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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논문을 발표하러 학회를 다녀왔다. 규모가 좀 큰 학회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학회 역시 실제 운영은 주제에 따라 나뉜 다양한 그룹(division)에 의해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디비전들이 독자적으로 논문을 받고 심사하고 발표 행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내 논문이 발표되기로 되어 있는 세션 이름이 영 헷갈리는 것이다. 'The Best of the Best Papers: Top Papers in OOOO Division'이라는 게 세션의 공식 타이틀이었다. 이름만 보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이 이름이 헷갈렸던 이유는, 이게 상을 주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내가 참여하는 굵직한 학회들은 연례 학회 행사때마다, 디비전 단위로 좋은 논문을 뽑아 상을 준다. 디비전에 따라 상을 주는 데도 있고, 안 주는 데도 있다. 또 같은 디비전이라도 예산이라든가 여러 상황에 따라 상을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다. 흔히 'top paper'류의 이름이 붙는 이 상들은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큰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공들여 쓴 논문을 동료 학자들이 심사해서, 그 중에 우수한 것으로 선정했다는 말이니까. 아쉽게도, 이런 상은 상금이 무척 짜다. 놀랍게도 '전국(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전미)'이나 '국제' 타이틀이 붙는 큰 학회에서 받는 톱 페이퍼 상금은 기껏해야 200~300달러 수준이다. 몇 년 전에 이런 상을 하나 받을 때도, 상패는 뻑적지근한 것을 주면서 상금은 고작 200달러였다. 그 때 상을 주던 디비전 운영 교수 하나가, 거액을 받게 되어서 축하한다며 자기가 학생일 때는 100달러도 되지 않았다고 농담하던 기억이 난다. 말하자면, 상금보다 상의 의미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내가 발표하기로 된 논문은 톱 페이퍼 타이틀은 붙여 놓고, 상을 준다는 말인지 아닌지 별다른 통보가 없었다. 이렇게 뽑힌 발표 논문은 나까지 네 개였다. 이 일을 쓰는 이유는, 학회에서 돌아온 뒤 동료나 후배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 왔기 때문이다. 인사는 고맙고, 나름 인사를 받을 만한 영예였다고는 생각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상을 받지 않았다. 상이란 수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가 있어야 하고, 형식적이나마 시상식이라는 절차를 갖추어야 하며, 상장이나 상패나 상금 따위가 있어야 한다. 내 경우 이런 요소들이 모두 결여되었기 때문에, 나는 상을 받은 것이 아니다. 디비전의 여러 세션 중에서도 저런 타이틀이 붙은 세션에 뽑혔다는 것은 고맙고 영예스러운 일이지만, 어쨌든 상은 받지 않았다. 물론 이왕이면 어워드를 주지...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공식으로 상이 되면, 하다못해 이력서에 쓰는 내용이라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세션에서 발표가 끝난 뒤 더 컸다. 네 논문이 발표된 뒤, 공식적으로 코멘트를 준비한 디비전 교수가 다른 세 논문은 신나게 씹었으면서도 내 논문은 별다른 코멘트없이 좋은 이야기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디비전 안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예컨대 예산 문제 같은 게 있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까짓것, 어쨌든 디비전 전체에서 '톱 페이퍼' 네 개중 하나로 뽑혔으니 상을 받았다고 떠들고 다녀도 뭐라고 할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fact)이 아니다. 언어(문장)와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썼던 이재오 생각이 난다. 그는 순위를 따지지 않는 친목 행사인 미국의 자전거 타기 대회에서 '8등을 했다'고 한국에 떠벌였다. 언어와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구라고 기만이 된다. 최근 이 일로 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우리가 씁쓸해 하며 내린 결론은 이 거다: 여기(미국)서 나가는 정보 태반은 뻥튀기다. 생각해 보라. 미국에 한국인 하버드 수석 졸업생은 왜 그리 많으며 음악 천재는 왜 그리 많으며 석학들은 왜 그리 많은가. 어느 놈 하나 눈 까뒤집고 확인하는 사람이 없으니, 뻥을 쳐도 먹히는 것이다. 이미 잘 하고 있는데도, 조금 더 잘 보이려고 하다 깜빡하는 분들이 있다. 예전에 어떤 아나운서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참 주가가 오르던 여성 아나운서였는데, 어린 여학생들의 우상이나 롤 모델 같은 존재가 되다시피 했다. 그는 주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 자리에 서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사회자가 전화인지 엽서인지 게시판인지를 통해 던져진 질문 하나를 읽었다.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나오는 거 보면, 밑에 있는 원고는 하나도 안 보고 그냥 카메라만 보면서 말하던데요, 어떻게 그 많은 걸 다 외어서 하죠? 저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꾸겠어요. 정말 대단해요." 이 질문에 대해 아나운서는, 방송 시작 전에 기자들이 가져 온 뉴스 원고를 여러 번 읽고 소화한 뒤 카메라 앞에 앉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여학생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아니다. 질문을 한 여학생이 스스로 자조하면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원고를 보지 않고 20, 30분 동안 줄줄 말할 수 있나?' 였다. 그 아나운서가 뉴스 원고를 잘 소화하는지 소화불량에 걸리는지 위궤양이 있는지 따위가 아니지 않은가. 그 아나운서가 제대로 대답을 했다면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할 것이다. "방송 시작 전에 뉴스를 여러 번 읽어 소화를 합니다. 뉴스를 이해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실제 방송을 할 때에는 기계 장비의 도움도 받습니다. 프롬프터라고 하는 장비인데, 시청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뉴스 원고 내용을 진행자가 읽을 수 있도록 모니터에 보여줍니다." 이렇게 대답한다고 해도 그 아나운서의 뛰어난 능력과 명성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이런 부분을 빼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질문을 했던 여학생은 여자 아나운서란 엄청난 기억력과 '소화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며, 나 같은 사람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직종이라고 생각하며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저 아나운서의 말을 들은 뒤로는 그를 전혀 신뢰하지 않게 됐다. 그 뒤,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실제 사람을 보니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아서, 한편 안도하면서도 한편 씁쓸했다. 뉴스 소화는 몰라도 밥 소화는 잘 하는 것 같았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실제로 그런 사람이 드물기에 나온 격언일 것이다. 하물며, 이것은 실제로 있는 장점도 감추는 것이 미덕이었던 단군조선 때 이야기다. 지금은 실제로는 없는 미덕도 덕지덕지 갖다 붙여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기회만 있으면 자신을 세일즈해야 하고 그런 것이 미덕이 되는 지금 세상에서는 약간의 과대 포장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못 하는 놈이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랭이를 쓰고 있으면서 사모(紗帽) 썼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사실과 차이가 난다. 자신을 세일즈하는 것은 좋지만, 일단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 그런가? 가짜 관을 쓰고 있으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비록 옳더라도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세일즈하는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알려지면, 그의 모든 것에서 신뢰가 흔들린다. 작은 영예 하나 덧붙이기 위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세상에는 항상 어중간하고 모호한 영역이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고. 혹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고, 저렇게 주장할 수도 있고. 이 모호한 영역을 조심해야 한다. 모호한 영역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내게는, 이 모호한 영역이란 사람됨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진 것 같다. 모호한 영역에서 자신에게 철저한 것, 이것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 자기가 하는 행동에 신뢰를 심기 위해 넘어야 하는 어렵고도 중요한 장애물이 아닐까 싶다. (목록 정리를 위해, 쓴 날을 24시간 뒤로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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