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지속 법칙: 저항의 결과는 순간 온도보다는 지속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저항의 합산 법칙: 저항은 합산되어 작용하므로, 모든 저항은 그 대소에 관계없이 결정적(decisive)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은 그 오옴 저항이 아니다.)
무대:
초등학교 6학년, 그러니까 엄석대가 군림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비슷한 교실이라고 하자.
등장 인물:
서석대, 전학생, 3분단장, 3분단장 짝, 미화부장, 미화부장 짝, 기타 학생들
발단:
서석대는 이 학급의 짱이었다. 그는 교실의 법이요 규율이었다. 학급 안의 모든 일은 서석대 마음대로 이루어졌으며, 아무도 대들고 저항하지 못했다. 대들었다가는 무자비한 주먹 세례를 받아 코피가 터지거나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기 십상이었다. 가끔은 돈까지 뜯겼다. 돈이야 항상 뜯기는 것이지만, 대들었을 때 더 뜯겼다. 그래서 주먹이 무섭고 돈이 아까운 아이들은 아무도 서석대에게 대들지 못했다.
개중에는 쌈깨나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담임의 묵인 아래 벌어지는 서석대의 주먹질에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대들지 않는데 괜히 혼자 나섰다가는 더 치도곤을 당하리라. 서석대의 철권 통치는 그럭저럭 잘 유지되어 나갔다.
어느 날 이 학급에 새로 전학생이 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학생은 학급만의 법과 질서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법과 질서를 갖고 있는 학급을 찾기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전학 온 날 점심 시간이 되자, 서석대는 일어나서 느릿느릿 전학생에게 다가갔다.
"도시락 내 놔."
"뭐?"
"도시락 내 놓으라구."
"왜?"
서석대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전학생은 영문을 모른 채 두어 대 맞았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 나왔다. 놀란 전학생이 말했다. "너 왜 그래?"
"내 놓으라면 내 놓지 뭔 말이 많아, 이 새꺄. 이 새끼가 법과 질서를 무시하네?"
서석대는 다시 주먹질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앞만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전개:
오늘도 수업이 끝나고 쓰레기 소각장 뒤에서 서석대와 전학생이 맞붙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첫날 점심 시간에 서석대가 전학생에게 법의 엄중함을 보인 바로 그 날, 전학생은 어이없게도 서석대에게 방과 후 남으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는데, 무엇보다 전학생의 키가 서석대 어깨에 겨우 미칠 정도로 몸집 차이가 났던 탓이다. 그래서 그 오후 내내, 전학생이 태권도 검은띠라거나 합기도를 배웠다거나 하는 설이 돌았다.
그러나 그 날 오후, 전학생은 소각장 뒤에서 서석대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전학생은 주먹다운 주먹 한 번 내밀지 못했다. 볼 것도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전학생은 학교에 오자마자 서석대 자리에 가서 "수업 뒤 남아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전학생이 형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그 둘째 날, 전학생은 첫날과 똑같이 서석대와 일대일로 붙어 신나게 터졌다. 상대가 영 형편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서석대는 더욱 신이 나서 주먹질, 발길질을 했다.
다음날, 전학생은 다시 서석대에게 다가갔다. "수업 뒤 남아라."
넷째 날도 전학생은 학교에 오자마자 석대에게 가서 말했다. "수업 뒤 남아라."
이렇게 해서 일주일째다. 아이들은 왜 전학생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면서 계속 맞붙으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전학생이 얼굴은 입술이 깨지고 멍도 들어 성한 데가 없었다. 터진 입술로 흘러나온 피가 말라붙기도 전에 새로 터졌다. 그런데도 전학생은 매일 방과후에 서석대와 싸웠다, 싸우려고 노력했다.
전환 1: 저항의 지속 법칙
둘째 주 수요일쯤엔가, 전학생은 학교에 오자마자, 일그러져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치켜뜨고 서석대에게 말했다. "수업 뒤 남아라."
서석대가 말했다. "야, 얼마나 더 얻어터지려고? 너 줘패는 것도 신물나니 웬만하면 그냥 짜져 있지?"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학생이 앉아 있던 서석대의 따귀를 세차게 돌려버린 것이다. 짝! 소리가 아침 교실의 선선한 공기를 갈랐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둘에게로 몰렸다. 전학생이 무슨 말을 하든 이젠 별로 신경 쓰지도 않던 아이들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아직 법과 질서의 쓴맛이 부족하다 이거야?" 서석대는 일어서면서 그대로 전학생의 가슴패기를 찼다. "좋아, 새꺄, 있다 남아! 더 패 줄테니."
