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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은 어지럽고 더럽고 냉랭합니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끝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가 문득 이메일 창을 여니, 한 선배님께서 새해 인사를 보내 주셨다. 메일은 저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예전 유학생들은 한국 소식에 목이 말랐다고 한다. 시국이 급박히 돌아갈 때면 한국 사정이 궁금해 발을 동동 굴렀다고 한다. 그래봐야 전화나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화비는 좀 비쌌나. 그래서, 지금 같은 방학에 누가 한국을 다녀오면 그 집에 다 모이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다 모여서, 한국에서 막 가져온 따끈따끈한 소식을 들으며 갈증을 달랬다고 한다. 한국을 다녀오는 사람은 또 알아서, 신문이며 잡지를 양껏 챙겨 왔다고 한다. 지난 여름, 내가 한국에 잠깐 머물고 있을 때, 미국에 있던 한 후배의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광화문의 촛불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중이라고 했다. 써야 할 논문은 앞에 있는데, 흐려진 눈으로 글자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하반신은 미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 상반신은 물대포 쏟아지는 광화문에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내 세상은 바윗덩이 험준한 아프가니스탄의 산간 지역이다. 고개를 숙이면 내 세상은 힘든 삶을 이어가는 중국 오지다. 고개를 숙이면 내 세상은 출근길 자동차가 꽉 찬 엘에이나 워싱턴의 순환 도로다. 고개를 숙이면 내 세상은 음모와 생존 본능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월스트리트다. 어수선한 책상 앞에 앉아 텍스트를 만지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들어간다. 텍스트와의 씨름이 고되면 고될수록 나는 더욱 더 깊이 들어간다. 텍스트 속에서도 좋은 밥은 맛있고 햇살은 눈부시며 상처는 아프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 들어가도 주인공은 아니다. 그래서, 고개를 한 번 드는 것만으로 나는 금방 돌아온다. 흙먼지 가득한 산등성이나 차량 물결 가득 찬 도심 거리를 빛이 달리는 것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벗어나, 흰 눈이 이른 어둠과 어울려 있는 나의 작은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서울 소식 한 줄에 마음이 다시 태평양을 휙 건넌다. 어느 새, 함성과 분노와 증오가 공기처럼 대기를 채우고 있는 공간이 나의 세상이 된다. 이것은 여러 세상 중에서도 강퍅하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왜 내 땅은 많고 많은 세상 중에서도 하필 어지럽고 냉랭한 곳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밤에 오두마니 앉아 있으면, 뚱 땅 하고 난방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날이 따뜻하면 이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날이 추우면 열심히 들린다. 아마도 바이메탈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탓이리라. 내가 어느 세상에 머물든, 고개를 숙인 세상이든 고개를 든 세상이든, 세상이 따뜻하면 내 마음 속의 바이메탈은 조용히 고정되어 있다. 내가 어느 세상에 머물든, 세상이 차가우면 내 마음 속의 바이메탈은 제꺼덕 붙어서 마음을 달군다. 수양의 힘으로 찬 세상도 다습게 느낄 줄 알아야 할 텐데, 아직은 분노도 힘이 된다나. 갑상선이 비정상이어서 신진대사가 빠르게 되면, 몸에서 열이 많아지고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이라고 안 그럴 것인가. 마음의 대사가 빨라지면 괜히 열이나 팍팍 받을 뿐, 포근한 살 한 점, 명철한 근육 한 줄 차분히 늘어날 여유가 있으랴. 예전에 그랬다고 하는 것처럼, 그저 두어 해에 한 번쯤이나 소식을 접한다면, 소식을 못 들어서 갈증이 날 지경이라면, 안달은 하더라도 그 와중에 살은 적당히 찌울 수 있을 것을. 바이메탈의 역할이란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일 테니, 마음 달구는 일이 살은 못 찌울지언정, 그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늙어 노회해지기는 너무 이르고, 쿨하고 드라이하게 살 가능성은 거의 없고, 수양에 용맹정진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그저, 고개를 들든 고개를 숙이든, 아무래도 추운 세상에서는 살지 말아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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