5등으로 보냈다고 좋아하는 자들의 순위 놀이는 사실 자기만족적인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게 아닐까. 예컨대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혹은 고관대작이 되었을 때, 축하 난을 보내오는 순서대로 사람을 챙겨주는 식으로 말이다. 온 사회를 경쟁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바쁜 이들이니 이런 잡스런 가치관을 가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들은 세상 모든 일에 무조건 경쟁하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 축하하는 데에도 기를 쓰고 등수를 챙기고, 5등이라고 좋아한다. 이명박이 그냥 이명박인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부시와 '친필로' 펜팔질한다고 자랑하던 사람 아닌가. 세상 바뀌었다고 남에게 뒤질세라 축하 편지를 보내며 순위꿘에 들었다고 좋아하는 모양새는 참 보기 안스럽다. 이 마당에서, 이명박보다 잽쌌던 4명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두 달 전쯤의 이야기 하나.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재오가 워싱턴에서 열린 자전거 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한국 언론에 보도됐다. 9월27일 열린 'Bike DC' 대회에서, 6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8등으로 '입상'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사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전 의원은 28일(27일의 잘못) 워싱턴 DC에서 열린 '워싱턴 DC 바이시클 대회'라는 아마추어 자전거 대회에 참가해 8위에 입상했다. 미 백악관 앞에서 출발해 워싱턴 시내를 도는 30㎞ 코스였는데 참가자가 600여명으로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 중 미국에서는 6번째로 규모가 큰 대회라고 한다. 나는 처음 이런 뉴스를 보고, 이재오란 사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대운하 하겠다고 자전거로 전국 여기저기를 다녔던 사람이니, 목적이야 글자 그대로 삽질이라도 장딴지 근육 하나는 제대로 키웠구나 싶었던 것이다. 아마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그 나이에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회에 나가 8등을 하다니, 이재오는 인간 승리다!' 하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소식이 별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1945년생, 환갑을 넘기고 만 63세나 되는 한국의 한 중년이 미국 전국 규모 사이클 대회에서 8등을 했다니, 이건 랜스 암스트롱이 프랑스 대회를 7연속 우승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뉴스가 아닌가. 하다못해 스포츠 신문에서라도 대서특필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쉽게도, 저 기사들에 나온 내용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기사를 쓴 기자들도 사실을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기자는 이 자전거 대회가 어떤 행사인지 전혀 취재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이 행사를 제대로 안다면 이런 진술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에 있는 이재오 측근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마치 본 것처럼 기사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가 잘못 들었든 이재오 측근이 사기를 쳤든 이재오가 잘못 흘렸든, 이재오가 8등을 했다는 이 감동의 인간 승리 스토리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왜? Bike DC 대회는 등수를 챙기지 않는다. 이 행사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도 워싱턴을 함께 둘러보며 자전거를 타는 것을 목적으로 한 친목 행사다. 등수를 챙기고 시상을 하는 레이스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Bike DC 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Bike DC is a noncompetitive, community bike ride through 17 car-free miles of Washington, DC. The route is designed to be enjoyed by experienced riders, novices and families. So that participants may fully appreciate the adventure of cycling on car free city streets, Bike DC is a ride, not a race. (Bike DC는 경쟁을 하지 않는 자전거 타기 행사로서, 차량이 통제된 워싱턴 DC 거리 17마일을 달리는 행사입니다. 구간은 경험 많은 라이더, 초보자, 가족들이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참가자들이 차량 없는 거리를 자유롭게 달리는 경험을 만끽하도록 하기 위해 Bike DC 행사는 경주가 아니라 자전거 타기로 운영됩니다.) 말하자면 자전거 애호가나 동호인들을 위해 하루 날을 잡아 워싱턴 지역의 교통을 통제한 가운데, 가족과 함께 즐거이 자전거를 타며 자유로운 라이딩을 만끽하는 행사라는 것이다. Flickr에 올라온 행사 사진들을 보면 그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 둘을 뒤에 태우고 즐겁게 페달을 밟는 아빠, 두 사람이 함께 타는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즐거워하는 부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아빠, 심지어 외바퀴 자전거까지 보인다. 그런데 이재오는 이 '대회'에서 '8등'을 했단다. 어찌된 일일까? 이 기사를 보고 나서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Bike DC 행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Bikewashington.org 운영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보았다. (bikedc.net은 응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실을 말하면 나라 망신을 시킬 것 같아서, 사실은 빼고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았다. "Bike DC가 '비경쟁적(noncompetitive)'이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참가자들은 남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가? 행사 주최측은 상위권에 든 참가자에게 명예를 주지 않는가?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 있는가? Bike DC에서 예컨대 '10등 안에 들었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남들보다 빨리 들어오기 위해 경쟁하는 참가자들이 실제로 있는가?" Bike DC 행사를 주최하는 Washington Area Bicycle Association 회원이자, DC 지역 바이크 관련 사이트를 오래 운영해 온 제임스 멘지스가 지난 주에 보내온 답장은 다음과 같다: '비경쟁적'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비경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행사는 경주가 아니다. 이 행사의 목적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전거를 타며 도심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룹의 선두에는 보조를 유지하는 자동차(pace vehicle)가 있으며 이 자동차는 속도를 내려는 참가자들을 통제한다. 따라서 등수(finish position)는 전혀 의미가 없다. 나는 이 답장을 받고 다음과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남들은 즐겁게 거리를 즐기고 사람을 즐기면서 페달을 밟는데, 순위꿘 하겠다고 기를 쓰며 치달리는 동양인 하나. 저 혼자 그러면서 놀면 별 사람 다 있군 하고 말텐데, 그걸 기사화해서 이미지 만드는 데까지 써먹었다. Bike DC 행사가 뭔지 모르는 한국 독자는 크게 오해를 하게 된다. 친목 대회에서 등수를 들고 와서 자랑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 무의미한 등수가 '참가자 6백여 명'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회' 따위 진술과 어울려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건 단순히 사실과 다른 게 아니라 기만이며 호도다. 윗 기사 중 하나에 따르면 이재오는 측근과 전화하는 도중 "이 정도야 뭐... 평소 실력이지" 하고 자랑했다고 한다. 뭐가 평소 실력인지 모르겠다. 자전거인지 기만인지. 남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데 저 혼자 무의미한 등수 놀이를 벌이며 순위꿘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구나. 참 창피하지도 않은지. 닥치고 경쟁이 시대 정신인 오늘날, 경쟁 할 일, 안 할 일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등수 매기며 좋아하는 놀이는 애어른 가리지 않는 시대의 추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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