그 다음날, 전학생이 "수업 뒤 남아라" 했을 때, 서석대는 말했다. "야, 너 패는 것도 오늘은 못한다. 오늘 소 꼴 먹이러 가야 한다."
서석대가 소 꼴 먹여본 적이 없다는 것은 반 아이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학생은 말했다. "나 보고 나서 소 먹이러 가라."
"그냥 가야 한다니까."
"그럼 너네 집 앞에서 보자."
다음날, 서석대와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가져온 말에 따르면, 전날 전학생은 집으로 가는 서석대를 오십 보쯤 뒤에서 따라가다가, 결국 서석대네 마을 강남리에 들어서는 초입, 120년 된 느티나무 밑에서 맞붙었다고 한다. 물론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전학생이 서석대의 마을로 따라간 다음 날 아침, 그가 여전히 "수업 뒤 남아라" 했을 때, 서석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뒤 청소를 하던 아이들이 내다보니, 전학생과 서석대가 싸우던 소각장 뒤에는 전학생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날이 전학생이 이 학교에 온 이래 석대와 싸우지 않은 첫 날이었다.
그 다음날, 전학생이 "수업 뒤 남아라" 했을 때도 서석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도 서석대는 남지 않았다.
전학생이 온 지 셋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전학생은 학교에 와서 서석대 자리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 뒤 남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환 2: 저항의 합산 법칙
오늘도 서석대는 점심 시간에 교실을 돌며 밥을 빼앗아 먹었다. 으레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서석대는, 점심 시간이면 분단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두어 명 도시락을 다짜고짜 들고 자기 자리로 간다. 도시락을 빼앗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밥을 조금씩 얻어 먹었다. 이것이 이 반에서 통용되는 법과 질서였다.
오늘 도시락을 빼앗긴 아이는 3분단 분단장이었다. 자기 도시락을 당연한 듯 가져가는 서석대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짝지의 밥을 얻어 먹으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전학생은 동정, 연민, 증오, 멸시가 뒤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분단장을 쳐다 보았다. 분단장은 갑자기 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학생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던 분단장은 문득, 전학생이 지금껏 한 번도 서석대에게 밥을 빼앗겨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단장은 짝의 밥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야, 근데 석대가 전학생 쟤 밥은 안 건드리네?"
짝이 말했다. "어, 너도 그거 알고 있었냐?"
분단장의 밥이 맛있었는지, 서석대는 다음날도 분단장의 밥을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단장이 무심코, "왜 내 밥만 가져가냐? 오늘은 싫다" 하고 말한 것이다.
누구 밥을 가져가는가는 오로지 서석대가 결정하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한 아이를 찍어놓고 일년 내내 그 애 밥만 대놓고 먹는다고 해도 그건 서석대의 자유며, 서석대의 자유만을 보장하는 것이 이 학급의 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분단장이 싫은 소리를 한 것이다.
"뭐, 이 새꺄? 이게 죽으려고..." 서석대는 주먹을 들어 분단장을 때리려는 시늉을 하면서도 말했다. "너 밥은 맛대가리도 없어서 먹으라고 바쳐도 안 먹는다, 새꺄."
그리고는 분단장의 짝 도시락을 움켜 쥐었다.
"어, 나도 싫다" 하고, 분단장의 짝지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뭐, 아니 이 새끼들이?" 서석대는 짝지의 어깨를 팔꿈치로 내려 찍었다.
아마 이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물론 서석대의 법과 질서는 그대로 잘 유지되었으며, 서석대는 그 뒤에도 여전히 밥을 빼앗아 먹었다. 그러나 밥을 빼앗기는 아이들은 조금씩 싫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저 입을 내밀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에이 씨!" 했다가 서석대에게 뒤통수를 맞는 아이도 있었고, "엄마가 밥 남 주지 말랬어" 하고 핑계를 대려는 아이도 있었고, "너 밥 안 싸왔어?" 하고 뻔한 걸 물어보는 것으로 불만을 대신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이제껏 없던 일이었다.
서석대는 때론 윽박지르고 때론 주먹질을 하면서 밥을 빼앗아 갔으나, 툴툴거리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애들을 반 죽여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점심 시간마다 자기를 보는 아이들의 눈에 "저 거지 새끼!" 라는 빛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절정: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시간이었다. 전과는 달리, 조금 눈치를 보며 교실을 돌던 서석대가 미화부장 앞에 멈춰 섰다. 미화부장은 평소 얌전한 데다 성격도 계집애 같아서, 서석대가 밥을 가져 간대도 툴툴거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막 밥을 뜨려던 미화부장은 앞에 선 서석대를 올려다보았다. 서석대는 으레 그렇듯 이를 무시하고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순간 미화부장이 말했다. "잠깐, 이 밥 못 먹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화부장은 제 도시락을 들고 교실 뒤로 가더니, 쓰레기통에 탕탕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새끼가? 너 왜 밥 버려?" 서석대가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어, 밥 상했다. 못 먹는다."
"이런 미친 새끼, 상한 밥 먹고 뒈져라, 새꺄!" 서석대는 그 옆에 있는 아이의 밥을 집어 들려 했다. 그 아이가 말했다.
"내 밥도 상해서 못 먹는다." 그 아이는 미화부장이 하던 그대로, 자기 도시락을 들고 나가 쓰레기통에 털어버렸다.
그 날, 학급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서석대는 점심을 얻어먹지 못했다. 열 두어 명이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털어버린 뒤, 서석대는 마침내 "모두 식중독이나 걸려 뒈져라, 새끼들아!" 하면서 교실을 나간 것이었다.
결말:
...
저항의 합산 법칙: 저항은 합산되어 작용하므로, 모든 저항은 그 대소에 관계없이 결정적(decisive)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은 그 오옴 저항이 아니다.)
무대:
초등학교 6학년, 그러니까 엄석대가 군림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비슷한 교실이라고 하자.
등장 인물:
서석대, 전학생, 3분단장, 3분단장 짝, 미화부장, 미화부장 짝, 기타 학생들
발단:
서석대는 이 학급의 짱이었다. 그는 교실의 법이요 규율이었다. 학급 안의 모든 일은 서석대 마음대로 이루어졌으며, 아무도 대들고 저항하지 못했다. 대들었다가는 무자비한 주먹 세례를 받아 코피가 터지거나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기 십상이었다. 가끔은 돈까지 뜯겼다. 돈이야 항상 뜯기는 것이지만, 대들었을 때 더 뜯겼다. 그래서 주먹이 무섭고 돈이 아까운 아이들은 아무도 서석대에게 대들지 못했다.
개중에는 쌈깨나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담임의 묵인 아래 벌어지는 서석대의 주먹질에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대들지 않는데 괜히 혼자 나섰다가는 더 치도곤을 당하리라. 서석대의 철권 통치는 그럭저럭 잘 유지되어 나갔다.
어느 날 이 학급에 새로 전학생이 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학생은 학급만의 법과 질서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법과 질서를 갖고 있는 학급을 찾기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전학 온 날 점심 시간이 되자, 서석대는 일어나서 느릿느릿 전학생에게 다가갔다.
"도시락 내 놔."
"뭐?"
"도시락 내 놓으라구."
"왜?"
서석대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전학생은 영문을 모른 채 두어 대 맞았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 나왔다. 놀란 전학생이 말했다. "너 왜 그래?"
"내 놓으라면 내 놓지 뭔 말이 많아, 이 새꺄. 이 새끼가 법과 질서를 무시하네?"
서석대는 다시 주먹질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앞만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전개:
오늘도 수업이 끝나고 쓰레기 소각장 뒤에서 서석대와 전학생이 맞붙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첫날 점심 시간에 서석대가 전학생에게 법의 엄중함을 보인 바로 그 날, 전학생은 어이없게도 서석대에게 방과 후 남으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는데, 무엇보다 전학생의 키가 서석대 어깨에 겨우 미칠 정도로 몸집 차이가 났던 탓이다. 그래서 그 오후 내내, 전학생이 태권도 검은띠라거나 합기도를 배웠다거나 하는 설이 돌았다.
그러나 그 날 오후, 전학생은 소각장 뒤에서 서석대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전학생은 주먹다운 주먹 한 번 내밀지 못했다. 볼 것도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전학생은 학교에 오자마자 서석대 자리에 가서 "수업 뒤 남아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전학생이 형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그 둘째 날, 전학생은 첫날과 똑같이 서석대와 일대일로 붙어 신나게 터졌다. 상대가 영 형편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서석대는 더욱 신이 나서 주먹질, 발길질을 했다.
다음날, 전학생은 다시 서석대에게 다가갔다. "수업 뒤 남아라."
넷째 날도 전학생은 학교에 오자마자 석대에게 가서 말했다. "수업 뒤 남아라."
이렇게 해서 일주일째다. 아이들은 왜 전학생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면서 계속 맞붙으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전학생이 얼굴은 입술이 깨지고 멍도 들어 성한 데가 없었다. 터진 입술로 흘러나온 피가 말라붙기도 전에 새로 터졌다. 그런데도 전학생은 매일 방과후에 서석대와 싸웠다, 싸우려고 노력했다.
전환 1: 저항의 지속 법칙
둘째 주 수요일쯤엔가, 전학생은 학교에 오자마자, 일그러져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치켜뜨고 서석대에게 말했다. "수업 뒤 남아라."
서석대가 말했다. "야, 얼마나 더 얻어터지려고? 너 줘패는 것도 신물나니 웬만하면 그냥 짜져 있지?"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학생이 앉아 있던 서석대의 따귀를 세차게 돌려버린 것이다. 짝! 소리가 아침 교실의 선선한 공기를 갈랐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둘에게로 몰렸다. 전학생이 무슨 말을 하든 이젠 별로 신경 쓰지도 않던 아이들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아직 법과 질서의 쓴맛이 부족하다 이거야?" 서석대는 일어서면서 그대로 전학생의 가슴패기를 찼다. "좋아, 새꺄, 있다 남아! 더 패 줄테니."
그 다음날, 전학생이 "수업 뒤 남아라" 했을 때, 서석대는 말했다. "야, 너 패는 것도 오늘은 못한다. 오늘 소 꼴 먹이러 가야 한다."
서석대가 소 꼴 먹여본 적이 없다는 것은 반 아이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학생은 말했다. "나 보고 나서 소 먹이러 가라."
"그냥 가야 한다니까."
"그럼 너네 집 앞에서 보자."
다음날, 서석대와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가져온 말에 따르면, 전날 전학생은 집으로 가는 서석대를 오십 보쯤 뒤에서 따라가다가, 결국 서석대네 마을 강남리에 들어서는 초입, 120년 된 느티나무 밑에서 맞붙었다고 한다. 물론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전학생이 서석대의 마을로 따라간 다음 날 아침, 그가 여전히 "수업 뒤 남아라" 했을 때, 서석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뒤 청소를 하던 아이들이 내다보니, 전학생과 서석대가 싸우던 소각장 뒤에는 전학생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날이 전학생이 이 학교에 온 이래 석대와 싸우지 않은 첫 날이었다.
그 다음날, 전학생이 "수업 뒤 남아라" 했을 때도 서석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도 서석대는 남지 않았다.
전학생이 온 지 셋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전학생은 학교에 와서 서석대 자리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 뒤 남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환 2: 저항의 합산 법칙
오늘도 서석대는 점심 시간에 교실을 돌며 밥을 빼앗아 먹었다. 으레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서석대는, 점심 시간이면 분단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두어 명 도시락을 다짜고짜 들고 자기 자리로 간다. 도시락을 빼앗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밥을 조금씩 얻어 먹었다. 이것이 이 반에서 통용되는 법과 질서였다.
오늘 도시락을 빼앗긴 아이는 3분단 분단장이었다. 자기 도시락을 당연한 듯 가져가는 서석대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짝지의 밥을 얻어 먹으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전학생은 동정, 연민, 증오, 멸시가 뒤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분단장을 쳐다 보았다. 분단장은 갑자기 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학생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던 분단장은 문득, 전학생이 지금껏 한 번도 서석대에게 밥을 빼앗겨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단장은 짝의 밥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야, 근데 석대가 전학생 쟤 밥은 안 건드리네?"
짝이 말했다. "어, 너도 그거 알고 있었냐?"
분단장의 밥이 맛있었는지, 서석대는 다음날도 분단장의 밥을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단장이 무심코, "왜 내 밥만 가져가냐? 오늘은 싫다" 하고 말한 것이다.
누구 밥을 가져가는가는 오로지 서석대가 결정하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한 아이를 찍어놓고 일년 내내 그 애 밥만 대놓고 먹는다고 해도 그건 서석대의 자유며, 서석대의 자유만을 보장하는 것이 이 학급의 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분단장이 싫은 소리를 한 것이다.
"뭐, 이 새꺄? 이게 죽으려고..." 서석대는 주먹을 들어 분단장을 때리려는 시늉을 하면서도 말했다. "너 밥은 맛대가리도 없어서 먹으라고 바쳐도 안 먹는다, 새꺄."
그리고는 분단장의 짝 도시락을 움켜 쥐었다.
"어, 나도 싫다" 하고, 분단장의 짝지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뭐, 아니 이 새끼들이?" 서석대는 짝지의 어깨를 팔꿈치로 내려 찍었다.
아마 이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물론 서석대의 법과 질서는 그대로 잘 유지되었으며, 서석대는 그 뒤에도 여전히 밥을 빼앗아 먹었다. 그러나 밥을 빼앗기는 아이들은 조금씩 싫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저 입을 내밀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에이 씨!" 했다가 서석대에게 뒤통수를 맞는 아이도 있었고, "엄마가 밥 남 주지 말랬어" 하고 핑계를 대려는 아이도 있었고, "너 밥 안 싸왔어?" 하고 뻔한 걸 물어보는 것으로 불만을 대신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이제껏 없던 일이었다.
서석대는 때론 윽박지르고 때론 주먹질을 하면서 밥을 빼앗아 갔으나, 툴툴거리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애들을 반 죽여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점심 시간마다 자기를 보는 아이들의 눈에 "저 거지 새끼!" 라는 빛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절정: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시간이었다. 전과는 달리, 조금 눈치를 보며 교실을 돌던 서석대가 미화부장 앞에 멈춰 섰다. 미화부장은 평소 얌전한 데다 성격도 계집애 같아서, 서석대가 밥을 가져 간대도 툴툴거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막 밥을 뜨려던 미화부장은 앞에 선 서석대를 올려다보았다. 서석대는 으레 그렇듯 이를 무시하고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순간 미화부장이 말했다. "잠깐, 이 밥 못 먹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화부장은 제 도시락을 들고 교실 뒤로 가더니, 쓰레기통에 탕탕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새끼가? 너 왜 밥 버려?" 서석대가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어, 밥 상했다. 못 먹는다."
"이런 미친 새끼, 상한 밥 먹고 뒈져라, 새꺄!" 서석대는 그 옆에 있는 아이의 밥을 집어 들려 했다. 그 아이가 말했다.
"내 밥도 상해서 못 먹는다." 그 아이는 미화부장이 하던 그대로, 자기 도시락을 들고 나가 쓰레기통에 털어버렸다.
그 날, 학급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서석대는 점심을 얻어먹지 못했다. 열 두어 명이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털어버린 뒤, 서석대는 마침내 "모두 식중독이나 걸려 뒈져라, 새끼들아!" 하면서 교실을 나간 것이었다.
결말:
...




덧글
이민수 2009/01/05 15:59 # 답글
결국 지속성이라는 건 내부온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부온도가 낮은 경우엔 아무리 표면온도가 높아서 저절로 식어버리잖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네요.deulpul 2009/01/06 06:18 #
그렇죠, 안에서 꾸준히 잘 타야, 구들장 밑으로 군불 때듯이 온기가 오래 가는 듯 합니다. 파르르 끓고 파르르 식으면 상대에게 면역성만 키워주는 꼴이 되죠. 내부 온도를 꾸준히 유지시켜 주는 것은 개인이 가진 가치관이나 원칙에서 나오는 결기와 세상 일의 진실일 듯한데, 이 점을 생각하면...2009/01/05 16:3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9/01/06 06:18 #
뭐야, 부럽습니다. 메일 보냈어요-.긁적 2009/01/05 20:01 # 답글
이 천박한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deulpul 2009/01/06 06:21 #
억지로 낙관을 가지자면, 이렇게까지 만들어 오기도 했잖습니까. 앞으로 전진은 못 시키더라도, 다행히(!) 10년, 100년 뒤로 후진하고 있으니 최소한 다시 제 자리 찾아 오는 정도는 해본 경험도 있겠다,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가 막힌 국가적 낭비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가도록 되어 있나 봅니다.LieBe 2009/01/05 20:06 # 삭제 답글
제가 약간의 논평을 하자면.....(조금 어렵습니다...ㅎㅎ)우선 비유와 현실에서의 약간의 괴리감이랄까요?
물론 저런 초월자로 묘사되는 선동자의 행위를 통한 집단의 결합과 반발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지만 이성은 그리 쉽게 매사에서 힘과 공포의 논리를 억누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비관적인가요.....쩝...)
두번째로 초월자의 필요성이 상정된 얼개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떤 시각으로 해석될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이문열씨의 우리들의....에서도 담임선생님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대한 체제의 변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논해졌던 바가 있습니다만...
차라리 들풀님의 글은 시스템의 영향 밖의 담임선생님보단 시스템의 일부에서의 일어섬이라는 조금더 그럴듯한 얼개가 맘에는 듭니다..
적고 보니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ㅎㅎ
deulpul 2009/01/06 06:48 #
역시 평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좋은 평론은 원작보다 140배 어려워야 한다는 통설이 정확히 맞는군요, 하하-. 하지만! 모두모두 오해이신 검미다. 그냥 초딩용 명랑 학창 소설(이라기보다 소썰)일 뿐인 것임미다... 끙.JNine 2009/01/05 21:10 # 삭제 답글
ㅎㅎ 단편소설인가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본지가 어언...음...기억이 안나는 군요T-Tdeulpul 2009/01/06 06:51 #
전상국이 쓴 <우상의 눈물>도 읽을 만합니다.bada92.tistory.com/entry/%EC%9A%B0%EC%83%81%EC%9D%98-%EB%88%88%EB%AC%BC%EC%A0%84%EC%83%81%EA%B5%AD-%EB%8B%A8%ED%8E%B8%EC%86%8C%EC%84%A4-%EA%B0%90%EC%83%81%ED%95%98%EA%B8%B0
위 사이트에서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까지가 <우상의 눈물>입니다...
ymir 2009/01/05 22:27 # 삭제 답글
.....하필 '그 사람' 글이 샘플로 쓰인건 이승만 집권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에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빨갱이 족치즘과 무릎꿇고 굴복한 이들이 오리지널보다 더 원색적인 현상을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바라보는 불사조식 비웃음이 담긴 걸까요?(.....)deulpul 2009/01/06 07:10 #
으음.... 느무느무 어려운 말씀이라 곰곰히 생각을... 해도 잘 모르겠군요. 그 양반이 "아빠 미워!" 하면서 삐져갖고 세상을 아빠와는 반대로 살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었는데... 어쨌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는 텍스트가 잘 된 (것처럼 보이는) 텍스트라는 기가 찬 주장을 내세우고파요... 하하.죠커 2009/01/06 11:25 # 삭제 답글
예전 고교시절에 양아치에게 대들었던 친구녀석이 있었는데 의외로 싸움도 잘하더군요. 그런데 쉬는 시간마다 그 양아치나 그 양아치의 친구들이 시비를 걸어오더군요. 결국 그 친구녀석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오히려 양아치의 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왠지 그때가 생각나네요. 저항이 지속화되기 힘든 상황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deulpul 2009/01/06 12:48 #
예, 모든 일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기 마련이라서, 한 가지 모델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게 맞는 말일 겁니다. 그래도 법칙이란 추상화의 꼴을 취하고 있으니 대충은 얼추 맞아야 법칙이랄 수 있을텐데, 그런 측면에서 억지를 부리자면 말씀하신 상황은...기득권층이나 양아치들은 저항에 저항하죠. 특히 저항이 다수가 되고 주류가 될수록 그런 모양이 되겠습니다. 최근의 한 기사에 따르면 여권에서 '대통령 집권 1년 동안 한 일도 많은데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것은 반대 세력의 저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다'라는 인식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걸 저항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해서다라고 옮겨도 될 듯 합니다. 결국 여기서 저항이란 세력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선 쪽이 강한 쪽에 대항하는 것을 말함인데, 강약 관계는 실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수시로 변할 수 있으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놈이 악바리가 되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느냐가 되지 않을까요.
silent man 2009/01/07 23:29 # 삭제 답글
하지만 현실은 나도 서석대처럼 도시락을 안 싸오고, 나보다 약한 놈 도시락을 뺏어먹는 게 장땡이란 걸 모두가 깨달아가는(?) 상황이네요. 아놔...deulpul 2009/01/08 07:57 #
예리한 전망이십니다. 전망이 아니라 현실이기도 하군요. 그렇게 되면, 빼앗기는 놈들은 어차피 자기 밥 자기가 못 먹을테니 도시락 안 싸오고, 덕분에 빼앗는 놈들은 빼앗을 데가 없어서 굶게 되고... 결론은 학급 전체가 점심 시간에 손가락만 빨고 있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